역주 석보상절 제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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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석보상절 제20
역주 석보상절 제20

석보상절(釋譜詳節)은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가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종의 명으로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김수온 등의 도움을 받아 석가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책이 언제 간행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수양대군의 『석보상절 서(序)』가 세종 29년(1447)으로 되어 있고, 또 9권의 표지의 기록으로 세종 29년(1447)에서 세종 31년(1449) 사이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석보상절』이 발견된 것은 현재 마지막 권이 24권으로 30권에 가까운 방대한 것이라고 짐작되지만 이상의 것밖에는 발견된 것이 없으므로, 그 초간과 복간은 물론 문헌의 내용 자체만으로도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 한글로 번역한 것이라서 당시 쓰던 국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김무봉 교수

∙1955년 충북 추풍령 출생.
∙동국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문학석사, 문학박사.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서〉

『염불보권문의 국어학적 연구』
『아미타경언해의 국어학적 연구』
『세종문화사대계 1』
『고행록의 어문학적 연구』
『불교문학과 불교언어』
『불교문학 연구의 모색과 전망』 (이상 공동).

〈역주〉

『역주 금강경언해』(공동)
『역주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역주 법화경언해 권5』
『역주 원각경언해 권6』
『역주 육조법보단경언해 권상』
『역주 육조법보단경언해 권하』
『역주 불설아미타경언해·불정심다라니경언해』
『역주 반야바라밀다심경언해』
『역주 상원사중창권선문·영험약초·오대진언』

역주위원

석보상절 제20 : 김무봉

교열·윤문·색인위원

  • 석보상절 제20 : 박종국·홍현보

편집위원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 : 강병식 김구진 김무봉
  • 김석득 김영배 나일성
  • 노원복 리의도 박병천
  • 오명준 이창림 이해철
  • 임홍빈 전상운 정태섭
  • 조오현 차재경 최홍식
  • 한무희 홍민표

역주 석보상절 제20을 내면서

우리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1968년 1월부터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을 국역하기 시작하여 447책을 펴내 실록을 완역하였고, 『증보문헌비고』 40책 완간 등 수많은 국학 자료의 번역사업을 벌여 오고 있다. 아울러 1990년 6월부터는 “한글고전 역주 사업”의 첫발을 내디디어, 『석보상절』 권6·9·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그 성과물을 간행하여 왔다. 이제 우리 회는 올해로써 한글고전 역주 사업을 추진한 지 21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를 맞게 되었고, 600책이 넘는 국역 학술 간행물이 말해 주듯이,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한글 국역·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우리 회가 국역 사업을 벌이는 뜻은 바로 백성과의 소통을 통하여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을 이어받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역주하여 간행한 문헌과 책 수는 『석보상절』 2책, 『월인석보』 17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10책, 『남명집언해』 2책,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1책, 『구급방언해』 2책, 『금강경삼가해』 5책, 『선종영가집언해』 2책, 『육조법보단경언해』 3책, 『구급간이방언해』 5책, 『진언권공, 삼단시식문언해』 1책, 『불설아미타경언해, 불정심다라니경언해』 1책, 『반야심경언해』 1책, 『목우자수심결·사법어 언해』 1책,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1책, 『분문온역이해방·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 1책, 『언해두창집요』 1책, 『언해태산집요』 1책, 『삼강행실도』 1책, 『이륜행실도』 1책, 『정속언해·경민편』 1책, 『상원사중창권선문·영험약초·오대진언』 1책, 『번역소학』(권6,7,8,9,10) 1책, 『소학언해』(권1,2와 권3,4) 2책, 『논어언해』(권1,2와 권3,4) 2책,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1책, 『두시언해』(권10) 1책 등 모두 80책이다.

이제 우리가 추진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은 15세기 문헌을 대부분 역주하고 16세기 이후 문헌까지 역주하는 데 이르렀다.

『석보상절(釋譜詳節)』은 수양대군이 부왕 세종의 명을 받아 어머니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고, 민중을 불교에 귀의하게 하기 위하여 지은 석가모니의 가계와 그 일대기로서 모두 24권으로 된 활자본의 책이다. 이 책의 원간은 세종 29년(1447) 7월로 추정되는데, 책 이름의 석(釋)은 석가모니를, 보(譜)는 일대기를, 상(詳)은 종요로운 말을 자세히 씀을, 절(節)은 종요롭지 않은 말은 생략함을 말한다.

그동안 우리 회에서 권제6, 9, 11과 권제13, 18을 1991년에 역주 간행한 이후 발견되지 않은 권수가 많았고, 이미 1972년 역주되어 출판된 권제23, 24(김영배 역주)를 제외하고는 초간본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번 권제20, 21이 1989년에 발견되어 현재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음을 알고, 하루 빨리 우리 국어학의 발전과 학자들의 연구를 위해 역주하기를 간절히 바래 왔다. 이와 함께 중시되는 『월인석보』는 대다수 권수가 발굴되어 꾸준히 역주본을 간행하여 온 우리 회로서는, 이 귀중한 『석보상절』을 방치해 두기에 그 책임이 무겁다고 느껴 이번에 역주본을 간행케 된 것이다. 아쉽게도 현재의 소장처에서 영인 간행되기를 원하지 않아 영인본을 부록에 싣지 못하였다.

특히 이번 『역주 석보상절』 제20, 제21에서는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석보상절』의 본문 이외에도 『월인석보』와 『법화경언해』의 본문도 실었으며, 세 문헌을 늘어놓는 데 그치지 않고, 역주에서 낱말과 어구의 번역 비교를 나타내 보였다.

이 귀중한 『석보상절』 권제20을 우리 회에서 역주 간행함에 있어, 역주를 위해 애써 주신 동국대학교 김무봉 교수님께 먼저 그 노고에 감사드리며, 아울러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과학기술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 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올린다.

2012년 12월 9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1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가 아닌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은 이를 읽고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이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며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려하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어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석보상절』 제20 역주는 1990년에 발견(현재는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초간본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람을 승락받지 못하여 영인본을 싣지 않았다. 이 역주는 처음 발견 당시 소장자에게서 복사된 자료의 재복사물을 구하여 이루어졌다.

(2) 이 책의 편집은, 『석보상절』(1447)의 원문인 언해문을 굵은 네모 틀 안에 먼저 싣고, 『석보상절』의 내용과 비교할 수 있는 『월인석보』(1459)를 가는 네모 틀에, 『법화경언해』(1463)의 원문을 점선 네모 틀 안에 실어서 나란히 실었다. 그 밑에 『석보상절』의 현대문 풀이와 주석을 달아 독자가 참고하기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〇 『석보상절』 원문 :

〇 『월인석보』 원문 :

〇 『법화경언해』 원문 :

(3) 『석보상절』은 원본을 부록에 싣지 못하는 관계로, 원전 모습 그대로를 복원하고자 동국정운식 표기와 방점을 똑같이 살려 표기하였고, 내용 비교를 위해 이어서 실은 『월인석보』는 그 원문을 모두, 또 『법화경언해』는 경 원문(다만 경 원문에 붙은 협주문은 생략함)과 계환(戒環) 스님의 주해문, 그리고 각각 그 언해문을 실었다. 다만 문장에 맞게 띄어쓰기를 하였으며, 원전과 비교하여 찾아보는 데 도움이 되도록 원문의 각각 시작되는 글자 앞에 권(卷)·장(張)·앞〔ㄱ〕·뒤〔ㄴ〕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또한 부록으로 석보상절 제20 원문을 쪽별로 모아 실었다.

(보기) 6권 165장 ㄴ쪽이 시작되는 곳 : 經은 頓悟야  6:165ㄴ료미 다 다아

(4) 현대역은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직역을 위주로 하였으며, 작은 글씨 2행 협주가 중첩적으로 나타날 때는 같은 크기의 글자로 하되, 원문에 없지만 협주 부분을 【 】 표시로 구분하였다.

3. 역주자 일러두기

(1) 『역주 석보상절 제20』은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본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소장처와 협의가 되지 않아 기존의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역주본의 경우처럼 영인본을 싣지 못하는 대신 본문을 방점까지 입력하여 제시하였다.

(2) 『석보상절』의 본문 이외에도 『월인석보』와 『법화경언해』의 본문을 실어서 세 문헌의 비교·연구가 가능하도록 했다.

(3) 불교 용어는 불교용어사전에서 인용하되 본문 내용에 부합되는 내용만 발췌하여 본문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4) 예문은 간행 연대가 비슷한 문헌인 「석상(석보상절)」, 「월석(월인석보)」, 「월곡(월인천강지곡)」, 「능엄(능엄경언해)」, 「법화(법화경언해)」를 중심으로 제시하였다.

(5) 『석보상절 제20』은 훼손되어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다. 『월인석보 제18』, 『법화경언해 제6, 7』과 비교하여 재구할 수 있는 것은 ‘〔 〕’를 씌워 재구하였고, 내용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추정되는 글자 수만큼 ‘□’로 표시하였다.

석보상절 제20 해제* 주001)
* 이 역주 작업은 주위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뒤의 논의에서 다시 밝히겠지만, 『석보상절』 권 20의 내용이 『월인석보』(1459년 간행) 권 18 및 『법화경언해』(1463년 간행) 권 6, 7에도 번역되어 실려 있기 때문에, 비교가 가능하도록 역주 대상 문헌인 『석보상절』은 물론, 『월인석보』와 『법화경언해』 등 각각 다른 시기에 간행된 두 책에서 대응되는 부분도 함께 실어 놓았다. 『석보상절』 권 20은 원본을 직접 볼 수가 없어서 복사본으로 작업을 했으나, 원본과의 대교(對校)를 통한 확인의 과정은 거치지 못했다. 대신 현전하는 다른 『석보상절』이나 대응되는 두 책의 내용을 참고했다. 하지만 원본을 처음 소개했던 천혜봉교수의 지적대로 원본에 훼손된 부분이 적지 않아서 해독에 어려움이 따랐다. 이런 일련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김성주교수와 박대범군이 입력과 교정 작업을 진행해 주었다. 그리고 서정호군과 전기량양은 역주의 교정을 보느라 많은 고생을 했다. 여기에 적어서 사의를 표한다.
김무봉(동국대학교 교수)

Ⅰ. 책의 전래 경위

『석보상절』(1447년 간행)은 애초에 24권으로 간행되었다. 주002)
『석보상절』 초간본의 간행 권수(卷數)가 24권이라는 사실은 이동림(1959), 이병주(1967), 김영배(1986) 등에 의해 일찍이 밝혀진 바 있다. 곧 국립도서관 소장본 4책의 원 소유자였던 세종 때의 황해도 해주 목사(권 9의 마지막장에 쓴 職銜은 ‘嘉善大夫黃海道都觀察黜陟使兼兵馬都節制使兼判海州牧事’이다.) 신자근(申自謹)이 정통(正統) 14년(세종 31년, 1449년) 9월에 손수 쓴 것으로 보이는 ‘共廿四’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이 ‘共廿四’라는 글자는 권 6과 권 13의 표지 아래쪽 마구리에 적혀 있다고 한다. 이병주(1967), 김영배(1986)에서는 권 23과 권 24의 내용으로도 확인한 바 있다.
이 초간본 중에 8권만이 현전한다. 권 6, 9, 13, 19 등 4책이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주003)
국립도서관 소장의 4책에는 주묵(朱墨)으로 교정을 한 흔적이 있다. 이른바 교정본(校正本)인 것이다. 『석보상절』의 교정에 대해서는 안병희(1974)에 상세한 설명이 있다. 이호권(2001)에는 교정 및 교정에 따른 정정(訂正) 내용이 논의 곳곳에 나오고, 부록에는 4책의 교정일람표가 있어서 연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권 23, 24 등 2책이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권 20, 21 등 2책은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들이 발굴·공개된 경위에 대해서는 그 동안 여러 보고가 있었으므로 여기서 따로 다루지는 않는다. 주004)
국립도서관 소장의 4책에 대해서는 에타 도시오(江田俊雄:1936), 동국대 중앙도서관 소장의 2책에 대해서는 이병주(1967), 리움미술관 소장의 2책에 대해서는 천혜봉(1990)에 소상한 소개가 있다. 중간본인 권 3에 대해서는 천병식(1985), 권 11에 대해서는 심재완(1959)에 간행 연도 추정 등 책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실려 있다.
초간본은 아니지만 그 복각본(覆刻本) 2책도 현전한다. 권 3과 권 11이다. 권 11은 심재완교수에 의해 영인·공개(1959)된 바 있다. 이 책은 1560년 경 전라도 순창(淳昌)의 무량사에서 간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주005)
중간 복각본인 권 11의 간행 연도에 대해서는 안병희(1974:20~21)에서 무량사판 『월인석보』 권 23(명종 14년, 1559년 간행) 및 같은 무량사판인 『월인석보』 권 21(명종 17년, 1562년 간행)과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권 3은 천병식교수에 의해 영인·공개(1985)되었다. 간기(刊記)는 없지만, 책의 맨 뒷면 안쪽에 붙어 있는 후세(後世)의 부전(附箋)으로 간행 연대를 추정하고 있다. 곧 부전에 적힌 “嘉靖四拾辛酉年中月龜岳山無量寺開板”을 근거로 하여 1561년(명종 16)에 역시 순창의 무량사에서 중간(重刊)된 책으로 보았다. 이로써 『석보상절』은 전체 24권의 책 중 초간본 8권, 중간본 2권 등 모두 10권의 책이 오늘에 전하고 있는 셈이다. 주006)
현전하는 10권의 문화재 지정 여부는 다음과 같다. 문화재청의 문화재 검색사이트에 의하면 국립도서관 소장의 ‘권 6, 9, 13, 19’ 등 4책은 보물 523-1호, 동국대 중앙도서관 소장의 ‘권 23, 24’ 등 2책은 보물 523-2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애초 심재완교수 소장이었다가 지금은 삼성미술관 리움으로 소장처가 바뀐 ‘권 11’ 역시 보물 523-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천병식교수 소장의 ‘권 3’ 및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권 20, 21’에 대한 정보는 없다.
초간본 권 20은 1990년 2월 24일 무렵의 언론 보도로 처음 존재 사실이 공개되었고, 그해 3월에는 서지학자 천혜봉교수가 미술관련 잡지 『가나아트』 3·4월호(통권 12호)에 소개하여 전모가 밝혀졌다. 당시의 소장자가 자신의 고전적(古典籍)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진가(眞價)를 알고,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이라고 전한다. 앞에서 밝힌 대로 현재는 ‘초간본 권 21’과 함께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007)
초간본인 권 21 역시 천혜봉교수에 의해 1989년 11월 16일 경 언론에 공개되었다. 권 20이 공개되기 이전의 일이다. 이 책은 고서(古書) 수집가 우찬규(禹燦奎)님 소장이었는데, 천혜봉(千惠鳳)교수가 발굴하여 공개한 것이다. 권 21은 모두 65장 130쪽 정도의 분량일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끝의 두 장인 64, 65장이 낙장이고, 60~63까지는 훼손이 심해서 해독이 어렵다. 이 책 역시 복사본으로 연구자들에게 유통되고 있다.
위의 천혜봉(1990:98~99)에 의하면 두 책은 납탑본(納塔本)이었다고 한다. 두 권이 한 책으로 묶여서 탑장(塔藏)되어 있다가 빛을 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원본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오래 전에 입수한 사본을 대상으로 이 역주 작업을 진행했다. 이 책은 53장 106쪽으로 되어 있으나, 애초 천혜봉교수가 소개한 대로 권수(卷首) 쪽의 첫 장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고, 2장부터 15장까지의 좌하귀 부분이 침윤(浸潤)과 마멸(磨滅)로 심하게 훼손되어 이 부분에 대한 해독이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역주(譯註) 작업 및 연구(硏究)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에 책의 형태서지 및 구성, 그리고 같은 내용이 실려 있는 『월인석보』 및 『법화경언해』와의 대응 관계, 어학적 특성 등을 살펴서 내용에 대한 확인은 물론, 국어사 자료로서의 가치를 밝혀보고자 한다. 역주에 원본의 서영(書影)을 실을 수가 없어서 원본에 있는 내용을 모두 입력한 후, 그 입력된 내용을 원문 대신 제시하려고 한다. 원문에 있는 내용이라면 방점은 물론 동국정운(東國正韻) 한자음까지 그대로 옮겨서 원문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아울러 비교·연구가 가능하도록 간행 연대가 조금씩 다른 『월인석보』(1459년 간행)와 『법화경언해』(1463년 간행)의 대응 부분도 함께 제시할 것이다.

Ⅱ. 형태 서지

앞에서 밝힌 것처럼 필자는 역주 대상의 책인 『석보상절』 권 20을 직접 살피지 못했다. 현 소장처의 방침으로 열람(閱覽) 및 실사(實査)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용하고 있는 책은 공개 당시의 첫 번째 소장처에서 나온 복사본을 다시 복사한 것이다. 이 재복사본은 『석보상절』 권 20이 세상에 공개된 1990년 이후, 수년이 지나 연구자들 사이에 유통되었던 사본(寫本)으로 필자도 그 무렵에 입수한 것이다.
이 책의 전반적인 형태서지(形態書誌)는 현전(現傳)하는 다른 초간본 책들과 대체로 일치한다. 뒤의 역주(譯註)에 원본의 서영(書影)을 함께 싣지 못하므로 책의 판식(板式) 등 서지 사항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사본에 의해 알 수 있는 내용만 살피면 다음과 같다. 복사본이어서 책 전체의 크기는 알 수가 없고, 판광(版匡)의 반곽(半廓)은 세로〔縱〕 21.45cm, 가로〔橫〕 15.9cm이다. 이를 국립도서관 소장의 책인 권 6, 9, 13, 19의 반곽 22~22.3cm x 15.7~15.9cm 및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의 책인 권 23, 24의 반곽 22.2cm x 15.8cm 등과 비교해 보면 원척(原尺)대로 복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변란(邊欄)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다. 첫 장(張)이 낙장(落張)이어서 정확한 권두서명(卷頭書名)은 알 수가 없지만 다른 초간의 책들처럼 1장의 첫 행(行)에 세로로 ‘釋·셕譜:봉詳節·第·똉二·十·씹’이라고 썼을 것으로 판단한다. 본문의 끝장인 53장의 뒷면을 보면, 쌍행(雙行)으로 되어 있는 첫 행(行) 다섯 번째 글자에서 내용이 마무리되는데, 주008)
권 20의 맨 뒷장에 실려 있는 마지막 문장, 곧 협주문을 가리킨다. 『법화경』의 24번째 품(品)인 묘음보살품(妙音菩薩品)이 종료되었음을 설명하는 문장이다. 협주에 쓰인 “·잇·자· 妙·/音菩뽕薩·品:픔·이·라” 중 ‘/’ 뒤쪽에 있는 ‘音菩뽕薩·品:픔·이·라’를 이른다. 이 10자를 5자씩 두 줄로 배열한 것이다.
이 책의 편집 관행대로 품(品)이 종료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주009)
『석보상절』 권 13부터 권 21까지의 저경(底經)은 『법화경』이다. 그러니까 권 13에서 시작하여 권 21까지에 걸쳐 『법화경』 7권 전체를 언해한 것이다. 본문에 경(經)의 원문이나 구결문(口訣文)은 두지 않고, 경(經) 원문의 국어역인 번역문만을 실어 놓았다. 그리고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는 협주를 두어 이해를 도왔다. 이런 이유로 협주에는 『법화경』의 계환(戒環) 요해(要解)를 옮긴 것이 많다. 제1품(品)인 서품(序品)부터 마지막 품(品)인 제28품 보현보살권발품(普賢菩薩勸發品)까지를 번역해서 실은 것인데, 각 품(品)의 끝에는 위에서 밝힌 것처럼 쌍행으로 “잇자 ~ 品이라”고 하여 품(品)의 마무리임을 알리고 있다. 이 책 권 20도 마찬가지다.
그 다음 행(行)인 2행부터 6행까지는 원래 공란(空欄)이었다. 주010)
이 53장 뒷면은 원래 품(品)의 종료임을 알리는 1행의 일부와 권말서명이 있는 7행을 제외한 그 나머지 지면이 공란(空白)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지금 전하는 책에는 나중에 누군가가 붓으로 쓴 낙서(落書)가 있다. 2행부터 6행까지와 권말 서명의 아래쪽, 그리고 8행에 ‘인생(人生)의 무상(無常)함’을 토로한 필서(筆書)가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권말 서명을 놓칠 수 있다.
그리고 7행(行)에 대자(大字)로 ‘釋·셕譜:봉詳節·第·똉二·十·씹’이라고 권말서명(卷末書名)을 두었다. 판심(版心)은 상하(上下) 공히 대흑구(大黑口)이고,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이다. 위쪽 흑어미 바로 밑에 판심서명(版心書名)인 ‘釋譜’를 두고, 바로 이어서 권차(卷次)인 ‘二十’을 썼다. 그리고는 중간에 두어자 정도의 사이를 띈 후 아래쪽 흑어미 바로 위에 장차(張次)를 썼다. 매엽(每葉)은 무계(無界) 8행(行)이고, 주011)
이미 알려진 대로 『석보상절』의 초간본은 동활자본(銅活字本)이고, 중간본은 복각(覆刻)의 목판본(木版本)이다. 이렇게 판본(版本) 자체가 달라졌으므로 판식(版式) 등에서도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다. 두드러진 차이점 중 하나는 초간본에는 행(行)과 행(行) 사이에 계선(界線)이 없는데 비해, 중간본 중 권 3에는 계선을 두었다는 점이다. 같은 중간본임에도 권 11에는 없다. 그 외 방점(傍點)의 모양이 초간본은 원점(圓點)인 데 비해 중간본은 점획(點劃)으로 한 것도 그렇고, 활자의 자양(字樣) 등에서도 차이가 난다.
매행(每行)의 글자 수는 15자(字)이다. 협주(夾註)가 필요한 곳에는 작은 글자 쌍행(雙行)으로 설명을 하였으나 따로 흑어미 등의 표지는 두지 않았다. 협주에서 주로 다룬 내용은 『법화경(法華經)』의 계환(戒環) 요해(要解)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따로 논의 할 것이다. 활자(活字)는 한자와 정음자 모두 동활자(銅活字)가 사용되었다. 주012)
이호권(2001:27)에 의하면 동활자(銅活字)가 없는 경우에는 목활자(木活字)로 보충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자는 갑인자(甲寅字)로 대자(大字)와 소자(小字)의 두 종류이다. 대자(大字)는 본문에 쓰였고, 소자(小字)는 협주에 쓰였다. 정음(正音)의 경우에는 대자(大字), 중자(中字), 소자(小字)가 쓰였다. 대자(大字)는 본문에 쓰였고, 중자(中字)는 협주에 쓰였다. 소자(小字)는 본문과 협주의 한자 독음(讀音)에 쓰였다. 주013)
『석보상절』에 쓰인 정음(正音) 글자의 명칭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이호권(2001:27)의 각주 14)에서는 이를 정리하고, ‘갑인자 병용 한글자’라는 명칭이 비교적 온당하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석보상절』 권 20의 보존 상태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긴 시간 동안의 탑장(塔藏)과 그 이후 보존 과정에서의 침습(浸濕) 및 마멸(磨滅)로 해독이 어려운 부분이 곳곳에 있다. 훼손에 의해 해독이 불가능한 부분을 정리하고, 그 부분에 대한 원본의 내용을 추정하여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오른쪽 ( ) 안에 쓴 것은 필자가 같은 책의 전후(前後) 맥락(脈絡)은 물론, 『월인석보』와 『법화경언해』의 같은 곳을 참고하여 복원(復原)한 내용이다. ‘ * ’ 표시는 1행 15자를 기준으로 했을 때, 1, 2자 정도가 많거나 적음을 표시한 것이다. 『석보상절』 권 20의 1행(行)당 글자 수가 예외를 두지 않고, 15자씩인 점으로 미루어 이 부분은 원본 부합(符合)의 정확도가 떨어짐을 함의하고 있다.
1장 : 낙장(落張)
2ㄱ : (1행) 주014)
‘ㄱ’은 장(張)의 앞면을 가리키고, ‘ㄴ’은 장(張)의 뒷면을 가리킨다. ( ) 안의 숫자는 장(張)의 오른쪽에서 시작하는 행차(行次)를 표시한 것이다.
아래쪽 5자 안 보임 (뽕提똉法·법)
(7행) 위쪽 2자, 아래쪽 5자 안 보임 (·펴·아), 주015)
이 부분은 사본에 첫 번째 글자가 뭉개져 있고, 두 번째 글자는 희미하게라도 보이는데, ‘아’인지 ‘어’인지 모호하여 분간이 되지 않는다. 같은 행에 있는 다른 글자의 ‘ㅏ’ 및 ‘ㅓ’와의 비교도 쉽지 않다. 순수히 ‘ㅏ,ㅓ’로 된 모음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든 이 말의 앞에는 ‘대자비(大慈悲)’이라는 목적어가 있으므로 타동사여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이 부분의 경(經)의 원문은 ‘有大慈悲’이다. 이를 『월인석보』에서는 ‘큰 慈悲 잇고’로 옮겼고, 『법화경언해』에서는 ‘有大慈悲고’로 옮겼다. 따라서 앞뒤의 문맥과 희미하게 보이는 두 번째 글자에서 유추하여 ‘펴아’가 쓰였던 것으로 추정했다.
(:업서 能)
(8행) 위쪽 1자, 아래쪽 7자 안 보임 (·히), (佛·智·딩慧· 如)
2ㄴ : (1행) 아래쪽 7자 안 보임 (·然智·딩慧·)
3ㄱ : (7행) 아래쪽 1자 안 보임 (恩)
(8행) 아래쪽 7자 안 보임 (라 그저·긔 菩뽕薩)
3ㄴ : (1행) 아래쪽 8자 안 보임 (·히 부텻 ·이 :마· 듣) * 1자 많음
(2행) 위쪽 2자 안 보임 (깃·부)
(2행) 아래쪽 1자 안 보임 (恭)
4ㄱ : (7행) 아래쪽 1자 안 보임 (·은)
(8행) 아래쪽 6자 안 보임 (·호· 조·시·며) * 1자 적음
4ㄴ : (1행) 아래쪽 5자 안 보임 (·도 도로 :녜 ·) * 2자 적음
(2행) 아래쪽 1자 안 보임 (·에)
5ㄱ : (7행) 아래쪽 2자 안 보임 (:엇·뎨)
(8행) 위쪽 2자 안 보임 (시·니)
(8행) 아래쪽 9자 안 보임 (世·솅尊존·하 ·이 藥·약王)
5ㄴ : (1행) 아래쪽 13자 안 보임 (뽕薩··이 百·千쳔萬·먼億· 那)
6ㄱ : (8행) 아래쪽 4자 안 보임 (師 佛)
6ㄴ : (1행) 아래쪽 4자 안 보임 (:톄 八·十)
7ㄱ : (8행) 아래쪽 4자 안 보임 (러·니 一·) * 1자 많음
7ㄴ : (1행) 중간 4자 안 보임 (二·), (), (·라)
(1행) 아래쪽 3자 안 보임 (·이 寶:)
8ㄱ : (8행) 아래쪽 2자 안 보임 (·득)
8ㄴ : (1행) 아래쪽 1자 안 보임 (一)
9ㄱ : (8행) 아래쪽 3자 안 보임 (·내 비·록)
9ㄴ : (1행) 아래쪽 2자 안 보임 (··)
10ㄱ : (8행) 아래쪽 2자 안 보임 (界·갱)
10ㄴ : (1행) 아래쪽 3자 안 보임 (··히 )
11ㄱ : (8행) 아래쪽 2자 안 보임 ()
11ㄴ : (1행) 아래쪽 3자 안 보임 (供養)
12ㄱ : (8행) 아래쪽 2자 안 보임 (妙·)
12ㄴ : (1행) 아래쪽 2자 안 보임 (·을 여)
13ㄱ : (8행) 아래쪽 1자 안 보임 (菩)
13ㄴ : (1행) 아래쪽 1자 안 보임 (·)
14ㄱ : (8행) 아래쪽 1자 안 보임 (·몸)
14ㄴ : (1행) 아래쪽 1자 안 보임 (陁)
15ㄱ : (8행) 아래쪽 1자 안 보임 ()
15ㄴ : (1행) 아래쪽 1자 안 보임 (·하)
위의 일별(一瞥)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좌하귀 부분의 마멸로 인해 2장부터 15장까지 각 장(張) 앞면의 끝 행인 제8행 아래쪽과 뒷면의 첫 행인 제1행 아래쪽에 해독(解讀)이 어려운 글자가 상당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는 뒷장으로 갈수록 나아져서 점점 해독 불가능한 글자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16장부터 마지막 장인 53장까지는 비교적 무난하게 읽을 수 있다. 앞에서 밝힌 대로 복원(復原) 작업은 책의 앞뒤 내용을 통해 그 맥락을 살피고, 『월인석보』와 『법화경언해』를 참고하는 한편, 글자 수를 고려하여 확정했다. 한자어의 독음(讀音)은 『동국정운(東國正韻)』에서 가져왔다.

Ⅲ. 내용의 구성

『석보상절』 권 13부터 권 21까지에는 『법화경』의 경(經) 본문이 정음(正音)으로 번역되어 실려 있다. 『법화경』 첫 번째 품(品) 주016)
‘품(品)’은 범어로 ‘verga’라고 한다. 같은 종류의 것을 모아서 한 뭉치로 만드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품류(品類), 또는 품별(品別)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법화경』에서는 편(篇)과 장(章)을 나누어서 뜻과 이치(理致)를 차별화한 것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인 ‘서품(序品)’부터 마지막 품(品)인 제28품 ‘보현보살권발품(普賢菩薩勸發品)’까지를 번역하여 옮겨 놓은 것이다. 이 중 권 20에는 『법화경』 권 6에 실려 있는 제22품 ‘촉루품(囑累品)’, 제23품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 권 7에 실려 있는 제24품 ‘묘음보살품(妙音菩薩品)’ 등 세 개의 품(品)이 있다. 이 『법화경』의 내용은 나중에 『월인석보』(1459년 간행) 주017)
『법화경』이 번역되어 실려 있는 『월인석보』는 권 11부터 권 19까지이다. 따라서 『석보상절』 권 13부터 권 21까지와 대응되는 『월인석보』는 권 11부터 권 19까지임을 알 수 있다.
와 『법화경언해』(1463년 간행)에 다시 번역되어서 국어사 연구 자료로 널리 이용되고 있기도 하다. 주018)
물론 세 차례의 번역(飜譯)이 동일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두루 알고 있는 대로 『월인석보』(1459년 간행)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삽입하여 재편찬한 결과 모두 25권으로 확대된 것이고, 『법화경언해』(1463년 간행)는 경(經)의 원문(原文)은 물론, 계환(戒環)의 요해(要解)까지에도 정음(正音)으로 구결을 달아서 번역을 한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석보상절』에는 품(品)이 종료되는 마지막 부분에 “·잇·자· ~ 品:픔·이·라(여기까지는 ~ 품(品)이다.)”라는 쌍행(雙行)의 협주(夾註)를 두어 앞선 품(品)의 종료와 새로운 품(品)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주019)
이 점은 『월인석보』의 설명이 보다 친절한 편이다. ‘【~~잇 ~品 고 아래 ~品이라】〔여기까지 ~품(品)을 마치고 아래는 ~품(品)이다.〕’라 하여 다음 품(品)의 내용까지 밝혔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그 행의 끝까지를 여백으로 두었다. 다음 행은 ‘그’, 또는 ‘그저긔’로 시작하여 내용이 전환되었음을 알려 준다. 이런 이유로 이 책에는 『석보상절』 다른 책에서 내용이 바뀔 때 흔히 사용하던 권원(圓圈) 표시〔〇〕를 두지 않았다. 권 21도 마찬가지다. 권 20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석보상절』 20 : 1ㄱ2 ~ 5ㄱ4 ← 『법화경』 권 6 촉루품(囑累品) 제22
‘촉루(囑累)’는 후일(後日)에 할 일을 미리 말하여 맡겨 두고, 부탁한다는 뜻을 가진 불교 용어이다. 따라서 이 ‘촉루품(囑累品)’에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많은 보살(菩薩), 마하살(摩訶薩)들에게 당부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대중(大衆)들에게 『법화경』의 가르침을 닦고 익혀서 널리 펼 것을 부탁한다는 설법(說法)이다. 곧, 무량(無量)의 보살(菩薩)들에게 미래세(未來世)에 할 일을 미리 부촉(付囑)하고, 그 일을 하도록 여러 분신화불(分身化佛)과 다보불(多寶佛)을 본국으로 돌려보낸다는 내용이다.
2. 『석보상절』 20 : 5ㄱ5 ~ 32ㄴ3 ← 『법화경』 권 6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 제23
‘본사품(本事品)’은 ‘본사설(本事說)’이라고도 한다. 12부경의 하나로, 경전(經典) 가운데 불제자들이 지난 세상에 이룬 행업(行業)이나 사실(事實) 등을 설(說)한 부분이다. 따라서 『법화경』 제23품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은 약왕보살(藥王菩薩)의 지난날의 행적(行蹟)과 이러한 행업(行業)을 생각하여 이 내용이 들어 있는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을 호지(護持)할 것을 수왕화보살(宿王華菩薩)에게 부촉하는 내용이다.
이 품(品)은 수왕화보살(宿王華菩薩)과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쪽에는 약왕보살(藥王菩薩)의 전신인 일체중생희견보살(一切衆生喜見菩薩)의 소신(燒身) 법공양(法供養)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다. 그 다음에는 『법화경』을 수지(受持)해서 얻는 공덕이 소신에 의한 법공양보다 크다는 부처님의 설법이 중심을 이룬다. 그리고는 『법화경』이 모든 경전 중에서도 으뜸임을 여러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뒤에는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을 듣고 수지(受持)하여 얻는 공덕의 큼과 신비함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 후, 부처님이 수왕화보살(宿王華菩薩)에게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을 호지(護持)할 것을 부촉하는 내용으로 끝냈다.
3. 『석보상절』 20 : 32ㄴ4 ~ 53ㄴ1 ← 『법화경』 권 7 묘음보살품(妙音菩薩品) 제24
지난 세상에서 10만 종류의 음악을 운뢰음왕불(雲雷音王佛)에게 공양하고 정화수왕지불(淨華宿王智佛)의 국토에 태어났다는 묘음보살(妙音菩薩)의 행적(行蹟)을 설명한 품(品)이다. 묘음보살(妙音菩薩)은 여러 부처님을 친근(親近)하여 깊은 지혜를 성취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삼매(三昧)를 얻었으며, 신통력(神通力)을 갖추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앞쪽에는 묘음보살이 정화수왕지불의 국토에서 삼매(三昧)와 신통력(神通力)의 힘으로 8만 4천의 보살들에게 둘러싸여 사바세계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 왔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사바세계에 온 이유는 석가모니불을 공양하고 법화경을 듣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화덕보살(華德菩薩)이 부처님께 묻고, 부처님이 답하는 형식을 빌려서 묘음보살이 신통력(神通力)을 갖게 된 전생(前生)의 인연(因緣)을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부처님이 설법하는 형식을 통해 묘음보살이 『법화경』을 설하기 위해 화현(化現) 등의 다양한 방편(方便)을 써서 중생들을 도탈(度脫)케 하고, 궁극적으로는 중생에게 많은 이익을 준다는 내용이 있다. 끝에는 묘음보살이 부처님과 다보불(多寶佛)에게 공양하고 8만 4천의 보살에 둘러 싸여 정화수왕지불의 국토로 돌아간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위의 내용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주020)
이 내용은 김기종(2010:64~65)에서 가져 왔다. 일부의 내용은 필자가 바로 잡고 다시 정리했다. 이 외에도 저경(低經)에 관한 상세한 논의가 있어서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다.
『석보상절』 권 20의 본문은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법화경』 권 6 촉루품(囑累品) 제22,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 제23, 권 7 묘음보살품(妙音菩薩品) 제24 등 경(經)의 본문을 정음으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경 본문 속에는 쌍행으로 배열된 협주가 나온다. 두루 아는 대로 협주는 번역자나 번안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가(加)한 주석(註釋)에 해당된다. 당연히 고유의 말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고, 이런 이유로 국어사 연구자들에게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협주의 대부분은 『법화경』을 요해(要解)한 송(宋)나라 계환(戒環)의 요해 부분을 정음으로 옮긴 것이다. 물론 순수하게 협주 고유의 기능을 가진 것도 있다.
권차
(卷次)
경의 내용장차(張次)저경(底經)해당
월곡(月曲)
  권  20•석가모니불이 무량보살(無量菩薩)에게 미래세에 법화경을 널리 설법할 것을 부촉함 2ㄱ1~4ㄱ4妙法蓮華經囑累品 第22 其321
•석가모니불이 분신화불(分身化佛)과 다보불(多寶佛) 등을 본국으로 돌려보냄 4ㄱ4~5ㄱ4
•약왕보살(藥王菩薩)의 전신(前身)인 일체중생희견보살(一切衆生喜見菩薩)이 몸과 팔을 태워 법공양(法供養)을 한 인연 5ㄱ5~20ㄱ2     妙法蓮華經藥王菩薩本事品 第23
•법화경을 수지(受持)하여 얻는 공덕이 일체중생희견보살(一切衆生喜見菩薩)의 법공양보다 크다는 석존의 설법 20ㄱ2~26ㄱ7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을 듣고 수지(受持)하여 얻는 공덕 26ㄱ7~30ㄱ2
•석가모니불이 수왕화보살(宿王華菩薩)에게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을 호지(護持)할 것을 부촉함 30ㄱ2~32ㄴ3
•묘음보살(妙音菩薩)이 석존을 공양하고 법화경을 듣기 위해 기사굴산(耆闍崛山)에 옴 32ㄴ4~45ㄱ6妙法蓮華經 妙音菩薩品 第24 其322  ~324
•묘음보살(妙音菩薩)이 신통력(神通力)을 갖게 된 전생의 인연에 대한 설명 45ㄱ6~47ㄱ3
•묘음보살(妙音菩薩)의 신통력과 지혜에 대한 석가모니불의 설법 47ㄱ3~51ㄴ7
•묘음보살이 석가모니불과 다보불(多寶佛)에게 공양하고 돌아감 51ㄴ7~53ㄴ1
협주(夾註)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이 『법화경』 계환(戒環)의 요해(要解) 부분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아래의 비교를 통해서 확인이 된다. 『석보상절』에서는 요해(要解) 중 일부를 협주로 하였고, 『월인석보』에서는 요해(要解) 전체를 협주로 하고 있다.
(1) ㄱ.【·녀나· 深심妙· 法·법·은 權꿘敎· 漸:쪔敎·· 니르·시·니 深심妙·ㅣ·라 ·샨 ··든 ·이 法·법·이 :다  佛·乘·이·론 젼··라】〈석상20:3ㄱ, 협주문〉
ㄴ.【如來ㅅ 智慧 信타 샤 能히 種智 信야 一乘 向 사미니 이 經을 爲야 닐어 佛慧 得게 야 二乘에 걸이디 아니케  디니라 녀나 深妙法은 權漸敎 니시니  深妙타 니샤 이 法이 다 一佛乘 爲논 젼라】〈월석18:18ㄱ~18ㄴ, 협주문〉
ㄷ. 信如來ㅅ 智慧 謂能信種智야 趣向一乘者시니 當爲說是經샤 令得佛慧야 而不滯二乘ㅣ샷다 餘深妙法은 指權漸教 也시니 亦曰深妙者 是法이 皆爲一佛乘故ㅣ시니라 〈법언6:124ㄱ, 계환 요해 정음 구결문〉
ㄹ. 如來ㅅ 智慧 信호 能히 種智 信야 一乘에 가 向 사 니시니 반기 이 經을 爲야 니샤 佛慧를 得야 二乘에 거디 아니케 샬 띠로다 녀나 深妙法은 權엣 漸敎 치시니  深妙ㅣ라 니샤 이 法이 다 一佛乘 爲샨 젼시니라 〈법언6:124ㄱ~124ㄴ, 계환 요해 언해문〉
협주 중에는 어려운 용어에 대한 해설이나 품(品)의 종료임을 나타내는 것도 있다.
(2) ㄱ. 容顔·이 甚·씸·히 奇긩妙··시·며【容· :즈·오 顔· ·모·야히·라】〈15ㄱ〉
ㄴ. 【·잇·자· 藥·약王菩뽕薩·本:본事·品:픔·이·라】〈32ㄴ〉
(2ㄱ)은 어휘 ‘용안(容顔)’에 대한 설명이다. 협주에서 명사류를 설명하는 전형적인 방법인 ‘~/는//은 ~이라’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2ㄴ)은 23품(品)의 종료임을 나타내는 협주문이다. 이 책뿐만 아니라, 『법화경』을 저경(低經)으로 하고 있는 『석보상절』 권13부터 권21까지의 책 중 현전하는 권13, 권19, 권21 모두에서 품(品)을 마치는 자리에는 ‘·잇·자· ~品:픔·이·라’라는 협주를 두어 종료를 표시했다. 대부분이 그렇지만 앞뒤에 다른 내용이 덧붙는 경우도 있다. 주021)
·잇·자· 囑·죡累:品:픔·이·니 :말··로 브·틸 ·씨 囑·죡·이·오 法·법·으·로 니· ·씨 累:·라】〈석보20:5ㄱ〉,【~~·이 如來ㅅ · 노·신 德·득·이·라 ·잇·자· 觀관世·솅音菩뽕薩·普:퐁門몬品:픔·이·니 옷 소·리· 聲·이·라 ·고~~】〈석보21:19ㄴ〉.
역주(譯註)에서는 맨 앞에 『석보상절』 권 20의 본문을 두고, 그 밑에 그에 대응하는 『월인석보』 권 18의 해당 부분을 실어 놓았다. 그리고 그 밑에 역시 그에 대응하는 『법화경언해』의 해당 부분 정음 구결문, 언해문, 계환의 요해 구결문, 요해 언해문 등의 순(順)으로 배열해서 실어 놓았다. 그런 다음에 『석보상절』의 현대어역과 주석을 두었다. 『석보상절』, 『월인석보』, 『법화경언해』 등 세 책의 서로 대응되는 부분을 차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석보상절 권20월인석보 권18법화경언해 권6, 권7
〔협주〕 촉루품 제22에 대한 설명 : 12ㄴ7 ~ 14ㄴ16 : 116ㄱ1 ~ 119ㄱ5계환(戒環)의 요해(要解) 정음 구결문 및 언해문
〈월곡〉기 321 : 14ㄴ2 ~ 15ㄱ1
석가모니불이 무량보살(無量菩薩)에게 미래세에 법화경을 널리 설법할 것을 부촉함(1ㄱ2 ~ 4ㄱ4)왼편과 같음 : 15ㄱ2 ~ 19ㄴ26 : 119ㄱ6 ~ 125ㄴ9
석가모니불이 분신화불(分身化佛)과 다보불(多寶佛) 등을 본국으로 돌려보냄(4ㄱ4 ~ 5ㄱ4)왼편과 같음 : 19ㄴ2 ~ 20ㄴ76 : 126ㄱ2 ~127ㄴ3
     〔협주〕 약왕보살본사품 제23에 대한 설명 : 20ㄴ7 ~ 22ㄴ76 : 128ㄱ1 ~ 132ㄱ2계환(戒環)의 요해(要解) 정음 구결문 및 언해문
약왕보살(藥王菩薩)의 전신(前身)인 일체중생희견보살(一切衆生喜見菩薩)이 몸과 팔을 태워 법공양(法供養)을 한 인연(5ㄱ5 ~ 20ㄱ2)왼편과 같음 : 22ㄴ7 ~ 44ㄱ46 : 132ㄱ3 ~ 159ㄱ9
법화경을 수지(受持)하여 얻는 공덕이 일체중생희견보살(一切衆生喜見菩薩)의 법공양보다 크다는 석가모니불의 설법(20ㄱ2 ~ 26ㄱ7)왼편과 같음 : 44ㄱ4 ~ 53ㄱ46 : 159ㄴ2 ~ 172ㄴ4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을 듣고 수지(受持)하여 얻는 공덕(26ㄱ7 ~ 30ㄱ2)왼편과 같음 : 53ㄱ4 ~ 58ㄴ26 : 172ㄴ5 ~ 180ㄱ7     
석가모니불이 수왕화보살(宿王華菩薩)에게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을 호지(護持)할 것을 부촉함(30ㄱ2 ~ 32ㄴ3) 왼편과 같음 : 58ㄴ2 ~ 62ㄱ6               6 : 180ㄱ9 ~ 184ㄴ8
     〔협주〕 묘음보살품 제24에 대한 설명 : 62ㄱ6 ~ 63ㄱ67 : 1ㄱ5 ~ 3ㄱ3계환(戒環)의 요해(要解) 정음 구결문 및 언해문
     〈월곡〉기 322 ~ 324(3) : 63ㄱ7 ~ 64ㄴ6     
묘음보살(妙音菩薩)이 석가모니불을 공양하고 법화경을 듣기 위해 기사굴산(耆闍崛山)에 옴(32ㄴ4 ~ 45ㄱ6)왼편과 같음 : 64ㄴ7~81ㄴ57 : 4ㄱ6 ~ 23ㄱ8
묘음보살(妙音菩薩)이 신통력(神通力)을 갖게 된 전생의 인연에 대한 설명(45ㄱ6 ~ 47ㄱ3)왼편과 같음 : 81ㄴ5 ~ 84ㄴ2          7 : 23ㄴ2 ~ 26ㄱ3
묘음보살(妙音菩薩)의 신통력과 지혜에 대한 석가모니불의 설법(47ㄱ3 ~ 51ㄴ7)왼편과 같음 : 84ㄴ2 ~ 87ㄱ7 이하는 낙장(落張)으로 인해 비교 불가능7 : 26ㄱ3 ~ 34ㄱ1
묘음보살이 석가모니불과 다보불(多寶佛)에게 공양하고 돌아감(51ㄴ7 ~ 53ㄴ1)낙장(落張)으로 인해 비교 불가능7 : 34ㄱ2 ~ 36ㄱ3

Ⅳ. 어학적 고찰

두루 알고 있는 대로 『석보상절』은 우리 문자인 ‘훈민정음’을 사용해서 찬술(撰述)한 최초의 산문(散文) 문헌이다. 이 책은 ‘훈민정음’ 반포(頒布) 이듬해인 1447년에 간행되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국어사 연구자들의 관심을 모아 왔다. 책에 실려 있는 내용도 그러하지만, 우리 문자가 사용된 가장 이른 시기의 산문 자료라는 점에서도 연구 대상으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표기(表記)는 물론, 형태, 통사, 어휘 등 책 전체가 국어사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전해지는 책이 적어서 공개되는 순간부터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권 20이 학계에 소개된 지 20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원본에 대한 접근이 제한적이어서 그런 것으로 본다. 여기서는 표기와 어휘 등을 중심으로 살펴서 이 책의 국어사 자료로서의 특성을 간단하게나마 밝히고자 한다.
1) 이 책의 표기에서 두드러진 점은 방점(傍點)과 모음 ‘ㆍ’ 및 ‘ㆎ’의 ‘ㆍ’ 표기에 둥근 점인 이른바 원점(圓點)을 썼다는 것이다. 정음이 일부라도 들어있는 문헌에서 ‘ㆍ’가 들어가는 모음 및 방점 표기에 전면적으로 원점(圓點)이 쓰인 책은 『훈민정음(해례본)』(1446년 간행)과 『동국정운』(1447년 편찬) 주022)
여기서 ‘간행’이라 하지 않고 ‘편찬’이라고 한 것은 이 책의 실제 간행이 이루어진 해는 이보다 1년 늦은 세종 30년(正統 13년, 1448년)이라고 본 견해(안병희:1979 등)를 따른 것이다.
정도를 들 수 있다. 이렇듯 초기 문헌에서는 두 형태에 원점(圓點)을 썼으나 『홍무정운역훈』(1455년 간행)부터는 비스듬히 찍는 점인 점획(點劃)으로 바뀌었다. 『훈민정음(해례본)』과 『동국정운』에서는 방점도 그렇지만 모음의 단체자(單體字)와 합체자(合體字) 모두에서 ‘ㆍ’를 원점(圓點)으로 했고, 『용비어천가』(1447년 간행),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사리영응기』(1449년 간행) 등에서는 방점 및 ‘ㆍ’와 ‘ㆎ’의 ‘ㆍ’ 표기에만 원점으로 표기하였다. ‘ㆎ’ 이외의 합체자(合體字)에 쓰이던 원점의 ‘ㆍ’는 고딕체인 막대형의 방획(方劃)으로 자양(字樣)이 바뀐 것이다. 『홍무정운역훈』부터는 방점은 물론, 단체자 ‘ㆍ’와 합체자 ‘ㆎ’에서의 ‘ㆍ’까지 점획(點劃)으로 바뀌고, 그 외의 합체자들은 앞의 문헌에서 그랬던 것처럼 방획(方劃)을 썼다. 이후에 간행된 책인 『월인석보』나 간경도감 간행의 정음 문헌에서는 방점 및 ‘ㆍ’와 ‘ㆎ’의 ‘ㆍ’는 점획으로 표기하였고, 그 외 모든 합체자 모음에 쓰이던 ‘ㆍ’는 방획으로 표기하였다.
2) 모음조화의 경우에는 일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023)
〔外〕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석보상절』 다른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이 단어의 경우에는 예외 없이 처소부사격조사와의 통합에서 ‘의’를 취한다. 밧긔〈11ㄴ, 21ㄴ〉, 밧긧것니오〈12ㄱ〉, 안팟글〈11ㄴ〉.
대체로 잘 지켜지고 있다. 다만, 〔i〕, 〔j〕 다음에서는 체언에 조사가 통합되는 경우와 용언 어간에 어미가 통합되는 경우가 서로 다르다. 체언에 조사가 통합되는 경우는 양성모음 다음에는 물론이거니와, 〔i〕, 〔j〕 다음에도 양성모음 계열 조사의 통합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고유어와 한자어 모두에서 별 다른 차이가 없다. 『석보상절』은 한문 불경(佛經)의 번역이어서 고유어에 비해 한자어 어휘가 많은 편이다. 따라서 용례도 한자어가 많을 수밖에 없다. 용언 어간에 어미가 통합되는 경우에는 대체로 어간의 계열에 따라 모음조화가 이루어졌으나, 〔i〕와 〔j〕 다음에서 음성모음 계열의 어미 및 선어말어미의 통합이 우세하다. 다만 〔i〕, 〔j〕 다음에 ‘-오/우’로 시작되는 어미가 통합되는 경우에는 〔i〕, 〔j〕 앞에 오는 음절주음이 양성모음인 경우에 ‘-오’를 취하는 경향이 높다. 그 외에 모음조화의 원칙을 벗어난 수의적(隨意的)인 형태도 더러 보인다. 다음은 조사통합의 경우에 나타나는 모음조화의 예이다. 주024)
『석보상절』의 모음조화에 대해서는 이호권(2001:64~86)에 상세한 분석이 있어서 이 논의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3) ㄱ. 사〈13ㄱ〉, 든〈3ㄱ〉, 마〈3ㄴ〉, 부텨를〈7ㄴ〉, 모〈11ㄴ〉, 주를〈7ㄴ〉,
모매〈3ㄴ〉, 데〈24ㄴ〉, 고로〈7ㄱ〉, 거스로〈10ㄴ〉
ㄴ. 이〔是〕〈27ㄴ〉, 〔歲〕〈27ㄱ〉, 이〔是〕〈10ㄴ〉, 홰〔炬〕〈25ㄱ〉
ㄷ. 여래(如來)〈2ㄴ〉, 해(解)〈14ㄱ〉, 칙(勅)〈3ㄴ〉, 투쟁(鬪諍)〈27ㄴ〉, 대자비(大慈悲)〈2ㄱ〉, 법화삼매(法華三昧)〈53ㄱ〉, 무생법인(無生法忍)〈28ㄱ, 53ㄱ〉, 일체중생(一切衆生)〈24ㄱ〉
(3ㄱ)은 고유어 어휘에 보조사 ‘/은’, 목적격조사 ‘/를//을’, 처소부사격조사 ‘애/에’, 도구부사격 조사 ‘로/으로’가 통합된 예이다. 모음조화가 철저하게 지켜졌음을 알 수 있다. (3ㄴ)은 고유어 〔i〕와 〔j〕 다음에서 양성모음 계열의 조사가 통합된 예이고, (3ㄷ)은 〔i〕와 〔j〕로 끝나는 한자어 체언 다음에서 양성모음 계열의 조사가 통합된 예이다. 〔i〕와 〔j〕로 끝나는 고유어와 한자어 체언 뒤에서는 양성모음 계열의 조사 통합이 우세함을 보여준다. 다음은 어간과 어미의 통합에서 보이는 모음조화의 예이다.
(4) ㄱ. 다라〈52ㄱ〉, 나토아〈50ㄴ〉, 나아〈46ㄱ〉 / 불러〈2ㄴ〉, 드러〈2ㄴ〉, 수머〈41ㄱ〉
ㄴ. 노니〈10ㄴ〉, 업스니〈49ㄱ〉, 안며〈7ㄴ〉, 드르며〈45ㄱ〉
ㄷ. 시니〈50ㄴ〉~시므며〈45ㄴ〉, 비니〔散〕〈9ㄱ〉~비흐며〈52ㄱ〉
ㄹ. 조쳐〈27ㄴ, 46ㄱ〉, 거리〈35ㄱ〉, 려〈42ㄴ〉, 가져〈42ㄴ〉, 거리쳐〈48ㄴ〉, 이셔〈49ㄱ〉
ㅁ. 버로미〈7ㄱ, 42ㄱ〉, 앗교미〈2ㄱ〉, 앗굠과〈43ㄱ〉, 니교〈8ㄱ〉, 룜〈12ㄴ〉, 얽〈25ㄴ〉 / 너교〈8ㄴ, 17ㄴ〉, 이쇼〈21ㄴ〉 cf. 즐규믈〈12ㄱ〉
ㅂ. 펴아〈2ㄱ, 11ㄴ, 30ㄱ〉, 내야〈3ㄴ〉, 내야〈31ㄴ〉
(4ㄱ)은 어간 끝음절 모음의 계열에 따른 모음조화의 예이고, (4ㄴ)은 받침이 있는 어간 끝음절 모음의 계열에 따른 ‘/으’ 선접형 어미의 모음조화 예이다. (4ㄷ)은 〔i〕로 끝난 어간에 받침이 이어진 경우, 매개모음 ‘/으’가 혼용(混用)된 예이다. ‘빟-’의 경우는 혼용의 예가 흔한 편이지만 ‘시-/시므-’의 경우에는 ‘시므-’가 절대적으로 우세한데, 이 책에는 이 정도의 예만 보인다. (4ㄹ)은 〔i〕로 끝나는 어간 다음에 연결어미로 ‘-어’가 통합된 예이다. 이 책에서 어간이 〔i〕로 끝난 경우에는 이처럼 연결어미로 ‘-아/어’ 중에 ‘-어’가 왔다. (4ㅁ)은 어간이 〔ㄹ〕로 끝난 경우와 〔i〕로 끝난 경우에 명사형어미 ‘-옴/움’중 ‘-옴’이, 설명형어미 ‘-오/우’ 중 ‘-오’가 온 예이다. (4ㅂ)은 어미 통합에서 모음조화 원칙에서 벗어난 이른바 수의적인 통합형이다. 음성모음 다음과 〔j〕 다음에서 각각 양성모음 계열의 어미가 통합된 예이다. ‘펴아’는 『월인석보』 권 18에서 ‘펴’(2회)로 바뀌기도 하고 ‘發샤’(1회)로 바뀌기도 했다.
이렇듯 어미 통합의 경우에도 대체로 모음조화가 지켜졌으나, 조사 통합에서와는 달리 어간의 끝음절 〔i〕 다음에서는 음성모음 계열의 어미 통합이 우세함을 알 수 있다. 다만 어간 끝음절 모음이 비록 음성모음이라고 하더라도 받침이 〔ㄹ〕인 경우와 〔i〕로 끝난 경우에는 명사형어미 ‘-옴/움’중 ‘-옴’이, 설명형어미 ‘-오/우’ 중 ‘-오’가 와서 모음조화에 어긋나기도 했다.
3) 이 책에서 종성 ‘ㆁ’은 모음 앞에서 연철 표기하였다. 다른 『석보상절』에서는 분철한 예가 없지 않으나 이 책에서는 ‘ㆁ’이 어간 말음인 경우에 예외 없이 연철했다. 주025)
현전하는 초간본 여덟 권의 ‘ㆁ’ 연철과 분철에 대해서는 이호권(2001:97~103) 참조. 그에 따르면 권 9와 권 13도 ‘ㆁ’의 경우 예외 없이 연철되었다고 한다.
(5) ㄱ. 잇자〈5ㄱ, 32ㄴ, 53ㄱ〉
ㄴ. 쳔랴니〈11ㄴ〉, 쳔랴〈11ㄴ〉
ㄷ. 야로〈27ㄱ〉, 야〈50ㄱ〉
ㄹ. 기자〈9ㄱ〉, 바〈17ㄴ〉, 스스샤〈19ㄱ〉, 당다〈31ㄱ〉
이 책에 종성에 ‘ㆁ’이 쓰인 명사는 위에 보이는 정도인데,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의 통합에서는 모두 연철했다. (5ㄱ)은 각 품(品)의 종료에 나오는 협주문에서의 예이다. ‘’은 여기서 ‘끝’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5ㄴ)은 ‘살림살이에 드는 돈과 양식(糧食)’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 ‘:천(錢糧)’에서 온 말인데, 이 책이 원전을 함께 싣지 않고 번역한 데에다 당시에 이미 한자어라는 인식이 엷었던 듯 정음으로 적혀서 연철되었다. (5ㄷ)의 ‘:’도 ‘모양(模樣/貌樣)’을 가리키는 한자어 ‘:(樣)’에서 온 말로 보이는데, 이 어휘도 초기 문헌부터 이렇게 정음으로 적혀서 연철되었다. (5ㄹ)의 경우도 각각 이 책에 한두 용례씩 보인다. ‘기’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논의할 것이다.
4) 이 책에는 같은 뜻을 가졌지만 표기에서는 다르게 실현된 형태들이 더러 보인다. 『석보상절』이 정음 초기에 간행된 문헌이어서 당시까지 표기 형태를 확정 짓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고, 편찬자의 개인적인 언어 습관일 수도 있는 내용이다. 이러한 형태에 대해서는 현전하는 『석보상절』 다른 책이나 같은 해에 간행된 책인 『용비어천가』 및 『월인천강지곡』 등과의 비교를 통해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같은 내용을 싣고 있는 『월인석보』 등과의 면밀한 비교·검토를 통해 그러한 표기의 전반에 대한 이해에 이를 것으로 본다. 몇몇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6) ㄱ. 부텻긔〈5ㄱ, 39ㄱ〉 / 부텨〈9ㄴ, 15ㄱ, 45ㄱ, 50ㄴ〉, 부텨며〈21ㄱ〉
ㄴ. 가아〈36ㄱ, 37ㄴ, 52ㄴ〉, 나아〈13ㄴ, 46ㄱ〉 / 가〈15ㄱ, 27ㄱ〉
ㄷ. 업긔〈11ㄴ〉, 조킈〈11ㄴ〉, 펴디긔〈16ㄴ〉, 표현(表現)킈〈17ㄴ〉, 버서나긔〈25ㄴ〉, 이익(利益)긔〈32ㄴ〉, 요익(饒益)긔〈51ㄱ〉, 득(得)긔〈53ㄱ〉 / 알에〈2ㄴ〉, 맛게〈35ㄴ〉, 보게〈40ㄴ〉, 에〈42ㄱ〉, 보게〈44ㄴ〉, 득(得)게〈49ㄴ〉
ㄹ. 즉자히〈18ㄱ〉 등
(6ㄱ)은 통합형조사인 ‘ㅅ+긔’와 단일형 조사인 ‘’가 함께 쓰인 예이다. 이호권(2001:106)에서는 이를 ‘ㅅ+긔’의 문법화 진행 정도를 반영한 것이 아니고, 표기자의 언어 취향인 것으로 정리하였다. ‘’의 문법화가 이보다 훨씬 이전에 이루어졌다는 판단의 결과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책뿐만 아니라 현전하는 다른 『석보상절』에서도 ‘’가 많이 쓰였다는 점은 어원에 대한 인식이 엷어져서 ‘’의 형태로 정착한 결과가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다만, 이 책보다 『월인석보』 권 18에 ‘부텻긔’ 형태가 더 많은 것은 원고 작성자의 언어 소양이 반영된 것이거나 ‘ㅅ’에 대한 표기 원칙의 변화에 따른 것일 수 있다. (6ㄴ)은 어간의 모음과 동일한 형태를 가진 모음 어미와의 통합에서 어미를 쓰기도 하고 생략하기도 하여 두 가지 형태로 표기된 예이다. 이렇게 어간과 같은 형태의 모음 어미를 겹쳐서 쓴 예는 『월인석보』에도 더러 보인다. 이는 문법 의식과 표기 편의의 상충에 기인한 것으로 아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거나 표기자의 언어 습관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 (6ㄷ)은 보조적 연결어미 ‘-긔’와 ‘-게’의 사용례이다. 책 전체로 보면 ‘-게’ 사용례가 더 많다. 나중에 나온 책들에서 ‘-게’의 사용이 점점 많아지는 점으로 보아 ‘-긔’가 고형(古形)이고 ‘-게’가 신형(新形)임을 알 수 있다. (6ㄹ)은 한자어 ‘즉(卽)’과 ‘즉시(卽時)’의 옮김인데, 이 책에 많은 용례가 보인다. 그리고 모두 이 형태로만 쓰였다. 『석보상절』 권 20에 쓰인 ‘·즉자·히’는 『월인석보』 권 18에서 표현이 달라진 1개를 제외하고 모두 ‘·즉재’로 바뀌었다. 주026)
『석보상절』 권 20에는 ‘·즉자·히’가 여러 차례 나오는데, 『월인석보』 권 18에서 대부분 ‘·즉재’로 바뀌었다. 다만 하나만이 달라져서 ‘곧’으로 옮겨졌다. 즉자히 아바긔 〈석상20:13ㄴ〉 → 아비 爲야 偈 닐오〈월석:4ㄱ〉.
5) 이 책에는 동명사어미 ‘-ㄹ’과 ‘-ㅭ’의 혼용 예가 상당 수 보인다. 두 형태 중 ‘-ㅭ’의 쓰임이 훨씬 우세하다. ‘-ㄹ’은 후행하는 체언의 두음이 각자병서인 경우, 또는 유성자음으로 시작하는 명사 및 의존명사의 앞이나, ‘ㅅ’ 계열 합용병서가 두음인 의존명사 및 ‘’에 의해 구조화된 어미 앞에 온다. ‘-ㅭ’은 후행하는 체언의 두음이 무성자음인 고유어 및 한자어 앞에 오고, ‘ㅂ’계 합용병서를 두음에 가진 일반명사와 의존명사 ‘’에 의해 구조화된 어미 앞에 온다.
(7) ㄱ. 聲聞 求 사콰〈18ㄴ〉,  사미〈20ㄴ〉, 受持 사〈31ㄱ〉
ㄴ. 니르 時節에〈4ㄴ〉, 涅槃 時節이〈15ㄴ〉, 成道 時節에〈31ㄱ〉
ㄷ. 주 주리〈31ㄱ〉, 니〔說〕 저긔〈32ㄱ〉, 니르〔說〕 저긔〈51ㄴ, 53ㄱ〉 / 니르실〔起〕 쩌긔〈44ㄴ〉 / 濟渡욜 야〈50ㄱ〉 / 봀 분〈47ㄱ〉,  미니라〈44ㄴ〉,  미리라〈12ㄴ〉
ㄹ. 너 들〈36ㄴ〉, 너 〈37ㄴ〉
ㅁ. 디니〈2ㄴ〉, 아니딘댄〈19ㄴ〉
ㅂ.  〈35ㄴ〉, 입힐훔 씨라〈27ㄴ〉, 이실 씨니〈17ㄴ〉, 니즐〈12ㄱ〉, 아니니라〈13ㄱ〉
ㅅ. 求따〈13ㄱ〉
(7ㄱ)은 무성자음으로 시작되는 명사 앞에 ‘-ㅭ’이 온 예이다. 이 책에는 고유어가 많지 않아서 후행하는 체언이 일반명사인 예는 ‘사’이 유일하다. ‘-ㄹ+각자병서’의 예는 없다. (7ㄴ)은 후행하는 한자어 체언의 두음이 무성자음 ‘ㅅ’인 경우의 예이다. (7ㄷ)은 후행하는 체언이 의존명사인 경우이다. 의존명사의 두음이 무성자음이면 ‘-ㅭ+전청자’형과 ‘-ㄹ+각자병서’형이 모두 쓰였으나 ‘-ㅭ’의 예가 더 많다. 후행 체언이 유성자음으로 시작되는 명사나 의존명사 앞에서는 ‘-ㄹ’이 쓰였다. 후행하는 의존명사가 ‘ㅅ’계 합용병서인 경우에는 ‘-ㄹ’이 왔다. ‘-ㄽ’으로 표기된 것은 후행하는 의존명사의 초성 ‘ㅅ’이 위치 이동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7ㄹ)은 후행하는 체언이 ‘ㅂ’계 합용병서인 일반명사 앞에 ‘-ㅭ’이 표기된 예이다. (7ㅁ)과 (7ㅂ)은 같은 의존명사에 의해 문법화한 어미라고 하더라도 ‘’계열의 어미와 ‘’계열의 어미 앞에 오는 동명사가 서로 다름을 보여주는 예이다. ‘’계열의 어미 앞에는 ‘-ㅭ’이오고, ‘’계열어미 앞에는 ‘-ㄹ’이 온 것이다. (7ㅅ)은 의문형인데, 이 책에 ‘-ㅭ다’형은 없고 이 형태만이 유일하다.
6) 『석보상절』 권 20에는 사용례가 적어서 널리 알려져 있지 않거나, 이 책에 처음 나오는 어휘가 있다. 이른바 희귀어(稀貴語)와 고어사전 미수록(未收錄) 어휘들이다. 그런가 하면 기원적으로는 한자어인데, 고유어처럼 일관되게 정음(正音)으로만 적힌 어휘들도 있다. 먼저 희귀어 및 미수록 어휘를 밝히고, 이어서 한자어이지만 정음으로 적힌 어휘의 순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이를 차례대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1〕 기 : 명사. 아주 적은 무게의 단위를 나타내는 도량형 명사이다.
(1수(銖)의 100분의 1이고, 1냥(兩)의 2,400분의 1에 해당하는 아주 가볍거나 적은 양을 이른다.)
〔一·百· 기자·  銖쓩ㅣ·오 여·슷 銖쓩ㅣ 分분·이·오 :네 分분·이  兩:·이·라〈9ㄱ〉〕
‘기’은 사용례가 흔하지 않은 어휘이다. 이 책에도 단 한 차례만 쓰였다. 무게의 단위로 1수(銖)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적은 양을 가리킨다. 1수(銖)는 1냥(兩)의 24분의 1에 해당하므로, 1기장은 1냥(兩)의 2,400분의 1이다. 애초에는 기장쌀〔黍〕 한 알의 무게를 이르는 말이었으나, 점점 일반화하여 가벼운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고 있다. 따라서 ‘기’은 매우 가벼운 무게 단위를 가리키는 이른바 도량형 명사 중 하나이다. 이 어휘를 『고어사전』(교학사)에서는 잡곡 ‘기〔黍〕’으로 풀었고, 『이조어사전』(연세대 출판부)에서는 ‘기장쌀 한 알의 무게’ 또는 ‘1수(銖)의 10분지 1’이라고 하였으나, 1기장은 ‘1수(銖)의 100분의 1’이므로 잘못이다. 또 『우리말큰사전』(어문각)에서는 ‘①기장〔黍〕, ②기장 한 알의 너비, 곧 1푼, ③기장 한 알의 무게, 곧 2400냥 분의 1 등’으로 풀었다. 한자 자전에서는 1서(黍)에 대해 1척(尺)의 100분의 1의 길이, 1홉〔合〕의 1,200분의 1의 용량(容量), 1수(銖)의 100분의 1의 중량(重量)이라고 정리하였다. 따라서 ‘기’은 원래 곡식 ‘기〔黍〕’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변하여 ‘기’처럼 매우 가벼운 무게〔量〕나, ‘기’ 정도의 길이, 또는 너비를 나타내는 말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처음의 뜻에서 무게 단위나 길이, 또는 너비를 가리키는 말로 바뀐 것이다.
용례 :  기 너븨 分이오 돈 나히 文이라〈영가 상:38ㄴ〉, 열 기이 絫ㅣ오 열 絫ㅣ 銖ㅣ라〈능엄3:24ㄱ〉.
〔2〕 데엋 : 명사. 밖. 외부(外部).
〔神씬力·륵·으·로 ·신 供養··이 데어·쳇 :쳔랴··니 :쳔랴· 法·법·만 :몯·〈11ㄴ〉〕,
‘데엋’은 다른 중세국어 문헌에 용례가 드물다. 다만 이 책에는 세 번에 걸쳐 쓰였다. 그 외에는 『법화경언해』에 한 용례가 있을 뿐이다. “한 마 너비 더드머 幾 窮究며【幾 져글 씨니 멀터운 데어치 아니라】조외닐 자바(博探衆說야 硏幾摭要야)”〈법화경언해 서:21ㄴ〉. 이에 대해 『우리말큰사전』(어문각)에서는 ‘데면데면한 거죽’이라 풀었다. 같은 내용이 실려 있는 『월인석보』〈18:31ㄱ〉에는 ‘데어쳇’이 ‘’이라 되어 있다. 또 『법화경언해』〈6:142ㄱ〉 계환(戒環) 요해(要解)에 대한 정음 구결문에는 ‘外(외)’이고, 언해문에는 ‘’이라 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데엋’은 ‘거죽’, 또는 ‘밖’이나 ‘외부’의 의미를 가진 말로 본다. 神力으로 샨 거시 밧 쳔애 넘디 아니하니〈월석18:31ㄱ〉. 神力의 化샨 거슨 밧 쳔애 남디 못하니(神力所化 不過外財니)〈법화경언해6:142ㄱ~144ㄱ〉.
용례 : 得·득道:·면 :다 얼구·를 데어·체 :혜·여 죽사·리· 니·즐·〈12ㄱ〉, 迹·젹·은 자·최·니 데어·쳇 ·보논 :이· 迹·젹·이·라 ··니·라〈38ㄴ〉
〔3〕 ·-〔耀〕 : 형용사. 눈이 부시다.
〔光明·이 ··에 비·취시·며 믈읫 相··이 :다 ·샤〈42ㄱ〉〕
사전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이른바 미수록 어휘이다. 이 부분에 대한 『월인석보』의 내용은 ‘光明이 와에 비취시며〈월석18:77ㄴ〉’이고, 『법화경언해』의 정음 구결문은 ‘光明이 照曜시며(光明이 비취시며)〈법화7:18ㄴ〉’이다. 이 형태는 『월인석보』에 몇몇 용례가 있고, 『법화경언해』에도 쓰였다. 이로 미루어 ‘와·-’는 『월인석보』 간행 무렵 ‘ㅸ〉ㅗ/ㅜ’의 변화가 반영된 표기임을 알 수 있다. ‘와·-(브와·-)’의 직전 형태인 ‘·-’는 이 책에 처음 나오고, ‘ㅸ〉ㅗ/ㅜ’의 변화에 의해 이후에는 ‘와·-(브와·-)’로 표기된 것이다. 『번역박통사』(1510년대 간행)에는 ‘브와·-〈70ㄴ〉’의 형태가 보인다.
〔4〕 :게여· : 부사. 너그럽게. 큼직하게. :게-〔雄〕+·이(부사파생접미사)→:게여·(부사).
〔· 端돤正··고 ··과 ·힘·괘 :게여· 勇:猛:·니·라〈42ㄱ〉〕
사전에 없는 미수록 어휘이다. 형용사 ‘:게-〔雄〕’에서 접미사에 의해 파생된 부사이다. 부사의 형태는 이 책에 처음 보인다.
〔5〕 『석보상절』에는 기원적으로 한자어지만 정음으로 표기된 어휘들이 더러 보인다. 이 책 권 20에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해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석보상절』의 편찬이 원문을 싣지 않고 번역문만을 실은 데서 기인했다고 본다. 다른 하나는 이 어휘들이 대부분 불경과 밀접히 관련된 불교용어인 점으로 미루어 불교가 곧 생활이었던 고려시대에 우리말처럼 쓰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1). · : 명사. 모습. 모양. 한자어 ‘樣子/樣姿’에서 온 말이다.
〔諸졍菩뽕薩·摩망訶항薩· 衆··이 ·잇 ··로 :세 번 · 소·리 :내·야 ··〈4ㄱ〉〕
이 책에는 정음으로 적혀서 ‘얼굴 생김새’ 외에 ‘모습/모양’의 뜻으로 쓰였다. 이 책에 사용례가 많은데 모두 ‘·’로 표기되었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해 『월인석보』에서는 그대로 받은 예는 하나에 지나지 않고, 그 외는 주로 한자 ‘相’, 또는 ‘形’으로 받거나, 앞에 오는 ‘잇’과 함께 ‘(·이) ·티’로 옮겼다. 주027)
菩뽕薩·衆··· ··도 :젹거·늘〈석상20:37ㄱ〉 → 菩뽕薩·衆··도 · · :젹거·든〈월석18:71ㄱ〉, ·이럴· 種:種: · ·나·토시·며〈석상20:38ㄱ〉 → ·이럴· 種:種: 形·을 나·토·아〈월석18:72ㄴ〉, 너희 :위··야 그 ·· :뵈·시리·라〈석상20:40ㄴ〉 → 너희 爲·윙··야 相·· 나·토·시리·라〈월석18:76ㄱ〉, ·잇 ··로〔如是〕 :세 번 · 소·리 :내·야〈석상20:4ㄱ〉 → ·이 ·티 :세 번 · 소·리 :내·야〈월석18:19ㄱ〉.
『월인석보』에서 ‘相’이나 ‘形’으로 옮긴 말은 원문인 『법화경』에 그렇게 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는 이때 이미 고유어처럼 인식된 어휘임을 알 수 있다.
2). : : 명사. 모양. 모습. 한자어 ‘樣’에서 온 말로 보인다.
〔濟·졩渡·똥·욜 :야· 조·차 ·· 現···야〈50ㄱ〉〕
‘·’와 비슷하게 쓰인 말로 ‘:’이 있다. 이 말 역시 한자 ‘樣’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데, 이 책에서는 ‘:’으로 표기되었다. 용례가 드문 편이다. 정음으로 적혀서 ‘:’의 말자음 ‘ㆁ’이 연철 표기되었다.
3). ·녜 : 부사. 늘. 항상. 언제나. 한자어 ‘常例’에서 온 말이다.
〔이 :사·미 現· :뉘·예 이·베·셔 ·녜 靑蓮련華 香·내 나·며〈29ㄴ〉〕
한자어 ‘상례(常例)’에서 온 말인데, 훈민정음 초기 문헌부터 자음 동화가 반영된 표기인 ‘·녜’로 적었다. 이 책의 용례에서는 모두 ‘·녜’이다. 『월인석보』 권 18에도 그대로 실현되었다. ‘녜’는 명사로도 쓰였으나 이 책에 명사의 용례는 없다. 이 말은 『법화경』 원문의 ‘常’을 옮긴 것이다.
4). 침노·- : 동사. 쳐들어가다. 한자어 ‘侵勞/侵擄·-’에서 온 말이다. 주028)
‘침노·-’의 ‘침노’는 한자어 ‘侵勞’ 및 ‘侵擄’로 쓸 수 있으나, 당시에는 한자로 적을 경우 모두 ‘侵勞’만을 썼다.
〔침노··야 害··논 ·고·로 니· 賊·쯕·이·라 ·고 〈29ㄱ〉〕
‘침노·-’는 불법적(不法的)으로 쳐들어가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한자어 ‘침노(侵勞/侵擄)·-’에서 온 말인데, 이 책에는 ‘침노·-’라 적혀 있다. 이후에 간행된 다른 문헌의 경우, 대부분 한자로 ‘侵勞·-’라 썼다. 드물지만 ‘침로·-’라 쓴 예도 있다. ‘침노·-’는 『법화경』 계환(戒環) 요해(要解)의 ‘侵’을 옮긴 말이다. 衆生이 常住를 侵勞야 損커나〈월석21:39ㄴ〉. 魍魎 鬼神이 서르 침로야〈불정:32ㄴ〉. 사을 侵勞며〈육조 중: 63ㄱ〉.
5). 류·- : 동사. 연주하다. 한자어 ‘風流·-’에서 온 말이다.
〔諸졍天텬·이 하· 류··야 놀·애·로 부텨·를 讚·잔嘆·탄··〈7ㄴ〉〕
‘풍류(風流)를 즐기다’, 또는 ‘악기를 연주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이 책에 다른 용례는 없다. 이 말은 『법화경』의 ‘伎樂’을 옮긴 것인데, 『월인석보』 권 18에는 ‘류·’로 옮기거나 ‘伎樂’을 그대로 쓰기도 했다.
6). 미·혹·- : 동사. 마음이 어리석어 헤매다. 한자어 ‘迷惑·-’에서 온 말이다.
〔· 외·야 嗔친心심·과 미·혹·호· ·어·즈류·미 아·니 외·며〈27ㄴ〉〕
‘미혹(迷惑)’은 불교에서 말하는 3독(毒)의 하나이다. ‘우치(愚痴)’를 이르는 것으로 현상(現象)과 도리(道理)에 대하여 마음이 어두운 것을 말한다. 곧 고통 받는 근원과 모든 번뇌의 근본이라는 뜻이다. ‘미·혹·-’은 한자어 ‘迷惑·-’에서 온 말인데, 정음 초기 문헌부터 이렇게 정음으로 적혔다. 한자어라는 인식이 엷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법화경』 원문의 ‘愚痴’나 ‘痴暗’을 옮긴 말이다.
7). :·뎍 : 명사. 행한 일의 실적. 한자어 ‘行蹟’에서 온 말이다.
〔貴·귕 :·뎍 ·히·로 智·딩慧·ㅅ ·브·리 곡도 因緣·을 노·겨 :업·긔 ·고〈11ㄴ〉〕
한자어 ‘行蹟’에서 온 말인데, 이후에 간행된 다른 문헌에서도 주로 정음으로 적었다. 정음으로 적혀서 아래의 『월인석보』 권 1에서는 ‘:·뎍’의 어간 말자음 ‘ㄱ’이 연철 표기되었다. 『법화경』 계환(戒環) 요해(要解)의 ‘妙德 妙行’을 옮긴 말이다. 梵은 조 뎌기라 혼 디니〈월석1:20ㄱ〉, 維那離國은싸홈 즐기고 조 뎍 업스며〈월석2:11ㄱ〉, 觀照로 뎍 닷그면〈남명 상:15ㄱ〉
8). :위·- : 동사. 위하-. 한자어 ‘爲·-’에서 온 말이다.
〔한 聲聞문衆· :위··야 法·법華經·을 니르·더시·니〈7ㄴ〉〕
『석보상절』에는 이 말을 전부 정음으로 적었다. 그만큼 당시에 널리 쓰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9). :쳔 : 명사. 재물(財物). 한자어 ‘錢糧’에서 온 말이다.
〔供養··이 데어·쳇 :쳔랴··니 :쳔랴· 法·법·만 :몯·〈11ㄴ〉〕
‘돈〔錢〕’과 ‘양식〔糧〕’의 합성어인데, 당시 문헌에서 대부분 정음으로 적혔다. 『법화경』 계환(戒環) 요해(要解)의 ‘財’를 옮긴 말이다. 정음으로 적혀서 ‘:쳔·’의 어간 말자음 ‘ㆁ’이 연철 표기되었다.
이 외에 한자어 ‘分別’에서 온 말인 ‘분·별’도 두 차례 주029)
世·솅尊존·하 분·별 :마·쇼:셔〈3ㄴ, 4ㄱ〉.
보인다. ‘分別’의 원 뜻인 ‘가름’의 의미가 아니라, ‘근심/걱정’의 의미로 쓰였다. 우리말에 오랫동안 쓰이면서 의미의 변화를 겪은 것이다. 곧 유연성(有緣性) 상실로 인해 한자어 기원의 어휘라는 인식이 엷어져 정음으로 표기된 것으로 본다. 『법화경』 원문(原文)의 ‘慮’를 옮긴 말인데, 『월인석보』에는 ‘分別’로, 『법화경언해』에는 ‘분·별’로 표기되었다. 또 한자어 ‘盜賊’에서 온 ‘도’〈28ㄴ〉도 쓰였다.
현전 『석보상절』의 다른 책에 ‘’으로 적힌 바 있는 ‘衆生’은 이 책에서 전부 한자 ‘衆·生’으로 표기되었다. 이는 『석보상절』 권 20에서 이 어휘의 출현이 대부분 ‘일체(一切) 중생(衆生)’의 형태로 ‘일체(一切)’와 짝을 이루어 나타나거나 한자 어휘 속에 포함되어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단독으로 쓰인 예도 있고, 그런 경우에도 한자로 적었다.

Ⅴ. 맺음말

지금까지 『석보상절』 권 20의 공개 경위, 형태서지, 책의 상태 및 훼손된 부분에 대한 원문 복원, 수록된 내용, 같은 내용이 번역되어 있는 『월인석보』 및 『법화경언해』와의 대응 관계, 그리고 표기 및 형태의 특징, 희귀어 및 사전 미수록 어휘 등에 대해 살폈다. 이를 요약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석보상절』은 처음 24권으로 간행되었으나 현재 전하는 책은 모두 10권이고, 이 중 6, 9, 13, 19, 20, 21, 23, 24 권 등 여덟 책만이 초간본(初刊本)이다. 권 3과 권 6의 두 권은 16세기 중엽 무렵에 간행된 복각본(覆刻本)이다. 우리가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권 20은 초간본 중 가장 늦게 발굴·공개된 책이다. 소장처의 입장으로 원본 실사가 가능하지 않다. 그런 이유로 그 동안 다른 책들에 비해 연구가 활발하지 못한 편이었다. 모두 53장 106쪽의 분량이지만 첫 장이 낙장(落張)이고, 15장까지는 좌하귀 부분이 훼손되어 각 장의 앞면 8행 아래쪽과 뒷면 1행 아래쪽의 해독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를 같은 내용이 번역되어 실려 있는 『월인석보』, 『법화경언해』 등을 참고로 하여 복원해서 제시했다.
『석보상절』 권 13부터 권 21까지는 『법화경』 제1품인 서품(序品)부터 마지막 품(品)인 제28품 보현보살권발품(普賢菩薩勸發品)까지를 번역해서 실어 놓았다. 권 21에는 『법화경』 권 6의 제22품 촉루품(囑累品), 제23품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 권 7의 제24품 묘음보살(妙音菩薩品) 등이 번역되어 실려 있다. 한편 『월인석보』는 모두 25권 중 권 11부터 권 19까지 아홉 권이 『법화경』을 번역해서 실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석보상절』 권 20의 내용은 『월인석보』 권 18과 『법화경언해』 권 6 및 권 7에도 들어 있다. 이러한 관계를 감안해서 세 책에서 서로 대응하는 부분을 정리·제시해서 비교 연구가 가능하도록 했다. 역주에서는 세 책의 내용을 모두 차례대로 입력해서 실어 두었다. 세 책은 간행 연도에 따라, 그리고 편찬 방법 빛 편찬자의 언어 습관에 따라 얼마간 차이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런 점에 착안하여 『석보상절』의 특성을 찾고자 했다.
2) 『석보상절』은 한글 반포 다음해인 1447년에 간행되었다. 정음으로 기록된 최초의 산문 자료이다. 거기에다 다른 불경언해서들과는 달리 원문이나 정음 구결문 없이 번역문만으로 된 책이다. 그만큼 원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에서 찬술되었다는 뜻을 함의하고 있다. 그런 때문인지 번역도 비교적 자유역(自由譯)에 가깝고, 어휘도 비록 한자어에서 온 말이라고 하더라도 정음으로 적은 예가 많은 등 국어사 자료로서의 가치가 큰 문헌이다. 특히 표기 형태가 매우 정연할 뿐만 아니라, 동주자(銅鑄字)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자양(字樣) 등도 이 책의 특징 중 하나이다. 번역에서는 경(經)의 본문은 본문 그대로 당시의 우리말로 옮겼고, 계환(戒環)의 요해(要解) 부분은 협주로 옮겨서 가독성(可讀性)을 높이면서도 이해의 편의를 도모하도록 했다.
문자 표기에서는 방점 및 모음 ‘ㆍ’와 ‘ㆎ’의 아래 아〔ㆍ〕 글자는 원점(圓點)으로 하고, 그 외의 모음 표기는 고딕체의 방획(方劃)을 써서 『훈민정음(해례본)』(1446년 간행) 및 『동국정운』(1447년 편찬)보다는 후대(後代)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표기 방법은 『용비어천가』(1447년 간행), 『월인천강지곡』(1447년 간행) 및 『사리영응기』(1449년 간행)와 일치한다. 이렇게 단체자 ‘ㆍ’ 및 합체자 ‘ㆎ’의 아래 아〔ㆍ〕와 방점을 원점(圓點)으로 표기한 방법은 『홍무정운역훈』(1455년 간행)을 거치면서 바뀌었다. 『홍무정운역훈』을 시작으로 『월인석보』(1459년 간행)는 물론, 그 이후에 간행된 간경도감본들은 방점 및 모음의 표기에 점획(點劃) 및 방획(方劃)만을 사용하였다.
3) 어학적 고찰로는 이 책의 언어 성격을 알 수 있는 몇몇 형태를 대상으로 했다. 모음조화와 ‘ㆁ’의 연철표기, 그리고 ‘부텻긔/부텨’, ‘가아/가’처럼 같은 뜻을 가진 말의 두 가지 형태 표기 등에 대해 살폈다. 특히 보조적 연결어미 ‘-긔’와 ‘-게’의 표기 경향, 동명사어미 ‘-ㄹ’ 및 ‘-ㅭ’이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이러한 표기 특성은 이 책이 정음 창제 직후에 간행되어 아직 우리말 표기에서 어떤 원칙 같은 것이 확립되기 이전의 모습이 반영된 결과라고 봤다. 이 책에는 다른 문헌에 쓰인 적인 없는 희귀어 및 고어사전 미수록 어휘가 몇몇 보인다. 이에 대해 살피고 그 뜻을 밝혔다. 대표적인 어휘로는 곡식의 이름에서 무게 단위를 가리키는 어휘로 바뀐 ‘기’, ‘외부(外部)나 외면(外面)’을 뜻하는 ‘데엋’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눈부시다’는 의미를 가진 형용사 ‘·-〔耀〕’와 ‘너그럽게, 큼직하게’의 뜻을 가진 ‘:게-〔雄〕’의 파생부사 ‘:게여·’도 처음 나오는 어휘이다. 그리고 기원적으로는 한자어지만 이 책에서 정음으로 적힌 어휘의 특성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樣子/樣姿), :/樣, ·녜/常例, 침노/侵勞/侵擄·-, 류/風流·-, 미혹/迷惑·-, :·뎍/行蹟, :위/爲·-, :쳔/錢糧’ 등이다. 이들은 모두 정음으로 적혔다. 이 책에 정음으로 적힌 한자어 기원의 어휘가 많은 이유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석보상절』의 편찬 방법과 관련된 것이다. 책의 편찬에서 원문 없이 정음만으로 번역된 것이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또 하나는 정음으로 적힌 어휘의 대부분이 불교 관련 어휘이거나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일 수 있는 어휘인 점으로 미루어 불교가 곧 생활의 일부분이었던 고려시대에 이들 어휘가 우리말처럼 쓰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런 이유로 일찍부터 한자어라는 인식이 엷어져서 우리말처럼 사용되었고, 문자 창제 이후에는 표기도 정음으로 하게 된 것으로 본다.
이 글은 뒤의 역주를 위한 해제 성격의 논의이므로 여기에서 다 살피지 못한 내용은 향후 체계적이고도 종합적인 논의의 장으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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