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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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오륜행실도 5집
역주 오륜행실도 5집

정조 때는 이미 세종 때의 한문본 『삼강행실도』는 전하지 않았고 언해본만 전하였으므로, 오륜행실도에 담겨진 책은 언해본 『삼강행실도』와 내용이 같다. 언해본 『삼강행실도』는 성종 21년(1490)에 허침(許琛)과 정석견(鄭錫堅)에게 명하여, 세종조의 『삼강행실도』(330인)를 줄이게 하여 효·충·열 35인씩 105인을 3권 1책으로 간행한 것이다. 이 책은 본문(한문)의 상단 여백에 언해, 즉 한글 번역을 추가한 것으로 선조 13년(1580)과 41년(1608)경에 중간(重刊)되어 지속적으로 간행되었다.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는 중종 13년(1518) 조신(曺伸)이 왕명을 받아 ‘장유(長幼)’와 ‘붕우(朋友)’를 대표하는 47인을 모아 펴낸 책이다. 이 책은 원래 중종 때 김안국(金安國)이 건의하여 왕명을 받아 편찬을 시작하였으나 김안국이 경상감사로 가게 되자, 조신이 책임을 맡아 간행하였다. 『오륜행실도』는 이 두 책을 합본하면서 새롭게 번역하고 언해문을 한문과 나란히 편집하여 정리자(整理字)로 간행하였다. 즉, 그림은 목판화, 한문은 금속활자, 한글은 목활자라는 획기적인 인쇄술의 산물이다.

이광호 교수

서울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학사
동대학교 대학원 문학석사
동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진주 경상대학교, 전주 전북대학교, 서울 국민대학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역임
일본 神田大, 東京外大 초빙교수 역임
중국 大連外大 한국어학과 방문교수 역임
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명예교수

국어 격조사 '을/를'의 연구(1988)
중세 국어 문법론(안병희 공저)(1990)
근대 국어 문법론(2004)

후기 중세 국어의 종결어미 {-다/라}의 의미지(未知)의 '이'를 찾아서
훈민정음 '신제 28자'의 성격에 대한 연구
국어 융합형 '-잖다/-찮다'의 단어 형성과 그 의미 외 다수

역주위원

오륜행실도 권5 : 이광호(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교열·윤문·색인위원

  • 오륜행실도 권5 : 박종국 홍현보

고전국역 편집위원회

  • 위원장 : 박종국
  • 위 원 : 강병식 김구진 김무봉 김석득
  • 김승곤 김영배 김석득 남문현
  • 리의도 박충순 성낙수 심우섭
  • 이해철 임홍빈 전상운 최홍식
  • 한무희

『역주 오륜행실도』를 내면서

우리 회는 1956년 10월 9일 창립 후 세종대왕기념사업의 중심 전당인 세종대왕기념관을 건립 세종문화진열실과 연구실을 마련 운영 관리하며, 세종성왕의 정신과 위업의 연구 사업을 추진하면서, 한편으로 한글 전용과 국학 진흥을 위하여 「한문고전국역사업」과 「한글고전역주사업」을 1967년에 기획하여 1968년부터 계속 수행하고 있다.

「한문고전국역사업」은 1968년 1월부터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을 국역 간행하기 시작하여 실록의 한문 원문 901권을 완역 발간하였고, 일반 한문고전으로 『증보문헌비고』, 『매월당집』, 『국조인물고』, 『동국통감』, 『승정원일기』(순종), 『육일재총서』 등 수많은 국학자료를 국역 발간하였으며, 계속하여 『치평요람』, 『각사등록』, 『연행록』 등 문헌의 국역 사업을 벌여 오고 있다.

「한글고전역주사업」은 1990년 6월에 첫발을 내디디어, 『석보상절』 권6, 9, 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계속하고 있는바, 2015년 12월까지 역주 발행한 문헌은 『석보상절』 4책, 『월인석보』(훈민정음언해본 포함) 17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10책, 『금강경삼가해』 5책, 『구급방언해』 2책, 『삼강행실도』 1책, 『두시언해』 8책, 『소학언해』 4책, 『사서언해』(논어, 대학, 중용, 맹자) 6책, 『이륜행실도』 1책, 『동국신속삼강행실도』 5책, 『시경언해』 3책, 『서경언해』 1책, 『가례언해』 4책, 『여소학연해』 2책 등 124책을 발간하였고, 2016년 금년에도 『오륜행실도』, 『두시언해』(초간본) 등 15책을 역주 간행할 예정이다.

우리 회 창립 60돌이자 한글 반포 570돌이 되는 올해는 우리 회가 「한문고전국역사업」을 착수한 지 49돌이 되었고, 「한글고전역주사업」을 추진한 지 26돌이 되었다. 그 동안 우리 회가 낸 700여 책의 국역 학술 간행물이 말해 주듯이,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 이래 최고의 한글 국역, 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우리 회가 이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그 결과 고전의 대중화를 통한 지식 개발 사회의 문화 자본 구축과 역사 의식 및 한국학 연구 활성화에 기여는 물론, 새 겨레문화 창조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회가 이번에 역주한 이 『오륜행실도』는 정조가 정조 21년(1797) 윤음을 내려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묶어 새로 번역하고 새로 그림을 새겨서 세종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한 노력으로 펴낸 수신서이다.

세종이 펴낸 『삼강행실도』(한문본)를 토대로 하는 행실도류는 후대 임금들의 끝임없는 관심으로 계승되고 발전하여 그 가장 발전된 모습으로 완성된 것이 바로 이 『오륜행실도』이다. 여러 행실도류의 책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우리 말과 글의 변천사와 조선 사회의 생활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이번에 『오륜행실도』를 역주함에 있어서, 그 저본으로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을 영인하고 그것을 저본으로 하였다.

우리 회에서 이 책(효자편)을 역주 간행함에 있어, 역주하여 주신 한국교원대학교 성낙수 명예교수님과, 이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 역주 발간에 여러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6년 11월 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최홍식

일러두기

오륜행실도 5권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는 우리말을 쉽게 적을 수 있는 ‘훈민정음’을 창제하셨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도덕과 예절을 반듯하게 하기 위하여, 『삼강행실도』 같은 책을 편찬하게 하시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삼강행실도』에 대한 언해가 이루어졌고, 나중에는 『이륜행실도』도 나오게 되었다.

정조는 위의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하여, 『오륜행실도』를 간행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 책에는 주자학의 근본이 되는 오륜의 내용이 다 담겨지게 되었다. 이 내용들을 우리의 글 ‘한글’로 번역했고, 화원들의 그림을 덧붙여, 일반 백성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 책이 간행된 지 200여 년이 넘었으므로, 요즘의 일반인들은 이런 책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점이 많다. 그것은 당시의 우리말이나 표기가 지금과 많이 달라,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는 옛 선인들의 훌륭한 예절과 의리, 충절 등을 알게 하고, 우리 말과 글에 대한 문화적 유산을 길이 보전하기 위하여 역주 사업을 오래 전부터 전개하여 왔으며, 그 일환으로 이 『오륜행실도』의 역주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쉬운 오늘날의 우리말과 표기로 주를 달아, 일반인들이 쉽게 읽고, 국어학을 공부하는 이들도 옛말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법

(1) 이 『오륜행실도』는 정조21년(1797)에 편찬한 책으로 5권 4책이며,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보관하고 있는 원본을 대상으로 하였다.

(2) 이 책의 편집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한문 원문·언해 원문·현대어 풀이·옛말과 용어 주해’의 순서로 편집하였다. 원전과 비교하여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본문이 시작되는 1쪽부터 각 면의 첫 글자 앞에 권수와 각 쪽의 앞과 뒤를 다음과 같이 ‘ㄱ, ㄴ’으로 표시하였다.

〈보기〉

제1권 제2쪽 앞면 - 1:2ㄱ遂母…

뒷면 - 1:2ㄴ말을…

(3) 옛말을 현대어로 옮길 때에는 의역을 하지 않고, 옛말의 의미가 살아있도록 딴 말을 덧붙이지 않는 데 원칙을 두었다.

(4) 한문 원문과 언해 부분은 네모틀에 넣어, 현대어 풀이·주석과 구분이 되도록 하였다.

(5) 현대국어 풀이에서 옛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덧붙인 내용은 〈 〉 안에 넣었다.

(6) 찾아보기 배열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 : ㄱ ㄴ ㄷ ㄸ ㅁ ㅂ ㅳ ㅄ ㅶ ㅅ ㅺ ㅼ ㅽ ㅾ ㅈ ㅊ ㅋ ㅌ ㅍ ㅎ

② 중성 :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ㅜ ㅝ ㅞ ㅟ ㅠ ㅡ ㅢ ㅣ ㆍ ㆎ

③ 종성 : ㄱ ㄴ ㄷ ㄹ ㄺ ㄼ ㅁ ㅂ ㅇ ㅈ ㅊ ㅎ

『오륜행실도』 해제* 주001)
* 이 해제는 송철의 등(2006)의 역주 『오륜행실도』에서, 황문환의 『오륜행실도』 해제(2006: 873~888)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이광호(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1. 머리말

정조 21년(1797)에 정조의 명으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두 책을 합책하고 그 내용을 일부 수정하여 간행한 책이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이다. 5권 4책, 소장본에 따라서는 5권 5책의 언해본(諺解本)으로, 원문의 한자는 동활자(銅活字)이고, 언해문의 정음(正音) 곧 한글은 목판본(木版本)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의 제목 ‘오륜행실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역대 문헌에서 ‘오륜(五倫)’의 ‘행실(行實)’을 본받을 만한 인물들을 가려 뽑아 그 ‘행실’의 구체적인 내용을 전기(傳記) 형식으로 실어 놓은 교화서(敎化書)이다. 역사적으로 모범이 될 만한 중국인 133명과 그들과 견줄 만한 우리나라 사람 17명, 도합 150명의 전기를 효자(孝子) 33명, 충신(忠臣) 35명, 열녀(烈女) 35명, 형제(兄弟) 31명, 붕우(朋友) 16명으로 나누어 실어 놓았다. 그 순서 역시 유교에서 윤리적인 순위에 따라 ‘효자-충신-열녀-형제-붕우’로 정한 것으로 해석되는데, 다만 ‘오륜’ 가운데 하나인 ‘장유유서(長幼有序)’에서 ‘장유(長幼)’의 예는 제외되어 있다.
이만수가 쓴 서문에서는 정조가 이 책에 대하여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룩하는 근본이 되었다.[爲化民成俗之本]”와 같이 천명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즉 이 책은 교화(敎化)를 목표로 한 것이었으므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도판 곧 그림을 맨 앞에 싣고, 이 내용을 설명하는 글인 전기(傳記)를 뒤에 싣는 ‘전도후설(前圖後說)’의 체제를 취하였는데, 이는 책 이름에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의 ‘도(圖)’가 그 증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오륜행실도』의 초간본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서울대학교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등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이들 초간본 가운데 국립중앙도서관 본은 1972년에 을유문화사에서, 규장각본은 1989년 홍문각에서 각각 영인, 간행되었는데, 대체로는 규장각 본을 많이 이용한다. 본 해제는 규장각본(도서 번호 ‘가람 古 170-Y510’)과 동일한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을 대상으로 한다. 주002)
서지 사항 : 33.8×20.9㎝. 사주쌍변(四周雙邊). 반엽 광곽(半葉匡郭): 21.9×13.8㎝, 유계(有界), 한문 10행 20자, 언해문 10행 19자, 주쌍행(注雙行). 판심(版心): 흑어미(黑魚尾), 원표제: 五倫行實, 내제·판심제: 五倫行實圖.

2. 『오륜행실도』의 체제와 간행 경위

2.1. 책의 체제

『오륜행실도』의 전체 체제는 크게 서문 부분과 본문 부분의 둘로 나누어 있다. 서문 부분은 권1의 앞부분에 실려 있는 간행에 관련된 기록들로서, 간행 당시인 정조 21년 정월 초하루에 내린 정조의 윤음(綸音) 3장(6면)을 비롯하여, 주003)
이 윤음의 제목은 ‘어제양로무농반행소학오륜행실향음주례향약윤음(御製養老務農頒行小學五倫行實鄕飮酒禮鄕約綸音)’으로 판심(版心)은 ‘어제윤음(御製綸音)’이다.
‘오륜행실도서(五倫行實圖序)’ 2장(4면)(판심: 五倫行實圖), ‘삼강행실도 원서(三綱行實圖原序)’ 2장(4면)(판심: 오륜행실도, 세자(細字) ‘三綱原序’), ‘이륜행실도 원서(二倫行實圖原序)’ 2장(4면)(판심: 五倫行實圖, 세자 ‘二倫原序’), 그리고 ‘奉 敎授閱, 奉 校監印’ 2장(4면)(판심: 五倫行實 세자 ‘校印諸臣’)으로 되어 있다. 주004)
교열에는 규장각 직제학 이병모(李秉模), 규장각 제학 윤기동(尹耆東), 감인(監印)에는 규장각 직제학 이만수(李晩秀), 규장각 검교(檢校) 심상규(沈象奎), 춘추관 교수(敎授) 김근순(金近淳), 부사과(副司果) 신현(申絢), 춘추관 기사관(記事官) 오태증(吳泰曾), 동(同) 김이영(金履永), 부사과(副司果) 조석중(曺錫中), 동(同) 홍석주(洪奭周) 등이 참여하였다.
특히 『오륜행실도』에 ‘삼강행실도 원서’와 ‘이륜행실도 원서’가 동시에 수록되어 있는 것은 분명히 이 『오륜행실도』가 두 책을 저본(底本)으로 합책(合冊), 간행된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오륜’의 순서(장유유서는 제외)에 따라 5권으로 분권(分卷)하여 본문을 나누어 실었다. 각각의 권은 그 책머리에 목록(目錄)을 실었는데, 권1~권3은 『삼강행실도』와, 권4, 5는 『이륜행실도』와 그 목록이 대체로 일치한다.

(1) 『오륜행실도』 권제1 목록 - 효자(35인)

1. 민손단의(閔損單衣) 2. 자로부미(子路負米)
3. 고어도곡(皐魚道哭) 4. 진씨양고(陣氏養姑)
5. 강혁거효(江革巨孝) 6. 설포주소(薛包酒掃)
7. 효아포시(孝娥拘屍) 8. 황향선침(黃香扇枕)
9. 정란각목(丁蘭刻木) 10. 동영대전(董永貸錢)
11. 왕부폐시(王裒廢詩) 12. 맹종읍죽(孟宗泣竹)
13. 왕상부빙(王祥剖冰) 14. 허자매수(許孜埋獸)
15. 왕연약어(王延躍魚) 16. 양향액호(楊香搤虎)
17. 반종구부(潘綜救父) 20. 검누상분(黔婁嘗糞)
21. 숙겸방약(叔謙訪藥) 22. 길분대부(吉翂代父)
23. 불해봉시(不害捧屍) 24. 왕숭지박(王崇止雹)
25. 효숙도상(孝肅圖像) 26. 노조순모(盧操順母)
27. 맹희득금(孟熙得金) 28. 서적독행(徐積篤行)
29. 오이면화(吳二免禍) 30. 왕천익수(王薦益壽)
31. 유씨효고(劉氏孝姑) 32. 누백포호(婁佰捕虎)
33. 자강복총(自强伏塚) 34. 석진단지(石珍斷指)
35. 은보감오(殷保感烏)

(2) 『오륜행실도』 권제2 목록 - 충신(35인)

1. 용방간사(龍逄諫死) 2. 난성투사(欒成鬭死)
3. 석작순사(石碏純臣) 4. 왕촉절두(王蠾絶脰)
5. 기신광초(紀信誑楚) 6. 소무장절(蘇武杖節)
7. 주운절함(朱雲折檻) 8. 공승추인(龔勝推印)
9. 이업수명(李業授命) 10. 혜소위제(嵇紹衛帝)
11. 변문충효(卞門忠孝) 12. 환이치사(桓彛致死)
13. 안원매적(顔袁罵賊) 14. 장허사수(張許死守)
15. 장흥거사(張興鋸死) 16. 수실탈홀(秀實奪笏)
17. 연분쾌사(演芬快死) 18. 약수효사(若水効死)
19. 유겹연생(劉韐捐生) 20. 부찰직립(傅察直立)
21. 방예서금(邦乂書襟) 22. 악비열배(岳飛涅背)
23. 윤곡부지(尹穀赴池) 24. 천상불굴(天祥不屈)
25. 방득불식(枋得不食) 26. 화상손혈(和尙噀血)
27. 강산장군(絳山葬君) 28. 하마자분(蝦虫麻自焚)
29. 보안전충(普顔全忠) 30. 제상충렬(堤上忠烈)
31. 비녕돌진(丕寧突陣) 32. 정이상소(鄭李上疏)
33. 몽주순명(夢周殞命) 34. 길재항절(吉再杭節)
35. 원계함진(原桂陷陣)

(3) 『오륜행실도』 권제3 목록 - 열녀(35인)

1. 백희체화(伯姬逮火) 2. 여종지례(女宗知禮)
3. 식처곡부(殖妻哭夫) 4. 송녀불개(宋女不改)
5. 고행할비(高行割鼻) 6. 절녀대사(節女代死)
7. 목강무자(穆姜撫子) 8. 정의문사(貞義刎死)
9. 예종매탁(禮宗罵卓) 10. 원강해고(媛姜解梏)
11. 영녀절이(令女截耳) 12. 왕씨감연(王氏感燕)
13. 최씨견사(崔氏見射) 14. 숙영단발(淑英斷髮)
15. 위씨참지(魏氏斬指) 16. 이씨부해(李氏負骸)
17. 조씨의여(趙氏縊輿) 18. 서씨매사(徐氏罵死)
19. 이씨의옥(李氏縊獄) 20. 옹씨동사(雍氏同死)
21. 정부청풍(貞婦淸風) 22. 양씨피살(梁氏被殺)
23. 명수구관(明秀具棺) 24. 의부와빙(義婦臥冰)
25. 동씨피면(童氏皮面) 26. 왕씨경사(王氏經死)
27. 주씨구욕(朱氏懼辱) 28. 취가취팽(翠哥就烹)
29. 영녀정절(寗女貞節) 30. 미처해도(彌妻偕逃)
31. 최씨분매(崔氏奮罵) 32. 열부입강(烈婦入江)
33. 임씨단족(林氏斷足) 34. 김씨박호(金氏撲虎)
35. 김씨동폄(金氏同窆)

(4) 『오륜행실도』 권제4 목록

ㄱ. 형제(24인)
1. 급수동사(伋壽同死) 2. 복식분축(卜式分畜)
3. 왕림구제(王琳救弟) 4. 허무자예(許武自穢)
5. 정균간형(鄭均諫兄) 6. 조효취팽(趙孝就烹)
7. 목용자과(繆肜自撾) 8. 이충축부(李充逐婦)
9. 강굉동피(姜肱同被) 10. 왕랑쟁탐(王覽爭酖)
11. 유곤수병(庾衮守病) 12. 왕밀역제(王密易弟)
13. 채확자사(蔡廓咨事) 14. 극살쟁사(棘薩爭死)
15. 양씨의양(楊氏義讓) 16. 달지속제(達之贖弟)
17. 광진반적(光進反積) 18. 덕규사옥(德珪死獄)
19. 두연대형(杜衍待兄) 20. 장존포금(張存布錦)
21. 언소석적(彦霄析籍) 22. 도경인경(道卿引頸)
23. 곽전분재(郭全分財) 24. 사달의감(思達義感)
ㄴ. 부(附) 종족(7인)
25. 군량척처(君良斥妻) 26. 공예서인(公藝書忍)
27. 진씨군식(陳氏羣食) 28. 중엄의장(仲淹義莊)
29. 육씨의거(陸氏義居) 30. 문사십세(文嗣十世)
31. 장윤동찬(張閏同爨)

(5) 『오륜행실도』 권제5 목록

ㄱ. 붕우(11인)
1. 누호양려(樓護養呂) 2. 범장사우(范張死友)
3. 장예휼고(張裔恤孤) 4. 도종심시(道琮尋屍)
5. 오곽상보(吳郭相報) 6. 이면환금(李勉還金)
7. 서회불부(徐晦不負) 8. 사도경탁(査道傾橐)
9. 한이경복(韓李更僕) 10. 순인맥주(純仁麥舟)
11. 후가구의(侯可求醫)
ㄴ. 부(附) 사생(師生)(5인)
1. 운창자핵(云敞自劾) 2. 환영분상(桓榮奔喪)
3. 견초염빈(牽招斂殯) 4. 양시입설(楊時立雪)
5. 원정대탑(元定對榻)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5권으로 나누어진 본문 부분은 오륜(五倫)의 순서에 따라 분권되었는데, 다만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장유’ 부분은 ‘형제’ 부분으로 대체되었다.
『오륜행실도』의 각 권은 권수(卷首)에 목록을 실었는데, 다음 [도표 1]에서 알 수 있듯이 권1, 권2, 권3은 『삼강행실도』와, 권4와 권5는 『이륜행실도』와 그 목록 내용이 대체로 일치한다. 다만, 『이륜행실도』에서는 『오륜행실도』와 다르게 수록 전기를 분권(分卷)하지 않고 형제도·종족도·붕우도·사생도(師生圖)에 따라 나누어 실은 반면, 『오륜행실도』에서는 형제와 부(附) 종족도를 권4로, 붕우와 부(附) 사생도와 주자 발(鑄字跋)을 권5로 나누어 실어 놓았다. 목록상의 차이에 대해서는 ‘수정간행(修正刊行)’에서 설명하게 될 것이다. 권5에 실려 있는 주자 발에 따르면 『오륜행실도』는 주자소(鑄字所)에서 정리자(整理字)로 인쇄하여 반포(頒布)한 사실이 밝혀져 있다.
『오륜행실도』와 『삼강행실도』·『이륜행실도』를 대조하여 [도표 1]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주005)
이 도표는 황문환(2006: 875)에서 인용한 것으로, 그 원 도표에 약간의 내용을 덧붙인 것이다. 본 해제는 『오륜행실도』 전체의 해제인데, 그 가운데 권4와 권5에 해당하는 부분을 두 줄로 표시한다.
[도표 1]
내용/
책명
오륜도수록인 수
오륜행실도권1효자도33
권2충신도35
권3열녀도35
권4형제도24
부(附) 종족도7
권5붕우도11
부(附) 사생도5
주자도
『오륜행실도』 각 권에 실려 있는 전기(傳記)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전도후설(前圖後說)’의 체제를 취하고 있다. 다음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전기의 제목 ‘복식분축(卜式分畜)’과 그림이 먼저 실려 있고 뒤에 ‘한문 원문’이, 그리고 그 뒤에 ‘언해문’이 실려 있다.
『오륜행실도』 권4의 ‘복식분축’ 체제 예

(3ㄱ)

(3ㄴ)

(4ㄱ)

[그림 1] 권4 형제도
도판 (3ㄱ), 곧 그림은 전기(傳記)의 중요한 내용을 한 장면으로 나타낸 것으로 그 오른쪽 상단에 당해 전기의 제목을 사자성어(四字成語), 즉 (3ㄱ)에서처럼 ‘복식분축(卜式分畜)’으로 실어 놓았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전기의 한문 원문은 먼저 사실을 실어 놓고, 그 내용에 대한 ‘시(詩)’나 ‘찬(贊)’을 반드시 덧붙여 놓았는데, 시는 7언 율시, 찬은 4언 고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기의 한문 원문인 1행 20자에 대하여 시나 찬은 한 자를 낮추어 1행 19자(띄는 부분도 한 자로 계산함)로 하였다. 그림이나 한문 원문에는 없으나 언해문에서는 인명이나 지명, 이해하기 어려운 한문 어구(語句) 등에 대하여는 세자(細字) 두 줄, 곧 소자쌍행(小字雙行)으로 협주를 달아 놓았다.

2.2. 간행 경위

『오륜행실도』에 대한 간행 기록은 이 책의 서문인 ‘오륜행실도 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정조의 명을 받아 쓴 이만수(李晩秀)의 서문에는 간행 시기와 목적 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6) 이만수의 『오륜행실도』 서(序)
[1] 上之二十有一年丁巳月正元日 誕誥八方以休老勞農之義尋以鄕飮酒鄕約條例士冠婚儀釐爲一 編又敎若曰我朝儀物之備隆自我 英陵盛際 聖神相承治敎体明而三綱二倫之書後先彙 成列于學官爲化民成俗之本 今欲講行鄕禮宣自二書而表章之乃命其書曰五倫行實以 臣晩秀與聞是役俾爲之序 臣 謹拜稽首言曰…(이하 생략)
[1′] 임금(정조)께서 21년 정사년 정월 초하루에 노인을 쉬게 하고 농부를 위로하려는 뜻으로 온 세상에 가르치심을 널리 펴시고 향음주(鄕飮酒; 송별연)·향약 조례·사관혼의(士冠婚儀; 성년식이나 혼례 의식) 등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드시었다. 또 가르침을 내리시어, “우리나라의 의식(儀式)과 문물(文物)이 갖추어진 것은 세종대왕의 성대한 때부터인데, 이것을 성스럽고 신령한 자손들이 서로 이어받아 정치와 교화(敎化)가 밝아졌다. 그간 『삼강』, 『이륜』 두 책이 선후로 간행되어 학관(學官)에 널리 반포되어 있으므로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룩하는 근본이 되었다. 이제 향례를 가르치고 시행하려면 반드시 이 두 책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하시고, 책명을 『오륜행실(五倫行實)』로 하도록 명령하신 다음, 신 이만수가 이 사업에 간여함을 들으시고 이 서문을 쓰게 하셨다. 신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아룁니다. …
위의 서문에서 정조가 『오륜행실도』를 간행하도록 한 시기가 정조 21년( 1797) 정월임이 밝혀졌고 정조의 윤음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주006)
윤음에는, ‘上之二十一年正月初一日’이라고 했는데, 오륜행실도 서문에는, ‘上之二十有一年丁巳月正元日’이라고 적고 있으니, ‘정사년 정월 초하루[丁巳正月元日]’라는 말이므로, ‘정(正)’과 ‘월(月)’의 한자 순서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실록에는, ‘丁巳二十一年春正月壬寅朔’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서문에서 간행 목적이 궁극적으로 향례(鄕禮)의 강행(講行)이었음이 나타난다. 이런 목적 이외에도 이 책의 간행이 단순히 두 책, 곧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책한 것이 아니라 이 두 책의 내용을 수정하였고, 특히 언해 부분에서는 ‘증정(證訂)’(증거를 가지고 올바르게 고침)하였으며, 간행의 성격을 윤색하고 고교(考校)(올바로 고침)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향례의 실천을 위해서는 이미 있었던 ‘향음주례(鄕飮酒禮)·향약조례(鄕約條例)·사관의(士冠義)·사혼의(士昏義)’ 등을 합하여 별도의 책 『향례합편(鄕禮合編)』이 편찬되고 있었지만, 이러한 실천서가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유교의 기본 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수적이었다. 『오륜행실도』는 바로 이에 부응하기 위하여 『삼강행실도』 및 『이륜행실도』와 같이 이미 널리 보급되고 알려진 윤리에 관한 책을 저본으로 하여 간행된 것이다.
이만수의 서문에서 ‘우리나라의 의식과 문물이 갖추어진 것이 세종대왕의 성대한 때부터[我朝儀物之備隆自我 英陵盛際]’라 하여, 특히 세종 대를 언급한 것은 좀 더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오륜행실도』와 동시에 간행이 추진된 『향례합편』의 ‘총서(總敍)’에 따르면 세종 대의 간행 사업이 『오륜행실도』의 간행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황문환 2006: 878).
(7) 『향례합편』의 총서(總敍)
[2] 昔我世宗盛際 行義老宴于勤政殿 復命儒臣校刊小學之君編纂三綱行實廣頒中外 予小子憲章而修述者 基在斯乎 於是命諸臣 採輯小學諸家註解而檃栝之 復以三綱行實二倫行實合編校正 命名曰五倫行實(띄어쓰기는 필자 추가)
[2′] 옛날 우리 세종대왕의 성대한 시절에 근정전에서 양로연을 열고 유신(儒臣)들에게 명령하시를, “『소학』을 교정하여 간행하고 『삼강행실』을 편찬하여 중앙과 지방에 널리 반포하라.” 하시었다. 나 소자가 이를 받들고 계승하려는 바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에 여러 신하에게 『소학』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주해(註解)를 수집하여 간행하도록 하고 또 『삼강행실』과 『이륜행실』을 합편·교정하여 이름 짓기를 『오륜행실』이라 하였다.
정조 자신이 ‘소자인 내가 이를 받들고 계승하려 하는 바가 바로 여기에 있다.[予小子憲章而修述]’고 하였듯이, 『오륜행실도』의 간행은 선왕(先王) 세종의 『삼강행실도』 편찬 과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곧 세종이 근정전에서 양로연을 베푼 이후 집현전의 문신들로 하여금 『삼강행실도』를 편찬하고 그것을 주자소에서 인쇄하게 하였듯이, 정조도 자궁(慈宮;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 이후에 문신들로 하여금 『오륜행실도』를 편찬하고 그것을 인쇄하도록 한 것이다(황문환 2006:878, 김문식 2000:157-158).
앞에 인용한 이만수의 서문(序文)에서는 저본(底本)만 언급하고 간행 성격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았다. 위 [2]의 문맥만을 참조하자면 『오륜행실도』는 기존의 두 저본,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단순히 합책하여 간행한 것으로 보이나 다음의 실록(實錄)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7) 정조실록 권지 47, 정조 21년 7월 丁亥조
[3] 上旣頒鄕禮合編 又命閣臣沈象奎等 取三綱二倫兩書而合釐之 證訂諺解 名曰五倫行實 命鑄字所 活印廣頒 俾作鄕禮之羽翼
[3′] 임금께서 이미 『향례합편(鄕禮合編)』을 반포하신 뒤, 다시 내각 신하인 심상규(沈象奎) 등에게 명하여 『삼강』과 『이륜』의 두 책을 합책하고 수정하여 언해(諺解)를 증정(證訂)하게 한 뒤 이름을 『오륜행실』이라 하시었다. 주자소에 명하시기를 활자로 인쇄한 뒤 이를 널리 반포하여 ‘향례’에 다소나마 도움이 되도록 하라고 하시었다.
위 실록 내용에 따르면 『오륜행실도』의 간행은 합책, 곧 ‘양서의 합’에 수정[釐]이 가해졌으며, 특히 언해에서는 ‘증정(證訂)’까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륜행실도 서’에서 이 책의 간행 성격을 윤색(潤色), 고교(考校) 등으로 표현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주007)
此乃我殿下所以命臣等潤色 而臣等所以承命考校者也(밑줄 필자).
언해의 증정은, 문장 구조의 변화를 『이륜행실도』의 문장과 비교하여 증정의 내용을 후술하기로 한다.

3. 수정 간행의 내용

이미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목록 내용은 저본과 유사하다 하더라도 『오륜행실도』에서 수록의 체제가 달라진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삼강행실도』 충신도의 ‘방득여소(枋得茹蔬)’, 열녀도의 ‘이씨감연(李氏感燕)’과 ‘미처담초(彌妻啖草)’는 각각 『오륜행실도』 권2의 충신도에서 ‘방득불식(枋得不食)’, 권3의 열녀도에서 ‘왕씨감연(王氏感燕)’ 및 ‘미처해도(彌妻偕逃)’로 그 제목이 바뀌었다. 또 『이륜행실도』 형제도의 종족항의 ‘원백동찬(元伯同爨)’은 『오륜행실도』 권4 형제도의 부(附) 종족에서 ‘장윤동찬(張閏同爨)’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물론 그 주인공 등이 바뀌었으므로 그 내용도 서로 다르게 설명되어 있다. 또 『이륜행실도』 형제도의 ‘노조책려(盧操策驢)’는 『오륜행실도』 권1의 효자도에서 그 제목이 ‘노조순모(盧操順母)’로 바뀌어 실려 있다. 이외에도 『삼강행실도』 효자도의 ‘곽거매자(郭巨埋子)’ 및 ‘원각경부(元覺敬父)’가 『오륜행실도』에서 제외되었다. 주008)
황문환(2006: 879)에서는 ‘元定對榻(원정대탑)’이 『이륜행실도』에 없던 것인데 『오륜행실도』 권5 붕우도에 실려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규장각 가람문고 ‘古 170.951 G413i’의 『이륜행실형제도』(영인본)를 참조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은 원래 ‘낙장본’으로 맨 끝에 있는 이 제목이 낙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홍문각 영인본 이륜행실도 규장각도 ‘2074’ 영인본에는 ‘원정대탑’이 실려 있다.

3.1. 언해문 배치의 수정

『오륜행실도』는 그 저본(底本)과 똑같이 ‘전도후설(前圖後說)’의 체재를 취하고 있으나 언해문을 배치하는 방식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을 가지고 있다. 다음 [그림 2-1], [그림 2-2]에서 알 수 있듯이 전본들은 한결같이 언해문을 ‘그림’ 밖 난상에 배치하고 한문 원문을 그 다음 면에 배치한 반면, 『오륜행실도』는 [그림]을 먼저 싣고 그 다음에 한문 원문, 그리고 언해문을 맨 끝에 배치하였다.

[그림 2-1] 『삼강행실도』 효자도의 ‘자로부미(子路負米)’

[그림 2-2] 『이륜행실도』 형제도의 ‘급수동사(伋壽同死)’

[그림 3-1] 『오륜행실도』 권1 효자도 ‘자로부미(子路負米)’

[그림 3-2] 『오륜행실도』 권4 형제도 ‘급수동사(伋壽同死)’

언해문의 위치에 따라 전본을 ‘난상 언해’, 『오륜행실도』를 ‘본문 언해’로 부른다면 결국 저본의 ‘난상 언해’ 방식을 읽기 쉽게 ‘본문 언해’ 방식으로 수정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저본의 언해문이 글자가 작고 행간의 선도 없어서 읽기에 불편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수정을 통해 글자를 보다 크게 고치고 행간의 선을 추가하여 그 정교함의 정도를 높였다. 따라서 수정된 방식이 훨씬 수월하게 읽혔을 것이다.
또한 저본인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의 언해문이 ‘난상’에 배치된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삼강행실도』는 한문본이 먼저 간행되고 그 뒤에 언문본이 간행되었다. 곧 한문본은 세종 16년(1434)에 이미 간행되었지만 언해본은 세종 당시부터 논의되다가 성종 대에 이르러서야 간행되었다. 따라서 언해본은 결국 이미 간행된 한문본의 목판(木板)에 언해 부분을 덧붙인 것으로 언해본의 언해문은 자연히 ‘난상 언해’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 『이륜행실도』는 ‘백성을 교화시킨다’는 목표를 가진 『삼강행실도』와 동일한 목적으로 간행되었으므로 처음부터 『삼강행실도』와 같은 체재를 취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륜행실도』는 『삼강행실도』에 빠져 있는 ‘형제와 종족’, ‘붕우와 사생’을 보완하는 데 목적이 있었으므로 그 체재를 『삼강행실도』에 맞추었고 그 결과 언해가 ‘난상’에 실렸을 것이다.
앞에서 간단히 언급하였지만, 결국 『오륜행실도』에서 ‘본문 언해’ 방식을 택한 것은 기타의 언해 방식의 배치 방식을 따른 것인 동시에 언해문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언해문을 본문에 실음으로써 『오륜행실도』는 교화서(敎化書)로서의 본래의 목적에 보다 충실한 체재를 갖추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세종 때의 『삼강행실도』 목판본에 언해문을 새기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방식은 『이륜행실도』까지만 적용되었을 뿐, 광해군 9년(1617) 임란 이후 대대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만 1,587명의 행적을 찾아 실어 펴낸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서 이미 난상에 새겼던 언해문 방식을 버리고 본문 안의 한문 원문에 이어 편집하는 방식을 채택한 바 있다. 『오륜행실도』의 편집 방식은 이를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3.2. 도판 구성의 수정

[그림 2]와 [그림 3-1], [그림 3-2]를 비교해 보면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의 ‘자로부미(子路負米)’와 ‘급수동사(伋壽同死)’에서는 그 내용이 시공간(時空間)의 과정을 그림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오륜행실도』의 그림은 그 내용이 전부 표시되지 않고 핵심적인 내용만을 한 장면에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전자에 비하여 후자는 전설(傳說) 내용 가운데 한 장면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수정된 것이다.
[그림 2]의 『삼강행실도』 ‘자로부미’ 그림을 보면 맨 위쪽에 ‘자로’가 쌀을 지고 집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있고, 부모가 앉아 있는 모습과 그 뒤 벼슬이 높이 되어 따르는 수레가 많고 곡식이 많아도 요 한 표를 깔고 솥에 음식하여 소박하게 먹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또한 『이륜행실도』의 ‘급수동사’ 그림에서는 태자 ‘급’의 배다른 공자 ‘삭’과 그 어미가 모의하여 태자 ‘급’을 배에서 죽이려 할 때, ‘삭’과 친형제인 공자 ‘슈’가 이를 말리는 장면이 맨 밑에 있다. 그리고 제나라에 태자 ‘급’을 사신으로 보낼 때 ‘슈’가 태자의 깃발을 들고 태자로 가장하여 대신 죽게 되는데, 태자가 이를 알고 스스로 죽는 장면이 맨 위에 그려져 있다.
저본들과는 달리 『오륜행실도』 권1 효자도의 ‘자로부미’ [그림 3-1]에서는 부모의 봉양을 위하여 ‘자로’가 쌀을 지고 있는 한 장면만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권4 형제도의 ‘급수동사’[그 3-2]에서는 태자 ‘슈’가 이복 동생 ‘급’을 따라 죽는 장면만이 그려져 있다.

3.3. 언해 내용의 수정

저본인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오륜행실도』와 비교하면, 언해 내용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정조 실록’의 기록(권47, 21년 7월 20일조)에서 알 수 있듯이 증정(證訂)이나 합리(合釐)의 뜻이 담겨 있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륜행실도』에서 특히 ‘증정’은 넓게는 수록 체재의 수정을 비롯하여 저본의 내용을 가감하거나 대체하는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작게는 저본의 내용을 구체화하거나 잘못을 고치는 곧 정정(訂正)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륜행실도』 붕우(朋友)도의 ‘누호양려(樓護養呂)(한나라)’는 언해에서 그 제목이 누락되어 있으나 『오륜행실도』에서는 ‘누호 한나라 졔군 사이니’로 보충되어 있다. 그 한문 원문도 『이륜행실도』에서는 ‘누호(樓護)’로만 되어 있으나 두 말 할 필요 없이 『삼강/오륜 행실도』에서는 ‘누호제군인(樓護齊郡人)’으로 되어 있다. 『오륜행실도』가 저본과의 관계에서 보이는 이러한 양상은 책 전체에 일관되게 유지된다. 여기서는 『이륜행실도』 ‘형제도’의 ‘급수동사(伋壽同死)’와 『오륜행실도』의 그것을 각각 원문과 언해문을 제시하고 그 내용을 비교하고자 한다.
(8) 『이륜행실도』 형제도와 『오륜행실도』 권4 형제도 ‘급수동사(伋壽同死)’
ㄱ. 『이륜행실도』 한문 원문
伋壽同死 周
衛公子壽者 宣公之子 太子伋之異母弟 公子朔之同母兄也 其母與朔謀 欲殺伋而立壽 使人與伋 乘舟於河中 將沈而殺之 壽知不能止 因與之同舟 舟人不得殺又使伋之濟 將使盜 見載㫌 要而殺之壽止伋 伋曰棄父之命 非子道也 不可壽又與之偕行 其母不能止 乃戒之曰壽無爲前也 壽又竊伋㫌以先行 盜見而殺之 伋至痛壽代己之死涕泣哀載 其屍環至境而自殺
ㄱ′. 『이륜행실도』 언해문
윗나라 공 슈 션공이란 님금의 아리니 태급비 다 아믜게 난 아이오 공 삭이와  어믜게 난 형이라 ㉠그 어미 삭이와 야 태 주기고  셰요려야 사마로 야 태와 타 가다가 므레 드리텨 주기려 거  말리디 몯야 조차 그  타 가니 몯 주기니라  ㉢졧나라 태 보내고 도적야 길헤 가 태의 긔 가거든 보고 주기라 대  가디 말라 야 태 닐오 ㉤아 명을 더디면 식의 되 아니라 대   조차가더니 그 어미 말리디 몯야 경계야 닐오 앏셔디 말나 더니   태의 긔 아사 앒 셰고 가거 도적이 태라 너겨 주기니라 태 미처 가 보고 제 모긔 주근 주 슬허 울고 주거믈 시러 모라와 저도 손조 주그니라
ㄴ. 『오륜행실도』 권4 형제도 한문 원문
伋壽同死 列國 衛
衛 公子壽者 宣公之子 太子伋之異母弟 公子朔之同母兄也 其母與朔謀 欲殺伋 共讒於公 公令伋之齊 使賊先待於隘而殺之 壽知之以告伋使去之 伋不可曰 棄父之命 惡用子矣 有無父之國則可也 及行 壽飮以酒 載其旌而先往 賊殺之 伋至曰 君命殺我 壽有何罪 賊又殺之 國人傷之 作二子乘舟之詩
ㄴ′. 『오륜행실도』 언해문
위나라 공 슈 션공의 아이오 태 급의 다른 어미게 나흔 아이오 공 삭의  어미의게 나흔 형이라 ㉡슈의 어미 삭으로 더브러 여 급을 죽이려 여 가지로 션공의게 참소니 공이 급으로 여곰 ㉣졔나라 신 가라 고 도적을 즈레 보내여 죽이라 니  알고 급의게 고여 라나라 대 급이 듯디 아니여 오 ㉥아븨 명을 리면 엇디 식이라 리오 고 쟝   술로 급을 먹여 케 고 급의 긔 만이 아사 몬져 가니 도적이 긔 보고 급인가 여 죽이거 급이 니러 오 님군이 날을 죽이라 시니  무 죄 이시리오 대 도적이  죽이니 나라 사이 슬허 여 이승쥬[두 사이  고 가단 말이라]라  글을 지으니라
(8)의 ㄱ과 ㄴ에서 전체적인 의미로는 태자 ‘급(伋)’과,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슈(壽)’ 두 형제의 의로움이 나타나나 그 구체적인 문면(文面)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이륜행실도』와 『오륜행실도』에서 한문 원문의 첫머리 “衛 公子壽者 宣公之子 太子伋之異母弟 公子朔之同母兄也”까지는 같으나 그 이하에서는 거의 같은 문면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ㄱ과 ㄴ, ㄱ′과 ㄴ′에서 보면 대략적인 의미는 유사하나 구체적으로는 ㉠과 ㉡, ㉢과 ㉣, ㉤과 ㉥이 비슷한 문면이고 다른 것은 모두 다르다 하겠다. 겨우 한 가지 예만을 제시하였으나 실제로는 그 차이가 곳곳에 존재한다. 여기서 정조 실록의 합리(合釐)와 증정(證訂)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추가로 『삼강행실도』와 『오륜행실도』 사이의 언해 내용이 달라진 사항들을 황문환(2006: 884-885)에서 인용한다. 다만 황문환의 (9)ㄱ의 ㉢에서는 ‘遂’가 빠져 있다.
(9) 『삼강행실도』 효자도와 『오륜행실도』 권1의 효자도
ㄱ. ‘민손단의(閔損單衣)’ 한문 원문
閔損 … 早喪母父聚後生二子 母嫉損生子衣棉絮衣損以蘆花絮 ㉡父冬月令損御車體寒失靷 父察知之欲遣後妻 … 父善其言而止 ㉢母亦感悔遂成慈母
ㄴ. 『삼강행실도』(초간본)의 언해
㉠[] 閔민損손 다어미 損손이 믜여 제 아란 소옴 두어 주고 閔민損손이란 품 두어 주어늘 ㉡[] 치  셕슬 노하 린대 아비 알오 다 어미를 내툐려 커늘… 아비 올히 너겨 아니 내틴대 ㉢어미 도 뉘으처 어엿비 너기더라
ㄷ. 『삼강행실도』(영조 대 중간본)의 언해
민손 … 일즉 어미 죽고 아비 후쳐를 취여 두 아을 나흐니 손의 계뫼 민손을 믜워여 나흔 아으란 오 소음 두어 닙히고 손으란 품을 두어 닙히더니 ㉡겨의 그 아비 민손으로 여곰 술의 몰 치워  혁 노하 린대 아비 알고 후쳐 내치고져 거늘 … 아비 그 말을 어딜이 너겨 아니 내치니 ㉢계뫼 도로혀 뉘읏쳐 어엿비 너기더라
ㄹ. 『오륜행실도』 권1 효자도의 언해
민손 … 일즉 어미 죽고 아비 후쳐 여 두 아을 나흐니 손의 계뫼 손을 믜워여 나흔 아으란 오 소음 두어 닙히고 손으란 품을 두어 닙히더니 ㉡겨에 그 아비 손으로 여곰 술위 몰 치워 혁을 노하 린 아비 펴 알고 후쳐 내티고져 거 … 아비 그 말을 어딜이 너겨 아니 내티니 ㉢계뫼  감동고 뉘웃처 드듸여  어미 되니라
한문 원문 ㄱ에 대한 세 가지 번역 ‘ㄴ, ㄷ, ㄹ’에서 초간본 ㄴ의 언해 ㉠에서는 한문 원문이 번역되어 있지 않은 반면에(㉠[∅]), 중간본 ㄷ과 『오륜행실도』 ㄹ에서는 한문 원문이 번역되어 있다. 단, 중간본에서는 ‘후쳐’를 취한 주어 ‘아버지’가 번역되어 있으나 『오륜행실도』에서는 주어인 ‘아버지’가 생략되어 있다.
또 초간본 ㄴ에는 ‘동(冬)’의 번역이 ‘㉡[∅]’과 같이 생략되어 있으나 중간본 ㄷ과 『오륜행실도』 ㄹ에는 모두 ‘겨’로 번역되어 있다. 한문 원문 ㄱ의 ㉢에 보이는 ‘모(母)’는 초간본인 ㄴ에서는 ‘어미’로, 중간본 ㄷ과 『오륜행실도』 ㄹ에서는 ‘계모’로 번역되어 차이가 있다. 또한 『오륜행실도』에서는 한문 원문 ㉢ 부분을 ‘드여  어미가 되니라’로 언해하고 있으나 초간본과 중간본에서는 공히 ‘도혀(도로혀) 뉘으처 어엿비 너기더라’로 언해되어 있어 역시 차이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4. 중간본

『오륜행실도』의 초간본은 관례에 따라 중요한 기관과 중요한 신하를 비롯하여 한성의 오부(五部), 팔도의 감영, 사도(四都)인 수원부(水原府), 광주부(廣州府), 개성부(開城府), 강화부(江華府)의 유수부(留守府), 그리고 330주현(州縣)의 관리와 향교에 각각 한 질씩 배포되었다.
이처럼 초간본의 배포량이 많았기 때문에 『오륜행실도』는 초간본 이후 중간된 것이 없었다. 현전하는 중간본으로는 철종 10년(1859) 교서관에서 중간된 것이 유일하다. 이 간본도 저본(底本)들의 중간본과는 달리 거의 초간본을 복각(復刻)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간본을 복각본 정도로 간행하게 된 이유는 초간본의 판목(板木)이 화재로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김병학(金炳學)이 쓴 중간본(重刊本)의 서문 ‘오륜행실도 중간 서(重刊序)’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주009)
夜三更 火起於殯殿都監假家 延燒宣人門及東北所 部將廳 衛將所 鑄字所 大廳板堂 並六十二間(철종 실록 권9, 철종 8년 10월 15일조). 위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철종 8년(1859) 10월 빈전도감의 가건물에서 일어난 화재가 주자소에 옮겨 붙어 그 안에 있던 『오륜행실도』 초간본의 목판이 소실되었다.
(10) 是書舊有板本 前冬不戒于火 遂命內閣重刊而印頒之
이 책은 옛날에 판본이 있었으나 지난 겨울 불조심하지 않아 화재를 당했다. 이에 내각에 중간(重刊)의 명을 받아 인쇄하여 반포하게 하였다.
복각에 가까운 성격으로 인해 중간본의 내용은 초간본과 거의 차이가 없다. 서문 부분에 중간 서문 ‘오륜행실도 중간 서’가 더 들어가고 중간에 참여한 신하가 ‘교인제신(校印諸臣)’ 부분에 추가된 사실, 그리고 5권 4책으로 분책되었던 것이 5권 5책으로 나누어졌다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중간본 그림이 초간본에 비하여 다소 엉성하고 투박해진 경향도 보이지만, 이는 결국 복각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일 것이다.

5. 맺는말

『삼강행실도』가 간행된 이후 행실도류의 문헌은 유교(儒敎) 윤리를 구현할 수 있는 교화서(敎化書)로서 언제나 당시의 국가적 간행 사업의 주요 대상이 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행실도류는 한편으로는 중간(重刊)과 개간(改刊)을 거듭하면서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따라 새로운 행실도로 편찬되어 간행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행실도류만큼 조선 시대 전반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간행된 문헌도 드물다 할 것이다. 성종 12년(1481)에 간행된 『삼강행실도』를 시작으로 광해군 9년(1617)에 우리나라의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가 그 뒤를 잇는다는 사실은 행실도류가 지속적으로 간행되어 왔음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행실도류의 문헌 중에서 『오륜행실도』는 ‘종합판’의 성격을 갖는다. 이미 있었던 행실도를 합책하여 간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간행 이후 교화서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합판의 성격상 『오륜행실도』는 기존의 행실도류와의 관련성이 풍부하여 다른 어느 문헌보다도 역사적인 비교 연구의 대상으로서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오륜행실도』를 통하여 18세기 말의 언어 사실뿐만 아니라 음운사, 문법사, 어휘사 등 국어사 전반에 걸쳐서 당해 언어 사실이 변천하여 온 과정까지를 구체적으로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의역(意譯)에서 직역(直譯) 위주로 번역 양상이 달라지면서 언해 내용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곧 문체상의 변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장 구성, 즉 통사 구조의 차이도 상세하게 비교하여 연구할 수 있다. 물론 『오륜행실도』를 중심으로 비단 ‘국어사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다른 역사적 사실의 비교 연구 또한 가능할 것이다.
본 역주 연구는 『오륜행실도』의 언해 부분 외에도 그 수록 목록의 차이, 도판과 한문 원문 등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 전체를 포괄적으로 논의하였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작업이 국어사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으리라 본다. 아울러 국어사뿐만 아니라 미술사, 윤리사, 사회사 및 가치관이나 윤리관까지를 아우르는 인문학적 토대 구축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참고 논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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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참고 논저 목록은 『오륜행실도』 권4, 권5를 연구하는 데 있어 참고가 될 것임. 실제로 본 역주 연구에서는 일일이 그 전고를 밝히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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