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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문 026


本草石雄黃人佩鬼神不敢近

本草 주001)
본초(本草):
식물이나 동물 등을 이용하여 병을 고치는 방법을 기술한 의서. ‘본초’란 말은 넓게는 질병 치료를 위해 식물·동물·광물에서 얻는 천연 약물을 말하나, 약용으로 쓰이는 식물의 전초(全草)·뿌리[根]·나무[木]·껍질[皮]·과실(果實)·종자(種子) 등은 좁은 의미의 본초라고 한다. 책으로서의 ≪본초≫는 신농씨(神農氏)가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본초서는 중국의 후한(後漢)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사이에 성립된 것으로 본다. 양(梁)의 도홍경(陶弘景)이 6세기 초에 교정(校訂)하여 ≪신농본초경≫ 3권으로 하고, 다시 주를 가하여 ≪신농본초경집주≫ 7권을 저술하였는데, 후세의 본초서는 송(宋)의 ≪증류본초(證類本草)≫가 그 발전의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 이 책은 맨 앞에 10조로 된 총론이 있고, 이어서 365종의 약품을 상, 중, 하의 3품(品)으로 나누어 각각 기미(氣味)와 약효(藥效)와 이명(異名)을 서술한 간단한 약물서이다. 여기서 말하는 ≪본초(本草)≫는 이를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12] 참조).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은 명(明)나라의 노복(盧復), 청(淸)나라의 손성연(孫星衍) 등에 의하여 각각 재편된 의서. 명(明)의 이시진(李時珍)이 지었다는 ≪본초강목(本草綱目)≫도 있으나, ≪본초강목(本草綱目)≫은 시기상으로 보아 여기서 말하는 ≪본초≫에 포함되기 어렵다. ‘본초(本草)’라는 말을 가진 의서에는 송의 방안상(龐安常)이 지었다는 ≪본초보유(本草補遺)≫가 있고, 당나라 때는 진장기(陳藏器)가 지었다는 ≪본초습유(本草拾遺)≫, 견입언(甄立言)이 지었다는 ≪본초음의(本草音義)≫ 외에도 이적(李勣)의 ≪신수본초(新修本草)≫가 편찬되었는데, 처음으로 서역(西域)의 여러 가지 약종이 기재되었고, 동·식·광물의 그림이 실렸다고 한다. 송(宋)나라의 당신미(唐愼微)는 ≪경사증류비급본초(經史證類備急本草)≫를 출간, 그때까지의 본초서의 기재를 모두 답습한 뒤에 방류(傍流) 본초의 기사와 저자의 의견 등을 추가하는 형식을 취하였다고 한다. 명의 왕륜(王綸, 字 汝言)이 지었다는 ≪본초집요(本草集要)≫도 있다. 명(明)나라에 와서는 이시진(李時珍)에 의해 ≪본초강목(本草綱目)≫이 출판되어, 그 뒤에는 ≪본초강목≫을 기초로 한 약물학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고려 시대의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는 향약 180종류가 기재되어 개개 생약의 속명·약성·독성 여부 등을 상세히 논하였으며, 조선 초기의 본초서에는 우리나라 약재를 수록한 ≪향약집성방≫이 있으며, 이후 ≪동의보감≫, ≪제중신편≫, ≪사상의학≫ 등이 간행되었다.([11], [12], [34], [59]등 참조)
주002)
본초(本草)의:
≪본초(本草)≫+의(처격 조사). ≪본초≫란 책에.
石雄黃 주003)
석웅황(石雄黃):
웅황이라고도 하며, 삼류화비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광석. 산의 양지 쪽에서 캔 것은 웅황이고, 음지 쪽에서 캔 것은 자황(雌黃)이라 한다. 순수하고, 잡물질이 섞이지 않고, 그 빛이 붉고 투명한 것이 좋은 것이다. 성질이 평범하고 차다. 맛은 달고 쓰며, 독이 있다. 복통이나 개선, 부스럼, 뱀에 물렸을 때, 연주창, 코 안에 군살이 생긴 증세 등에 효과가 있으며, 나쁜 사기를 없앤다. 또 악창이나 큰 종기, 치질, 굳은 살, 버짐 등에도 쓴다. 힘줄이 끊어졌거나 뼈가 부서진 것을 낫게 하고, 해독 작용을 한다. 주로 외용약으로 사용하는데, 가루를 내서 환부에 뿌리거나 기초 약제에 개어서 바른다. 내복약으로는 가루를 내어 물에 풀어서 잡물을 제거한 후 말려서 달임약에 넣어 쓴다.([1], [3], [11], [24] 등 참조)
을 사미 면 주004)
면:
[佩]-+-면(연결 어미). (허리 또는 가슴에) 차면.
귀시니 븓디 몯니라
Ⓒ 언해 | 간경도감 / 1541년(중종 36) 월 일

≪본초(本草)≫에 석웅황(石雄黃)을 사람이 차면 귀신이 붙지 못한다고 하였다.
Ⓒ 역자 | 임홍빈 / 2000년 9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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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본초(本草):식물이나 동물 등을 이용하여 병을 고치는 방법을 기술한 의서. ‘본초’란 말은 넓게는 질병 치료를 위해 식물·동물·광물에서 얻는 천연 약물을 말하나, 약용으로 쓰이는 식물의 전초(全草)·뿌리[根]·나무[木]·껍질[皮]·과실(果實)·종자(種子) 등은 좁은 의미의 본초라고 한다. 책으로서의 ≪본초≫는 신농씨(神農氏)가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본초서는 중국의 후한(後漢)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사이에 성립된 것으로 본다. 양(梁)의 도홍경(陶弘景)이 6세기 초에 교정(校訂)하여 ≪신농본초경≫ 3권으로 하고, 다시 주를 가하여 ≪신농본초경집주≫ 7권을 저술하였는데, 후세의 본초서는 송(宋)의 ≪증류본초(證類本草)≫가 그 발전의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 이 책은 맨 앞에 10조로 된 총론이 있고, 이어서 365종의 약품을 상, 중, 하의 3품(品)으로 나누어 각각 기미(氣味)와 약효(藥效)와 이명(異名)을 서술한 간단한 약물서이다. 여기서 말하는 ≪본초(本草)≫는 이를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12] 참조).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은 명(明)나라의 노복(盧復), 청(淸)나라의 손성연(孫星衍) 등에 의하여 각각 재편된 의서. 명(明)의 이시진(李時珍)이 지었다는 ≪본초강목(本草綱目)≫도 있으나, ≪본초강목(本草綱目)≫은 시기상으로 보아 여기서 말하는 ≪본초≫에 포함되기 어렵다. ‘본초(本草)’라는 말을 가진 의서에는 송의 방안상(龐安常)이 지었다는 ≪본초보유(本草補遺)≫가 있고, 당나라 때는 진장기(陳藏器)가 지었다는 ≪본초습유(本草拾遺)≫, 견입언(甄立言)이 지었다는 ≪본초음의(本草音義)≫ 외에도 이적(李勣)의 ≪신수본초(新修本草)≫가 편찬되었는데, 처음으로 서역(西域)의 여러 가지 약종이 기재되었고, 동·식·광물의 그림이 실렸다고 한다. 송(宋)나라의 당신미(唐愼微)는 ≪경사증류비급본초(經史證類備急本草)≫를 출간, 그때까지의 본초서의 기재를 모두 답습한 뒤에 방류(傍流) 본초의 기사와 저자의 의견 등을 추가하는 형식을 취하였다고 한다. 명의 왕륜(王綸, 字 汝言)이 지었다는 ≪본초집요(本草集要)≫도 있다. 명(明)나라에 와서는 이시진(李時珍)에 의해 ≪본초강목(本草綱目)≫이 출판되어, 그 뒤에는 ≪본초강목≫을 기초로 한 약물학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고려 시대의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는 향약 180종류가 기재되어 개개 생약의 속명·약성·독성 여부 등을 상세히 논하였으며, 조선 초기의 본초서에는 우리나라 약재를 수록한 ≪향약집성방≫이 있으며, 이후 ≪동의보감≫, ≪제중신편≫, ≪사상의학≫ 등이 간행되었다.([11], [12], [34], [59]등 참조)
주002)
본초(本草)의:≪본초(本草)≫+의(처격 조사). ≪본초≫란 책에.
주003)
석웅황(石雄黃):웅황이라고도 하며, 삼류화비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광석. 산의 양지 쪽에서 캔 것은 웅황이고, 음지 쪽에서 캔 것은 자황(雌黃)이라 한다. 순수하고, 잡물질이 섞이지 않고, 그 빛이 붉고 투명한 것이 좋은 것이다. 성질이 평범하고 차다. 맛은 달고 쓰며, 독이 있다. 복통이나 개선, 부스럼, 뱀에 물렸을 때, 연주창, 코 안에 군살이 생긴 증세 등에 효과가 있으며, 나쁜 사기를 없앤다. 또 악창이나 큰 종기, 치질, 굳은 살, 버짐 등에도 쓴다. 힘줄이 끊어졌거나 뼈가 부서진 것을 낫게 하고, 해독 작용을 한다. 주로 외용약으로 사용하는데, 가루를 내서 환부에 뿌리거나 기초 약제에 개어서 바른다. 내복약으로는 가루를 내어 물에 풀어서 잡물을 제거한 후 말려서 달임약에 넣어 쓴다.([1], [3], [11], [24] 등 참조)
주004)
면:[佩]-+-면(연결 어미). (허리 또는 가슴에) 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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