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여래가 오직 한 제법(諸法) 실상(實相)의 지력(智力)이시니, 이 역(力)이 열 가지 용(用)이 있으시므로 이르되, ‘십(十)’이니 모아서 ‘역(力)’이라고 이름을 지어 부름은 능히 원수를 꺾으시는 까닭이며, 가히 항복시키시지 못하는 까닭이다. 하나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아심이니, 【옳은 것은 인과(因果)가 서로 맞음이니 살(殺) 등이 지옥에 떨어지고 계(戒) 등이 인천(人天)에 남과 같은 것이고, 그른 것은 위를 뒤집으니, 이르되, “살(殺) 등이 천(天)에 나고 계(戒)는 지옥에 떨어짐이니 만약 이와 같으면 옳은 것이 없으므로 ‘그르다’.”고 이르니라.】 이르되 일체 제법의 인연 과보를 다 아시어 인(因) 없는 것과 나쁜 인(因)을 항복시키시며, 사람의 가히 제도(濟度)함과 못함을 아심이고, 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선(善) 등 세 가지의 업(業)과 【삼성(三性) 심중(心中)에 삼성 업보를 서로 받음이니 논(論)에 이르되, “선심(善心) 중에 선(善)과 불선(不善)과 무기(無記)의 업보를 받고 불선심(不善心)과 무기심(無記心)에도 또 이와 같다.”고 하니라.】 순현(順現) 등의 세 가지의 보(報)를 아시며, 【순현(順現) 등은 보(報)가 더디며 빠름이 모두 셋이 있으니 이르되, ‘순현(順現)과 순생(順生)과 순후(順後)’이다. 현보(現報)는 선악(善惡)이 이 몸에서 비롯하여 곧 이 몸에서 받음이고, 생보(生報)는 내생(來生)에서 곧 받음이고, 후보(後報)는 때로 이생(二生)이나 삼생(三生)이나 무량생(無量生)에 이르러서야 받음이다.】 도(度)함이 장(障)이 있으며 장(障)이 없음을 아심이고, 셋은 여러 선(禪)과 해탈(解脫)과 삼매(三昧)의 더러움과 깨끗함을 아시며, 또 이를 의지하여 얻은 여러 과(果)를 아심이고, 넷은 신(信) 등 오근(五根)의 상(上)과 중(中)과 하(下)를 아심이고, 다섯은 가지가지의 즐김을 아시어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버리고, 깨끗한 것을 더하게 하심이고, 여섯은 일(一)과 삼(三)과 오(五)의 승(乘)과 탐(貪)과 진(瞋)과 치(癡)와 등분(等分)의 가지가지의 성(性)과 욕(欲)을 아시어, 【많은 중생(衆生)이 예전에 일승(一乘)의 근성(根性) 있는 이와 때로 삼승(三乘)의 출세간성(出世間性)과 때로 오승(五乘)의 세(世)와 출세(出世)의 종성(種性)과 탐(貪) 많으며, 진(瞋) 많으며, 치(癡) 많으며, 등분성(等分性)을 아시는 것이다. 성(性)은 종자(種子)이고, 욕(欲)은 현행(現行)이고, 등분(等分)은 삼독(三毒)의 분수(分數)가 고른 것이다.】 즉시(卽時)며 다른 시(時)며 누구가 가히 도(度)하며 능히 못함들을 아심이고, 【즉시에 가히 도(度)함과 다른 시절(時節)에 가히 도(度)함과 부처가 이 사람을 능(能)히 도(度)하심과 성문(聲聞)이 이 사람을 능히 도(度)함과 반드시 가히 도(度)함과 반드시 가히 도(度)하지 못함을 아심이다.】 일곱은 일체 도(道)의 이른[=다다른,到] 곳을 아심이고, 【일체 도는 선(善)과 악(惡)과 부동(不動)의 세 행(行)과 무루행(無漏行)이다. 이른 곳은 오도(五道)는 이 유루행(有漏行)이 이른 곳이고, 열반(涅槃)은 이 무루행(無漏行)이 이른 곳이다.】 여덟은 예전의 주(住)를 아심이고, 【예전의 주(住)는 과거(過去)의 본래의 생(生)과 본래의 일이니 예전의 세에 주(住)하므로 이름이 예전의 주(住)이다.】 아홉은 여기에 죽어서 저기에 남(=태어남)을 아심이니, 곧 천안지(天眼智)이시니 혼자 이 소의(所依)를 의지하여 이름을 얻은 것이다. 【이 역(力)이 천안(天眼)을 의지하여 발(發)하므로 이 지(智)의 이름이 천안지(天眼智)이다.】 열은 자기의 해탈이 의심이 없음을 아시고 또 중생의 누(漏)가 다한 열반을 아심이다. 그러나 불력(佛力)이 무량하시건마는 사람을 도(度)하시는 인연 까닭으로 오직 열을 이르셔도(=말씀하셔도) 족히 그 일을 이루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