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통지승불의 성도 [9] 십육 왕자의 현재의 모습 1
Ⓒ 구결 | 세조 / 1463년(세조 9) 월 일
〔요해〕
법화경언해 권3:155ㄴ
十六 王子ㅅ 成佛샨 일훔
자쵤 주003) 펴시니라 天地 位
야 주004) 道ㅣ 그 中에 녀거든 聖人이 法 바다 物을 열며
이 주005) 일워 天下ㅅ 道 두플 八方ㅅ 부톄 各各 方을 브트샤 德을 뵈시니 物
여르샤미며 주006) 일 일우샤미니
처믈 주007) 根源야 내을 求
컨댄 주008) 天下ㅅ 道
법화경언해 권3:156ㄱ
ㅣ 몯
두프니 주009) 업스샷다 주010) 東方 震이 動이오 歡喜도 動이며 阿閦은 動 업스샤미라 오미오 須彌頂은 動 업수 至極 니 經에 닐오
헐며 주011) 기류매 주012) 動티 아니샤미 須彌 시다 니 이 부톄
한 주013) 動 나 應샤 그 體ㅣ 動 업스시며 動國에 겨시니 動애 나가 靜을 뵈시니라 두 부톄 와 化샤 그 德이 서르
도실 주014) 도실: 도우시므로. -/도-[助]. ‘도-’는 (?) 방언표기.
비록 두 일후미시나 어루
어울워 주015) 사기리라 或이 닐오
八卦 주016) 8괘: 중국 상고 시대의 복희씨가 지었다는 여덟 가지 괘로 천지간의 변화를 나타내고 길흉을 판단하는 주역(周易) 점(占)의 기본.
中夏 주017) ㅅ
글워리어 주018) 竺敎 주019) 애
주020) 마초미 주021) 엇뎨 부텻 디시리오
李長者 주022) 이장자: 이통현(李通玄)(635~730) 당나라 사람으로 『신화엄론』 40권을 지음.
ㅣ 華嚴을 사기며
呂觀文 주023) 이 이 章
사겨 주024) 或이
외다 주025) 니 그듸 와 因호 엇뎨오 닐오 竺과 夏왜 天下
미라 주026) 주027) 그지법화경언해 권3:156ㄴ
의 주028) 미추미며 주029) 方位의 호미니 卦 天地 自然 理어니 오 디 아니려 伏羲
긋 주030) 그 사 뵈며 우리 부톄 象샤 法 셰시니 各各 그 호믈 미 得실 미라 이 經에 비록 八卦ㅅ 文이 업스시나 顯히 八方 象이 겨시니 이
비러 주031) 理
교매 주032) 엇뎨 올티 몯관 구틔여 墟에 걸여 외다 리오
【墟 뷜 씨니 莊子애 닐오 우믌 주033) 머구리려 주034) 바 주035) 니디 몯호 우믌 소뱃 주036) 虛空애 걸여실니라 주037) 고 사려 道 니디 몯호 쵸매 뭇겨 주038) 이실니라.】 通達 士ㅣ 아니라 녜 五百
應眞 주039) 이 各各 부텻 말
아와 주040) 묻오
뉘 주041) 부텻 데 當니고 야 부톄 니샤 다 내 아니라 야시 모다 오 부텻 데
법화경언해 권3:157ㄱ
當티 몯오면 아니 罪
어드리가 주042) 야 부톄 니샤 비록 내 아니나 各各 正理예 順야
어루 주043) 聖敎
외리니 주044) 福이 잇고 罪 업스리라 시니 내 오직 이 자바 或者
외다 주045) 호 當노라
Ⓒ 언해 | 간경도감 / 1463년(세조 9) 월 일
〔요해〕 16왕자의 성불하신 이름 자취를 펴신 것이다. 천지의 ‘위’를 베풀어 ‘도’가 그 가운데 돌아가거든 성인이 법 받아 만물을 열며 일을 이루어 천하의 도를 덮으니, 8방의 부처님이 각각 한 방향을 의지하여 한 덕을 보이시니 만물을 여심이며 일 이루심이니, 처음을 근원하여 나중을 구할진대, 천하의 도가 덮지 못하는 것이 없으시도다. ‘동방의 ‘진’이 움직임이고, 환희도 또 움직임이며 아촉은 움직임 없으심이라 사룀이고, 수미정은 또 움직임 없음에 지극한 곳이니 경에 이르되, ‘헐뜯으며 기림(=칭찬함)에 움직이지 아니하심이 수미와 같으시다.’ 하니 이것은 부처님께서 많은 움직임을 내어 응하시되 그 ‘체’가 움직임 없으시며 또 동국에 계시니 움직임에 나아가 조용함을 보이신 것이다. 두 부처님께서 나란히 교화하시되 그 덕이 서로 도우시므로 비록 두 이름이시나 능히 어울러 새길 것이다. 혹자가 이르되, “8괘는 중하의 문장이니 축교에 끌어 맞춤이 어찌 부처님의 뜻이리오? 이장자가 이로써 화엄경을 새기며 여관문이 이로써 이 장을 새기니 혹자가 그르다 하니 그대 또 밟아(=뒤 따라서) 인함은 어찌된 것인가?” 이르되 “인도와 중국이 한 천하일 따름이다. 땅 끝에 미침이며 방위의 같음이니, 괘는 천지 자연의 한 이치이거니 혼자 같지 아니하겠는가? 복희씨가 그림 그려 사람에게 보이며 우리 부처님을 본뜨시어 ‘법’ 세우신 것이니, 각각 그 같음을 잠잠히 얻으실 따름이다. 이 경에 비록 8괘의 문장이 없으시나 훤히 8방의 ‘상’이 있으시니, 일을 빌어 이치 밝히시니 어찌 옳지 못하기에 구태여 허에 걸려 그르다 하리오?【‘허’는 빈 것이니 장자에 이르되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바다를 말하지 못함은 우물 속의 허공에 걸렸기 때문이다. 굽은 사람에게 도를 이르지 못함은 가르침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통달한 선비가 아니다. 옛날 오백 나한이 각각 부처님의 말씀을 알고 묻되 “누가 부처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까?” 하니 부처님께서 이르시되, “다 내 뜻〈은〉 아니다.” 하시거늘, 모두 여쭈되, “부처님의 뜻에 맞지 못하면 장차 죄 얻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거늘, 부처님께서 이르시되, “비록 내 뜻은 아니나 각각 바른 이치에 따라 능히 성스러운 가르침이 될 것이니, 복은 있고 죄는 없을 것이다.” 하시니 내 오직 이를 잡아(=지켜) 혹자의 그르다 함을 당하노라.
Ⓒ 역자 | 김영배 / 2002년 5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