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정통 무오년 주060) 정통 무오: 정통 3년. 세종20년, 1438 A.D.
에 선대왕 세종께서 능엄경을 보시고,
기사년 주061) 기사세: 기사년. 세종31년, 1449 A.D.
에 번역하여 널리펴고자 하시어 나에게 명하시어 연구하라 하시거늘, 중간에
부·둔 주062) 이 이음으로 인해서
【‘부’와 ‘둔’은 다 주역 주063) 의 괘 주064) 괘: 천지간의 변화를 나타내고 길흉을 판단하는 주역의 기본.
이름이니, ‘부’는 통하지 못하는 것이고, ‘둔’은 어려운 것이다.】 총총한들 언제 〈선대왕의 명을〉 잊〈을 수 있〉겠는가?
【‘총총’은 몹시 바쁜 것이다.】 큰 운이 처음 열림에 미쳐서
【‘운’은 역수 주065) 역수: 일월과 추위·더위가 철따라 돌아가는 순서.
이니, 제왕 서로 이으시는 차례인 해와 때와 기운의 선후 같은 것이다.】 불법 닦음에 겨를이 없어
부촉 주066) 에 맞지 못함을 돌아보되, 또 힘이 적어 〈일을〉 〈받〉듦이 어렵더니,
희유 주067) 하신 부처님께서 유연한 유를 다 거두시므로, 사리 1백을 나타내시어
【신사년 주068) 5월 열사흗 날 효령대군 주069) 이 회암사 주070) 에서 불사를 하다가 석가의 분신사리 25매를 진상하거늘 상감이 중궁전 주071) 과 〈함께〉 놀라 기뻐하시어 우시고 정례하실 제 또 8매 분신하시고, 중궁전이 함원전에 모셔 두시거늘, 또 5매 분신하시고 효령대군이 또 절에 돌아가 11매를 더 얻어 진상하고 열이렛 날 효령대군이 절에 계시던 분신 사리 30매를 진상하거늘, 중궁전이 안에 계시어 펴 보시니, 또 6매 분신하시고 이튿날 상감이 중궁전과 친히 공양하시거늘 또 17매 분신하시니, 모두 102매이시니, 1백이라 이르신 것은 큰 수로 말하신 것이다.】 신령하신 광명이 세상에 비치시니, 기특하신 상서와 다르신 감응이 항사겁에는 없으시구나! 나의 동행
혜각존자 주072) 혜각존자: 신미. 세조 때 스님. 도행이 훌륭하여 세조가 스승으로 대우.
등이
【입선 학조 주073) 학조: 학열. 세조 때 스님. 혜각존자와 함께 간경도감의 여러 불경언해 간행에 참여함.
가 따라왔다.】 기별을 들으시고 와서 경하하시거늘, 공경하여 맞이하여 관저의 새 전각에 대접하여 아침 저녁에 서로 도우며 한훤하더니
【‘한훤’은 안부하는 것이다.】 아저씨
효령대군이 나에게
능엄경과
영가집 주074) 영가집: 당(唐)의 원각(圓覺)이 지은 선종영가집.
을 번역하기 바란다고 청하시니, 정히 내 뜻에 맞거늘, 선사께서 또 따라 기뻐하시므로 여기에
한계희 주075) 등에게 명하여
상고 주076) 를 돕게 하고, 내가 또 겨를을 얻어 힘을 더하되, 다 선사께서 바르게 하여 두어 달에 〈번역이〉 이루어지거늘
【상께서 토를 다시고 혜각존자께 〈보여〉 확인하시거늘, 정빈한씨 등이 창준 주077) 하거늘, 공조 참판 신 한계희, 전 상주 목사 주078) 신 김수온 주079) 은 번역하고, 의정부 검상 주080) 신 박건, 호군 주081) 신 윤필상, 세자 문학 주082) 신 노사신 주083) 노사신: 세조 때 호조 판서, 연산군 때 영의정을 지냄.
, 이조 좌랑 주084) 신 정효상 주085) 은 상고하고, 영순군 신 부 주086) 영순군 부: 세종의 제5왕자 광평대군의 아들.
는 예를 일정하고, 사섬시 윤 주087) 사섬시 윤: 지폐를 만들고 노비의 공포(貢布)를 맡아보던 관청의 우두머리.
신 조변안, 감찰 신 조지는 국운(동국정운 한자음)
을 쓰고, 혜각존자 신미, 입선 사지, 학열, 학조는 번역을 바르게 고친 후에 어람하시어 일정하시거늘, 전언 조씨 두 대는 어전에서 번역을 읽은 것이다.】 산림과 속인들에게 인쇄하여 주라고 명하니
【교서관 제조 하성위 신 정현조에게 명하시어 주자로 4백 벌을 박으라(=인쇄하라) 하시고, 특별히 종실에는 은천군 신 찬과 옥산군 주088) 신 제에게 명하시어 교서관에 사관 주089) 하여 〈일을〉 보고 인쇄하게 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오로지 선사의 넓은 자비스런 마음이시며, 남을 이롭게 하시는 덕이시니, 또 어떤 말로 다 사뢰리오? 원하는 것은, 내가 이 인연으로 〈하여〉 나의 현재한 권속과 항사겁에 여의지 아니고 선사께서 ‘도’ 이루신 날에 먼저
도탈 주090) 도탈: 생사의 바다를 건너, 미계(迷界)를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것.
을 입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