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행실도 5:24ㄴ
牽招斂殯
【三國 魏 주001) 삼국 위(三國魏): 삼국시대 위나라. 『오륜』의 ‘삼국 위(三國魏)’는 『이륜』에서는 ‘위(魏)’만임.
】오륜행실도 5:25ㄱ
牽招 觀津人 주002) 견초 관진인(牽招觀津人): 『오륜』의 ‘견초 관진인(牽招觀津人)’은 『이륜』에서는 ‘삼국위견초(三國魏牽招)’임.
年十餘歲 詣同縣樂隱 受學 後隱爲車騎將軍何苗長史 招隨卒業
値京都亂 苗隱見害 주003) 치경도난 묘은견해(値京都亂苗隱見害): 경도(京都)에 난리가 일어나 하묘와 악은이 해를 당하다. 『오륜』의 ‘경도(京都)’는 『이륜』에서는 ‘경사(京師)’임.
招與隱門生史路等 觸蹈鋒刃 共殯斂隱屍
送喪還歸 주004) 송상환귀(送喪還歸): 『오륜』의 ‘환귀(還歸)’는 『이륜』에서는 ‘귀환(歸還)’임.
道遇寇抄 주005) 도우구초(道遇寇抄): 『오륜』의 ‘초(抄)’는 『이륜』에서는 ‘초(鈔)’임.
路等皆悉散走 賊欲斫棺取釘 招垂淚請免 賊義之 乃釋而去 由此著名
當年
從學 주006) 종학(從學): 남을 좇아 그에게 배움.(『표준』)
在髫稚 遇亂師亡最可悲 冒刃斂屍還舊里 蒼皇終不負吾師
道逢頑寇亂千戈 주007) 도봉완구란천과(道逢頑寇亂千戈): 길에서 완강한 적을 만나 칼날이 어지러운데. 『오륜』의 ‘봉(逢)’은 『이륜』에서는 ‘방(逄)’임.
史路先奔獨奈何 一村丹誠終感賊 斫棺凶禍不能加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견쵸 위나라 관진 사이니 나히 십여 셰에
오륜행실도 5:25ㄴ
고을 잇 악은의게 가 호더니 후에 악은이 쟝군 하묘의 막해 되여 가거 견 조 가
내 주008) 내: 끝까지. 원문의 ‘졸업(卒業)’에서 ‘졸(卒)’을 언해한 것으로, “끝까지”에 가까운 의미로 쓰였다. 『오륜』에서 ‘내’는 대부분 (현대어의 ‘마침내’와 마찬가지로) “결국”의 의미로 쓰이지만, 이 예와 같이 “끝까지”를 뜻하는 용례도 간혹 발견된다. ¶효뷔 싀어미 봉양기 게얼니 아니여 내 가 이 업니〈1:7ㄱ〉. 내 만일 도라 가면 내 그로 혼자 예 잇게 아니리라〈5:7ㄴ〉. 『이륜』류에서는 현대어 ‘마저’의 소급형에 해당하는 ‘’로 번역하여 “끝까지”의 의미를 보다 뚜렷이 살렸다.
호더니 경셩에 난이 니러나 하묘와 악은이 다 죽거 견 악은의 뎨 로 등으로 더브러 칼날을
무롭고 주009) 무롭고: 무릅쓰고. 이 예의 어간 ‘무롭-’는 중세어의 ‘무루-’에 소급할 어형으로, ‘무루-’는 (“몽(蒙)”, “모(冒)”를 뜻하는) ‘*무룹-’(중세 문헌에서는 ‘무롭-’만이 문증된다.)과 (“재(載)”를 뜻하는) ‘스-’가 결합한 비통사적 복합 동사에 해당한다. 『오륜』 이전(의 중세어나 근대어)에는 ‘*무룹/무롭-’ 자체만으로도 ‘무루-’가 표현하는 “몽(蒙; 덮어쓰다)”과 “모(冒; 무릅쓰다)”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표현할 수 있었다. ¶니블 무롭고 누어셔[蒙被而臥]〈소학언해 6:57ㄱ〉. ; 바 무롭고 자 가니[冒夜尋之]〈동신속(1617) 열3:21ㄴ〉. 『오륜』의 ‘무롭-’에도 이 두 가지 의미가 모두 확인되는데(“몽(蒙)”의, ‘니불을 무롭고 누어셔’〈3:21ㄴ〉), 여기서는 후자(“모(冒)”)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이곳의 ‘무롭-’를 이은) 현대어의 ‘무릅쓰-’는 후자 “모”의 의미로만 쓰일 뿐 전자 “몽”의 의미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드러가 악은의 죽엄을 념습고 발인여 도라 오다가 도적을 만나 다른 뎨들이 다 라나니 도적이 관을 쳐 모슬
히려 주010) 히려: 빼려. 이곳의 ‘히-’는 『오륜』의 다른 곳에 ‘히-’로 나타나기도 한다. ¶두 눈을 히고[矐其兩眸]〈3:63ㄱ〉. ‘히-’(내지 ‘히-’)는 중세어의 ‘-’(내지 ‘-’)에 소급할 어형으로, ‘-’는 ‘*/[選, 拔]-’와 ‘[引]-’가 결합한 비통사적 복합 동사이다. 중세어에서 ‘-+-어’는 ‘’로 나타나다가 ‘ㆅ〉ㅎ’의 변화 이후 ‘혀’로 나타나는데, 이곳의 ‘히-’는 ‘혀’(『오륜』에서는 ‘혀’〈1:17ㄱ〉로 등장)를 ‘히-+-어’로 오분석한 결과 새로운 어간 ‘히-’가 생성된 것이다.
거 울고 말린 도적이
착히 주011) 착히: 의롭게. ‘착-+-이(부사화 접미사)’로 분석될 어형으로, 『이륜(초)』에는 ‘어딜리’, 『이륜(중․영)』에는 ‘어디리’로 번역되었다. 형용사 어간 ‘착-’는 중세어에는 보이지 않다가 18세기 문헌에 와서야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주로 원문의 ‘선(善)’에 대응되어 쓰이면서 “선하다, 어질다”, “좋다”, “의롭다” 등 여러 의미로 쓰였다. ¶善 착히 너길 션〈주해천자문(중간본 1752) 10ㄴ〉. ; 공은 착 일이오 과 사오나온 일〈경신록언석(1796) 13ㄴ주〉. 이 예에서는 원문의 (‘의지(義之)’에서) ‘의(義)’를 언해한 데서 보듯이 “의롭다”의 의미로 쓰였는데, 현대어의 ‘착하-’에는 더 이상 이 같은 의미가 확인되지 않는다.
너겨 노코 가니 일로 말암아 일홈이 나타나니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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