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4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4권
  • 오륜행실 형제도
  • 오륜행실형제도(五倫行實兄弟圖)
  • 광진반적(光進反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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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반적(光進反積)


오륜행실도 4:30ㄱ

光進反積 주001)
광진반적(光進反積):
『오륜』의 ‘반(反)’은 『이륜』에는 ‘반(返)’임.
【唐】

오륜행실도 4:30ㄴ

李光進 鷄田人 주002)
계전인(鷄田人):
『오륜』의 ‘계전인(鷄田人)’은 『이륜』에는 없음.
事親有至性 母歿 居喪三年 不歸寢 弟光顔先娶而 母季以家事 及光進娶 母已亡 弟婦 籍貲貯納管鑰於姒 주003)
제부적자저납관약어사(弟婦籍貲貯納管鑰於姒):
제부(이광안의 처)가 재산 문서와 자물쇠를 모두 동서(이광진의 처)에게 주다. 『오륜』의 ‘자(貲)’는 『이륜』에는 ‘자(滋)’임. 또 『오륜』의 ‘저(貯)’는 『이륜』에는 ‘축(畜)’임.
光進命反之曰 婦逮事 姑且嘗命主家事 주004)
고차상명주가사(姑且嘗命主家事):
시어미가 일찍이 가사를 맡기셨으니. 『오륜』의 ‘주(主)’는 『이륜』에는 ‘장(掌)’임.
不可改 因上持泣 乃如初
當年新婦拜姑前 主饋辛勤久且專 今日母亡那忍改 泣還家籍故依然
萬古天倫終不泯 乖離只在利錙銖 欲知兄弟相安處 須看斯門反籍圖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니광진은 당나라 계젼 사이니 어버이 셤기믈 지효로 더니 어미 죽으매 거상 삼 년에 침실의

오륜행실도 4:31ㄱ

도라 가디 아니더라 아 광안이 몬져 댱가 드니 어미 가 다 맛졋더니 주005)
밋:
및. 중세어 이래 어간 ‘ 및[及]-’에서 파생된 어간형 부사 ‘ 및’(표기상으로는 ‘믿’ 또는 ‘밋’)은 대등한 관계의 두 구(句)나 절(節) 사이에 위치하여 “그리고, 그 밖에”를 뜻하는 접속 부사로 쓰였다(현대어에서 ‘NP 및 NP’의 명사구 구성에 참여하는 ‘ 및’은 바로 이 접속 부사의 용법을 계승한 것이다). ¶도적이 그 지아비과 밋 그 아을 주기고〈동신속(1617) 열6:73ㄴ〉. 믈읫 吊며 밋 喪을 보내 者〈가례언해(1632) 7:8ㄱ〉. 그러나 이곳에 쓰인 ‘밋’은 부사로 쓰였다고 할 수밖에는 없지만 선행절과 후행절이 전혀 대등한 관계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위의 접속 부사 ‘및’과는 그 기능이 다르다. 이곳의 ‘밋’은 원문의 ‘반광진취(反光進娶)’를 축자역하면서 ‘급(及)’이 이미 ‘-ㄹ 제’(‘광진이 댱가 들 제’)로, 번역에 반영되었음에도 원문의 어순에 따라 ‘급(及)’을 중복 번역한 결과라 할 수밖에 없다. 『오륜』의 다른 곳에도 이 같은 성격의 ‘밋’이 보이는데, 이들은 당시의 언어 질서를 반영한 것이라기보다 지나친 축자역에 따른 한문 원문의 간섭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고조 의듕이 효으로 일홈 잇더니 밋 죽으매 향니 사이 효 셰워 졔더라〈오륜 4:40ㄱ〉.
광진이 댱가 들 제 어미 이믜 죽어시니 광안의 쳬 산 문셔와 자믈쇠 주006)
자믈쇠:
자물쇠를. 이곳의 ‘자믈쇠’에 대하여 『이륜』류에는 ‘쇠’로 나타난다. 이것은 어중 /ㅁ/이 중철 표기되었을 뿐 15세기 문헌에 등장하는 ‘쇠’와 동일하다. 『오륜』의 ‘자믈쇠’는 어두 음절에서 ‘ㆍ’와 ‘ㅏ’가 혼동된 현실을 반영하여 ‘’가 ‘자’로 표기된 것이다.
다 광진의 쳐 주니 광진이 봉여 도로 주고 오 졔쉬 일즉 모친을 셤기고 가 맛져 겨시니 주007)
맛져 겨시니:
맡기셨으니. 이곳의 ‘맛져 겨시-’는 ‘맛지[任]-’에 ‘-어 겨시-’가 통합된 동사구로 시제상 “과거”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중세어에서 ‘-어 겨시-’는 “완료·지속”을 표시하는 ‘-어 이시/잇-’과 경어적 대립을 이룬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어 이시/잇-’은 문법화 과정을 밟으면서 ‘-어 이시/잇-〉-에시/엣-〉-어시/엇-’의 형태 변화를 겪어, 『오륜』에서는 이미 ‘-어시/엇-’이 “과거” 시제를 담당하는 새로운 형태소로 정착된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어 겨시-’는 상응한 형태 변화를 겪지 않아, 『오륜』에서는 “과거” 표시와 관련하여 더 이상 ‘이시/잇-’과 그것의 어휘적 경어 ‘겨시-’에 기초한 대립은 확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어 겨시-’를 대신하여 현대어와 같이 ‘-시었-’이 등장하는 것은 ‘-어시/엇-〉-었-’의 변화가 완료된 19세기 말에 와서이다.
고치디 못리라 고 인야 형뎨 붓들고 우러 어미 이실 와 치 더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17. 광진반적(光進反積)【당나라】 - 이광진이 재산 문서를 돌려주다
이광진(李光進)은 당(唐)나라 계전(鷄田) 사람이다. 어버이 섬기는 것을 지효(至孝)로 하였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 삼 년을 거상(居喪)하는 동안에 침실(寢室)에 돌아가지 아니하였다. 아우 이광안(李光顔)이 먼저 장가(杖家)를 드니 어머니가 〈이광안의 처에게〉 가사(家事)를 모두 맡겼다. 이광진이 장가들 때에 이르러는 어머니가 이미 죽었다(죽고 계시지 않았다). 〈이에〉 이광안의 처가 재산 문서와 자물쇠를 모두 이광진의 처에게 주었다. 〈그러자〉 이광진이 〈그것들을〉 봉(封)하여 〈이광안의 처에게〉 다시 주고(돌려주고) 말하기를, “제수(弟嫂)가 일찍이 모친을 섬기고, 〈모친이 제수에게〉 가사를 맡기셨으니 바꾸지 못하겠다.” 하고, 이어 형제가 붙들고 울면서 〈애초〉)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같이 하였다.
그 해 새 며느리 시어미 앞에 절 올리고
어려운 집안일을 맡아 오래도록 전념하여.
오늘의 어미를 잃었으나 어찌 차마 고치랴
울며 집문서 돌려주어 전처럼 의연히 지내.
만고의 천륜이란 끝까지 멸망하지 않는 것
서로 갈라짐은 다만 이익을 저울질함에 있어.
형제간에 서로 평안하게 지낼 것 알고자 하면
모름지기 이 가문의 문서를 돌려주기를 보라.
Ⓒ 역자 | 이광호 / 2016년 11월 일

〈이륜행실언해문〉
니진니 어버 잘 셤기더니 어미 죽거 거여 삼 년을 자리예 아니 가더라 아 안니 몬져 겨집 어러 어미 집븻 이를 맛디니 후에 진니 어미 주근 후에 겨집 어더 안늬 겨집비 셰간 브틴 글월와 의 쇠 열쇠 형의 겨집븨게 보낸대 진니 도로 보내오 닐우듸 아미 미처 싀엄밀 셤기오  여 집븨 이를 말라 시니 고티디 몯리라 고 서르 잡고 우러 처 로 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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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광진반적(光進反積):『오륜』의 ‘반(反)’은 『이륜』에는 ‘반(返)’임.
주002)
계전인(鷄田人):『오륜』의 ‘계전인(鷄田人)’은 『이륜』에는 없음.
주003)
제부적자저납관약어사(弟婦籍貲貯納管鑰於姒):제부(이광안의 처)가 재산 문서와 자물쇠를 모두 동서(이광진의 처)에게 주다. 『오륜』의 ‘자(貲)’는 『이륜』에는 ‘자(滋)’임. 또 『오륜』의 ‘저(貯)’는 『이륜』에는 ‘축(畜)’임.
주004)
고차상명주가사(姑且嘗命主家事):시어미가 일찍이 가사를 맡기셨으니. 『오륜』의 ‘주(主)’는 『이륜』에는 ‘장(掌)’임.
주005)
밋:및. 중세어 이래 어간 ‘ 및[及]-’에서 파생된 어간형 부사 ‘ 및’(표기상으로는 ‘믿’ 또는 ‘밋’)은 대등한 관계의 두 구(句)나 절(節) 사이에 위치하여 “그리고, 그 밖에”를 뜻하는 접속 부사로 쓰였다(현대어에서 ‘NP 및 NP’의 명사구 구성에 참여하는 ‘ 및’은 바로 이 접속 부사의 용법을 계승한 것이다). ¶도적이 그 지아비과 밋 그 아을 주기고〈동신속(1617) 열6:73ㄴ〉. 믈읫 吊며 밋 喪을 보내 者〈가례언해(1632) 7:8ㄱ〉. 그러나 이곳에 쓰인 ‘밋’은 부사로 쓰였다고 할 수밖에는 없지만 선행절과 후행절이 전혀 대등한 관계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위의 접속 부사 ‘및’과는 그 기능이 다르다. 이곳의 ‘밋’은 원문의 ‘반광진취(反光進娶)’를 축자역하면서 ‘급(及)’이 이미 ‘-ㄹ 제’(‘광진이 댱가 들 제’)로, 번역에 반영되었음에도 원문의 어순에 따라 ‘급(及)’을 중복 번역한 결과라 할 수밖에 없다. 『오륜』의 다른 곳에도 이 같은 성격의 ‘밋’이 보이는데, 이들은 당시의 언어 질서를 반영한 것이라기보다 지나친 축자역에 따른 한문 원문의 간섭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고조 의듕이 효으로 일홈 잇더니 밋 죽으매 향니 사이 효 셰워 졔더라〈오륜 4:40ㄱ〉.
주006)
자믈쇠:자물쇠를. 이곳의 ‘자믈쇠’에 대하여 『이륜』류에는 ‘쇠’로 나타난다. 이것은 어중 /ㅁ/이 중철 표기되었을 뿐 15세기 문헌에 등장하는 ‘쇠’와 동일하다. 『오륜』의 ‘자믈쇠’는 어두 음절에서 ‘ㆍ’와 ‘ㅏ’가 혼동된 현실을 반영하여 ‘’가 ‘자’로 표기된 것이다.
주007)
맛져 겨시니:맡기셨으니. 이곳의 ‘맛져 겨시-’는 ‘맛지[任]-’에 ‘-어 겨시-’가 통합된 동사구로 시제상 “과거”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중세어에서 ‘-어 겨시-’는 “완료·지속”을 표시하는 ‘-어 이시/잇-’과 경어적 대립을 이룬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어 이시/잇-’은 문법화 과정을 밟으면서 ‘-어 이시/잇-〉-에시/엣-〉-어시/엇-’의 형태 변화를 겪어, 『오륜』에서는 이미 ‘-어시/엇-’이 “과거” 시제를 담당하는 새로운 형태소로 정착된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어 겨시-’는 상응한 형태 변화를 겪지 않아, 『오륜』에서는 “과거” 표시와 관련하여 더 이상 ‘이시/잇-’과 그것의 어휘적 경어 ‘겨시-’에 기초한 대립은 확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어 겨시-’를 대신하여 현대어와 같이 ‘-시었-’이 등장하는 것은 ‘-어시/엇-〉-었-’의 변화가 완료된 19세기 말에 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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