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행실도 3:64ㄴ
崔氏 주001) 최씨(崔氏): 정만(鄭滿)의 아내. 도염서승(都染署丞)이었던 최인우의 딸로 4남매를 두었음. 왜구에 항거하다가 죽었는데, 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함. 그리고 아들 정습(鄭習)에게 세금, 부역을 덜어 줌. 〈진양지(晉陽誌)〉 권3의 ‘열녀조(烈女條)’에 기록되어 전한다.
靈巖 주002) 士人仁祐女也 適晉州戶長
鄭滿 주003) 生子女四人 其季在襁褓
洪武己未 주004) 倭賊寇晉
闔境 주005) 奔竄 時 滿因事如京 賊攔入里閭 崔年方三十餘 且有姿色 抱携諸子走避山中 賊四出驅掠 遇崔露刃以脅 崔抱樹而拒 奮罵曰 死等爾 與其汚賊而生 寧死義 罵不絶口 賊遂害之 斃於樹下 賊擄二子以去 第三兒習 甫六歲 啼號屍側 襁褓兒猶匍匐就乳 血淋漓入口 尋亦斃焉 後十年己巳
都觀察使 주006) 도관찰사(都觀察使): 지방의 행정장관으로 모든 도정을 관장함.
張夏 주007) 장하(張夏): 생애가 불명함. 본관은 결성(結城)으로 장용문(張用文)의 아들. 1383년 한양부윤으로 왜구를 공략하는가 하면 왜구 간첩 3명을 체포하는 등 공을 세움. 1388년 경상도 관찰척출사(慶尙道觀察陟黜使)로 나라의 장계를 올려 정문을 세우고, 최씨의 아들 정습에게 세금, 부역을 덜어줌.
以聞 乃命旌門
蠲 주008) 習吏役
良人上計赴王京 倭寇搶攘陷邑城 汚賊幸生
오륜행실도 3:65ㄱ
寧死義 中心取舍已分明
賊勢縱橫闔郡驚 携兒被擄若爲情 可憐抱樹捐生處 風響依稀罵賊聲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최시난 고려 적 녕암 션 인우의 이니 주009) 최시난 고려 적 녕암 션 인우의 이니: 최씨는 고려 때 영암 선비 최인우의 딸이니.
딘쥬 호댱 뎡만의 쳬 되여 네 녀 나코 사더니
왜적이 딘쥬 티니 주010) 왜적이 딘쥬 티니: 왜적(倭賊)이 진주(晉州)를 치니. 원문 ‘其季在襁褓 洪武己未 倭賊寇晉’(그 막내가 강보(襁褓)에 싸여 있을 때 왜적이 진주에 쳐들어가 약탈하니)를 축약한 것이다. 『삼강행실도』에서는 ‘이 기세 잇더니’(막내가 강보 깃에 있었는데)라고 풀이하였다.
고을 사이 다 라나디라 뎡만은 셔울 가고 도적이 녀염에 드러오니 최시 나히 졈고 이 잇더니 여러 식을 리고
산듕에 피란엿다가 주011) 산듕에 피란엿다가: 산중(山中)에 피란(避亂)하였다가. 산속으로 난리를 피하여 숨었다가.
도적을 만나 칼로 저히고 주012) 도적을 만나 칼로 저히고: 도적을 만났는데 〈도적이〉 칼로 위협하면서. 『오륜행실도』의 ‘저히다’와 『삼강행실도』의 ‘저린대(저리다)’는 ‘협박하다’의 이형태로서 통용되었다.
겁박려 니 최시
나모 안고 주013) 나모 안고: 나무를 안고. ‘나모’와 ‘’는 ‘나무[木]’의 이형태로서 통용되었다.
지저 오 도적의
오륜행실도 3:65ㄴ
게 더러이고 사니 하리 죽으리라 고 짓기 그치디 아니대 도적이 드여 나모 아래셔 죽이고 두 식을 잡아가니
셋재아 습은 나히 계요 뉵셰라 주014) 셋재아 습은 나히 계요 뉵셰라: 셋째 아들 정습(鄭習)은 나이 겨우 육세(六歲)라서. ‘셋재’는 ‘세 차히〉세찻〉셋재/세째〉셋째’로 변하였다.
죽엄 겻셔 울고 강보에 아 오히려 긔여가 졋을 라 먹으니 피 흘러 입으로 드디라 그 아 즉시 죽으니라 그 후 십년만에
감 댱해 나라 장계여 졍문고 주015) 감 댱해 나라 장계여 졍문고: 감사(監司) 장하(張夏)가 나라에 장계(狀啓)하여 정문(旌門)하고. 도관찰사 장하가 임금께 아뢰어 정문을 세워 주도록 하고.
습의 구실을 더러 주니라 주016) 습의 구실을 더러 주니라: 정습(鄭習)의 구실을 덜어주었다. 구실은 세금이나 관아의 임무를 말한다. 원문 ‘이역(吏役)’의 풀이로서, 이역은 일정한 신분 계층의 사람들에게 세습적으로 부과되는 임무를 말한다.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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