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행실도 3:59ㄱ
甯女貞節 주001) 영녀정절(甯女貞節): 영씨의 딸이 정절을 지키다. 『고금열녀전(古今列女傳)』 제13권에 나오는데, 그 책에서는 ‘영정절녀(甯貞節女)’라고 하였다.
【皇明 주002) 황명(皇明): 명(明)나라를 높여 부른 것. 명(1368~1644)은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롭게 세운 통일왕조. 주원장은 국호를 명(明)이라고 하고, 연호를 홍무(洪武)라고 하였으며, 황제로 등극 태조가 되었다. 그러나 내부의 부패, 몽골족, 왜구의 침략으로 혼란을 겪었으며, 한편 청나라가 압박을 가하였다. 결국 1643년 이자성(李自成)의 난이 일어나 16대 277년 만에 명은 멸망하였다.
】오륜행실도 3:59ㄴ
寗氏女 許嫁劉眞兒 未嫁而眞兒死 寗氏年十六 聞訃哭甚哀 旣而謂父母曰 古云烈女
不更二夫 주003) 불경이부(不更二夫):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에서 인용한 것으로, 두 지아비를 섬길 수 없다는 뜻임.
吾雖未與之醮 然
嫫妁聘幣 주004) 매작빙폐(媒妁聘幣): 혼인을 하기 위한 필수적인 절차로 중매(仲媒)와 폐백(幣帛)을 드리는 일.
父母之命 皆已定矣 今不幸而死 其父母老無所依 吾豈忍背之 操他人家箕箒耶 遂請往夫家侍養舅姑 父母初未之許 寗請益堅 卒許之 寗至其家 哭臨葬祭無違禮 執婦道甚恭 織絍以供甘旨 如是者凡五十二年 事聞 詔旌表其門曰貞節
已成媒聘有
歸期 주005) 不幸夫亡未醮時 何忍背之辭甚切 始終喪祭禮無虧
五十餘年奉舅姑 平
오륜행실도 3:60ㄱ
生志節竟無渝 盛朝旌表褒嘉至 千載貞名孰與俱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녕시 황명 사이니
뉴진와 혼인을 뎡엿더니 주006) 뉴진와 혼인을 뎡엿더니: 유진아(劉眞兒)와 혼인을 정하였다. 정혼(定婚)을 한 상태니 아직 혼례를 치르지는 않은 관계라는 말이다.
진 죽으니 이에 녕시 나히 십뉵셰라 주007) 진 죽으니 이에 녕시 나히 십뉵셰라: 진아가 죽으니 이때 영씨 딸 나이가 16세였다. ㅎ종성체언 ‘나ㅎ’이 아직 ㅎ을 표기하고 있다.
부음을 듯고 주008) 슬피 우다가 부모의게 고여 오 녯말에 닐오
녈녀 두 지아비 셤기디 아닛다 니 주009) 녈녀 두 지아비 셤기디 아닛다 니: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 하니.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라는 말은 우리 고전 춘향전에도 나오는 말로서,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과 함께 회자되는 말이다. 고려 때 간행된 『명심보감』 정기편(正己篇)에는 ‘제(齊)나라 충신 왕촉(王燭)의 말’이라고 전한다. ‘아닛다’의 15세기가 ‘아니다’였으므로, 18세기의 표기 ‘아닛다’를 볼 때 ‘아니다’가 ‘아닣다’를 거쳐 ‘아닛다/아닌다’로 변천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다’의 ‘-ㄴ다’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나 사실을 서술하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인데, 이전에는 『삼강행실도』의 표기 ‘아니다’처럼 나타나지 않던 문법 요소이다.
내 비록 뉴가로 더브러 쵸례 아니여시나 주010) 내 비록 뉴가로 더브러 쵸례 아니여시나: 내 비록 유가(劉家)와 더불어 초례(醮禮)를 치르지 아니하였으나. 『삼강행실도』의 풀이 ‘ 독자 아니 바다도’(한 곳에서 독좌상(獨坐床) 아니 받았어도)에서 ‘바다도’를 보면 ‘여시나’의 ‘-였-’과 같이 과거시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처럼 15세기 때 없던 과거시제 표기가 18세기에 나타나고 있는 것을 『오륜행실도』 전반에서 볼 수 있다.
듕 고 폐을 바다시니 부모의 명이 이믜 뎡엿디라 이제 블여 죽고 그 늙은 부뫼 의탁 업니 내 엇디 마 리
오륜행실도 3:60ㄴ
고 다 사의게 가리오 쳥컨대 뉴가에 가
싀부모 봉양여디이다 주011) 싀부모 봉양여디이다: 시부모를 봉양(奉養)하겠습니다. 『삼강행실도』에서는 ‘구고(舅姑)’를 ‘시어버’라고 하여 우리말을 썼다.
대 부뫼 처음은 듯디 아니터니 녕시 더옥 쳥거 내 허락니 녕시 뉴가에 가셔
지아븨 빈소에 울고 주012) 지아븨 빈소에 울고: 지아비의 빈소(殯所)에서 울고. 빈소를 차리고 빈소에서 곡하는 것을 빈례(殯禮)라 한다.
장와 졔 녜로 고 주013) 장와 졔 녜로 고: 장사(葬事)와 제사(祭祀)를 예도(禮度)에 맞게 하고. 장례(葬禮)와 제례(祭禮)를 말하는데, 빈례와 장례, 제례는 가례(家禮) 가운데 매우 중시하는 예도이다.
며리 도리 극진히 여
질삼여 감지【부모긔 드리 음식이라】 밧드러 주014) 질삼여 감지 밧드러: 길쌈하여 감지(甘旨)를 받들어. ‘질삼’은 베로 옷을 짜는 일을 말하며, ‘감지’는 부모께 드리는 음식이라고 하였다.
이러 기 오십이년이라 그 문에 졍표야 오 뎡졀이라 다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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