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3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3권
  • 오륜행실 열녀도
  • 오륜행실열녀도(五倫行實烈女圖)
  • 명수구관(明秀具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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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구관(明秀具棺)


오륜행실도 3:46ㄴ

明秀具棺 주001)
금(金):
완안부(完顔部)의 추장 아골타(阿骨打)가 세운 나라. 원래 거란족의 요(遼)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세력이 커지자 아골타는 요를 배반하고 제위에 올라 국호를 금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건국한 금은 제9대 애종(哀宗) 때에 몽골, 남송연합군에 의하여 120년만에 멸망하였다. 그러므로 금나라 황제의 성을 ‘완안’이라 하였다.

오륜행실도 3:47ㄱ

蒲察 주002)
포찰(蒲察):
복성(複姓)인데, 한(漢)의 성으로 이(李)씨임. 이 이야기는 『금사(金史)』에 ‘포찰씨(蒲察氏)’라는 제목으로 나오는 것이다. 세종 때의 『삼강행실열녀도』 110편 가운데 49편 정도가, 성종 때의 언해본 『삼강행실열녀도』 35편 중에는 19편이 『고열녀전』과 『고금열녀전』에서 인용하고 있으나 ‘포찰’ 이야기 등 대다수 이야기가 중국 정사 책에서 직접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요, 금, 원의 역사지도〉

氏 字明秀 完顔長樂 주003)
완안장락(完顔長樂):
본문에 의하면 금나라 애종(哀宗)의 호종(호의 무사)이었다 함. 『이십오사(二十五史)』의 색인을 찾아보면, 금나라 제5대 황제(재위1161~1189) 세종 완안옹(完顔雍, 1123~1189)의 둘째 후비인 광헌황후(光獻皇后) 이씨(李氏)의 소생 택국공주(澤國公主)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애종의 무사(남자)이니, 이와는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완안’은 금나라 황제의 성이니 황실 황족 사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之妻也 哀宗遷歸德 주004)
귀덕(歸德):
금나라 때 지금의 산동성 장청현(長淸縣)에 ‘귀덕진(歸德鎭)’을 설치함.
以長樂爲總領 將兵扈從 주005)
호종(扈從):
임금의 수레를 호송하며 따르는 군사.
長樂一子在幼 出妻柴氏所生也 明秀撫育如已出 崔立 주006)
최립(崔立):
금나라 장릉(將陵) 사람으로 애종이 동으로 도망하자 최립을 서부 원수로 삼아 그들을 공격하여 왕후와 임금을 포로로 잡고, 많은 인민을 학살할 뿐만 아니라, 노략질함으로 사회가 극도로 불안함.
之變 驅從官妻子 人自閱之 蒲察聞之 以幼子付婢僕 且與之金幣 親具衣棺祭物 與家人訣曰 崔立不道 强人妻女 兵在城下 吾何所逃 惟一死不負吾夫耳 汝等惟善養幼子 遂自縊而死 欣然若不以死爲難者 年二十七
良人扈從返無期 義子零丁 주007)
영정(零丁):
외롭고 의지할 곳이 없다는 뜻.
幼且癡 撫育眞能如已出 生平母道儘無虧
逃難全身計已窮 幼兒金幣付家僮 自治喪具從容死 千載爭欽烈婦

오륜행실도 3:47ㄴ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포찰시의  명니 금나라 완안쟝낙의 안라 주008)
포찰시의  명니 금나라 완안 쟝낙의 안라:
포찰씨(蒲察氏)의 자(字)는 명수(明秀)이니 금(金)나라 완안장락(完顔長樂)의 아내다. 『흠정속통지(欽定續通志卷)』 592권 「열녀전(列女傳)」에서는 완안장락의 처를 ‘부찰씨(富察氏)’라고 하여 조금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完顔長樂妻富察氏字明秀哀宗遷歸徳以長樂為總領將兵扈從將行富察氏曰君第致身事上無以妾為念妾必不辱長樂一子尚幼出妻柴氏生明秀撫育如已出崔立之變富察以幼子付婢僕與家人訣曰崔立不道强人妻女兵在城下吾何所逃惟一死不負吾夫耳汝等惟善養幼子遂自縊死’.
쟝낙이 님군을 조차 나가고 주009)
쟝낙이 님군을 조차 나가고:
완안장락이 임금을 호위하며 나가고. 원문의 ‘哀宗遷歸德’ 부분을 생략한 해석이다. 『삼강행실도』에서는 ‘哀宗이 歸德에 올마가 저긔(애종이 귀덕으로 옮겨 가실 적에)’라고 언해하고 있다. 1233년 몽골 제국이 금나라의 수도 카이펑을 함락하자, 금나라 애종(哀宗)은 동남쪽의 귀덕으로 도주한다. 1234년 제9대 애종은 몽골, 남송 연합군의 추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귀덕에 갇혀있자 얼마 가지 않아서 자살했다. 애종은 최후의 수단으로서 궁중 대장 완안승린에게 선양 후 탈출하도록 했으나 승린이 몰래 도망치다 몽골에 발각되어 잡혀간 후 효수당하고, 귀덕이 함락당하면서 금나라는 마지막 희망을 잃고 건국 120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집의 어린 아이 이시니 젼의 내친 쳐 싀시의 소이라 주010)
젼의 내친 쳐 싀시의 소이라:
전(前)에 내친 처(妻) 시씨(柴氏)가 낳은 자식(아들)이다.
명 랑기 긔츌티 더니 주011)
명 랑기 긔츌티 더니:
명수(포찰씨)가 사랑하기를 기출(己出)같이 하더니. ‘기출’은 자기 자식을 가리킨다. 『삼강행실도』에는 ‘다어미 明秀ㅣ 제 아티 치더라’라고 풀이하였다. ‘다어미, 다아비’는 ‘의붓어미(계모), 의붓아비(계부)’이다. 또 이 책 『오륜행실도』 효자편에서 ‘이에 에 라 연을 호믈 긔츌티 더라’〈1:29〉라고 하였는데, 『삼강행실도』에서는 이 두 곳 모두 ‘긔츌티’를 ‘제 아티’로 풀이하였다.
이 최립이라  도적이 니러나 모든 관원의 안 모라다가 주012)
안 모라다가:
아내들을 몰아서.
얼골 고으니 디라 주013)
얼골 고으니 디라:
얼굴 고운 이를 골라내는지라.
포찰시 이 말을 듯고 어린 아을 죵의게 맛디고 믈을 만히 주고 친히 관곽과 졔믈을 초아 두고 집사으로 더브러 주014)
집사으로 더브러:
집안사람과 함께.
영결여 오 최립이 무도여 사의 쳐쳡을

오륜행실도 3:48ㄱ

겁박고 이제 군 거려 셩밧긔 다라시니 내 어로 도망리오 오직 번 죽어 내 지아비 져버리디 아니리니 주015)
오직 번 죽어 내 지아비 져버리디 아니리니:
오직 한번 죽어도 내 남편을 저버리지 않겠으니.
너희들은 어린 식을 잘 기라 고 드여 목여 죽으니 나히 이십칠 셰라 죽을  흔연여 주016)
흔연여:
흔연(欣然)하여. 흔쾌히 그렇게 하여.
죠곰도 어려온 빗치 업더라 주017)
죠곰도 어려온 빗치 업더라:
조금도 어려운 빛이 없더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23. 명수구관(明秀具棺)【금(金)나라】 - 명수가 관을 갖추다
포찰(蒲察)씨의 자(字)는 명수(明秀)이니, 금나라 완안장락(完顔長樂)의 아내이다. 완안장락이 임금을 쫓아 나갔는데, 집에 어린 아들이 있으니, 전에 내친 아내 시(柴)씨의 소생이다. 명수가 사랑하기를 자기가 낳은 것과 같이 하였다. 이때에 최립(崔立)이라고 하는 도적이 일어나 모든 관원의 아내를 몰아다가 얼굴 고운 이를 가리었다. 포찰씨 이 말을 듣고 어린 아들을 종에게 맡기고 재물을 많이 주었다. 〈그리고〉 스스로 관곽과 제물(祭物)을 갖추어 두고 집안의 사람들과 아주 이별하여 말하기를, “최립이 무도하여 사람들의 처첩을 겁탈하고자 한다. 지금 군사를 거느리고 성 밖에 이르렀다. 내 어디로 도망하리요? 오직 한번 죽어 내 지아비를 저버리지 아니할 것이다. 너희들은 어린 자식을 잘 기르라.” 하고, 드디어 목매여 죽었다. 나이 27세이다. 죽을 때 흔연(欣然)하여 조금도 어려운 빛이 없었다.
남편이 임금을 시종으로 따라가 돌아올 기약 없고
전처의 자식은 의지할 곳 없이 또 어리고 철없어.
진실로 자기가 낳은 자식처럼 양육하고 돌보아
평생 어머니의 길 조금도 이지러짐이 없어라.
난리를 피하여 달아나자니 한 몸 살아남기 힘들어
어린 것들, 돈, 가재들을 모두 종들에게 부탁하고.
스스로는 관곽, 수의를 갖추어 흔쾌하듯이 죽으니
천년을 다투어 열녀의 정풍(貞風)을 흠모 하누나.
Ⓒ 역자 | 이수웅 / 2016년 11월 일

〈삼강행실언해문〉
哀宗이 歸德에 올마가 저긔 完顔張樂이 뫼 니거늘 張樂 져믄 아리 잇더니 다어미 明秀ㅣ 제 아티 치더라 崔立의 變에 從官 妻子 모라다가【從官 갓가 니 사미라】 제여곰 라 더니 明秀ㅣ 듣고 져믄 子息을  맛디고 金과 匹帛과  주고 옷과 棺과 祭 거슬 손 다 야 두고 집사과 여희여 닐오 崔立이 無道야  겨지블 긋 얻니 兵馬ㅣ 城 미틔 잇거니 내 어듸 逃亡리오 오직 주거 내 남지 背叛 아니 니라 너희히 이 아기 이대 기라 고 손 목 야 주고 어려 아니 너겨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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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금(金):완안부(完顔部)의 추장 아골타(阿骨打)가 세운 나라. 원래 거란족의 요(遼)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세력이 커지자 아골타는 요를 배반하고 제위에 올라 국호를 금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건국한 금은 제9대 애종(哀宗) 때에 몽골, 남송연합군에 의하여 120년만에 멸망하였다. 그러므로 금나라 황제의 성을 ‘완안’이라 하였다.
주002)
포찰(蒲察):복성(複姓)인데, 한(漢)의 성으로 이(李)씨임. 이 이야기는 『금사(金史)』에 ‘포찰씨(蒲察氏)’라는 제목으로 나오는 것이다. 세종 때의 『삼강행실열녀도』 110편 가운데 49편 정도가, 성종 때의 언해본 『삼강행실열녀도』 35편 중에는 19편이 『고열녀전』과 『고금열녀전』에서 인용하고 있으나 ‘포찰’ 이야기 등 대다수 이야기가 중국 정사 책에서 직접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요, 금, 원의 역사지도〉
주003)
완안장락(完顔長樂):본문에 의하면 금나라 애종(哀宗)의 호종(호의 무사)이었다 함. 『이십오사(二十五史)』의 색인을 찾아보면, 금나라 제5대 황제(재위1161~1189) 세종 완안옹(完顔雍, 1123~1189)의 둘째 후비인 광헌황후(光獻皇后) 이씨(李氏)의 소생 택국공주(澤國公主)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애종의 무사(남자)이니, 이와는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완안’은 금나라 황제의 성이니 황실 황족 사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주004)
귀덕(歸德):금나라 때 지금의 산동성 장청현(長淸縣)에 ‘귀덕진(歸德鎭)’을 설치함.
주005)
호종(扈從):임금의 수레를 호송하며 따르는 군사.
주006)
최립(崔立):금나라 장릉(將陵) 사람으로 애종이 동으로 도망하자 최립을 서부 원수로 삼아 그들을 공격하여 왕후와 임금을 포로로 잡고, 많은 인민을 학살할 뿐만 아니라, 노략질함으로 사회가 극도로 불안함.
주007)
영정(零丁):외롭고 의지할 곳이 없다는 뜻.
주008)
포찰시의  명니 금나라 완안 쟝낙의 안라:포찰씨(蒲察氏)의 자(字)는 명수(明秀)이니 금(金)나라 완안장락(完顔長樂)의 아내다. 『흠정속통지(欽定續通志卷)』 592권 「열녀전(列女傳)」에서는 완안장락의 처를 ‘부찰씨(富察氏)’라고 하여 조금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完顔長樂妻富察氏字明秀哀宗遷歸徳以長樂為總領將兵扈從將行富察氏曰君第致身事上無以妾為念妾必不辱長樂一子尚幼出妻柴氏生明秀撫育如已出崔立之變富察以幼子付婢僕與家人訣曰崔立不道强人妻女兵在城下吾何所逃惟一死不負吾夫耳汝等惟善養幼子遂自縊死’.
주009)
쟝낙이 님군을 조차 나가고:완안장락이 임금을 호위하며 나가고. 원문의 ‘哀宗遷歸德’ 부분을 생략한 해석이다. 『삼강행실도』에서는 ‘哀宗이 歸德에 올마가 저긔(애종이 귀덕으로 옮겨 가실 적에)’라고 언해하고 있다. 1233년 몽골 제국이 금나라의 수도 카이펑을 함락하자, 금나라 애종(哀宗)은 동남쪽의 귀덕으로 도주한다. 1234년 제9대 애종은 몽골, 남송 연합군의 추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귀덕에 갇혀있자 얼마 가지 않아서 자살했다. 애종은 최후의 수단으로서 궁중 대장 완안승린에게 선양 후 탈출하도록 했으나 승린이 몰래 도망치다 몽골에 발각되어 잡혀간 후 효수당하고, 귀덕이 함락당하면서 금나라는 마지막 희망을 잃고 건국 120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주010)
젼의 내친 쳐 싀시의 소이라:전(前)에 내친 처(妻) 시씨(柴氏)가 낳은 자식(아들)이다.
주011)
명 랑기 긔츌티 더니:명수(포찰씨)가 사랑하기를 기출(己出)같이 하더니. ‘기출’은 자기 자식을 가리킨다. 『삼강행실도』에는 ‘다어미 明秀ㅣ 제 아티 치더라’라고 풀이하였다. ‘다어미, 다아비’는 ‘의붓어미(계모), 의붓아비(계부)’이다. 또 이 책 『오륜행실도』 효자편에서 ‘이에 에 라 연을 호믈 긔츌티 더라’〈1:29〉라고 하였는데, 『삼강행실도』에서는 이 두 곳 모두 ‘긔츌티’를 ‘제 아티’로 풀이하였다.
주012)
안 모라다가:아내들을 몰아서.
주013)
얼골 고으니 디라:얼굴 고운 이를 골라내는지라.
주014)
집사으로 더브러:집안사람과 함께.
주015)
오직 번 죽어 내 지아비 져버리디 아니리니:오직 한번 죽어도 내 남편을 저버리지 않겠으니.
주016)
흔연여:흔연(欣然)하여. 흔쾌히 그렇게 하여.
주017)
죠곰도 어려온 빗치 업더라:조금도 어려운 빛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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