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행실도 3:42ㄴ
王貞婦 주001) 왕정부(王貞婦): 사람 이름. 생애가 잘 알려지지 않음.
夫家
臨海 주002) 임해(臨海): 지금의 절강 임해현. 옛 회계(會稽)에 속함.
人
德祐 주003) 덕우(德祐): 남송(南宋) 공종(恭宗)의 연호. 1275~1276. 덕우 2년은 1276년.
二年冬 元兵入
浙東 주004) 與其舅姑夫 皆被執 旣而舅姑與夫皆死 主將見婦晳美 欲內之 婦號慟欲自殺 爲奪挽不得死 夜令俘囚婦人雜守之 婦陽謂主將曰 以吾爲妻妾者 欲令終身善事也 吾舅姑與夫死而不爲之衰 是不天也 不天之人 將焉用之 願請爲
服期 주005) 卽惟命 苟不聽我 我終死耳 主將恐其誠死許之 然防守益嚴 明年春師還 挈行至嵊縣 靑楓嶺下 臨絶壑 婦待守者少懈 囓指出血 書字山石上 南望慟哭 自投崖下而死 後其血皆漬入石間 盡化爲石 天且陰雨 卽墳起如始書時
오륜행실도 3:43ㄱ
元
至治 주006) 지치(至治): 원(元)나라 영종(英宗)의 연호.
中旌爲貞婦 郡守立石祠嶺上 易名曰
淸風嶺 주007) 청풍령(淸風嶺): 절강 승현(嵊縣) 북쪽 40여리에 위치함. 원래 단풍나무가 많아서 ‘청풍령(靑楓嶺)’이라고 불렸음. 험준한 돌산 아래로 강물이 흘러간다. 본문의 열녀 왕정부가 이곳에서 떨어져 죽은 뒤로부터 ‘청풍령(淸風嶺)’이라고 개명하였다.
不幸元兵入浙東 舅姑夫壻陷軍中 自將晳美知難免 百計陽言請服終
行至靑楓險且危 血書山石獨天知 一從慟哭投崖死 嶺上淸風萬古吹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왕뎡부 송나라 님 사의 쳬니 주008) 왕뎡부 송나라 님 사의 쳬니: 왕정부(王貞婦)는 송(宋)나라 임해(臨海) 사람의 처(妻)이니. 원문은 ‘王貞婦夫家臨海人’(왕정부의 남편 집안은 임해 사람이다.)이다.
송이 망 에 주009) 송이 망 에: 송(宋)나라가 망할 때에. 원문은 ‘德祐二年冬 元兵入浙東’(덕우 2년 겨울에 원나라 병사가 절강 동쪽으로 들어가니)인데 의역한 것이다. 『삼강행실도』에서는 원문 ‘夫家臨海人 德祐二年冬 元兵入浙東’을 모두 번역하지 않고 생략하였다.
그 싀부모와 지아비 다 도적의게 잡히여 죽으니 도적의
댱 뎡부의 고으믈 보고 주010) 댱 뎡부의 고으믈 보고: 장수가 왕정부의 아름다움을 보고.
겁박려 니 주011) 겁박려 니: 겁박(劫迫)하려고 하니. 강제로 들이려(아내삼으려) 하니.
뎡뷔 통곡고 죽으려 대 도적이 사로잡힌
오륜행실도 3:43ㄴ
겨집들로 여곰 듀야로 딕희니 뎡뷔 속여 오 싀부모와 지아비 죽은
거상을 아니 닙으면 주012) 거상을 아니 닙으면: 거상(居喪)을 아니 입으면. 상복(喪服)을 입지 않으면.
이 하을 모로미라 어 리오 원컨대 거상을 닙어 탈상 후에 너 조려니와 내 말을 좃지 아니면 내 죽으리라 대 도적이 죽을가 저허
아딕 허락 주013) 아딕 허락: 당분간 허락하되. ‘아딕’은 ‘아직’인데, 중세어로 ‘아직, 또, 당분간’의 뜻이다.
딕희기 더옥 엄게 고 인야
제 나라흐로 려갈 주014) 제 나라흐로 려갈: 자기 자라로 데려가므로. 원문에는 ‘明年春’(이듬해 봄)이라고 하였다. ‘명년’은 ‘다음 해, 이듬해, 내년’이다.
쳥풍녕에 니러 뎡뷔 딕흰 사이 업
타셔 주015) 손가락을
므러 주016) 므러: 깨물어. 『삼강행실도』에서는 ‘너흐러’라고 언해하였다. ‘너흘다’는 ‘씹어, 물어뜯어’의 말이다.
피 내여 돌에 글을 고
남다히 라며 주017) 남다히 라며: 남쪽을 바라보며. ‘남다히’는 ‘남쪽’이다. ‘다히’는 ‘쪽, 닿는 곳, 부근’의 말이다. 『삼강행실도』에서는 ‘南녁’(남녘)이라고 하였다. ¶向향心심漸졈斜샤야 以이爲위水슈道도而이容용各각三삼石셕라[가온대 다히로 졈졈 비슥게 야 믈 흐를 길흘 호 각각 석 셤식 담기게 라](가운데 쪽으로 점점 비스듬히 하여 물 흐를 길로 삼되 각각 석 섬씩 담기게 하라)〈신전자취염소방언해 9〉. ¶님 다히 消息을 아므려나 아쟈 니 오도 거의로다〈송강가사 속미인곡〉. 머리 녀키 크고 발 다히 젹게 야 계요 容용身신호믈 取고(머리 쪽이 크고 발 쪽이 작게 하여 겨우 용신(容身)할 정도로 하고)〈가례언해 5:6〉.
통곡고 주018) 통곡고: 통곡(慟哭)하고. 소리 높여 슬피 울고. 『삼강행실도』에서는 ‘ 울오’(크게 울고)라고 하였다. 중세어 ‘’은 여러 가지 뜻으로 쓰였다. ‘①만큼 다, 끝까지, ②한껏, 충분히, 크게 ③가장, 매우’ 따위의 뜻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인여 졀벽 아래
러져 죽으니 주019) 러져 죽으니: 떨어져 죽으니. ‘러디다/러지다’와 ‘디다’는 중세 시대에 두루 함께 쓰였다.
그 후에 글
오륜행실도 3:44ㄱ
시 피 돌 속으로
못 저저 주020) 못 저저: 사무쳐 젖어. ‘못’은 ‘다’의 다른 표기인데, ‘다’는 ‘사무치다, 꿰뚫다’의 말이니, ‘깊이 스며들거나 멀리까지 미치다’의 뜻이다.
다 돌이 되엿다가 비올 적이면
피 도로 소사나 주021) 피 도로 소사나: 피가 다시 솟아나서. ‘도로’는 ‘되돌아서’의 뜻을 가진 부사로서, 동사 ‘돌다[還/回]’의 파생어인 셈이다.
처음과 더라 원나라 적의
졍표여 뎡뷔라 고 주022) 졍표여 뎡뷔라 고: 정표(旌表)하여 정부(貞婦)라 하고. 정표(旌表)는 선행(善行)을 표창(表彰)함을 말함.
비 셰워 졔고 그 녕 일홈을 고쳐 쳥풍녕이라 니라
【처음 쳥풍은 프른 단풍이란 말이오 고친 쳥풍은 은 람이란 말이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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