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행실도 3:36ㄱ
徐氏 和州人閎中女 適同郡
張弼 주001) 장필(張弼): 송(宋)나라 선유(仙游) 사람. 공부를 좋아 했으며, 특히 역(易)을 깊이 연구하고 상수(象數)를 밝힘. 역가(易家)로서의 그의 저서인 『역해(易解)』가 알려지고, 나라에서는 ‘보광처사(保光處士)’라는 호를 하사하였다.〈송사(宋史)〉.
建炎 주002) 건염(建炎): 남송 고종의 첫 번째 연호. 1127년부터 1130년까지 4년 동안의 연호.
三年
金人 주003) 금인(金人): 금나라 사람. 여기서는 송나라를 침범한 금군(金軍)을 일컬음.
犯
維揚 주004) 유양(維揚): 지금의 강소성 양주시(揚州市).
官軍望風奔潰 多肆虜掠 執徐欲汗之 徐瞋目大罵曰 朝廷蓄汝輩以備緩急 今敵犯行在 旣不能赴難 又乘時爲盜 我恨一女子 不能引劒斷汝頭 以快衆憤 肯爲汝辱 以苟活耶 第速殺我 賊慚恚以刃刺殺之 投江中而去
官軍奔潰自相屠 徐氏蒼皇被執拘 不獨當時全淑行 美名今日上新圖
大罵言辭出至忱 官軍將卒獨何心 至今江水鳴嗚咽 多少行人痛憤深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오륜행실도 3:36ㄴ
셔시 송나라 화쥬 사이니 댱필의 쳬 되엿더니 이에 금인이
텨드러오니 주005) 관군이 패야 라날 주006) 관군이 패야 라날: 관군(官軍)이 패배(敗北)하여 달아나므로. 이때 관군은 송나라 군대를 가리킨다. 『삼강행실도』의 협주에서는, ‘官軍은 그윗 軍馬ㅣ라’라고 하였는데, ‘그윗’은 ‘그위(관청, 공관)+ㅅ(관형격)’이다. ‘그위’는 15세기 중세어로서 많이 쓰던 말인데 18세기에는 ‘관군’ 등으로 대체된 것을 볼 수 있다. ‘그우실(관직)’〈내훈〉(1522), ‘그우실다(벼슬하다)’〈원각경언해〉(1465), ‘그위실(공직 관직)’〈선종영가집언해〉(1495), ‘그위실다(벼슬하다)’〈능엄경언해(1461), 내훈, 삼강행실도(1481)〉, ‘그위다(송사하다)’〈정속언해〉(1518), ‘그윗것(공물)’〈월인석보〉 (1459), ‘그윗곧(청사)’〈이륜행실도〉(1518), ‘그윗글왈(공안(公案))’〈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1472), ‘그윗일(공사(公事))’〈법화경언해(1463), 원각경언해〉, ‘그윗집(관사, 공관)’〈두시언해〉(1481) 등 다양하게 쓰이던 말이 『내훈』(1522) 이후로는 잘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 ‘관군’과 같은 말이 나타나고 있다.
두로 노략여 주007) 두로 노략여: 두루 노략(虜掠)하여. ‘다사(多肆)’는 ‘심히 방자하게’라는 말인데 ‘두로(두루)’로 해석하였다. 『삼강행실도』에서는 ‘(매우, 한껏, 크게)’이라고 언해하였다.
셔시 잡아 핍박고져 거 셔시
눈을 부고 주008) 지저 오 나라히 너희 길러 급 에 려 시거 이제 도적이 나라흘 범호 능히 구티 못고 도로혀 어즈러오믈 인여 도적이 되니 내 녀라 너희 마리 버히디 못믈 니 엇디 네게 욕을 보고 구챠히 살리오 리 날을 죽이라 대 도적이 븟그리고 노여 죽여
강믈에 더디고 가니라 주009)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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