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행실도 원발문
『삼강행실도』 한 편은 우리 세종조 때에 민간에 반포하여, 인륜(人倫)을 밝히고, 교화(敎化)를 도탑게 하는 데에 한 도움이 되게 한 책이다.
대개 민생(民生)에 대한 떳떳한 윤리가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니, 이 세 가지를 능히 제대로 다한다면, 성인(聖人)도 되고, 현인(賢人)도 될 수가 있지만, 이것을 능히 하지 못하는 자는 사람이지만 사람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왕(先王)께서 백성을 가르치는 데에 이것으로 근본을 삼지 않은 바가 없었다.
이 책이 반포된 지 이미 삼백 년이 넘는다.
주001) * 윤헌주가 1726년 (영조 2) 이후에 발간한 책이므로, 세종 때로부터 3백여 년이 됨.
그런데 오늘날 우리 백성들이 능히 아들로서 효도하고, 신하로서 충성하고, 남편으로서 화합하고, 아내로서 순종하여, 금수(禽獸)와 이적(夷狄)에 빠지지 않은 것은, 역시 이 책을 보아 감동한 것이 반드시 없지 않으리라 생각이 된다.
그러니 그 도움이 된 것이 어찌 적다고 하겠는가. 대체로 백성은 태어날 때부터 모두가 떳떳한 마음을 타고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몹시 미련해서 감화시키기 어려운 사람일지라도, 실로 옛사람의 지극한 행실이 남을 감동시킨 사실을 보고는, 그 마음이 감동되지 않을 수 없었으며, 혹 번연(飜然)히 깨닫고, 결연(決然)히 고쳐서 다시 선인군자(善人君子)가 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책에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은 모두가 옛사람의 지극한 성품과 특이한 행실이다. 더욱이 시(詩)도 지어, 그 책 끝에 붙였으니, 대개 그 그림을 보고, 그 시를 읊는 자가 사람으로서의 올바른 성품이 있다면, 누구인들 감동하여 흥기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당시 성조(聖祖)께서 특명(特命)으로 책을 출판하게 해서 반포한 의의이다.
내가 작년에 이 도(道)에 귀양을 오게 되어, 이 지방 민간풍속이 순박하지 못한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개연(慨然)하게 여겼더니, 그 뒤 이제
방백(方伯) 주002) 방백(方伯): 조선 시대의 지방 장관. 종이품의 벼슬로 각 도에 한 명씩 두었는데, 도내의 행정과 군사 업무를 통제하고 관할하는 등 경찰권, 사법권, 징세권 따위의 행정상 절대적 권력을 가졌었음.
으로 오게 되었으니, 이 『삼강행실도』를 널리 반포하여,
왕화(王化) 주003) 왕화(王化): 임금의 훌륭한 정치와 교화(敎化)에 의해서 백성이 착하게 됨. 임금의 덕화(德化).
를 펴는 방법에 도움이 되게 하고자 한다. 그러나 본도(本道)에는 옛날부터 그 판각(板刻)이 없다. 그래서 이에 한 판본을 구해서, 노는 각수(刻手)에게 품삯을 주고, 판각을 만들었다. 되돌아 보건대, 옛날 언문(諺書)으로 번역한 것이 말이 너무 간단하여, 해득(解得)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이에 글을 모두 고쳐서, 더하기도 하고, 깎아 줄이기도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아무리 어리석은 남녀일지라도,모두 알아보기 쉽게 만들어, 이것을 한 도에 나누어 반포하여, 풍화(風化)의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아아! 옛말에 이르기를, “마음으로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따르고, 말만으로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시비한다.”라고 했느니, 남의 윗사람이 된 자로서, 실로 몸소 행하는 실상이 없다면, 어찌 아래에 있는 백성들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이제 내가 이 『삼강행실도』를 간행하는 것은 백성을 교화시키는 근본이 오로지 여기에만 이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정치하는 자는 역시 이 뜻을 불가불 알아야 할 것이다.
영조 2년 주004) 봄 평안도 관찰사 겸 도순찰사
윤헌주(尹憲柱) 주005) 윤헌주(尹憲柱): 조선 후기의 문신. 서기 1661년(현종 2)~서기 1729년(영조 5).
삼가 발문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