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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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행실도 원서문


三綱行實圖 原序

삼강원서1ㄱ

三綱行實圖 原序
天下之達道五 而三綱居其首 實經綸之大法 而萬化之本源也 若稽諸古 帝舜愼徽五典 成湯肇修人紀 周家重民五敎 而賓興三物 帝王爲治之先務可知也 已宣德辛亥夏我 主上殿下命近臣若曰三代之治皆所以明人倫也 後世敎化陵夷百姓不親君臣父子夫婦之大倫率皆昧於所性而常失於薄間有卓行高節不爲習俗所移而聳人觀聽者亦多予欲使取其特異者作爲圖贊頒諸中外庶幾愚夫愚婦皆得易以觀感而興起則亦化民成俗之一道

삼강원서1ㄴ

也 乃命集賢殿副提學臣偰循掌編摩之事於是自中國以至我東方古今書傳所載靡不蒐閱得孝子忠臣烈女之卓然可述者 各百有十人圖形於前紀實於後而幷系以詩孝子則謹錄太宗文皇帝所賜孝順事實之詩兼取臣高祖臣溥所撰孝行錄中名儒李齊賢之贊其餘則令輔臣分撰忠臣烈女之詩亦令文臣分製編訖賜名三綱行實圖令鑄字所鋟榟永傳爰命臣採序其卷端臣採竊惟君親夫婦之倫忠孝節義之道是乃降衷秉彝人人所同窮天地之始而俱生極天地之終而罔墜不以堯舜之仁

삼강원서2ㄱ

而有餘不以桀紂之暴而不足然先王之時五典克從民用和睦而比屋可封三代以後治日常少而亂賊之徒接跡於世者良由君上導養之如何耳今我主上殿下以神聖之資盡君師之道功成治定萬目畢張而以扶植綱常維持世道爲本凡有關於名敎者無不講究商確著爲彝典所以化民於躬行心得之餘者旣極其至猶慮興起之方有所未盡乃爲此書廣布民間使無賢愚貴賤孩童婦女皆有以樂觀而習聞披玩其圖以想形容諷詠其詩以體情性莫不歆羡嘆慕勸勉激勵以感發其同然之善心而盡

삼강원서2ㄴ

其職分之當爲矣
蓋與帝王惇典敷敎之義同一揆而條理有加密焉由是民風丕變治道益隆家盡孝順之子國皆忠藎之臣南陔白華之什漢廣汝墳之詩將繼作於委巷之間王化之美當無讓於二南而王業之固實永傳於萬世後之君子益體宸衷服膺敬守於無窮豈不韙歟
宣德七年六月 奉列大夫 集賢殿應敎 禮文館應敎 知製敎 經筵檢討官 臣 權採 奉敎序
Ⓒ 필자 | 권채 / 1432년(세종 14) 6월

삼강행실도 원서문
천하의 공통된 도(道)가 다섯인데, 그 중에 삼강(三綱)이 머리에 있으니, 실지로 경륜의 큰 법이요, 모든 교화의 본원(本源)이다. 예전 일을 상고해 보면 제순(帝舜) 주001)
제순(帝舜):
순(舜)임금. 우순(虞舜). 고수(瞽叟)의 아들. 요(堯)임금의 선위(禪位)로 제위(帝位)에 올라 선정(善政)을 베풀었음. 우(虞)란 순임금이 천하를 차지하여 다스릴 때의 나라이름임. 우(禹)에게 양위함.
은 오전(五典)을 지었고, 성탕(成湯) 주002)
성탕(成湯):
생년 미상 ~BC 1588년 추정. 하남(河南) 상구(商丘) 사람으로 성(姓)은 자(子), 이름은 리(履), 묘호(墓號)는 태조(太祖)이다. 상(商)나라의 개국군주(開國君主)로 BC 1617년부터 BC 1588년까지 재위에 있었음. 무탕(武湯), 은탕(殷湯), 천을(天乙), 성탕(成湯), 성당(成唐)으로 불리기도 하고, 갑골문(甲骨文)에서는 당(唐), 태을(大乙), 고조을(高祖乙)로 기재되어 있다. 고대 상(商) 부족의 지도자로서, 하(夏)나라를 멸망시키고 상나라를 건립하고 인정(仁政)을 베풀었다. 시호(諡號)는 무왕(武王)임.
은 비로소 인기(人紀) 주003)
인기(人紀):
사람의 기강.
를 만들었고, 주(周) 주004)
주(周):
주(周, BC 1046년 ~BC 256년)나라는 상나라를 이어 중국에 존재했던 나라임.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유지된 나라로, 이 시기에 철기의 사용이 시작되었으며, 기원전 11세기 중엽에 서쪽의 웨이허 강 분지에서 세력을 확대하여,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中原)을 지배했음.
나라에서는 백성으로 하여금 오교(五敎) 주005)
오교(五敎):
오전(五典)과 같은 뜻. 오전은 오륜임.
를 존중히 여기게 하고, 삼물(三物) 주006)
삼물(三物):
백성에게 가르쳐야 할 세 가지 일인 육덕(六德)·육행(六行)·육예(六藝). 육덕(六德)은 지(知)·인(仁)·성(聖)·의(義)·충(忠)·화(和)이고, 육행(六行)은 효(孝)·우(友)·목(睦)·인(婣)·임(任)·휼(恤)이며, 육예(六藝)는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임.
빈흥(賓興) 주007)
빈흥(賓興):
빈흥(賓興)이란 『주례(周禮)』에서 유래한 것으로 주대(周代)에는, “삼물(三物), 즉 육덕(六德)·육행(六行)·육례(六禮)로 만민을 가르쳤으며, 그 가운데서 현능(賢能)한 자를 천거하여 채용하였다.”라고 하는 기록이 보이는데, 일반적으로 과거를 의미함.
하였으니, 제왕 정치의 급선무임을 알 수 있다.
세종 13년(선덕(宣德) 신해년(辛亥年), 1432) 여름에 우리 주상 전하가 근신(近臣)에게 명하기를, “삼대(三代) 주008)
삼대(三代):
중국(中國) 상대(上代)의 하(夏), 은(殷), 주(周)의 세 왕조(王朝)를 말함.
의 정치는 모두 인륜을 밝혔는데, 후세에는 교화가 차츰 해이해져서, 백성이 서로 화목하지 못하니, 군신·부자·부부의 큰 인륜[大倫]이 모두 본연의 성품과 위배되어, 항상 박(薄)한 데에 흘렀다. 그러나 간혹 탁월한 행실과 높은 절개가 습속에 휩쓸리지 아니하여, 보고 듣는 사람을 깨우쳐 일으키는 자도 또한 많았다. 내가 그 특이한 것을 뽑아서, 그림으로 그리고, 찬(贊)을 지어서, 안팎에 반포하고자 하니, 거의 어리석은 남자나 무식한 여자들도 모두 보고 느껴 흥기할 것이니, 또한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룩하는 한 가지 방도이다.”라고 하시고, 여기서 집현전(集賢殿) 부제학(副提學) 주009)
부제학(副提學):
조선시대 홍문관과 그 전신이었던 집현전의 정3품 당상관직.
설순(偰循) 주010)
설순(偰循):
조선 세종 때의 학자·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보덕(輔德). 고려 때 귀화한 위구르(Uighur) 출신 설손(偰遜)의 손자로 설장수(偰長壽)의 아들로서, 1408년(태종 8)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급제, 1420년(세종 2) 교리, 이듬해 좌사경(左司經), 1425년 시강관을 거쳐 인동현감이 되었음. 1427년 문과중시에 합격, 이듬해 왕명으로 『효행록(孝行錄)』을 증수하였고, 1431년(세종 13) 집현전부제학으로서 『삼강행실도』를 편수하기 시작, 1434년(세종 16) 인쇄 반포하였으며, 그 해 이조 우참의가 되어 윤회(尹淮) 등과 함께 『통감훈의(通鑑訓義)』를 저술하였고, 동지중추원사에 이르렀고, 여러 분야의 학문에 박학하였으며 특히 역사에 뛰어났고, 문장으로도 이름이 높았음.
에게 명령하여, 편찬하는 일을 맡게 하셨다.
그리하여 중국으로부터 우리 동방에 이르기까지 고금의 서적에 있는 것을 찾아보지 않은 것이 없이 하여, 효자·충신·열녀로 뚜렷이 기술할 만한 사람을 각각 1백 10명을 뽑아서 앞쪽에는 그림을 그리고, 뒤쪽에는 그 사실을 기록했으며, 아울러 시(詩)까지 써 놓았다. 효자에 있어서는 삼가 태종황제(太宗皇帝) 주011)
태종황제(太宗皇帝):
명나라 태종. 명나라 제3대 황제(재위 1402~1424). 지방의 번왕(蕃王)으로 연왕(燕王)이라 불렸으며 건문제가 공격해 오자 난을 일으켜 황제가 되었음.
께서 하사하신 『효순사실(孝順事實)』의 시를 기록하고, 겸하여 신의 고조(高祖) 신 보(溥)가 지은 『효행록(孝行錄)』 주012)
효행록(孝行錄):
고려 충목왕 때의 효자 권보(權溥)와 그의 아들 준(準)에 관한 기록을 모아 엮은 책. 고려 말에 초판이 나왔으며 세종 10년(1428)에 설순(偰循) 등이 개정하여 중간하였음. 초간본에는 이제현(李齊賢)의 서(序)가 있고, 후에 권근(權近)을 그리게 한 뒤 그것을 이제현에게 주면서 찬(賛)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여 아버지를 위안하였다 함. 이에 권보도 38효행을 골라 이제현에게서 찬을 지어 받았는데, 전 24찬은 12구(句), 후 38찬은 8구로 되어 있음.
가운데 있는 명현(名賢) 이제현(李齊賢) 주013)
이제현(李齊賢):
충렬왕 14년(1287)~공민왕 16년(1367). 고려 후기의 문신·학자·문인.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지공(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역옹(櫟翁). 고려 건국 초의 삼한공신(三韓功臣) 금서(金書)의 후예로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진(瑱)이다. 아버지 진이 과거를 통해 크게 출세함으로써, 비로소 가문의 이름이 높아졌음.
의 찬(贊)을 가져왔고, 그 나머지는 보신(輔臣) 주014)
보신(輔臣):
높은 벼슬아치들.
으로 하여금 나누어 짓게 하였으며, 충신과 열녀의 시도 문신들로 하여금 나누어 짓게 하여, 편찬이 끝나자, 『삼강행실도』란 이름을 내리고, 주자소(鑄字所) 주015)
주자소(鑄字所):
태종 3년(1403)에 승정원의 직속기관으로 설치되어 문종 1년(1451) 7월부터 12월까지 잠깐 폐지된 적이 있으며, 세조 6년(1460) 5월에 교서관에 이속시켜, 전교서(典校署)로 개칭되었음.
로 하여금 발간해서 영구히 전하게 하였다.
이에 신 권채(權採) 주016)
권채(權採):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서(汝鋤). 아버지는 제학(提學) 우(遇)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판사(判事) 빈(贇)의 딸이다. 또한 조선 초기 유학의 대가인 권근(權近)의 조카임. 어려서부터 문장에 뛰어난 재질이 있었으며, 가학(家學)을 이어받아 경전을 깊이 연구하였다. 태종 17년(1417)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 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세종 7년(1425) 집현전 수찬에 임명되었고, 세종 9년 문과 중시에 급제하여 집현전응교가 되었음.
에게 명하여, 책머리에 서문을 쓰라고 하니, 신 권채는 삼가 생각하건대, 임금과 어버이와 부부의 인륜에 대한 충·효·절의(節義)의 도리는 바로 하늘이 품부(稟賦)한 천성으로 사람마다 같은 것이니, 천지가 처음 생길 때부터 같이 생겼고, 천지가 끝날 때까지 없어지지 않아서, 요순(堯舜)이 어질다고 더 있는 게 아니고, 걸주(桀紂) 주017)
걸주(桀紂):
중국 하(夏)나라의 걸왕(桀王)과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을 가리키는 말로, 포악무도(暴惡無道)의 대명사로 쓰임.
가 사납다고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선왕(先王) 때에는 오전(五典)을 잘 따라 백성들이 화목해서 집집마다 표창을 할 만하였는데, 삼대 이후에는 안정된 날이 항상 적어서, 난신(亂臣)과 적자(賊子)의 무리가 세상에 발을 붙이게 된 것은, 진실로 임금이 그 백성을 잘 인도하느냐에 달렸다.
지금 우리 주상 전하는 성스럽고 신묘한 자질로 군사(君師)의 도리를 다해서 공덕이 이룩하고, 정치가 안정되어 온갖 일이 다 확장함과 동시에 강상(綱常) 주018)
강상(綱常):
유교의 기본 덕목인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을 말함.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부위자강(父爲子綱)·부위부강(夫爲婦綱)임. 오상은 사람이 항상 행(行)하여야 하는 5가지 바른 행실. 곧 인(仁)·의(儀)·예(禮)·지(智)·신(信) 또는 아버지의 의(義), 어머니의 자(慈), 형의 우(友), 동생의 공(恭), 아들의 효(孝)를 말함.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를 뜻함.
을 붙들어 일으키고, 세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았다. 무릇 명교(名敎)에 관계되는 것은 강구하고, 자세히 따져서 상전(常典)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를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채득한 나머지에 백성을 교화시키는 것이 아주 극진하게 되었다.
그러고도 흥기시키는 방법이 미진한 데가 있을까 염려하여, 여기서 이 책을 만들어 민간에 배포하여, 어질거나 어리석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 아이거나 부녀자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즐겨 보고 익히어 들을 수 있게 하며, 그림을 구경하여, 그 모습을 생각하며, 그 시를 읊고 그 성정(性情)을 체득하면, 흠모하며 권면하고 격려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다 같이 착한 마음을 감발(感發) 주019)
감발(感發):
크게 느낀 바가 있어, 마음과 힘을 떨쳐 일어남.
시키고, 그 직분에 마땅히 할 일을 다 하게 될 것이다.
대개 제왕(帝王)이 오전(五典)을 돈독히 하고 교화를 펴는 뜻과 더불어 동일한 법인데, 조리(條理)는 더 정밀하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백성의 풍속(民風)이 아름답게 변하고 다스리는 방도(治道)가 더욱 융성하며, 집에는 다 효도하는 자식이 되고, 나라에는 모두 충성하는 신하가 되면, 남해(南陔) 주020)
남해(南陔):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 제목만 있고 시는 전하지 않는데, 그 가사가 없어진 것이라고도 하고, 원래 생(笙)으로 연주하던 악곡(樂曲)이기 때문에 곡(曲)만 있고 가사는 없는 것이라고도 함. 모시서(毛詩序)에 따르면 남해는 ‘효자가 서로 훈계하며 봉양하는[孝子相戒以養也]’ 뜻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함.
백화(白華) 주021)
백화(白華):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현재는 그 제목만 전해지고 있음. 『시경』의 서문에 백화는 효자의 제수를 깨끗하게 하는 것을 노래한 것이라고 하였음.
의 편(篇)과 한광(漢廣) 주022)
한광(漢廣):
『시경(詩經)』에 나오는 시.
여분(汝墳) 주023)
여분(汝墳):
『시경(詩經)』에 나오는 시.
의 시(詩)를 장차 위항(委巷)에서 계속해 지을 것이니, 왕화(王化) 주024)
왕화(王化):
임금의 덕행으로 감화하게 함. 또는 그런 감화.
의 아름다운 것은 마땅히 이남(二南) 주025)
이남(二南):
『시경』 국풍(國風)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 주남은 주공 단(周公旦, 희단姬旦)을, 소남은 소공 석(召公奭, 희석姬奭)을 기념하는 이름이며, 백성의 애환과 가정을 덕으로 다스려 교화가 나라에 퍼짐을 많이 읊은 시편임.
에 양보하지 않을 것이요, 왕업(王業)의 견고한 것은 실제로 길이 만세에 전할 것이다. 후세의 군자(君子)는 더욱 성상의 마음을 본받아서 무궁한 장래에까지 경건하게 지키는 것은 어찌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세종 14년 유월 봉렬대부 집현전응교 예문관응교 지제교 경연 검토관 신 권채(權採) 임금의 뜻을 받들어 서를 씀.
Ⓒ 역자 | 성낙수 / 2016년 11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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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제순(帝舜):순(舜)임금. 우순(虞舜). 고수(瞽叟)의 아들. 요(堯)임금의 선위(禪位)로 제위(帝位)에 올라 선정(善政)을 베풀었음. 우(虞)란 순임금이 천하를 차지하여 다스릴 때의 나라이름임. 우(禹)에게 양위함.
주002)
성탕(成湯):생년 미상 ~BC 1588년 추정. 하남(河南) 상구(商丘) 사람으로 성(姓)은 자(子), 이름은 리(履), 묘호(墓號)는 태조(太祖)이다. 상(商)나라의 개국군주(開國君主)로 BC 1617년부터 BC 1588년까지 재위에 있었음. 무탕(武湯), 은탕(殷湯), 천을(天乙), 성탕(成湯), 성당(成唐)으로 불리기도 하고, 갑골문(甲骨文)에서는 당(唐), 태을(大乙), 고조을(高祖乙)로 기재되어 있다. 고대 상(商) 부족의 지도자로서, 하(夏)나라를 멸망시키고 상나라를 건립하고 인정(仁政)을 베풀었다. 시호(諡號)는 무왕(武王)임.
주003)
인기(人紀):사람의 기강.
주004)
주(周):주(周, BC 1046년 ~BC 256년)나라는 상나라를 이어 중국에 존재했던 나라임.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유지된 나라로, 이 시기에 철기의 사용이 시작되었으며, 기원전 11세기 중엽에 서쪽의 웨이허 강 분지에서 세력을 확대하여,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中原)을 지배했음.
주005)
오교(五敎):오전(五典)과 같은 뜻. 오전은 오륜임.
주006)
삼물(三物):백성에게 가르쳐야 할 세 가지 일인 육덕(六德)·육행(六行)·육예(六藝). 육덕(六德)은 지(知)·인(仁)·성(聖)·의(義)·충(忠)·화(和)이고, 육행(六行)은 효(孝)·우(友)·목(睦)·인(婣)·임(任)·휼(恤)이며, 육예(六藝)는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임.
주007)
빈흥(賓興):빈흥(賓興)이란 『주례(周禮)』에서 유래한 것으로 주대(周代)에는, “삼물(三物), 즉 육덕(六德)·육행(六行)·육례(六禮)로 만민을 가르쳤으며, 그 가운데서 현능(賢能)한 자를 천거하여 채용하였다.”라고 하는 기록이 보이는데, 일반적으로 과거를 의미함.
주008)
삼대(三代):중국(中國) 상대(上代)의 하(夏), 은(殷), 주(周)의 세 왕조(王朝)를 말함.
주009)
부제학(副提學):조선시대 홍문관과 그 전신이었던 집현전의 정3품 당상관직.
주010)
설순(偰循):조선 세종 때의 학자·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보덕(輔德). 고려 때 귀화한 위구르(Uighur) 출신 설손(偰遜)의 손자로 설장수(偰長壽)의 아들로서, 1408년(태종 8)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급제, 1420년(세종 2) 교리, 이듬해 좌사경(左司經), 1425년 시강관을 거쳐 인동현감이 되었음. 1427년 문과중시에 합격, 이듬해 왕명으로 『효행록(孝行錄)』을 증수하였고, 1431년(세종 13) 집현전부제학으로서 『삼강행실도』를 편수하기 시작, 1434년(세종 16) 인쇄 반포하였으며, 그 해 이조 우참의가 되어 윤회(尹淮) 등과 함께 『통감훈의(通鑑訓義)』를 저술하였고, 동지중추원사에 이르렀고, 여러 분야의 학문에 박학하였으며 특히 역사에 뛰어났고, 문장으로도 이름이 높았음.
주011)
태종황제(太宗皇帝):명나라 태종. 명나라 제3대 황제(재위 1402~1424). 지방의 번왕(蕃王)으로 연왕(燕王)이라 불렸으며 건문제가 공격해 오자 난을 일으켜 황제가 되었음.
주012)
효행록(孝行錄):고려 충목왕 때의 효자 권보(權溥)와 그의 아들 준(準)에 관한 기록을 모아 엮은 책. 고려 말에 초판이 나왔으며 세종 10년(1428)에 설순(偰循) 등이 개정하여 중간하였음. 초간본에는 이제현(李齊賢)의 서(序)가 있고, 후에 권근(權近)을 그리게 한 뒤 그것을 이제현에게 주면서 찬(賛)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여 아버지를 위안하였다 함. 이에 권보도 38효행을 골라 이제현에게서 찬을 지어 받았는데, 전 24찬은 12구(句), 후 38찬은 8구로 되어 있음.
주013)
이제현(李齊賢):충렬왕 14년(1287)~공민왕 16년(1367). 고려 후기의 문신·학자·문인.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지공(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역옹(櫟翁). 고려 건국 초의 삼한공신(三韓功臣) 금서(金書)의 후예로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진(瑱)이다. 아버지 진이 과거를 통해 크게 출세함으로써, 비로소 가문의 이름이 높아졌음.
주014)
보신(輔臣):높은 벼슬아치들.
주015)
주자소(鑄字所):태종 3년(1403)에 승정원의 직속기관으로 설치되어 문종 1년(1451) 7월부터 12월까지 잠깐 폐지된 적이 있으며, 세조 6년(1460) 5월에 교서관에 이속시켜, 전교서(典校署)로 개칭되었음.
주016)
권채(權採):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서(汝鋤). 아버지는 제학(提學) 우(遇)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판사(判事) 빈(贇)의 딸이다. 또한 조선 초기 유학의 대가인 권근(權近)의 조카임. 어려서부터 문장에 뛰어난 재질이 있었으며, 가학(家學)을 이어받아 경전을 깊이 연구하였다. 태종 17년(1417)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 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세종 7년(1425) 집현전 수찬에 임명되었고, 세종 9년 문과 중시에 급제하여 집현전응교가 되었음.
주017)
걸주(桀紂):중국 하(夏)나라의 걸왕(桀王)과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을 가리키는 말로, 포악무도(暴惡無道)의 대명사로 쓰임.
주018)
강상(綱常):유교의 기본 덕목인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을 말함.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부위자강(父爲子綱)·부위부강(夫爲婦綱)임. 오상은 사람이 항상 행(行)하여야 하는 5가지 바른 행실. 곧 인(仁)·의(儀)·예(禮)·지(智)·신(信) 또는 아버지의 의(義), 어머니의 자(慈), 형의 우(友), 동생의 공(恭), 아들의 효(孝)를 말함.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를 뜻함.
주019)
감발(感發):크게 느낀 바가 있어, 마음과 힘을 떨쳐 일어남.
주020)
남해(南陔):『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 제목만 있고 시는 전하지 않는데, 그 가사가 없어진 것이라고도 하고, 원래 생(笙)으로 연주하던 악곡(樂曲)이기 때문에 곡(曲)만 있고 가사는 없는 것이라고도 함. 모시서(毛詩序)에 따르면 남해는 ‘효자가 서로 훈계하며 봉양하는[孝子相戒以養也]’ 뜻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함.
주021)
백화(白華):『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현재는 그 제목만 전해지고 있음. 『시경』의 서문에 백화는 효자의 제수를 깨끗하게 하는 것을 노래한 것이라고 하였음.
주022)
한광(漢廣):『시경(詩經)』에 나오는 시.
주023)
여분(汝墳):『시경(詩經)』에 나오는 시.
주024)
왕화(王化):임금의 덕행으로 감화하게 함. 또는 그런 감화.
주025)
이남(二南):『시경』 국풍(國風)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 주남은 주공 단(周公旦, 희단姬旦)을, 소남은 소공 석(召公奭, 희석姬奭)을 기념하는 이름이며, 백성의 애환과 가정을 덕으로 다스려 교화가 나라에 퍼짐을 많이 읊은 시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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