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정속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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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벗을 삼가 사귀어라


愼交友

버들 주001)
버들:
벋[友]+-을(목적격 조사). 벗을. 여기서는 연철 표기를 하고 있지만 바로 다음에서 ‘벋디란’과 같은 중철 표기가 등장한다.
삼가아 주002)
삼가아:
삼가-[愼]+-아(연결 어미). 삼가. 말음이 ‘ㅏ’인 어간에 다시 연결 어미 ‘-아’가 붙었는데 이런 현상은 ≪석보상절≫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대개는 어미 ‘-아’가 줄어든 표기를 하고 있다.
사괴라】

欲進其德必資朋友故以愼交友次之

그 너[더]게 나가려 홀뎐 모로미 주003)
모로미:
모름지기.
버듸게 뢰 거시라 벋 삼가아 사괴욤 주004)
사괴욤:
사괴-[交]+-옴(명사형 어미)+-(목적격 조사). 사귐을. ‘사괴욤’은 중철 표기이다.
버거 노라

신교우(愼交友)【벗을 삼가 사귀어라.】

그 덕(德)에 나아가려 할진대 모름지기 벗에게 힘입을 것이다. 그러므로 벗을 삼가 사귀는 것을 그 다음으로 한다.

友也者 友其德也 自天子 至於庶人 莫不資友以成其德也 是故以進德言之則有切磋之益 以脩業言之則有匡正之功 以行事言之則導其所當爲而輔其所不及 故人之大倫 有五而朋友居其一焉 自堯舜之爲君 伊傅周召之爲臣 皆不能一日無友 世敎旣衰 君臣父子夫婦長幼

14ㄱ

鮮由其道 皆爲無賢師友以輔導之故也 雖然有君子之友 有小人之友 君子之友則薰陶漸染 以成其善 小人之友則薰陶漸染 以成其惡 此朋友之所當愼也 愼也者 擇其善者而從之 不善者而遠之 語云 友直友諒友多聞益矣 友便辟友善柔友便佞損矣
Ⓒ 필자 | 왕일암(중국-원) / 1345년(원나라 지정 5년)

■구결 풀이■
: 은/는
: 니/이니
: 로/으로
:
: 라/이라
爲古 : 하고
伊尼羅 : 이니라
:
爲也 : 하야
乎未 : 홈이(함이)
爲旀 : 하며
爲尼 : 하니
爲飛尼 : 하나니
乎代 : 호되(하되)
: 오/이오
羅爲豆多 : 라/이라 하도다

벋디란 주005)
벋디란:
벋[友]+-이란(보조사). 벗이란. ‘벋디란’은 중철 표기이다.
거슨 그 덕글 주006)
덕글:
덕(德)+-을(목적격 조사). 덕을. ‘덕글’은 중철 표기이다.
벗 삼니 님굼므로브터 주007)
님굼므로브터:
님굼[君]+-으로(조격 조사)+-브터(보조사). 임금으로부터. ‘님굼므로’는 중철 표기이다.
네 주008)
네:
(常人)+-에(처격 조사). 보통 사람에. ‘네’는 중철 표기이다.
니르히 주009)
니르히:
니르-[至]+-히(부사 접미사). 이르기까지. 여기에 쓰인 부사 접미사 ‘-히’가 15세기 국어에서는 한자 至에 붙어 ‘至히/지히’로 쓰였고, 고유어 동사 ‘니를-’에는 접미사 ‘-이’가 연결되어 ‘니르리’로 쓰였다.
뉘 아니 벋들 뢰 주010)
뢰(資賴):
의지함. 밑천을 삼음. 힘입음.
여 덕글 일우리오 이런 줄로 덕글 나갈딘댄 주011)
나갈딘댄:
낫-[進]+-아(연결 어미)+가-[去]+-ㄹ딘댄(종속적 연결 어미). 나아갈진대. 어미 ‘-ㄹ딘댄’은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서 ‘-딘댄’으로 표기되었다.
벋디 서르 쳐 유익게 고 조 주012)
조:
재주.
홀뎐 주013)
홀뎐:
-[爲]+-오-(삽입 모음)+-ㄹ뎐(종속적 연결 어미). 할진대. 하려 하면. 어미 ‘-ㄹ뎐’은 ‘-ㄹ뎬’으로 많이 나타난다.
버디 고티힐훈 주014)
고티힐훈:
고티힐후-[匡正]+-ㄴ(관형사형 어미). 고쳐 바르게 하는. 일사본에 “고텨 바게 ”(23ㄴ)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 잇고 일를 주015)
일:
일[事]+-(목적격 조사). 일을. ‘일’은 중철 표기이다.
홀뎐 벋디 주016)
버디/벋디:
벋[友]+-이(주격 조사). 벗이. 한 문장에서 연철 표기 ‘버디’와 중철 표기 ‘벋디’가 혼용되고 있다.
가이 주017)
가이:
마땅히.
욜 주018)
욜:
-[爲]+-요-(삽입 모음)+-ㄹ(관형사형 어미). 할. 동사 어간 ‘-’에 삽입 모음이 연결된 형태는 어간 모음 ‘ㆍ’가 탈락한 ‘호-’가 되거나 어간 모음이 탈락하지 않은 ‘요-’가 된다.
일를 인도 주019)
인도(引導):
이끌어 지도함.

14ㄴ

고 몯 미치[처] 주020)
미처:
및-[及]+-어(연결 어미). 미치어.
간 듸 돕니 그러홈모로 주021)
그러홈모로:
그러-[然]+-옴(명사형 어미)+-오로(조격 조사). 그러함으로. 그러므로. ‘그러홈모로’는 중철 표기이다.
사름 주022)
사름:
사름[人]+-(관형격 조사). 사람의. 명사 ‘사’의 둘째 음절에 쓰인 ‘ㆍ’가 동요를 일으켜 ㅡ 모음으로 표기되었다. ‘사름’은 이 시기의 여러 문헌에서 볼 수 있다.
인륜니 주023)
인륜니:
인륜(人倫)+-이(주격 조사). 인륜이. ‘인륜니’는 중철 표기이다.
다 가지로 벋디 나해 주024)
나해:
나ㅎ[一]+-애(처격 조사). 하나에.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는 ‘나ㅎ’로 표기되었다.
혜니라 주025)
혜니라:
혜-[量]+-니라(평서법 어미). 친다[看做]. 생각한다.
주026)
요[堯]:
중국 전설상의 성제(聖帝). 오제(五帝)의 한 사람으로서 백성이 잘 따라 평화로웠다고 하며, 순(舜)과 아울러 오랫동안 제왕의 모범으로서 이상적인 제왕으로 일컬어졌다.
【사름】 주027)
-:
-같이.
【사름】 시니 주028)
시니:
-[如]+-시-(주체 높임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ø(zero주격 조사). 같으신 사람이. 바로 다음에는 중철 표기인 ‘신니’가 나타난다.
님굼 도시며 주029)
도시며:
되시며.
이윤【사름】 부열【사름】 쥬공【사름】 쇼【사름】 신니 신해 주030)
신해:
신하(臣下)+-ㅣ(주격 조사). 신하가.
도샤도 다 도 주031)
도:
[一日]+-도(보조사). 하루도.
벋 업시 몯시더니라 주032)
몯시더니라:
몯-[不]+-시-(주체 높임 선어말 어미)+-더-(과거 시제 선어말 어미)+-니라(평서법 어미). 못하셨다.
시졀리 주033)
시졀리:
시졀(時節)+-이(주격 조사). 시절이. ‘시졀리’는 중철 표기이다.
사오나와 님구미시며 신해며 아비며 셕기며 남진니며 주034)
남진니며:
남진[夫]+-이며(접속 조사). 남편이며. ‘남진니며’는 중철 표기이다.
겨집비며 주035)
겨집비며:
겨집[婦]+-이며(접속 조사). 아내며. ‘겨집비며’는 중철 표기이다.
얼운니며 주036)
얼운니며:
얼운[長]+-이며(접속 조사). 어른이며. ‘얼운니며’는 중철 표기이다.
아 주037)
아:
아[幼]+ø(zero주격 조사). 아이가.
그 도 좃디 주038)
좃디:
좇-[從]+-디(보조적 연결 어미). 따르지. 동사 ‘좇-’의 어간 말음 ㅊ이 자음 앞에서 8종성 제한 규칙에 따라 ㅅ으로 교체되었다.
아니호 주039)
아니호:
아니-[不]+-옴(명사형 어미)+-(보조사). 아니함은.
어딘 주040)
어딘:
어딜-[善]+-ㄴ(관형사형 어미). 선한. 어진. 어간 말음 ㄹ은 ㄴ 앞에서 탈락한다.
스 벋디 도아 힌[인]도리 업스모로 주041)
업스모로:
없-[無]+-으모로(종속적 연결 어미). 없으므로.
그러니라 그러나 어딘 벋도 이시며 사오나온 벋도 잇니 어딘 버든 보화 주042)
보화:
보-[見]+호-[學]+-아(연결 어미). 보고 배워서. ‘보호-’는 두 개의 동사 어간 ‘보-’와 ‘호-’가 직접 통합된 비통사적 합성동사이다.
달마 주043)
달마:
닮-[染]+-아(연결 어미). 물들어. 닮아.
어딘 이를 고 사오나온 버든 보화 달마 주044)
왼:
그릇된. 잘못된.
일를 니 이 버들 삼가 사괼 일리라 주045)
일리라:
일[事]+-이라(서술격 조사). 일이다. ‘일리라’는 중철 표기이다.
삼갈딘댄 그 어딘니란 주046)
어딘니란:
어딜-[善]+-ㄴ(관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란(보조사). 어진 사람을.
여 주047)
여:
-[擇]+-어(연결 어미). 가려서.
좃고 어디디 아니니란

15ㄱ

주048)
머리:
멀-[遠]+-이(부사 접미사). 멀리.
홀디라 주049)
홀디라:
-[爲]+-오-(삽입 모음) _ -ㄹ디라(평서법 어미). 할 것이다.
녜 닐우 고디식니 주050)
고디식니:
고디식-[直]+-ㄴ(관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 정직한 사람. 곧이곧대로 하는 사람.
유신 주051)
유신(有信):
신실함이 있음.
니 듣본 주052)
듣본:
듣-[聞]+보-[見]+-ㄴ(관형사형 어미). 듣고 보는. ‘듣보-’는 동사 어간 ‘듣-’과 ‘보-’가 어간끼리 직접 연결되어 형성된 합성동사이다.
하닐 주053)
하닐:
하-[多]+-ㄴ(곤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ㄹ(목적격 조사). 많은 사람을.
벋면 유익고 편편코 주054)
편편코:
편편-[便便]+-고(대등적 연결 어미). 비위를 잘 맞추고.
가오니 주055)
가오니:
갑-[慧]+-(관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 슬기로운 사람. 꾀 있는 사람. ‘갑-’은 ㅂ불규칙 용언이어서 어간 말음 ㅂ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는 ㅗ/ㅜ로 교체된다.
주056)
:
본성(本性).
부드러우니 주057)
부드러우니:
부드럽-[柔]+-은(관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 부드러운 사람. ‘부드럽-’도 ㅂ불규칙 용언이어서 어간 말음 ㅂ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는 ㅗ/ㅜ로 교체된다. 한문 원문에는 “ 부드러우니”를 ‘선유(善柔)’로 나타내고 있는데, ‘선유’는 성실한 마음이 없고 외면만 부드럽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리고 일사본에는 ‘우선유(友善柔)’를 “됴 냥을 잘니 벗며”(24ㄴ)로 번역해 놓았다.
기려 주058)
기려:
기리-[讚]+-어(연결 어미). 기려. 칭송하여.
재닐 주059)
재니:
재-[敏]+-ㄴ(관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 〈입을〉 가볍게 놀리는 사람. 한문 원문에는 “입 재니”를 ‘편녕(便佞)’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편녕’은 일 처리에서 말만 앞세우고 실속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리고 일사본에는 ‘우편녕(友便佞)’을 “입에 말만 잘니 벗면”(24ㄴ)으로 번역해 놓았다.
벋면 유해 주060)
유해(有害):
해로움이 있음.
리라
Ⓒ 언해 | 김안국(조선) / 1518년(중종 13)

벗이란 것은 그 덕으로 벗을 삼는 것이니, 임금에서부터 보통 사람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벗을 힘입어 덕을 이루지 아니하겠는가? 이러므로 덕으로 나아가려 하면 벗이 서로 가르쳐 도움이 되게 하고, 재주를 발휘하려 하면 벗이 고쳐 바르게 해 주는 공이 있고, 일을 하려 하면 그 마땅히 할 일을 이끌어 지도하고, 미치지 못하는 데를 도와주니, 그러므로 사람의 큰 인륜이 다섯 가지인데 벗이 그 중의 하나로 들어간다. 요(堯)【사람】 같거나 순(舜) 주061)
순(舜):
≪사기(史記)≫에 의하면, 순은 전욱(顓頊)의 6세손으로 그의 아버지 고수(瞽膄)는 장님이었다. 순이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후처를 얻었다. 순은 계모와 이복 동생 상(象)의 미움을 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살해당할 뻔한 사건들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효행의 도를 다하였다. 당시 천자(天子) 요는 순의 평판을 듣고 자신의 두 딸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순에게 출가시켜 등용하였다. 순의 치적이 훌륭하였으므로 섭정(攝政)으로 하였다. 요가 죽자 순은 요의 아들 단주(丹朱)를 즉위시키려 하였으나 천하의 인심이 순에게 기울어졌기 때문에 마침내 순이 제위에 올랐다. 요와 마찬가지로 순이 통치하였던 치세에도 태평성대를 누렸으며 치수 사업을 성공시켜 홍수 피해를 막았다. 순에게는 상균(商均)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현명하지 못해 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주지 않고 치수 사업에 공적이 큰 우(禹)에게 이양하였다. 그 후 순은 지방을 순행하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고 한다.
【사람】 같으신 분이 임금도 되시며, 이윤(伊尹) 주062)
이윤(伊尹):
탕왕을 도와 하(夏)나라의 걸왕을 멸망시키고 선정을 베풀었다. 이윤은 본디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가 탕왕(湯王)의 부름을 세 번 받고 나아가 탕왕을 도와 중국을 평정하였다. 탕왕이 죽은 뒤에는 왕위에 오른 외병(外丙), 중임(中壬), 태갑(太甲)을 섬겼다. 탕왕의 손자인 태갑은 무도(無道)하여 탕왕의 법을 어지럽히자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으로 추방하고 스스로 천자의 일을 섭행(攝行)하였다. 3년 후에 태갑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덕을 닦자 왕위에 복위시키고 보좌에 힘썼다. 이윤의 인품은 후대에도 칭송되었는데, 송나라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의 말을 참고하면, 이윤은 뛰어난 현자로서, 자신이 보좌하던 임금이 요순의 법도와 정사대로 백성을 다스리지 못하면 이를 자신의 탓으로 여겨 항상 자신을 책망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백성들 중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자리를 잡지 못했다면 그것까지 자신의 책임으로 여겨 마치 사람 많은 시장에서 종아리를 맞는 것과 같이 스스로를 책망했었다고 한다.
【사람】부열(傅說) 주063)
부열(傅說):
토목 공사의 일꾼이었는데, 당시(當時)의 재상(宰相)으로 등용되어 중흥의 대업을 이루었다. 원래 죄수였으나 무정(武丁)에게 발견되어 중용되었다.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무정이 즉위하여 다시 나라를 일으키려고 생각했지만 보좌해 줄 만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성인을 보았는데 이름이 열(說)이라고 했다. 꿈에서 본 인상을 가지고 군신, 백관들을 관찰했는데 모두가 아니었다. 그래서 비슷한 얼굴을 그려서 민가에서 찾게 했더니 부험(傅險) 가운데서 열을 찾아냈다. 이때 열은 죄를 짓고 부험에서 축을 쌓는 노역을 하고 있었다. 무정에게 보였더니 무정이 바로 그 사람이라 했다. 대화를 해 보니 과연 성인이었다. 그리하여 그를 재상으로 등용했더니 은은 잘 다스려졌다. 그래서 부험의 성을 따 이름을 부열(傅說)이라 하였다.” 부열은 모든 힘을 다하여 무정을 보좌함으로써 상왕조 국력을 크게 증강시켜 번영하게 되었다.
【사람】주공(周公) 주064)
주공(周公):
서주(西周) 초기의 유명한 정치가, 군사가, 교육가이다. 그의 채읍(采邑)이 주(周)의 땅
(지금의 섬서성 부풍현)
에 있었기 때문에 ‘주공’이라 일컬어졌다. 휘는 문(文), 후세 사람들은 그를 선성(先聖), 원성(元聖)이라 칭하였으며, 당대(唐代)에는 문헌왕(文憲王)이라 하였다. 주공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다재다능하였으며,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였다. 문왕(文王)이 살아있을 때부터 그는 형 희발(姬發
무왕
)과 함께 항상 아버지를 도와 주나라의 여러 업무를 관장했다. 문왕이 세상을 떠난 후 무왕이 왕위를 이어받자 그는 계속해서 무왕을 보좌하였다. 이때 그의 위치는 노신 강태공(姜太公)에 버금갔다. 주공은 무왕을 도와 상(商)의 폭군 주왕(紂王)을 토벌하고 주나라를 세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공을 인정받아 그는 곡부(曲阜)에 봉해지고 노공(魯公)이라 일컬어졌다.
【사람】소공(召公) 주065)
소공(召公):
지금의 섬서 기산 지역인 소(召) 땅을 식읍(食邑)으로 하여 소공(召公)이라고 부르며, 소공석(召公奭), 소백(召伯), 소강공(召康公), 주소공(周召公)이라고도 한다. 주(周) 성왕(成王) 때에 삼공(三公)의 위(位)에 올랐으며, 태보(太保)의 직책(職責)을 맡았다.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을 멸망시키고 주(周)를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연(燕, 지금의 하북 북부)을 분봉(分封)받아 전국시대(戰國時代) 칠웅(七雄) 가운데 하나인 연(燕)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하지만 소공은 직접 연(燕)을 다스리지는 않고, 호경(鎬京
지금의 섬서성 장안현
)에 머물러 있으면서 장자(長子)인 희극(姬克)을 계(薊, 지금의 北京)로 보내 다스렸다. 소공은 주(周) 문왕(文王)부터 강왕(康王)까지 4대에 걸쳐 정사(政事)를 돌보았는데, 특히 무왕(武王)이 죽고 성왕(成王)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주공(周公) 희단(姬旦)과 함께 훌륭히 보필하여 주(周) 왕조(王朝)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소공과 주공은 각각 주(周)를 동서(東西)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주공은 낙읍(洛邑
지금의 하남성 낙양
)에 머물면서 동쪽 지역과 제후(諸侯)들을 관장하였고, 소공은 서쪽 지역을 다스렸다. 소공이 다스렸던 지역에서는 후백(侯伯)부터 서인(庶人)까지 모두 제 할 일을 얻어 실직자가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범적인 통치가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그는 곳곳을 순시하며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폈는데, 감당(甘棠) 나무 아래에서 백성의 송사(訟事)를 듣고 공정하게 해결해 주어 후대(後代)에도 사람들이 소공을 대하듯 그 나무를 대하며 그의 선정(善政)을 기렸다고 한다.
【사람】 같으신 분은 신하가 되었지만 모두가 하루도 벗 없이는 하지 못하셨다. 시절이 악해져서 임금과 신하며 부모와 자식이며 남편과 아내며 어른과 아이가 그 도(道)를 따르지 아니함은 다 어진 스승과 벗이 도와서 인도해 줌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나 〈벗에는〉 어진 벗도 있고 어질지 못한 벗도 있으니, 어진 벗은 보고 배운 대로 물들어 선한 일을 하고 어질지 못한 벗은 보고 배운 대로 물들어 그릇된 일만 하니, 이 벗을 사귈 때는 삼가 사귀어야 할 것이다. 삼간다는 것은 그 어진 사람을 가려서 따르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다. 옛적에 ≪논어≫에 이르기를, “정직한 사람, 신실한 사람, 견문이 많은 사람을 벗하면 유익하고, 비위를 잘 맞추며 꾀를 부리는 사람, 본성은 부드러우나 줏대가 없는 사람, 남을 칭송하면서 입을 가볍게 놀리는 사람을 벗하면 해로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 역자 | 김문웅 / 2010년 12월 1일

원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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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버들:벋[友]+-을(목적격 조사). 벗을. 여기서는 연철 표기를 하고 있지만 바로 다음에서 ‘벋디란’과 같은 중철 표기가 등장한다.
주002)
삼가아:삼가-[愼]+-아(연결 어미). 삼가. 말음이 ‘ㅏ’인 어간에 다시 연결 어미 ‘-아’가 붙었는데 이런 현상은 ≪석보상절≫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대개는 어미 ‘-아’가 줄어든 표기를 하고 있다.
주003)
모로미:모름지기.
주004)
사괴욤:사괴-[交]+-옴(명사형 어미)+-(목적격 조사). 사귐을. ‘사괴욤’은 중철 표기이다.
주005)
벋디란:벋[友]+-이란(보조사). 벗이란. ‘벋디란’은 중철 표기이다.
주006)
덕글:덕(德)+-을(목적격 조사). 덕을. ‘덕글’은 중철 표기이다.
주007)
님굼므로브터:님굼[君]+-으로(조격 조사)+-브터(보조사). 임금으로부터. ‘님굼므로’는 중철 표기이다.
주008)
네:(常人)+-에(처격 조사). 보통 사람에. ‘네’는 중철 표기이다.
주009)
니르히:니르-[至]+-히(부사 접미사). 이르기까지. 여기에 쓰인 부사 접미사 ‘-히’가 15세기 국어에서는 한자 至에 붙어 ‘至히/지히’로 쓰였고, 고유어 동사 ‘니를-’에는 접미사 ‘-이’가 연결되어 ‘니르리’로 쓰였다.
주010)
뢰(資賴):의지함. 밑천을 삼음. 힘입음.
주011)
나갈딘댄:낫-[進]+-아(연결 어미)+가-[去]+-ㄹ딘댄(종속적 연결 어미). 나아갈진대. 어미 ‘-ㄹ딘댄’은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서 ‘-딘댄’으로 표기되었다.
주012)
조:재주.
주013)
홀뎐:-[爲]+-오-(삽입 모음)+-ㄹ뎐(종속적 연결 어미). 할진대. 하려 하면. 어미 ‘-ㄹ뎐’은 ‘-ㄹ뎬’으로 많이 나타난다.
주014)
고티힐훈:고티힐후-[匡正]+-ㄴ(관형사형 어미). 고쳐 바르게 하는. 일사본에 “고텨 바게 ”(23ㄴ)으로 번역되어 있다.
주015)
일:일[事]+-(목적격 조사). 일을. ‘일’은 중철 표기이다.
주016)
버디/벋디:벋[友]+-이(주격 조사). 벗이. 한 문장에서 연철 표기 ‘버디’와 중철 표기 ‘벋디’가 혼용되고 있다.
주017)
가이:마땅히.
주018)
욜:-[爲]+-요-(삽입 모음)+-ㄹ(관형사형 어미). 할. 동사 어간 ‘-’에 삽입 모음이 연결된 형태는 어간 모음 ‘ㆍ’가 탈락한 ‘호-’가 되거나 어간 모음이 탈락하지 않은 ‘요-’가 된다.
주019)
인도(引導):이끌어 지도함.
주020)
미처:및-[及]+-어(연결 어미). 미치어.
주021)
그러홈모로:그러-[然]+-옴(명사형 어미)+-오로(조격 조사). 그러함으로. 그러므로. ‘그러홈모로’는 중철 표기이다.
주022)
사름:사름[人]+-(관형격 조사). 사람의. 명사 ‘사’의 둘째 음절에 쓰인 ‘ㆍ’가 동요를 일으켜 ㅡ 모음으로 표기되었다. ‘사름’은 이 시기의 여러 문헌에서 볼 수 있다.
주023)
인륜니:인륜(人倫)+-이(주격 조사). 인륜이. ‘인륜니’는 중철 표기이다.
주024)
나해:나ㅎ[一]+-애(처격 조사). 하나에.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는 ‘나ㅎ’로 표기되었다.
주025)
혜니라:혜-[量]+-니라(평서법 어미). 친다[看做]. 생각한다.
주026)
요[堯]:중국 전설상의 성제(聖帝). 오제(五帝)의 한 사람으로서 백성이 잘 따라 평화로웠다고 하며, 순(舜)과 아울러 오랫동안 제왕의 모범으로서 이상적인 제왕으로 일컬어졌다.
주027)
-:-같이.
주028)
시니:-[如]+-시-(주체 높임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ø(zero주격 조사). 같으신 사람이. 바로 다음에는 중철 표기인 ‘신니’가 나타난다.
주029)
도시며:되시며.
주030)
신해:신하(臣下)+-ㅣ(주격 조사). 신하가.
주031)
도:[一日]+-도(보조사). 하루도.
주032)
몯시더니라:몯-[不]+-시-(주체 높임 선어말 어미)+-더-(과거 시제 선어말 어미)+-니라(평서법 어미). 못하셨다.
주033)
시졀리:시졀(時節)+-이(주격 조사). 시절이. ‘시졀리’는 중철 표기이다.
주034)
남진니며:남진[夫]+-이며(접속 조사). 남편이며. ‘남진니며’는 중철 표기이다.
주035)
겨집비며:겨집[婦]+-이며(접속 조사). 아내며. ‘겨집비며’는 중철 표기이다.
주036)
얼운니며:얼운[長]+-이며(접속 조사). 어른이며. ‘얼운니며’는 중철 표기이다.
주037)
아:아[幼]+ø(zero주격 조사). 아이가.
주038)
좃디:좇-[從]+-디(보조적 연결 어미). 따르지. 동사 ‘좇-’의 어간 말음 ㅊ이 자음 앞에서 8종성 제한 규칙에 따라 ㅅ으로 교체되었다.
주039)
아니호:아니-[不]+-옴(명사형 어미)+-(보조사). 아니함은.
주040)
어딘:어딜-[善]+-ㄴ(관형사형 어미). 선한. 어진. 어간 말음 ㄹ은 ㄴ 앞에서 탈락한다.
주041)
업스모로:없-[無]+-으모로(종속적 연결 어미). 없으므로.
주042)
보화:보-[見]+호-[學]+-아(연결 어미). 보고 배워서. ‘보호-’는 두 개의 동사 어간 ‘보-’와 ‘호-’가 직접 통합된 비통사적 합성동사이다.
주043)
달마:닮-[染]+-아(연결 어미). 물들어. 닮아.
주044)
왼:그릇된. 잘못된.
주045)
일리라:일[事]+-이라(서술격 조사). 일이다. ‘일리라’는 중철 표기이다.
주046)
어딘니란:어딜-[善]+-ㄴ(관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란(보조사). 어진 사람을.
주047)
여:-[擇]+-어(연결 어미). 가려서.
주048)
머리:멀-[遠]+-이(부사 접미사). 멀리.
주049)
홀디라:-[爲]+-오-(삽입 모음) _ -ㄹ디라(평서법 어미). 할 것이다.
주050)
고디식니:고디식-[直]+-ㄴ(관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 정직한 사람. 곧이곧대로 하는 사람.
주051)
유신(有信):신실함이 있음.
주052)
듣본:듣-[聞]+보-[見]+-ㄴ(관형사형 어미). 듣고 보는. ‘듣보-’는 동사 어간 ‘듣-’과 ‘보-’가 어간끼리 직접 연결되어 형성된 합성동사이다.
주053)
하닐:하-[多]+-ㄴ(곤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ㄹ(목적격 조사). 많은 사람을.
주054)
편편코:편편-[便便]+-고(대등적 연결 어미). 비위를 잘 맞추고.
주055)
가오니:갑-[慧]+-(관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 슬기로운 사람. 꾀 있는 사람. ‘갑-’은 ㅂ불규칙 용언이어서 어간 말음 ㅂ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는 ㅗ/ㅜ로 교체된다.
주056)
:본성(本性).
주057)
부드러우니:부드럽-[柔]+-은(관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 부드러운 사람. ‘부드럽-’도 ㅂ불규칙 용언이어서 어간 말음 ㅂ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는 ㅗ/ㅜ로 교체된다. 한문 원문에는 “ 부드러우니”를 ‘선유(善柔)’로 나타내고 있는데, ‘선유’는 성실한 마음이 없고 외면만 부드럽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리고 일사본에는 ‘우선유(友善柔)’를 “됴 냥을 잘니 벗며”(24ㄴ)로 번역해 놓았다.
주058)
기려:기리-[讚]+-어(연결 어미). 기려. 칭송하여.
주059)
재니:재-[敏]+-ㄴ(관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 〈입을〉 가볍게 놀리는 사람. 한문 원문에는 “입 재니”를 ‘편녕(便佞)’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편녕’은 일 처리에서 말만 앞세우고 실속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리고 일사본에는 ‘우편녕(友便佞)’을 “입에 말만 잘니 벗면”(24ㄴ)으로 번역해 놓았다.
주060)
유해(有害):해로움이 있음.
주061)
순(舜):≪사기(史記)≫에 의하면, 순은 전욱(顓頊)의 6세손으로 그의 아버지 고수(瞽膄)는 장님이었다. 순이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후처를 얻었다. 순은 계모와 이복 동생 상(象)의 미움을 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살해당할 뻔한 사건들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효행의 도를 다하였다. 당시 천자(天子) 요는 순의 평판을 듣고 자신의 두 딸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순에게 출가시켜 등용하였다. 순의 치적이 훌륭하였으므로 섭정(攝政)으로 하였다. 요가 죽자 순은 요의 아들 단주(丹朱)를 즉위시키려 하였으나 천하의 인심이 순에게 기울어졌기 때문에 마침내 순이 제위에 올랐다. 요와 마찬가지로 순이 통치하였던 치세에도 태평성대를 누렸으며 치수 사업을 성공시켜 홍수 피해를 막았다. 순에게는 상균(商均)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현명하지 못해 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주지 않고 치수 사업에 공적이 큰 우(禹)에게 이양하였다. 그 후 순은 지방을 순행하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고 한다.
주062)
이윤(伊尹):탕왕을 도와 하(夏)나라의 걸왕을 멸망시키고 선정을 베풀었다. 이윤은 본디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가 탕왕(湯王)의 부름을 세 번 받고 나아가 탕왕을 도와 중국을 평정하였다. 탕왕이 죽은 뒤에는 왕위에 오른 외병(外丙), 중임(中壬), 태갑(太甲)을 섬겼다. 탕왕의 손자인 태갑은 무도(無道)하여 탕왕의 법을 어지럽히자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으로 추방하고 스스로 천자의 일을 섭행(攝行)하였다. 3년 후에 태갑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덕을 닦자 왕위에 복위시키고 보좌에 힘썼다. 이윤의 인품은 후대에도 칭송되었는데, 송나라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의 말을 참고하면, 이윤은 뛰어난 현자로서, 자신이 보좌하던 임금이 요순의 법도와 정사대로 백성을 다스리지 못하면 이를 자신의 탓으로 여겨 항상 자신을 책망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백성들 중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자리를 잡지 못했다면 그것까지 자신의 책임으로 여겨 마치 사람 많은 시장에서 종아리를 맞는 것과 같이 스스로를 책망했었다고 한다.
주063)
부열(傅說):토목 공사의 일꾼이었는데, 당시(當時)의 재상(宰相)으로 등용되어 중흥의 대업을 이루었다. 원래 죄수였으나 무정(武丁)에게 발견되어 중용되었다.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무정이 즉위하여 다시 나라를 일으키려고 생각했지만 보좌해 줄 만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성인을 보았는데 이름이 열(說)이라고 했다. 꿈에서 본 인상을 가지고 군신, 백관들을 관찰했는데 모두가 아니었다. 그래서 비슷한 얼굴을 그려서 민가에서 찾게 했더니 부험(傅險) 가운데서 열을 찾아냈다. 이때 열은 죄를 짓고 부험에서 축을 쌓는 노역을 하고 있었다. 무정에게 보였더니 무정이 바로 그 사람이라 했다. 대화를 해 보니 과연 성인이었다. 그리하여 그를 재상으로 등용했더니 은은 잘 다스려졌다. 그래서 부험의 성을 따 이름을 부열(傅說)이라 하였다.” 부열은 모든 힘을 다하여 무정을 보좌함으로써 상왕조 국력을 크게 증강시켜 번영하게 되었다.
주064)
주공(周公):서주(西周) 초기의 유명한 정치가, 군사가, 교육가이다. 그의 채읍(采邑)이 주(周)의 땅<세주>(지금의 섬서성 부풍현)에 있었기 때문에 ‘주공’이라 일컬어졌다. 휘는 문(文), 후세 사람들은 그를 선성(先聖), 원성(元聖)이라 칭하였으며, 당대(唐代)에는 문헌왕(文憲王)이라 하였다. 주공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다재다능하였으며,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였다. 문왕(文王)이 살아있을 때부터 그는 형 희발(姬發 <세주>무왕)과 함께 항상 아버지를 도와 주나라의 여러 업무를 관장했다. 문왕이 세상을 떠난 후 무왕이 왕위를 이어받자 그는 계속해서 무왕을 보좌하였다. 이때 그의 위치는 노신 강태공(姜太公)에 버금갔다. 주공은 무왕을 도와 상(商)의 폭군 주왕(紂王)을 토벌하고 주나라를 세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공을 인정받아 그는 곡부(曲阜)에 봉해지고 노공(魯公)이라 일컬어졌다.
주065)
소공(召公):지금의 섬서 기산 지역인 소(召) 땅을 식읍(食邑)으로 하여 소공(召公)이라고 부르며, 소공석(召公奭), 소백(召伯), 소강공(召康公), 주소공(周召公)이라고도 한다. 주(周) 성왕(成王) 때에 삼공(三公)의 위(位)에 올랐으며, 태보(太保)의 직책(職責)을 맡았다.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을 멸망시키고 주(周)를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연(燕, 지금의 하북 북부)을 분봉(分封)받아 전국시대(戰國時代) 칠웅(七雄) 가운데 하나인 연(燕)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하지만 소공은 직접 연(燕)을 다스리지는 않고, 호경(鎬京 <세주>지금의 섬서성 장안현)에 머물러 있으면서 장자(長子)인 희극(姬克)을 계(薊, 지금의 北京)로 보내 다스렸다. 소공은 주(周) 문왕(文王)부터 강왕(康王)까지 4대에 걸쳐 정사(政事)를 돌보았는데, 특히 무왕(武王)이 죽고 성왕(成王)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주공(周公) 희단(姬旦)과 함께 훌륭히 보필하여 주(周) 왕조(王朝)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소공과 주공은 각각 주(周)를 동서(東西)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주공은 낙읍(洛邑 <세주>지금의 하남성 낙양)에 머물면서 동쪽 지역과 제후(諸侯)들을 관장하였고, 소공은 서쪽 지역을 다스렸다. 소공이 다스렸던 지역에서는 후백(侯伯)부터 서인(庶人)까지 모두 제 할 일을 얻어 실직자가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범적인 통치가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그는 곳곳을 순시하며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폈는데, 감당(甘棠) 나무 아래에서 백성의 송사(訟事)를 듣고 공정하게 해결해 주어 후대(後代)에도 사람들이 소공을 대하듯 그 나무를 대하며 그의 선정(善政)을 기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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