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밀리 주001) 밀리: 밀(王密, 인명)+-이(주격 조사). 왕밀이. ‘왕밀리’는 중철 표기이다.
제 아와
아와 주002) 아와: 아[子]+-와(접속 조사). 아들과. 접속 조사 ‘-과/와’는 현대 국어에서 체언의 말음이 자음일 경우에는 ‘-과’, 모음일 경우에는 ‘-와’가 쓰이지만 중세 국어에서는 체언 말음이 ㄹ일 경우에도 ‘-와’가 쓰인다는 점이 현대와 다르다.
리고 주003) 리고: 리-[率]+-고(대등적 연결 어미). 데리고.
길 가다가
식기 주004) 식기: 식(糧食)+-이(주격 조사). 양식이. ‘식기’는 중철 표기이다.
업서 아와
아런 주005) 아런: 아[子]+-런(보조사). 아들은. 조사 ‘-런’은 ‘-란’의 오각이다. 〈규장각본〉(1727)에는 ‘아을란’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아래에는 ‘아’으로 표기한 예가 등장한다.
두고 제
호온자 주006) 희 주007) 희: ㅎ[村]+-의(처격 조사). 마을에.
식
빌라 주008) 빌라: 빌-[乞]+-라(목적의 연결 어미). 구하러, 얻으러.
갓다가
와 니 주009) 와 니: 오-[來]+-아(연결 어미)+-[爲]+-니(종속적 연결 어미). 와서 보니. ‘와 니’가 〈규장각본〉에는 ‘와 보니’로 번역되어 있다.
아
도긔게 주010) 후리여 주011) 후리여: 후리-[掠]+-어(연결 어미). 빼앗아. 휘몰아 채어.
가고 아 도여
수머 주012) 나거 밀리 그 아 가지고 도긔게 가 머리
조 주013) 조: 좃-[頓]+-아(연결 어미). 조아려. 어간 ‘좃-’이 모음 앞에서 ‘-’으로 교체되었다.
비러 주014) 닐우 인 주015) 인(人情):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심정.
이 다
식글 주016) 식글: 식(子息)+-을(목적격 조사). 자식을. ‘식글’은 중철 표기이다.
컨마 주017) 컨마: -[愛]+-건마(종속적 연결 어미). 사랑하건마는. 어간 말음절 ‘’가 유성 자음과 파열음 사이에서 ‘’의 모음이 탈락하고 ㅎ은 다음의 자음과 통합하여 유기음이 되었다.
오직 이 아 나디 아니여셔 아비
죽그시거 주018) 죽그시거: 죽-[死]+-으시-(높임법 선어말 어미)+-거(종속적 연결 어미). 돌아가시매. ‘죽그시거’은 ‘주그시거’의 중철 표기이다.
내
길어 주019) 길어: 기르-[養]+-어(연결 어미). 길러. 중세 국어에서 어간 ‘기르-’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오면 어간이 ‘길-’로 교체된다.
내여
이만 주020) 이만: 이[是]+-만(보조사). 이만큼. 이 정도.
도엿니
주021) : -[請]+-ㄴ(관형사형 어미)+(것, 의존 명사)+-ㄴ(보조사). 청하는 것은. 청컨대.
이 아로 아
밧고아지라 주022) 밧고 아지라: 밧고-[易]+-아지라(청원법 어미). 바꾸고 싶다. 청원(請願)법은 완곡한 명령법에 해당한다.
대 도들히 서르 닐우 아로 아 밧고니
12ㄴ
어디도다 주023) 어디도다: 어딜-[善]+-도다(감탄법 어미). 어질도다. 어간 말음 ㄹ은 ㄷ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탈락한다.
고 다 주어 보내니라 밀리
훼 주024) 훼: 후(後)+-에(처격 조사). 후에. ‘훼’는 ‘후에’의 축약된 표기이다.
죽거 아
믓 머굼도 주025) 믓머굼도: 믈[水]+ㅅ(사이시옷)+먹-[飮]+-움(명사형 어미)+-도(보조사). 물을 마시는 것도. 〈규장각본〉(1727)에는 ‘믈 머곰도’로 표기되어 있다. 여기서 ‘믓’은 사이시옷이 붙은 ‘믌’에서 ㄹ이 탈락한 형태이다. 이처럼 사이시옷 앞에서 말음ㄹ이 탈락하는 현상은 종종 볼 수 있다. ‘믌결:믓결’ ‘믌:믓’ ‘믌고기:믓고기’ ‘긼:깃’ 등.
아니
머고 주026) 머고: 먹-[飮]+-옴(명사형 어미). 먹음을. 마심을.
닷쇄 주027) 고
주028) (蒙喪): 부모상을 당해서 상복을 입음. 위의 언해문에서는 간단히 “ 니브니라”로 표현하고 있으나 한문 원문을 보면 “雖服喪期年 而心喪六載”(비록 1년의 상복을 입었지만 이어서 마음으로 상복을 6년 입었다)로 되어 있어 아우가 오래도록 형을 애도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규장각본〉의 언해문은 “심상을 여 희 니브니라”로 되어 있다.
니브니라 주029) 니브니라: 닙-[着]+-으니라(평서법 어미). 〈옷을〉 입었다.
Ⓒ 편찬 | 김안국 / 1518년(중종 13)
12ㄴ
王密 嘗與弟儁 子元直 西如凉州路中糧匱 密 留儁元直 西於途乞丏民間 比還 儁 爲賊所掠 元直 逃逸 密 乃將元直 追賊叩頭求哀 曰人情自當皆愛其子 但此弟未生 家君見背 孤遺相長 以至于今 請以元直易儁 賊相謂 曰以子易弟 義之大也 於是以儁元直授密而去 密後亡 儁勺水不入口者五日 雖服喪期年 而心喪六載
道出凉州乞丏歸 旋聞阿弟賊中圍 將兒換弟眞情切 盜賊無知亦解悲
亡親遺服只斯人 相愛相憐若一身 苟保吾兒棄吾弟 九泉何以謁吾親
Ⓒ 편찬 | 김안국 / 1518년(중종 13)
원본이미지
이 기사는 전체 2개의 원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