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득여소 송나라
북쪽(원나라) 군대가 요주를 치니, 〈송나라〉 강동 제치사 사 방득이 싸우다가 못 이겨 이름 갈고 산에 들어가니, 북쪽 군대가 방득의 아내를 잡아 가두었는데, 방득이 산골에 들어가 있다가 〈원나라의〉 대사면이 내려서 나가니, 아내는 벌써 죽었으므로, 건양 역사의 다리에 붙어 있더니, 〈원나라〉 참정 위 천우가 북녘으로 강제로 더불어 가려 하나, 죽기로 맹세하고 면하지 못할 줄 알고 밥 안 먹으며 위 참정이 말해도 대답 아니 하고 때로는 버릇없는 말 하므로, 위 참정이 꾸짖기를, “국경 신하가 국경에서 죽을 것인데, 싸움 못 이기고 어찌 아니 죽었느냐?” 대답하기를, “정영과 저구가 하나는 먼저 죽고 하나는 나중에 죽었고≪조 삭이 진나라 성공의 누님과 결혼했는데, 도 안고가 조 삭을 죽이고 친척까지 다 죽이니, 조 삭의 아내가 아기 배어 있다가 성공의 궁에 달려 들어갔다. 조 삭의 손 공손 저구가 손 정영에게 이르기를, “어찌 죽지 않느냐?” 정영이 이르기를, “조 삭의 아내가 아기 배어 있으니 다행히 아들만 낳으면 우러르고 딸이면 내가 조용히 죽으리라.” 오래지 않아 아들 낳으니 도 안고가 듣고 성공의 궁에서 찾다가 못하니, 정영이 이르기를, “당연히 또 찾을 것이다” 하니, 저구가 다른 아기를 업고 산에 가서 숨었더니, 모여 아기까지 잡아 죽였지만, 조 삭의 아기는 정영에게 가서 살아 났다≫, 왕 망이 한나라를 빼앗을 때 열 네 해 만에야 공 승이 죽으니, 죽음이 태산보다 무거운 것도 있고 터럭보다 가벼운 것도 있는데, 관을 닫아야 이를 확정할 것이니, 참정이 어찌 아시겠습니까?” 하고, 20여 일을 밥 안 먹고 죽다가 못 해서 또 다시 먹고 교자에 누워 채석강 건너 가서 또 밥 안 먹고 오직 나물과 과실만 먹고 두어 달 만에 지쳐 연경에 가서 역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