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삼강행실도

  • 역주 삼강행실도
  • 삼강행실효자도 주해
  • 삼강행실효자도(三綱行實孝子圖)
  • 서적독행(徐積篤行)
메뉴닫기 메뉴열기

서적독행(徐積篤行)


28ㄱ

徐積篤行

徐積이 세 설 머거셔 아비 죽거늘 아마다 甚히 슬피 어드며 아나죄 冠帶 야 어믜그 뵈더라 及第라  저긔 어미 리디 몯야 제 술위 주001)
술위:
수레.
어 주002)
어:
-어. 끌어.
가아 及第야 同年히 모다 어믜그 절고 이바디호려 커늘 받디 아니니라 아 일후미 돌히러니 죽록 돌그르슬 디 아니며 돌 디 아니터라 어미 죽거늘 슬허 피 吐며 侍墓 저긔 눈 온 바 墓ㅅ 겨틔 업데여 이셔 소리 그

28ㄴ

치디 아니야 울어늘 翰林學士ㅣ 디나가다가 듣고 우더라 甘露ㅣ 마다 墓애 디며 곳 가지 어우러 냇더니 주003)
냇더니:
나+-더니. 났더니.
居喪 고 주004)
고:
-고. 마치고.
돗과 궤와 걷디 아니고 이바도 平生티 더니 올셔 엳 조콰 주005)
조콰:
좋~과. 조와.
깁과 주라 시니라 後에 和州 防禦推官 얫다가 죽거늘 諡號≪諡 뎍로 일훔 고텨 지 씨라≫ 節孝處士ㅣ라 시니라≪節 節个ㅣ라≫
Ⓒ 편찬 | 세종(조선) 명찬 / 1481년(성종 12)

28ㄴ

徐積. 楚州人. 三歲父死. 旦旦求之甚哀. 事母朝夕冠帶定省. 從胡瑗學. 瑗饋以食弗受. 應擧入都. 不忍捨其親. 徒載而西. 登第. 擧首許安國率同年入拜. 且致百金爲壽. 謝而却之. 以父名石. 終身不用石器. 行遇石. 則避而不踐. 母亡. 悲慟嘔血. 廬墓三年. 雪夜伏墓側. 哭不絶音. 翰林學士呂溱過其墓. 聞之. 泣下. 甘露歲降兆域. 杏兩枝合榦. 旣終喪. 不徹筵几. 起居饋獻如平生. 州以行聞. 詔賜粟帛. 皇祐初. 爲楚州敎授. 又轉和州防禦推官. 徽宗賜諡節孝處士
嬰孩亡父日哀求. 感切中情涕泗流. 事母更能躬孝養. 當時名士復誰儔.
致養居喪總盡情. 神明默贊顯祥禎. 重膺朝命榮褒寵. 今古人傳節孝名
Ⓒ 편찬 | 세종(조선) 명찬 / 1434년(세종 16) 11월 25일 반포

서적독행 송나라
서 적이 세 살 먹어서 아비 죽으니 아침마다 심히 슬피 아비를 찾으며, 아침 저녁으로 갖춰 입고 어미를 문안했다. 급제하러 갈 적에 어미를 버려 두지 못해서 제가 수레 끌고 모셔 가서 급제하니, 동료들이 모여 어미한테 절하고 이바지하려 하나 받지 아니했다. 아비의 이름이 돌이라 죽도록 돌 그릇을 쓰지 아니하며 돌을 밟지 않았다. 어미 죽으니 슬퍼 피 토하며 시묘살이 할 적에 눈 온 밤에 무덤 곁에 엎드려 소리 그치지 않고 우니까 한림학사가 지나가다가 듣고 울었다. 단 이슬이 해마다 무덤에 지며 살구나무 가지가 붙어 나고, 거상 마치고 돗자리와 젯상을 거두지 않고 이바지하기를 평생 같이 하더니, 고을에서 나라에 여쭈니 조와 깁을 주라 하시었다. 나중에 화주 땅 방어추관을 하다가 죽으니, 시호를≪시호는 행적 따라 이름을 고쳐 짓는다는 말이다.≫ “절효처사”라 하시었다.≪절은 절개이다.≫
Ⓒ 역자 | 김정수 / 2010년 10월 9일

원본이미지
이 기사는 전체 2개의 원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관련자료
이 기사는 전체 1개의 자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석
주001)
술위:수레.
주002)
어:-어. 끌어.
주003)
냇더니:나+-더니. 났더니.
주004)
고:-고. 마치고.
주005)
조콰:좋~과. 조와.
책목차이전페이지다음페이지페이지상단이동글자확대글자축소다운로드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