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操ㅣ 아홉 서레 孝經 論語
주001) 아더니 다어미 세 아
뒷더니 주002) 盧操 야 밥 지라 야 슬히 아니 너기며 제 아 글
닐기라 주003) 보내오 盧操
라귀 주004) 모라
미조차 주005) 가라 야 樣子로 牽馬고 채 자바 니더라 세 이 그 가아 酒情야 미 門 와 어미
구짓거늘 주006) 盧操ㅣ 절고 우러
말인대 주007) 모딘 少年히 닐오 세 도기 이런 어딘 兄 두 아니
너교라 주008) 고 절고 도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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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다어미 죽거늘 세 쳐 어엿비 너교 녜예셔 더 며 슬허 잇더니 나죄마다 여 기 겨틔
느러니 주009) 버렛다가 주010) 아미어든 가더라 後에 員이 외야 百姓 어엿비 너기며 官舍애
≪官舍 그윗지비라 주011) ≫ 궤 주012) 와
돗 주013) 과 노코 父母 이바며 나 저긔 告고 도라와
왯노다 주014) 왯노다: 오-ㅏ+-노다. (제가) 와 있습니다.
며 헤 디 저긔 모 구피더라 아마다 孝經 닑고
公事더니 주015) 喪親章애 다라
≪喪親章 居喪ㅅ 일 닐온 章이라≫ 모 몌여 더라
Ⓒ 편찬 | 세종(조선) 명찬 / 1481년(성종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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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操.
河東人. 九歲通孝經論語. 事繼母張氏至孝. 張生三子溺愛之. 命操常執勤主炊. 操服勤不倦. 張遣其子讀書. 命操策驢隨之. 操卽執鞭引繩如僮僕. 三弟嗜酒縱佚. 抵忤於人. 致人踵門詬及其母. 操卽涕泣拜而解之. 惡少年曰. 不謂三賊有此令兄. 相與拜操而去. 繼母亡. 操訓養三弟. 恩愛過於平日. 服母喪. 哀毁骨立. 每夕有狐狸羅列左右. 將旦乃去. 後調臨渙縣尉. 佐政寬仁. 官舍設几筵以祀父母. 出告反面. 過其庭. 鞠躬如也. 每旦讀孝經一遍. 然後視事. 讀至喪親章. 號咽不勝
殷勤行孝順親心. 委曲應知敬愛深. 執爨驅驢能友弟. 里中惡少亦加欽.
憶昔居廬淚滿巾. 一爲縣尉尙寬仁. 几筵設祭敦時祀. 朝夕哀悲更愴神
Ⓒ 편찬 | 세종(조선) 명찬 / 1434년(세종 16) 11월 25일 반포
노조순모 수나라
노조가 아홉 살에 효경, 논어를 깊이 알았는데, 계모가 세 아들을 두고 노조를 시켜 밥 지으라 하면 싫어하지 않으며, 제 아들을 글 읽히러 보내면서 노조더러 나귀 몰아 뒤따라 가라 하면 종처럼 말을 끌고 채 잡고 다니었다. 세 아우가 남의 집에 가서 주정하니 남이 문에 와서 어미를 꾸짖을 때 노조가 절하고 울며 말리니 사나운 소년들이 이르기를, “세 도둑놈이 이런 어진 형 있을 줄 몰랐다.” 하고, 절하고 돌아갔다. 계모가 죽으니, 세 아우를 가르치고 사랑하기를 보통 이상으로 하며 슬퍼하여 뼈만 남더니, 저녁마다 여우 삵이 곁에 줄지어 있다가 아침이면 갔다. 나중에 지방 수령이 되어 백성을 어여삐 여기며 관사에≪관사는 관청 건물이다≫ 젯상과 돗자리를 놓고 부모를 제사하며 나갈 적에 아뢰고 돌아오면 “왔습니다.” 하고, 뜰로 지날 적이면 몸을 굽히었다. 아침마다 효경 한 번 읽고야 집무하는데, “상친장”에 다다르면≪상친장은 거상에 관한 일을 다룬 장이다.≫ 목이 메여 했다.
Ⓒ 역자 | 김정수 / 2010년 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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