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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오륜행실도

역주 오륜행실도
역주 오륜행실도
정조 때는 이미 세종 때의 한문본 『삼강행실도』는 전하지 않았고 언해본만 전하였으므로, 오륜행실도에 담겨진 책은 언해본 『삼강행실도』와 내용이 같다. 언해본 『삼강행실도』는 성종 21년(1490)에 허침(許琛)과 정석견(鄭錫堅)에게 명하여, 세종조의 『삼강행실도』(330인)를 줄이게 하여 효·충·열 35인씩 105인을 3권 1책으로 간행한 것이다. 이 책은 본문(한문)의 상단 여백에 언해, 즉 한글 번역을 추가한 것으로 선조 13년(1580)과 41년(1608)경에 중간(重刊)되어 지속적으로 간행되었다.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는 중종 13년(1518) 조신(曺伸)이 왕명을 받아 ‘장유(長幼)’와 ‘붕우(朋友)’를 대표하는 47인을 모아 펴낸 책이다. 이 책은 원래 중종 때 김안국(金安國)이 건의하여 왕명을 받아 편찬을 시작하였으나 김안국이 경상감사로 가게 되자, 조신이 책임을 맡아 간행하였다. 『오륜행실도』는 이 두 책을 합본하면서 새롭게 번역하고 언해문을 한문과 나란히 편집하여 정리자(整理字)로 간행하였다. 즉, 그림은 목판화, 한문은 금속활자, 한글은 목활자라는 획기적인 인쇄술의 산물이다.
+ 본문정보

성낙수 교수

1949년 충청남도 당진시 출생.
성당초등학교, 당진중학교, 공주사대부고 졸업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문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문학박사(1983)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강사
청주(여자) 사범대학 강사, 전임강사
동덕여자대학 조교수
한국교원대학교 조교수, 부교수, 교수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외솔회 회장
파리 7대학 파견교수
북경 중앙민족대학 객원교수
청람어문교육학회, 한국문법교육학회 회장 역임.


국어와 국어학 1, 2, 3(2010-2015).
우리말 방언학 (1992)
충남 북부지역의 전통언어와 문학(공저) (2000)
고등학교 작문(1995)
제주도 방언의 통사론적 연구(1992)
국어학서설(공저) (1991)
제주도 방언의 풀이씨의 이음법 연구(1984) 등 20여 권


"불규칙 용언의 학교 문법, "한글 맞춤법"에 수용된 양상과 기본 형태 분석"(2008)
"이른바 'ㅎ말음 체언'과 높임법"(2008)
"간판과 도로의 이름에 대하여"(2007) 등 70여 편

이수웅(李秀雄) 교수

중국대만문화대학 학. 석. 박사학위를 받음.
안동대학교 한문학과 전임강사.
건국대학교 중문학과 조교수, 부교수, 교수로 정년퇴임.
현재 건국대학교 중문학과 명예교수.
미국이리노이대학 아시아 태평양연구소 교환교수.
한국돈황학회장.
현 중국돈황투루판학회 회원.
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원 자문위원.
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원 자문위원.


〔돈황문학과 예술〕(편저),
〔중국문학사〕, 〔중국문학개론〕,
〔朱熹與李退溪詩此較硏究〕(북경대학출판부),
〔노사(老舍)〕, 〔곽말약(郭沫若)〕,
〔중국문화의 이해〕(공저),
〔중국문학 기행〕외.


〔천주실의〕,〔서역시선〕, 〔모택동 시선〕,
〔중국차향기담은 77편의 수필〕 외.

이광호 교수

서울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학사
동대학교 대학원 문학석사
동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진주 경상대학교, 전주 전북대학교, 서울 국민대학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역임
일본 神田大, 東京外大 초빙교수 역임
중국 大連外大 한국어학과 방문교수 역임
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명예교수


국어 격조사 '을/를'의 연구(1988)
중세 국어 문법론(안병희 공저)(1990)
근대 국어 문법론(2004)


후기 중세 국어의 종결어미 {-다/라}의 의미지(未知)의 '이'를 찾아서
훈민정음 '신제 28자'의 성격에 대한 연구
국어 융합형 '-잖다/-찮다'의 단어 형성과 그 의미 외 다수

역주위원

오륜행실도 권1 : 성낙수(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교열·윤문·색인위원

  • 오륜행실도 권1 : 박 종 국 홍 현 보

고전국역 편집위원회

  • 위원장 : 박 종 국
  • 위 원 : 강병식 김구진 김무봉 김석득
  • 김승곤 김영배 김석득 남문현
  • 리의도 박충순 성낙수 심우섭
  • 이해철 임홍빈 전상운 최홍식
  • 한무희

오륜행실도 권2 : 성낙수(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교열·윤문·색인위원

  • 오륜행실도 권2 : 박 종 국 홍 현 보

고전국역 편집위원회

  • 위원장 : 박 종 국
  • 위 원 : 강병식 김구진 김무봉 김석득
  • 김승곤 김영배 김석득 남문현
  • 리의도 박충순 성낙수 심우섭
  • 이해철 임홍빈 전상운 최홍식
  • 한무희

오륜행실도 권3 : 이수웅(건국대 명예교수)

교열·윤문·색인위원

  • 오륜행실도 권3 : 박 종 국 홍 현 보

고전국역 편집위원회

  • 위원장 : 박 종 국
  • 위 원 : 강병식 김구진 김무봉 김석득
  • 김승곤 김영배 김석득 남문현
  • 리의도 박충순 성낙수 심우섭
  • 이해철 임홍빈 전상운 최홍식
  • 한무희

오륜행실도 권4 : 이광호(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교열·윤문·색인위원

  • 오륜행실도 권4 : 박 종 국 홍 현 보

고전국역 편집위원회

  • 위원장 : 박 종 국
  • 위 원 : 강병식 김구진 김무봉 김석득
  • 김승곤 김영배 김석득 남문현
  • 리의도 박충순 성낙수 심우섭
  • 이해철 임홍빈 전상운 최홍식
  • 한무희

오륜행실도 권5 : 이광호(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교열·윤문·색인위원

  • 오륜행실도 권5 : 박 종 국 홍 현 보

고전국역 편집위원회

  • 위원장 : 박 종 국
  • 위 원 : 강병식 김구진 김무봉 김석득
  • 김승곤 김영배 김석득 남문현
  • 리의도 박충순 성낙수 심우섭
  • 이해철 임홍빈 전상운 최홍식
  • 한무희

『역주 오륜행실도』를 내면서

우리 회는 1956년 10월 9일 창립 후 세종대왕기념사업의 중심 전당인 세종대왕기념관을 건립 세종문화진열실과 연구실을 마련 운영 관리하며, 세종성왕의 정신과 위업의 연구 사업을 추진하면서, 한편으로 한글 전용과 국학 진흥을 위하여 「한문고전국역사업」과 「한글고전역주사업」을 1967년에 기획하여 1968년부터 계속 수행하고 있다.

「한문고전국역사업」은 1968년 1월부터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을 국역 간행하기 시작하여 실록의 한문 원문 901권을 완역 발간하였고, 일반 한문고전으로 『증보문헌비고』, 『매월당집』, 『국조인물고』, 『동국통감』, 『승정원일기』(순종), 『육일재총서』 등 수많은 국학자료를 국역 발간하였으며, 계속하여 『치평요람』, 『각사등록』, 『연행록』 등 문헌의 국역 사업을 벌여 오고 있다.

「한글고전역주사업」은 1990년 6월에 첫발을 내디디어, 『석보상절』 권6, 9, 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계속하고 있는바, 2015년 12월까지 역주 발행한 문헌은 『석보상절』 4책, 『월인석보』(훈민정음언해본 포함) 17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10책, 『금강경삼가해』 5책, 『구급방언해』 2책, 『삼강행실도』 1책, 『두시언해』 8책, 『소학언해』 4책, 『사서언해』(논어, 대학, 중용, 맹자) 6책, 『이륜행실도』 1책, 『동국신속삼강행실도』 5책, 『시경언해』 3책, 『서경언해』 1책, 『가례언해』 4책, 『여소학연해』 2책 등 124책을 발간하였고, 2016년 금년에도 『오륜행실도』, 『두시언해』(초간본) 등 15책을 역주 간행할 예정이다.

우리 회 창립 60돌이자 한글 반포 570돌이 되는 올해는 우리 회가 「한문고전국역사업」을 착수한 지 49돌이 되었고, 「한글고전역주사업」을 추진한 지 26돌이 되었다. 그 동안 우리 회가 낸 700여 책의 국역 학술 간행물이 말해 주듯이,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 이래 최고의 한글 국역, 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우리 회가 이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그 결과 고전의 대중화를 통한 지식 개발 사회의 문화 자본 구축과 역사 의식 및 한국학 연구 활성화에 기여는 물론, 새 겨레문화 창조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회가 이번에 역주한 이 『오륜행실도』는 정조가 정조 21년(1797) 윤음을 내려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묶어 새로 번역하고 새로 그림을 새겨서 세종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한 노력으로 펴낸 수신서이다.

세종이 펴낸 『삼강행실도』(한문본)를 토대로 하는 행실도류는 후대 임금들의 끝임없는 관심으로 계승되고 발전하여 그 가장 발전된 모습으로 완성된 것이 바로 이 『오륜행실도』이다. 여러 행실도류의 책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우리 말과 글의 변천사와 조선 사회의 생활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이번에 『오륜행실도』를 역주함에 있어서, 그 저본으로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을 영인하고 그것을 저본으로 하였다.

우리 회에서 이 책(효자편)을 역주 간행함에 있어, 역주하여 주신 한국교원대학교 성낙수 명예교수님과, 이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 역주 발간에 여러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6년 11월 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최 홍 식

일러두기

오륜행실도 1,2권

1. 역주 목적

일러두기세종대왕께서는 우리말을 쉽게 적을 수 있는 “훈민정음”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도덕과 예절을 반듯이 하게 하기 위하여, 『삼강행실도』 같은 책을 편찬하게 하시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삼강행실도』에 대한 언해가 이루어졌고, 나중에는 『이륜행실도』도 나오게 되었다. 정조는 위의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하여, 『오륜행실도』를 간행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 책에는 주자학의 근본이 되는 오륜의 내용이 다 담겨지게 되었다. 이 내용들을 우리의 글 ‘한글’로 번역했고, 화원들의 그림을 덧붙여, 일반 백성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 책이 간행된 지 200여 년이 넘었으므로, 요즘의 일반인들은 이런 책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점이 많다. 그것은 당시의 우리말이나 표기가 지금과 많이 달라,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는 옛 선인들의 훌륭한 예절과 의리, 충절 등을 알게 하고, 우리말과 글에 대한 문화적 유산을 길이 보전하기 위하여 역주 사업을 오래 전부터 전개하여 왔으며, 그 일환으로 이 『오륜행실도』의 역주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쉬운 오늘날의 우리말과 표기로 주를 달아, 일반인들이 쉽게 읽고, 국어학을 공부하는 이들도 옛말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이 『오륜행실도』는 정조 21년(1797)에 편찬한 책으로 5권 4책이며,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보관하고 있는 원본을 대상으로 하였다.

(2)이 역주본의 편집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한문 원문ㆍ언해 원문ㆍ현대어 풀이ㆍ옛말과 용어 주해’의 순서로 편집하였다. 시(詩)와 찬(贊)은 언해가 되어 있지 않으나, 현대말로 풀어 제시하였다. 원전과 비교하여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본문이 시작되는 1쪽부터 각 면의 첫 글자 앞에 권수와 각 쪽 앞과 뒤를 다음과 같이 ‘ㄱ, ㄴ’으로 표시하였다.

〈보기〉 제1권 제2쪽 앞면 : 1:2ㄱ遂母

뒷면 : 1:2ㄴ말을

(3) 옛말을 현대어로 옮길 때에는 의역을 하지 않고, 옛말의 의미가 살아있도록 딴 말을 덧붙이지 않는 데 원칙을 두었다.

(4) 한문 내용과 언해 부분은 네모틀에 넣어, 현대어 풀이ㆍ주석과 구분이 되도록 하였다.

(5) 현대국어 풀이에서 옛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덧붙인 내용은 〈 〉 안에 넣었다.

(6) 찾아보기 배열 순서는 사전을 따랐다.

3. 역주자 일러두기

(1) 역주는 형태소 분석을 위주로 하되, 가능하면 기본형태를 밝혀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2) 앞에서 한 역주가 다시 나오면, 다시 한번 주를 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3) ‘이-’는 학교 문법에서 서술격 조사로 보고 있으나, 이 책에서는 다른 동사류와 같이 활용이 된다는 점에서 지정사로 다루었다.

(3) 어미는 학교 문법에서 어말 어미와 선어말 어미로 다루고 있으나, 이 책에서는 어미는 한 낱말에 가장 끝에 오는 것만 어미로 보고, 어근과 어미 사이에 나타나는 것은 접미사로 다루었다.

(4) 형태소 분석은 ‘ : ’ 다음에 ‘ ’으로 표시했으며, 각 형태소의 경계는 ‘+’로 표시하고, 어근과 어근, 낱말와 낱말이 합쳐질 때에는 그 사이에 ‘#’를 덧붙였다. 내용에 대한 부가 설명은 ‘;’ 다음에 넣었다.

(5) 형태소 분석에서 형태소의 의미나 기능을 나타낼 때에는 형태소 옆에 ( ) 안에 넣어 표시하였다.

(6) 옛말의 쓰임을 참고로 하기 위해서, ¶표 다음에 『이조어사전』(유창돈, 1977)과 『우리말큰사전』4(한글학회, 1992)에서 인용했으며, 옛 문헌의 이름도 그대로 썼으나, 몇 개는 고친 것도 있다. 〈예: (月 1:12) ⟶ (월인 1:12)〉

(7) 나머지 인용과 역주에 시용된 기호, 이름 등은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간행한 역주 내용을 참조하였다. 감사와 더불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오륜행실도 3권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는 우리말을 쉽게 적을 수 있는 “훈민정음”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도덕과 예절을 반듯이 하게 하기 위하여, 『삼강행실도』 같은 책을 편찬하게 하시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삼강행실도』에 대한 언해가 이루어졌고, 나중에는 『이륜행실도』도 나오게 되었다. 정조는 위의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하여, 『오륜행실도』를 간행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 책에는 주자학의 근본이 되는 오륜의 내용이 다 담겨지게 되었다. 이 내용들을 우리의 글 ‘한글’로 번역했고, 화원들의 그림을 덧붙여, 일반 백성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 책이 간행된 지 200여 년이 넘었으므로, 요즘의 일반인들은 이런 책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점이 많다. 그것은 당시의 우리말이나 표기가 지금과 많이 달라,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는 옛 선인들의 훌륭한 예절과 의리, 충절 등을 알게 하고, 우리말과 글에 대한 문화적 유산을 길이 보전하기 위하여 역주 사업을 오래 전부터 전개하여 왔으며, 그 일환으로 이 『오륜행실도』의 역주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쉬운 오늘날의 우리말과 표기로 주를 달아, 일반인들이 쉽게 읽고, 국어학을 공부하는 이들도 옛말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법

(1)이 『오륜행실도』는 정조 21년(1797)에 편찬한 책으로 5권 4책이며,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보관하고 있는 원본을 대상으로 하였다.

(2)이 역주본의 편집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한문 원문ㆍ언해 원문ㆍ현대어 풀이ㆍ옛말과 용어 주해’의 순서로 편집하였다. 시(詩)와 찬(贊)은 언해가 되어 있지 않으나, 현대말로 풀어 제시하였다. 원전과 비교하여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본문이 시작되는 1쪽부터 각 면의 첫 글자 앞에 권수와 각 쪽 앞과 뒤를 다음과 같이 ‘ㄱ, ㄴ’으로 표시하였다.

〈보기〉 제1권 제2쪽 앞면 : 1:2ㄱ遂母

뒷면 : 1:2ㄴ말을

(3) 옛말을 현대어로 옮길 때에는 의역을 하지 않고, 옛말의 의미가 살아있도록 딴 말을 덧붙이지 않는 데 원칙을 두었다.

(4) 한문 내용과 언해 부분은 네모틀에 넣어, 현대어 풀이ㆍ주석과 구분이 되도록 하였다.

(5) 현대국어 풀이에서 옛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덧붙인 내용은 〈 〉 안에 넣었다.

(6) 찾아보기 배열 순서는 사전을 따랐다.

오륜행실도 4,5권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는 우리말을 쉽게 적을 수 있는 ‘훈민정음’을 창제하셨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도덕과 예절을 반듯하게 하기 위하여, 『삼강행실도』 같은 책을 편찬하게 하시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삼강행실도』에 대한 언해가 이루어졌고, 나중에는 『이륜행실도』도 나오게 되었다.

정조는 위의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하여, 『오륜행실도』를 간행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 책에는 주자학의 근본이 되는 오륜의 내용이 다 담겨지게 되었다. 이 내용들을 우리의 글 ‘한글’로 번역했고, 화원들의 그림을 덧붙여, 일반 백성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 책이 간행된 지 200여 년이 넘었으므로, 요즘의 일반인들은 이런 책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점이 많다. 그것은 당시의 우리말이나 표기가 지금과 많이 달라,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는 옛 선인들의 훌륭한 예절과 의리, 충절 등을 알게 하고, 우리 말과 글에 대한 문화적 유산을 길이 보전하기 위하여 역주 사업을 오래 전부터 전개하여 왔으며, 그 일환으로 이 『오륜행실도』의 역주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쉬운 오늘날의 우리말과 표기로 주를 달아, 일반인들이 쉽게 읽고, 국어학을 공부하는 이들도 옛말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법

(1) 이 『오륜행실도』는 정조21년(1797)에 편찬한 책으로 5권 4책이며,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보관하고 있는 원본을 대상으로 하였다.

(2) 이 책의 편집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한문 원문ㆍ언해 원문ㆍ현대어 풀이ㆍ옛말과 용어 주해’의 순서로 편집하였다. 원전과 비교하여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본문이 시작되는 1쪽부터 각 면의 첫 글자 앞에 권수와 각 쪽의 앞과 뒤를 다음과 같이 ‘ㄱ, ㄴ’으로 표시하였다.

〈보기〉 제1권 제2쪽 앞면 - 1:2ㄱ遂母…

뒷면 - 1:2ㄴ말을…

(3) 옛말을 현대어로 옮길 때에는 의역을 하지 않고, 옛말의 의미가 살아있도록 딴 말을 덧붙이지 않는 데 원칙을 두었다.

(4) 한문 원문과 언해 부분은 네모틀에 넣어, 현대어 풀이ㆍ주석과 구분이 되도록 하였다.

(5) 현대국어 풀이에서 옛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덧붙인 내용은 〈 〉 안에 넣었다.

(6) 찾아보기 배열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 : ㄱ ㄴ ㄷ ㄸ ㅁ ㅂ ㅳ ㅄ ㅶ ㅅ ㅺ ㅼ ㅽ ㅾ ㅈ ㅊ ㅋ ㅌ ㅍ ㅎ

② 중성 :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ㅜ ㅝ ㅞ ㅟ ㅠ ㅡ ㅢ ㅣ ㆍ ㆎ

③ 종성 : ㄱ ㄴ ㄷ ㄹ ㄺ ㄼ ㅁ ㅂ ㅇ ㅈ ㅊ ㅎ

오륜행실도 고찰 -효자를 중심으로-

성낙수(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1. 머리말

불교를 국교로 했던 고려가 망하고, 유교를 국시로 내세우고 건국한 조선에도 많은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였다. 개국 초기의 혼란스럽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진정되고, 어느 정도 기강이 바로잡혔던 세종 때에도 여러 가지 사건들이 점철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세종 10년(1428)에 진주에서 김화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아버지를 죽인다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심각한 강력 범죄겠지만, 특히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는 이 시대에는 그 충격이 클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김화는 능지처참에 처해졌지만, 죄인이 죽었다고 해서, 받은 충격이 쉽게 가시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세종은 백성들을 교화시키기 위하여 어떤 방안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종은 마침내 세종 13년(1431) 집현전 직제학이었던 설순 등에게 『삼강행실도』 편찬을 명하여 만 1년만인 세종 14년 6월에 완성하였다. 이 책은 그 뒤 주자소에서 인쇄하여 세종 16년(1434) 11월에 반포하였다. 권부(權溥)가 지은 『효행록(孝行錄)』의 우리나라 옛 사실들을 보태서, 조선과 중국의 서적에서 효자ㆍ충신ㆍ열녀 등의 사례를 뽑아, 그 행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써서 칭송하도록 하였다. 이 책의 제목인 삼강(三綱)은 군위신강(君爲臣綱)ㆍ부위자강(父爲子綱)ㆍ부위부강(夫爲婦綱)으로서,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유교적인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은 효자·충신·열녀 각각 3권 3책으로 되었는데,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에서 있었던 사례를 중심으로 하여 기술했다. 이는 중국은 오랜 역사 속에서 많은 나라들이 흥망을 거듭했으며,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해 두었기 때문에 그것을 원용한 까닭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각각의 사실에 그림을 붙이고, 이를 설명한 영가(詠歌)나 찬(贊)을 달았다. 내용은 ‘효자도, 충신도, 열녀도’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효자도’에는 ‘순임금의 큰 효성[虞舜大孝]’을 비롯하여, 역대 효자 110명을 대상으로 하였고, ‘충신도’에는 ‘용봉이 간하다가 죽음[龍逢諫死]’ 외에 109명의 충신을, ‘열녀도’에는 ‘아황·여영이 상강에서 죽다[皇英死湘]’ 외 109명의 열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330명 중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효자 22명, 충신 17명, 열녀 15명이 실려 있다.
이 책은 백성들의 교육을 위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림을 통해서,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에게까지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또한 조선 시대 판화의 주류를 형성하는 ‘삼강오륜’ 계통의 판화들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지속적으로 중간되어, 도덕서로서 널리 읽혔다.
성종 시대에 들어서 삼강행실의 장려정책을 펴기 위해서, 『삼강행실도』를 한글로 번역하여, 서울과 지방 사족(士族)의 가장(家長)과 부로(父老)ㆍ교수(敎授)ㆍ훈도(訓導) 등으로 하여금 부녀자와 어린이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성종 21년(1490)에 시강원 보덕(侍講院輔德) 허침(許琛)과 이조 정랑(吏曹正郞) 정석견(鄭錫堅)에게 명하여, 세종조의 『삼강행실도』를 산정(刪定)하게 하였다. 실제로 내용을 새롭게 보태지는 않고, 각각의 사례 110개 중에 35개 씩 추려내어, 3권 1책으로 줄여 간행하였는데, 이것이 언해본 『삼강행실도』이다. 이 책은 본문의 상단 여백에 언해, 즉 한글 번역을 추가한 것으로 선조 13년(1580)과 41년(1608)경에 중간(重刊)되어, 지속적으로 간행과 보급이 이루어졌다. 언해본은 번역방식에 따라 의역(音譯) 계통과 직역(直譯) 계통으로 나눠지는데, 조선 초기에는 의역 계통이 간행ㆍ보급되다가, 조선 후기에는 직역 계통으로 바뀌었다.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는 중종 13년(1518) 조신(曺伸)이 왕명에 의해, ‘장유(長幼)’와 ‘붕우(朋友)’의 윤리를 진작하기 위하여 만든 책이다. 이 책의 초간본은 수택본(手澤本)으로 경상도 금산군(金山郡;지금의 김천)에서 간행하였다. 본문의 각 장은 전면이 도판으로, 도판 상단 여백에 언해가 실려 있고, 후면에는 한문으로 된 행적기록과 시찬(詩贊)이 있다.
이 책은 원래 중종 때의 학자 김안국(金安國)이 승정원(承政院)에 재직할 때 경연에서 중종에게 그 가치를 아뢰어, 왕명으로 편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왕명이 이행되기 전에 김안국이 경상감사로 가게 되자, 전 사역원정(前司譯院正) 조신이 찬집에 대한 책임을 맡아 간행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의 찬술 동기는 유교의 기본 윤리인 오륜(五倫) 중에서 장유와 붕우의 이륜을 민간에 널리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간행된 시기의 사회적 배경을 통해서도 편찬 동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간행 연도는 기묘사화(1519)가 일어나기 바로 전 해로, 조광조(趙光祖)의 혁신정치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무렵이다.
중종은 조광조 등의 신진사류로 하여금 연산군에 의해서 극도로 문란해진 정치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전통적인 유교정치를 회복하고, 한편으로는 촌락 집단의 상호부조를 위하여, 이른바 향약(鄕約)을 처음으로 전국에 시행하게 했으며, 민중생활에서도 윤리적인 규범을 확립해 나갔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하에서 조광조와 함께 지치주의(至致主義)를 주장했던 김안국이 백성의 교화를 위해서 『이륜행실도』를 간행하게 된 것이라 하겠다. 이 책의 간행은 앞서 세종 16년(1434)에 간행되었던 『삼강행실도』가 효자·충신·열녀의 행적을 다루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실제적인 ‘오륜도(五倫圖)’의 완결을 의미한다.
내용은 장유와 붕우의 행실이 뛰어난 역대 명현의 행적을 가려 뽑아 형제도(兄弟圖)에는 종족도(宗族圖)를, 붕우도(朋友圖)에는 사생도(師生圖)를 첨가한 것이다. 형제도에 25명, 종족도에 7명, 붕우도에 11명, 사생도에 5명 등 모두 48명의 명현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중국인으로서 우리나라 사람은 한 명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중간본(重刊本)으로 선조 12년(1579) 교서관(校書館)에서 개간한 것이 있는데, 판식(版式)은 초간본과 대체로 같으나, 표기법과 언어·사실 등은 차이가 난다. 이 밖에도 중간본으로 영조 3년(1727)과 영조 6년(1730)에 각각 평양·경상·강원 감영의 개간본이 간행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규장각 도서에 있다. 중간본에는 강혼(姜渾)의 서(序)와 박문수(朴文秀)의 발(跋) 등이 기재되어 있다. 이 책의 중간이 여러 차례 이루어진 것은 왕조시대에 윤리 진작을 위한 조정의 권면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는 정조 21년(1797)에 이병모(李秉模)·윤시동(尹蓍東) 등이 왕명에 의하여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하여 수정, 편찬한 책이다. 내용으로는 세종 시대에 간행된 『삼강행실도』와 중종시대에 간행된 『이륜행실도』를 통합하면서, 기존의 행실도류 판화와는 전혀 다른 판화 양식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는 서지학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 의의가 깊은 책으로 평가 받는다.
고활자 정리자(整理字)로 간행되었으며 5권 4책으로 되었다. 책 앞부분에 정조의 어제윤음(御製綸音)과 당시 좌승지 이만수(李晩秀)의 ‘오륜행실도 서(序)’가 실려 있다. 중간본은 철종 10년(1859)에 목판으로 간행되었는데, 김병학(金炳學)의 서문이 있다. 각 이본(異本)에는 장서기(藏書記)·내사기(內賜記)와 소장기관의 인(印) 및 교열자의 명단 등이 기재, 수록되어 있다. 또한 삽화본과 언해가 실려 있어, 간본의 변천은 조선시대 판화의 변천과 함께 국어사의 발달과정을 알 수 있는, 서지학적 가치가 높은 문화적 유물이다.
정조는 서문에서 “앞서 간행된 삼강(三綱)·이륜(二倫)이라는 책이 선후로 발간되어 학관(學官)에 반포되어 있어, 백성을 감화시키고 풍속을 좋게 이룩하는 근본이 되었으므로, 두 책을 표준으로 삼아 향음례(鄕飮禮)를 강조하고 행하게 하고자 한다.”라고, 이 책을 간행함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이 모든 일반 백성을 대상 독자로 삼고 있음은, 권채(權採)의 서문에도 있는 바처럼 도판을 먼저 싣고, 그 다음에 행적을 붙임으로써, 백성들이 그림을 통하여 흥미를 가지게 되고, 연후에 설명을 읽도록 한 체제상의 특징에서도 볼 수 있다. 책의 내용으로 권1에서 권3까지 수록된 효자·충신·열녀의 행적은 앞서 간행된 『삼강행실도』 언해본을 재정리하여 수록하였다.
권1의 효자도(孝子圖)에는 민손단의(閔損單衣)를 포함한 역대 명현 33인의 효행이 실려 있고, 권2의 충신도에는 용방간사(龍逄諫死)를 포함한 35인의 충신 행적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충신도에는 고려조의 충신 정몽주(鄭夢周)와 길재(吉再)의 항목도 실려 있음을 볼 수 있다. 권3인 열녀도에는 백희체화(伯姬逮火) 등 35인의 역대 열녀 행적이 소개되고 있다.
한편, 권4·권5의 충신·종족·붕우·사생은 앞의 『이륜행실도』 내용을 그대로 옮겨 싣고 있다. 즉, 권4의 형제도(兄弟圖)에는 급수동사(伋壽同死)를 포함한 24인의 우애를, 종족도(宗族圖)에는 군량척처(君良斥妻) 등 7인의 사실을, 권5에는 누호양여(樓護養呂) 등 붕우 11인과 사생(師生) 5인의 선행을 기록하고 있다. 수록된 사람들은 대체로 중국인이고,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효자 4인, 충신 6인, 열녀 5인만이 실려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가치관과 윤리관을 이해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로서, 또한 전통 회화사의 연구를 위해서도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책이다. 즉 조선 후기 판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수록한 인물마다 행실을 기리는 찬(贊)과 시를 적은 글 다음에 삽화를 배치하여, 모두 150점의 판화를 실었다. 내용과 기법에 있어서 인물·풍속·산수·건물 등 다양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고, 당시 유행한 화풍이 반영되어 있으며, 새김 기술이 정교하다.
구성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서와 같이 다른 시간에 벌어진 2ㆍ3개의 장면을 한 화면에 엮는 복합적인 구성에서 탈피하여, 한 장면만을 부각하여 보다 간단하고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아울러 전통적인 부감법(俯瞰法)의 시점을 사용하고, 긴장감이 강한 사선 구도를 기본으로 하였다.
『삼강행실도』에 비하여 주변의 경물이 다양하고, 나무의 종류도 많아졌으며, 건물을 위용이 있게 그려, 보다 풍부하게 화면을 구성하였다. 각선(刻線)의 흐름도 보다 유려하여졌고, 가늘고 굵은 선을 대상에 따라 적절히 그렸는데, 인물의 표현ㆍ수지법(樹枝法)ㆍ준법(皴法) 등을 보면, 당시 도화서(圖畵署)를 중심으로 유행한 김홍도(金弘道)의 화풍이 역력하다. 그러나 아직 김홍도가 그렸다는 증거가 밝혀지지 않았고, 이러한 유형의 작업에는 여러 명의 화원과 각수(刻手)가 참여한 예로 보아, 김홍도나 당시 그의 화풍을 보인 김득신(金得臣)·이인문(李寅文)·장한종(張漢宗) 등의 화원이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조선 말기에는 판화를 소재로 하여 민화에서 다수 그려졌고, 글과 판화를 필사(筆寫)한 책이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들 판화 가운데 <효아포시(孝娥抱屍)>·<누백포호(婁伯捕虎)>·<정부청풍(貞婦淸風)>·<명수구관(明秀具棺)>·<중암의장(仲淹義莊)> 등은 작품성이 뛰어나다.
본서에서는 『효자』의 역주만 다루므로, 그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한다.

2. 서지학적인 특징

서지학적인 측면에서는 구성, 판화, 표현상의 특징으로 대별해서 살펴볼 수 있다.
2.1. 구성상의 특징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는 정조 21년(1797)에 이병모(李秉模)·윤시동(尹蓍東) 등이 왕명에 의하여,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하고, 수정하여 편찬하였다. 5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활자 정리자(整理字)로 간행되었다. 이 『오륜행실도』는 꽃무늬 비단으로 표지를 장식하고, 5개의 구멍을 뚫어 매어서, 책을 만들었다.
『오륜행실도』는 규장각의 직제학 이병모와 제학 윤시동이 교열(校閱)을 하고, 제학 이만수(李晩秀) 등이 감인(監印)하였다. 이 책의 구성은, 책머리에 정조 21년에 정조가 내린 어제윤음(御製輪音)이 있으며, 그 다음 이만수가 쓴 『오륜행실도』의 ‘서(序)’가 있다. 다음에는 세종 14년(1432)에 권채(權採)가 쓴 ‘삼강행실도 원서(原序)’, 영조 5년(1726)에 윤헌주(尹憲柱)가 쓴 ‘삼강행실도 원발(原跋)’, 중종 13년(1518)에 강혼(姜渾)이 쓴 ‘이륜행실도 원서(原序)’가 실려 있다. 이어서 교열하고 감인(監印)한 사람들의 관직과 명단이 첨부되어 있다.
『오륜행실도』의 내용은 효자(孝子) 33명, 충신(忠臣) 35명, 열녀(烈女) 35명, 형제(兄弟) 24명, 종족(宗族) 7명, 붕우(朋友) 11명, 사생(師生) 5명 등이다. 권1∼권3까지는 효자·충신·열녀의 행적을 수록하였는데, 이것은 앞서 간행된 『삼강행실도』 중에서 가려 뽑은 것이다. 권4·권5에는 충신·종족·붕우·사생을 수록하였는데, 이것은 『이륜행실도』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처음 만들어진 『삼강행실도』는 본래 언해가 없는 형태였으나‚ 성종 12년(1481)에 먼저 열녀편이 언해되었고‚ 성종 20년(1489)에 이르러서는 수록인물을 대폭 골라서 줄이고, 각각의 인물에 언해를 달았다. 그리고 이 산삭 언해(刪削諺解)된 이후 간행되는 모든 행실도들의 표준이 되었다. 『삼강행실도』의 체제는 앞면에는 삽화와 언해를 싣고, 뒷면에는 한문으로 쓴 본문(기사)과 그 본문을 압축한 찬시(讚詩)의 형태이다. 그러나 『오륜행실도』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나타난다. 즉 삽화·언해·본문·찬시의 구성요소는 동일하나, 그것을 수록하는 방식이 약간 다른데‚ 제1면에는 삽화를, 그 다음에는 본문·찬시·언해를 차례로 싣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또한 삽화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타나는데‚ 『삼강행실도』와 다른 행실도들이 하나의 내용을 1~3장면으로 나누어 표현하는데 비해‚ 이 책에서는 중심이 되는 내용 한 장면만을 그리고 있다.
『오륜행실도』는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하여 한 책으로 만들었다고 하나, 수록 인물의 숫자와 기사의 제목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나타난다. 『삼강행실도』(언해본)에 수록된 효자편은 총 35명이 수록되어 있는데 비해, 『오륜행실도』에는 ‘곽거매자(郭巨埋子)’와 ‘원각경부(元覺警父)’의 두 내용이 빠져 33인의 사례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이륜행실도』에 수록되어 있는 형제편은 총 25명의 사례가 실려 있는데‚ 『오륜행실도』에는 ‘노조책려(盧操策驢)’의 내용이 빠졌다. 그리고 『삼강행실도』의 열녀편에 있는 ‘이씨감연(李氏感燕)’의 기사는 『오륜행실도』에서는 ‘왕씨감연(王氏感燕)’으로 인물 명이 바뀌었는데‚ 이는 『삼강행실도』의 오류를 수정한 것이다. 또한 열녀편의 ‘미처담초(彌妻啖草)’는 ‘미처해도(彌妻偕逃)’로 바뀌었다. 또한 『이륜행실도』의 종족편에 있는 ‘원백동찬(元伯同爨)’의 기사는 ‘장윤동찬(張閏同爨)’으로 인물이 바뀌었는데‚ 이 역시 『이륜행실도』의 오류를 수정한 것이다.
이 책이 간행된 1790년대는 정조 재위 기간 중에서도 여러 가지 서적의 간행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시기이다. 즉위 초부터 왕권강화와 문예부흥책에 심혈을 기울인 정조는 규장각을 통해서 사상적ㆍ문화적 통치 기반을 조성하고자 했다. 규장각은 군왕의 각별한 지원 아래 자비대령화원 등과 같은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판화 제작과 도서 편찬의 기능을 갖추게 된다.『오륜행실도』는 이러한 정조의 문화적 의지와 정책의 일환으로서, 규장각의 효율적인 체제를 통해서, 우수한 판화를 지니고, 탄생된 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2. 판화의 특징
『오륜행실도』의 판화는 기존의 행실도류 판화와는 완전히 다른 형식을 제시했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한 화면에 한 가지 장면만을 묘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줄거리 전달 중심인 기존의 행실도류 판화 형식에서 과감하게 탈피한 형식이다. 이러한 변화를 토대로 이 책의 판화에서는 이름표식도 사라지고, 회화성이 풍부한 판화로 새롭게 변모했다.
이 책에서는 기존의 행실도류 판화의 도상을 적극 활용하는 한편, 기존 판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구도와 산수표현법 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당대 일반 화단의 뛰어난 회화 수준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에 다량으로 유입, 유통되고 있던 중국 서적의 다양하고 뛰어난 삽화들의 영향이 매우 컸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이 책의 판화는 윤리 교화서라는 목적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당시 사람들의 시각적 변화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판화가 새로운 화풍으로 제작될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이러한 판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유기적으로 결합된 수평적 관계가 자리잡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최초의 윤리 교화서적인 『삼강행실도』 판화의 제작 시에도 그대로 확인된다.
『오륜행실도』에서 새롭게 등장한 양식들이 이후 민화 외에 일반회화 등을 통해서 더욱 확대 재생산되었다는 점은 당시의 소비자들 사이에 이러한 양식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의 문헌에는 제작자가 기록된 바가 없기 때문에 기존의 여러 가지 연구에서 막연하게 김홍도를 제작자로 추측해왔다. 그러나 이 책의 원화의 실질적인 제작에는 당시 자비대령화원으로 재직하고 있던 화원들 가운데 몇몇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판화의 우수성으로도 주목받을 만하다.

삼강행실도

이륜행실도

오륜행실도
2.3. 표현상의 특징
조선 초기에 나온 『삼강행실도』에 비하여, 한문으로 된 원문을 언해할 때에 『오륜행실도』에서는 비록 한자어로 된 말이라 할지라도, 한자를 쓰지 않고, 한글로 적었다. 그것은 어려운 한자보다는 한글로 적어, 좀 더 서민들이 읽기를 바라고 한 것이다.
(1) ㄱ. 金自强이 져머셔 아비 죽거늘 어미 孝道호 데 거슬 일 업더니 어미 죽거늘 法다이 居喪며 아비 옮겨다가 合葬고-合葬  무들씨라-侍墓  제 三年을 신 아니 신더니 居喪 고  아비 야 三年 사로려 거늘 겨지븨 녁아미 블 브티고 구틔여 어 오거늘 自强 아니 도라보고 (〈삼강행실도〉 고대본 효자도:33)
ㄴ. 김강은 본됴 셩쥬 사람이니 어려 아비 죽고 어미 셤기되 을 승슌여 그미 업더니 어미 죽으매 부도「듕의 법이라」 디 아니고 티 가례 조차 그 아비와 합장고 삼년을 녀묘야 거상을 매  아비 여 삼년을 다시 이시려거 쳐족들이 잇글고 길로 나가 인여 그 막을 블지르니 강이 빗 라 보고.(〈오륜행실도 1:62〉)
(1ㄱ)과 (1ㄴ)을 비교해 보면, 대립되는 ‘金自强〉김강’, ‘合葬〉합장’, ‘三年〉삼년’, ‘居喪〉거상’, ‘爲〉위’, ‘廬〉녀’로 바뀌었다. 이와 같이 『오륜행실도』의 언해 부분은 한자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초기의 『삼강행실도』에서는 한문으로 된 원문에 토를 다는 정도의 직역을 한 경우가 많았는데, 『오륜행실도』에서는 의역을 한다든지, 부연 설명을 해서, 이해하기가 쉽도록 배려하였다.
(2) ㄱ. 崔婁伯 水原吏尙翥之子 尙翥獵爲虎所害婁伯時年十五 欲捕虎 母止之 婁伯曰 父讎不可報乎 卽荷斧跡虎 虎旣食飽食臥 婁伯直前叱虎曰 汝害吾父 吾當食汝 虎乃掉尾俛伏 遽所而刳其腹 取父骸肉 安於器
ㄴ. 翰林學士 崔累伯 水原 戶長 아리러니 나히 열다신 저긔 아비 山行 갓다가 범믈여늘 가아 자보려 니 어미 말이더니 婁伯이 닐오 아비 怨讐를 아니 가리가 고 즉자히 돗긔 메오 자최 바다가니 버미 마 브르 먹고 누엇거늘 바드러 가아구지주 네 내 아비를 머그내 내 모로매 너를 머구리라 야 리 젓고 업뎨어늘 베텨   아 와 와 내야 그르세 담고(〈삼강행실도〉 고대본 효자도:32)
ㄷ. 최누은 고려 적 슈원 아젼 샹쟈의 아이니 샹쟤 산영다가 범의게 해 배 되니 이 누의 나히 십오셰라. 법을 잡고져 거 어미 말린대 누이 오 아븨 원슈엇디 아니 갑흐리오 고 즉시 돗긔 메고 범의 자최 오니 범이 이믜 다 먹고 블러 누엇거 누이 바로 알 라드러 범을 디저 오 네 내 아비 해쳐시니 내 너 먹으리라. 범이 리 치고 업거 돗긔로 어  헤티고 아븨 와 을 내여 그 담고(〈오륜행실도 1:60-61〉)
(2ㄱ)의 한문으로 된 원문을 언해한 (2ㄴ)과 (2ㄷ)을 비교해 보면, 전자에서 한자어에 토만 단 것과 같은 표현이 많은 데 대하여, 후자에서는 좀 더 의역을 하고, 자세한 내용으로 바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속삼강행실도』를 편찬한, 중종 때의 윤헌주가 쓴 ‘삼강행실도 원발’에 “되돌아 보건대, 옛날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 말이 너무 간단하여, 해득(解得)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이에 글을 모두 고쳐서, 더하기도 하고, 깎아 줄이기도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아무리 어리석은 남녀일지라도, 모두 알아보기 쉽게 만들어, 이것을 한 도에 나누어 반포하여, 풍화(風化)의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한 데서 그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3) ㄱ. 兪石珎 高山 鄕吏러니 아비 모딘 病야 날마다 病곳 오면 죽거든 사미 마 몯 보거늘 石珎이 밤낫 겨 이셔 하 블러 울며 두루 藥 얻더니 미 닐오 산 사  피예 섯거 머기면 됴리라 야 즉자히 가락 버혀 머기니 病이 즉자히 됴니라.(〈삼강행실도〉 고대본 효자도:34)
ㄴ. 유셕딘은 본됴 고산현 아젼이니 아비 텬을 이악질을 어더 일에 병이 발야 긔졀니 사이 마 보디 못디라. 셕딘이 듀야로 겻 뫼셔 하긔 부르지디며 두로 의약을 구니 사이 닐오 산사의  피에 섯거 먹으면 가히 나으리라 대 셕딘이 즉시 왼손 무명지 허 그 말대로 여 나오니 병이 즉시 나으니라. (〈오륜행실도1:63-64〉)
(3ㄱ)에서 “모딘 病야 날마다 病곳 오면”이 (3ㄴ)에서는 “이악질을 어더 일에 병이 발야 긔졀니”로 좀 더 병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전자에서 “가락 버혀”라고 한 것을 후자에서는 “왼손 무명지 허”로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또한 앞에서 빠졌던 내용을 보탠 부분도 많은데, 그 예를 다음에 보인다.
(4) ㄱ. 尹殷保ㅣ 徐秩이와  스스그 글 호더니 서르 닐오 님금과 어버와 스과 가지로 셤디라 고 됴 차반 어드면 이바며 名日이면 모로매 이바디더니 스이 죽거늘 둘히 제여곰 어버그 侍墓 살아지라 請야 어엿비 너겨 그리라 야 거믄 곳갈 쓰고 居喪 여 손 블 디더 祭 더라.(〈삼강행실도〉 고대본 효자도:35)
ㄴ. 윤은보와 셔즐은 본됴 지례현 사이니 가지로 그 고을 사 쟝지도의게 글 호더니  서로 닐오 스승은 부모와 가지니 믈며 우리 스승이 식이 업디라 고 됴흔 음식을 어드면 스승을 먹이고 명일을 만나면 쥬찬을 초아 아비 셤기더니 쟝지되 죽으매 두 사이 그 어버이게 녀묘호믈 쳥대 어버이 어엿비 너겨 허니 이에 졔복으로 스승의 묘측에 이셔 몸소 밥 지어 졔뎐을 밧드더니(〈오륜행실도 1:65-66〉)
위에서 (4ㄱ)에서보다는 (4ㄴ)에서 밑줄 친 부분처럼 상세한 내용을 덧붙였음을 알 수 있다.

3. 국어학적인 특징

국어학적인 측면으로는 표기법, 음운, 어휘, 형태ㆍ통사의 특징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초기에 나왔던 『삼강행실도언해(三綱行實圖諺解)』,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를 비롯한 역대 문헌과 비교해 봐야 할 뿐만 아니라, 현대국어의 여러 양상과도 비교해 봐야 한다.
3.1. 표기법의 특징
표기법은 『훈민정음』이 창제 당시부터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므로,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이 원칙이었다. 즉 당시에는 현대 언어학에서 말하는 어근[root]이나 접사[affix], 기본형태[basic morph] 등에 관한 이론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
주 1)
현대국어에서 맞춤법이 제정된 것은 1933년에 조선어학회에서 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이며, 지금의 『한글 맞춤법』은 1989년 3월 1일부터 시행되도록 문교부에서 고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예에서 기본형태를 밝혀 적어, 언어학자들을 놀라게 한다. 다음에 그 예를 보인다.
(5) ㄱ. 곶爲李花, 의갗爲狐皮, 爲土, 낛爲釣, 爲酉時, 못爲池
ㄴ. 나치, 옮거늘, 도다, 앉거늘, 낛드리워
(5ㄱ)은 『훈민정음해례』에 나타나 있는 예를 든 것으로 발음대로 쓰지 않고, 기본형태를 밝혀 적은 것이다. 발음대로라면, 각각 ‘곧, 여갇, , 낙, , 몯’이었을 것이다. (5ㄴ)은 뒤에 닿소리로 시작되는 요소가 오므로, 하나의 받침만 쓰거나, 중화된 음으로 적어야 하는데도, 기본형태를 밝혀 적은 예들이다.(고영근 1997:22) 또한 홀소리로 시작되는 어미, 또는 접사, 조사가 이어질 때에도 어근이나 체언의 형태소를 밝혀 적는 경우도 많았다.(고영근 1997:23)
(6) ㄱ. 눈에, 손로, 일, 몸이, 죵
ㄴ. 안아, 안시니다, 담아, 감아
(6ㄱ)은 체언과 조사, (6ㄴ)은 어근과 접사, 또는 어미와 합쳐질 때 기본형태를 밝혀 적은 예들이다. 『오륜행실도』에서도 이와 같은 표기법은 이어지고 있다. 다음의 예를 보자.
(7) 즁유의  뢰니 공 뎨라 어버이 셤기믈 지효로  집이 가난
셤김-을
야 믈음식을 먹으며 어버이 위야 니밧긔 을 져오더니 어버이 죽
-의
은 후의 남으로 초나라 놀 조츤 술위 일이오 오만종의 곡식을 흐며
좇-은
자리 겹으로 안즈며 솟츨 버려 먹을 이에 탄식여 오 비록 믈을
앉-으며 -을
먹으며 어버이 위야 을 지랴 나 가히 엇디 못리로다 대 공 드시고 샤 로 가히 닐오 살아셔 셤기매 힘을 다고 죽은 후 셤기매 모믈 다다 리로다(〈오륜행실도 1:4〉)
모-을
위의 (7)에서 밑줄 친 부분은 체언이나 어근이 뒤에 오는 홀소리에 연철하여 표기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중세국어와는 달리 많은 부분에서 받침으로 끝나는 어근이나 체언 다음에 홀소리로 시작되는 접사 또는 어미, 조사가 와도 구분하여 썼다.
(8) 강혁은 한나라 님츼 사이니 어려서 아븨 일코 란리 만나 어미 업
사-이니
고 피란여 양 믈을 고 드른 거 주어 공양 로 도적을 만나
믈-을
혹 겁박여 잡아가려 면 믄득 울며 비되 노뫼 이셔라 고 말이 공슌
잡-아 말-이
고 졀야 사을 감동니 도적이 마 해티 못고 혹 피란 곳을
사-을 곳-을
르치니 인여 난리듕에 모 다 보젼디라 가난고 궁박여 몸과 발을
발-을
벗고 고공이 되어 어미 공양되 어믜몸에 편 거 아니 죡 거시 업
몸-에
디라 건무 한 광무 대 년호라 말에 어미로 더브러 고향에 도라와 양 셰시에 관가의셔 셩 졈고 혁이 어미 늙으므로 요동티 아니니 향리사이
늙-으므로 사-이
일 강거효 거효 큰 라 라 더니 어미 죽으매 양 무덤겻 녀막고 거상을 되 상복을 마 벗디 못니 군 승연 군슈아 벼이라 을 보내여 상복을 벗겻더니 원화 한 쟝뎨 대 년호라 듕에 됴셔샤 곡식 쳔셕을 주시고 양 팔월의 댱니 원이라 로 존문고 고양과 술을 주라 시다
술-을
(〈오륜행실도 1:9-10〉)
이 예들은 이 시기에는 이미 이른바 형태주의 표기법 혹은 ‘끊어적기’(고영근 1997:23)가 상당히 일반화했음을 보여준다.
주 2)
이는 이른바 형태주의적 표기로 ‘어간’과 ‘어미’, ‘체언’과 ‘조사’를 구분해 적기로 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앞서 현대 언어학적 인식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이희승・안병희 1989:158-195)
3.2. 문자ㆍ음운론적인 특징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한글 자모가 28자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초기에는 이런 글자들이 다 잘 쓰였으나, 어떤 글자들은 변화가 일어났고, 어떤 글자들은 아예 없어졌는데,
주 3)
ㆆ, ㅿ, ㆁ, ㆍ, ㅸ, ㅹ’와 같은 글자들이 없어졌다.(박병채, 271-274)
18세기 말에 쓰여진 『오륜행실도』에서도 역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사례들을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2.1. ‘ㅿ, ㅸ, ㆁ’이 사용 안 됨.
15세기에 사용되던 반치음이나 순경음, 그리고 이른바 ‘옛이응’이 이 책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국어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반치음 ‘ㅿ’은 중세국어에서부터 사용되었지만, 이는 ‘ㅅ’과 상보적 분포[com plementary distribution]를 이루었다. 즉 ‘ㅅ’이 유성음화되는 위치에서 거의 정확하게 ‘ㅿ’이 사용되었다.(허웅1986:468-470) 그러므로 이는 음소로 보기보다는 변이음[allo-phone]으로 보아야 하지만, 표기는 17세기까지도 되었으므로, 『오륜행실도』에서 쓰이지 않은 것은 변화로 취급되어야 마땅하다.
다음은 이전의 문헌에서 ‘ㅿ’이 쓰였던 예들이 『오륜행실도』에서 다르게 표기된 것이다.
주 4)
예 문헌의 인용은 관례에 따름. 단 책 이름이 없는 것은 『오륜행실도』이며, 쪽 다음에 앞면과 뒷면을 표시하는 ‘ㄱ, ㄴ’은 생략함.
(9) 겨(구간 1:75)〉겨〈오륜 1;2, 1:23, 1:44〉, 마(훈몽 중:7)〉마을(오륜 1:39), 아(월인 1:5)〉아(오륜 1:41, 1:42), 처(용가 78)〉처음(오륜 1:62).
그러므로 『오륜행실도』에서는 ‘ㅿ’으로 표기되었던 것은 ‘ㅇ’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ㅸ’도 ‘ㅂ’이 울림소리가 된 것인데, 후에 반홀소리 /w/로 바뀌거나 없어지기 전의 과도기음으로 본다.(허웅 1986:314-321) 『오륜행실도』에서는 ‘ㅸ’이 쓰이던 자리에 반홀소리 ‘오ㆍ우(/w/)’로 표기가 되었다. 특히 용언에서는 현대국어에서도 이른바 ‘ㅂ 불규칙 용언’
주 5)
어간의 끝소리인 ‘ㅂ’이 닿소리 요소 앞에서는 기본형태가 유지가 되지만, 홀소리로 시작되는 요소 앞에서 '오/우(/w/'로 바뀌게 된다.
으로 표기되는 것과 같다.
(10) 셜워고(오륜 1:52) ¶디치로 셜다가(월인 9:26), 치워(오륜 1:25) ¶치과 더과(월인 7:58), 두려오니(오륜 1:39) ¶두려 光이라(월인 8:26)
(11) 이(훈민 해례본 용자해), 이귀(석보 19:17), 이(석보 13:18), :리(훈몽 상:21), 다시다(삼강 효:15)
『오륜행실도』에서는 이런 ‘ㆁ’의 표기는 하지 않고, 받침이나 초성으로 ‘ㅇ’이 쓰였다.
(12) 이에(오륜 1:4, 1:5), 니어(1:25), 더여디이다(1:56)
3.2.2. 겹닿소리의 간소화
15세기부터 겹닿소리는 합용병서(合用並書)의 형태로 많이 쓰였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된소리 표기가 아닌,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주 6)
합용병서가 단순한 된소리 표기가 아님은, ‘’이 『계림유사』에서 ‘菩薩’로 표기된 것과 비교해 볼 때 ‘ㅂ’이 발음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이희승ㆍ안병희 1989:35)
여기에는 크게 ‘ㅅ계’와 ‘ㅂ계’가 있었다. 이들이 된소리로 바뀌게 된 것은 허웅(1986:471-482)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13)ㄱ. ‘ㅅ계’는 대체로 서기 16세기 초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진다.
ㄴ. ‘ㅂ계’는 17세기 끝에서부터 동요하기 시작하여 1730년 경에는 그 변천은 완성되었다.
ㄷ. ‘ㅄ계’는 16세기부터 동요하기 시작하여, 17세기에는 된소리로 합류한 것도 있고, ‘ㅂ계’로 합류한 것도 있다.(이것은 ‘ㅂ계’와 운명을 같이한다.)
그런데 『오륜행실도』에서는 위의 세 계통의 겹닿소리가 다 쓰이고 있는데, 이 때는 거의 된소리로 변천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아래에 제시하는 예들은 현대국어에서 예외 없이 된소리이기 때문이다.
(14) ㄱ. ‘ㅅ계’
ㅺ : 쳐(1:25), 리디(1:49-50), 리(1:60), 고(1:18), 디저(1:60), 러(1:15), (1:66), 코(1:50), 라(1:26), 무러(1:58), 여(1:56)
ㅼ : (1:23), 다가(1:56), (1:12), (1:11), 이(1:35), 여(1:25), 니(1:13), (1:37), 을(1:21), (1:25), 어(1:37), 라와(1:48), 오니(1:60), 이(1:35)
ㅽ : 디고(1:43), 혀(1:17), 쳣더니(1:27), (1:64), 니(1:58), 리(1:66)
ㅾ : 긔(1:29)
ㄴ. ‘ㅂ계’
ㅳ : 을(1:49), 안(1:21)
ㅄ : 홈에(1:21), 고(1:12), (1:37), 을(1:4)
ㅶ : 면(1:19)
3.2.3. 겹홀소리의 표기와 음가
“훈민정음” 창제 이래 두겹홀소리로 표기되었던 ‘ㅑ, ㅕ, ㅒ, ㅖ, ㅙ, ㅝ, ㅞ, ㅠ’가 이 책에서는 그대로 표기가 되었다. ‘ㅐ, ㅔ, ㆎ’는 각각 /aj, əj, ʌj/와 같은 ‘내림겹홀소리’였을 것인데, 서기 1780년경까지는 그런 발음의 표기였다가, 서기 1800년대에 와서야 단모음이 되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허웅 1986:482-487), 『오륜행실도』에서의 이런 표기는 아직 ‘내림겹홀소리’의 표기라고 해야 한다. ‘ㅚ, ㅟ, ㅢ’도 각각 /oj, uj, ɨj/를 표기하는 것이었는데, 이들이 ‘오름겹홀소리’가 되었다가, 홑홀소리로 바뀐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의 표기는 ‘내림겹홀소리’의 표기다.(허웅 1986:486-487) 마찬가지로 세겹홀소리로 표기된 ‘ㅒ, ㅖ, ㅙ, ㅞ’는 각각 /jaj, jəj, waj, wəj/의 표기였으나, 19세기에 각각 /jɛ, je, wɛ, we/로 변했고, ‘ㆉ, ㆌ’는 대개 말끝에서 주격, 또는 지정사가 연결될 때에 나타나는데, 주격조사 ‘가’가 생기고, 겹홀소리들의 변화가 일어난 19세기에 없어졌는데(허웅 1986:487-488), 이 책에서는 그대로 쓰이고 있다.
『오륜행실도』에서 쓰이고 있는 겹홀소리들의 양상은 다음과 같다.
(15) ㄱ. /j/ 계 : ‘ㅐ, ㅑ, ㅒ, ㅔ, ㅕ, ㅖ, ㅛ, ㅠ, ㅢ, ㆎ’
ㄴ. /w/ 계 : ‘ㅘ, ㅙ, ㅚ, ㅝ, ㅞ, ㅟ’
ㄷ. 겹홀소리+ㅣ : ‘ㆌ, ㆉ’
(15ㄴ)에서는 ‘(1:21)’처럼 ‘쇼+ㅣ(주격조사)’인 것도 있으나, ‘매(1:11)’에서는 한자 발음을 그렇게 적은 것이다.
3.2.4. 거센소리 되기와 나눠적기
“훈민정음” 창제 때부터 거센소리(ㅎ 포함)는 차청(次淸)으로 표기가 되었는데, 이 소리는 원래부터 거센소리로 낱말에 들어있던 것과 ‘ㅎ’이 앞음절의 끝이나 뒤음절의 첫소리로 올 때, 거센소리가 될 수 있는 예삿소리 ‘ㄱ, ㄷ, ㅂ, ㅈ’은 각각 ‘ㅋ, ㅌ, ㅍ, ㅊ’로 바뀐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16)ㄱ. 원래의 거센소리 : 그치디(1:5), 치더니(1:21), 명월쳥풍이로다(1:61), 베플고(1:39),비통여(1:52), 수풀의(1:23), 일더라(1:15), 칼과(1:39), 타(1:58)
ㄴ. ‘ㅎ+예삿소리, 예삿소리+ㅎ’ : 긔츌티(1:29), 념녀티(1:27), 랑티(1:25), 이러고(1:19), 일코(1:9), 청컨대(1:54)
(16ㄴ)과는 달리 기본형태를 밝히기 위한 표기에는 ‘ㅎ’과 예삿소리를 구분해 적었다.
(17) 못(1:35), 죡(1:9), 지극(1:17), 닙히고(1:2), 딕희니(1:61), 읇허(1:61)
이 책을 쓸 때에는 거센소리에 대한 음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예들이 있다. 즉 거센소리를 받침소리 /ㄷ/과 거센소리의 합음으로 보고, 이를 나누어 적은 것이다.
(18) 솟츨(1:4), (1:33), 빗(1:39), 밧(1:44), 잇튼(1:27)
(18)의 예들은 체언의 기본형태에 ‘ㅊ’ 또는 ‘ㅌ’을 받침으로 해도, 그것이 홀소리로 시작되는 요소가 올 때 ‘ㅊ’ 또는 ‘ㅌ’이 연철되었다고 봐도 되는데
주 7)
‘솣을’, ‘낯을’, ‘빛’, ‘잍은날’로 적어도 발음은 같은데, 그 당시에는 거센소리 앞에 /ㄷ/ 소리가 꼭 발음되었을 이유는 없다.
, 구태여 ‘ㅅ 받침’(발음으로는 /ㄷ/)을 쓴 것은, 뒤에 오는 ‘ㅊ’, ‘ㅌ’ 소리가 ‘/ㄷ/’ 다음에 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다음의 예처럼 거센소리를 예삿소리와 ‘/ㅎ/’의 합음이라고 보고, 나누어 썼다.
(19) 깁흔(1:29, 1:42)
거센소리의 생성에는 이른바 ‘ㅎ 말음 체언’
주 8)
‘ㅎ 말음 체언’에 대한 용어는 많으나, 다른 받침이 있는 체언에도 쓰이는 점을 고려하여, 이 명칭이 맞다고 본다.(성낙수 2011:75-90)
이 큰 몫을 했다고 여겨지는데, 이는 우리말에서 태초부터 있었던 것으로 중세국어 이후 우리말 표기에 많이 등장하며, 이 책에서도 많은 예가 나온다.
(20) 겻(1:9), 길히(1:18), 나라히(1:44), 밋(1:43), 밧(1:44), 히(1:23)
(20)에 나타난 예들처럼 ‘ㅎ 말음’이 쓰일 경우 뒤에 예삿소리로 시작되는 요소가 오면, 거센소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다른 옛 문헌에서는 이런 경우가 아주 많다.
(21) 하콰 콰(능엄 2:20), 너븐 드르콰(능엄 9:22), 몸과 콰 손과 발와(석보 13:19)
그러므로 ‘ㅎ 말음 체언’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은, 거센소리의 생성이 쉬웠다는 방증이 된다.
3.2.5. 잇몸소리가 입천장소리 되지 않음
입천장소리 되기는 입천장소리가 아닌 소리가 뒤에 오는 홀소리 /i/나 반홀소리 /j/를 닮아, 입천장소리가 되는 현상이다. 이는 /i/나 /j/가 앞홀소리이면서, 높은홀소리어서 발음하기가 쉽기 때문에 입천장소리가 아닌 소리가 발음하기 쉬운 곳으로 옮겨오는 것이다. 여기에는 잇몸소리 ‘ㄷ, ㄸ, ㅌ’이 각각 센입천장소리 ‘ㅈ, ㅉ, ㅊ’으로 바뀌거나, 여린입천장소리 ‘ㄱ, ㄲ, ㅋ’이 각각 센입천장소리 ‘ㅈ, ㅉ, ㅊ’으로 바뀌거나, 목구멍소리 ‘ㅎ’이 센입천장소리 ‘ㅅ’이 되는 현상들이 있는데, 통시적인 면에서는 잇몸소리가 센입천장소리로 바뀌는 현상만 다룬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자어는 원래 중국어를 표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말과는 많이 차이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발음들이 우리말로 바뀌어, 현대국어에서는 입천장소리가 아니었던 것이 입천장소리로 바뀌었다. 그러나 『오륜행실도』에서는 아직 그 현상이 일반화되지 않았다.
(22) 뎨라 : ‘뎨(弟子)+라’(1:2), 톈하(天下)(1:5), 됴석(朝夕)(1:12), 시듕(侍中) (1:12), 됴서(詔書)(1:17), 됴뎡(朝廷)(1:21), 듁순(竹筍)(1:23), 딘(晉)나라(1:28)
순수한 우리말에서도 현대국어에서는 입천장소리가 된 것이 이 책에서는 잇몸소리로 표기한 것이 많다.
(23) 내티고져(1:2), 어딜이(1:2), 엇디(1:4), 됴화여(1:5), 도라오디(1:5), 못디라(1:7), 해티(1:10), 레딜대(1:12), 티거(1:17), 텨서(1:29)
(22)의 예들은 〈한글 맞춤법〉에서 인정하는 입천장소리 되기에 해당되지 않는 것들이다.(이희승ㆍ안병희 1991:41-45)
3.2.6. ‘ㄴ’과 ‘ㄹ’이 머릿소리 규칙에 적용 안 됨
‘머릿소리 규칙’은 현대국어에서 말의 첫머리에 오는 닿소리가 본래의 음가를 잃고, 다른 음으로 발음되거나 없어지는 것과 어떤 음이 올 수 없음을 말하는데,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다.
(24)ㄱ. 흐름소리[流音] /ㄹ/이 말머리에 올 수 없다. 어두에서 홀소리 앞에서 /ㄹ/은 /ㄴ/으로 바뀐다. 또한 다음 (24ㄴ)의 규칙에 의해서 /i/나 /j/ 앞에서는 ‘Ø(영)’이 된다.
(예) 량심(良心)→양심, 력설(力說)→역설, 류행(流行)→유행, 리과(理科)→이과, 락원(樂園)→낙원, 로인(老人)→노인, 루각(樓閣)→누각, 래일(來日)→내일, 뇌성(雷聲)→뇌성
ㄴ. 잇몸 콧소리[齒頸鼻音] /ㄴ/이 말머리에서 /i/나 /j/ 앞에서 ‘Ø(영)’이 된다.
(예) 녀자(女子)→여자, 뇨소(尿素)→요소, 뉴대(紐帶)→유대, 니토(泥土)→이토.
ㄷ. 말머리에 겹자음이 올 수 없다. 그러나 옛말에서는 많이 쓰였다.
ㄹ. /ㆁ/이 말머리에서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오륜행실도』에서는 (24ㄱ, ㄴ, ㄷ)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은 예들이 많다. (24ㄷ)의 경우는 이미 앞에서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25)ㄱ. 니디(1:58), 니레(1:42), 니고(1:15), 니문에(1:11), 니블을(1:15), 니어(1:25), 니옷(1:15), 니워(1:12), 닐러(1:19), 닑디(1:22), 님군긔(1:40), 님재(1:19), 님츼(1:9), 녀막을(1:62), 녀진이(1:52), 녀허(1:61), 년호라(1:9), 념녀티(1:27), 녜(1:19), 뉴시(1:58), 뉵아편을(1:22)
ㄴ. 란리(1:9), 량나라(1:39), 리변을(1:35), 리의(1:27)
3.2.6. 앞홀소리 되기 없음
우리말에서 뒤홀소리 /ㅏ/, /ㅓ/, /ㅗ/, /ㅜ/, /ㅡ/ 는 뒤 음절 모음 /ㅣ/가 이어나면, /ㅣ/의 전설성에 동화되어, 앞홀소리 /ㅐ/, /ㅔ/, /ㅣ/, /ㅚ/, /ㅟ/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일부 낱말을 제외하고는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륜행실도』에서는 이런 앞홀소리 되기에 관한 예들이 별로 없다는 것은 그 당시에 이미 한성 혹은 경기도 지역어가 쓰였을 뿐만 아니라, 기본형태를 적는 것에 충실했다는 이야기가 된다.(*는 일어날 수 있는 변화지만, 그렇지 않음을 표시함.)
(26) 긔이히(1:39) *기이히, 긔졀엿다가(1:56) *기졀하엿다가, 누이며(1:45) *뉘이며, 더듸니(1:32) *더디니, 버히니(1:21) *베히니, 삿기(1:44) *샛기, 죽이니(1:17) *쥑이니, 부드치니(1:21) *부디치니
3.2.7. 입술소리 다음의 둥근홀소리 되기 없음
중세국어부터 쓰이던 입술소리 다음의 안둥근홀소리 ‘ㅡ’가 현대국어에서는 대부분 둥근홀소리 ‘ㅜ’로 바뀌었다. 이는 입술소리가 양입술을 오무려서 내는 소리이므로, 그 다음에 내는 소리는, 안둥근홀소리보다는 둥근홀소리로 내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륜행실도』에서는 아직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표는 위와 같음.)
(27) 강믈이(1:13) *강물이, 니블을(1:15) *이불을, 더브러(1:9) *더부러, 므른대(1:37) *무른대므(1:19) *무, 믄득(1:9) *문득, 브드치니(1:21) *부드치니, 브르시되(1:21) *부르시되, 브르지져(1:11) *부르지져, 브리디(1:12) *부리디, 븍두셩이라(1:35) *북두셩이라, 블고(1:25) *불고, 블근(1:56) *불근, 블지르니(1:2) *불지르니, 블측(1:0) *불측, 븟그러워(1:11) *붓그러워, 븟드러(1:42) *붓드러, 프른(1:56) *푸른
3.2.8. 없어짐
이는 기본형태에서 어떤 음소가 떨어져 나가거나, 없어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현대국어에서는 〈한글 맞춤법〉에서 어휘형태소[lexicological morpheme]일 경우에는 기본형태를 밝혀 적고, 문법형태소[grammatical morpheme]일 때에는 변이형태[allo-morph]로 적어도 되는 것으로 정해 놓았다.
주 9)
지금 쓰고 있는 〈한글 맞춤법〉은 이른바 형태주의로 ‘어간’(엄격히 말하면 ‘어근’)과 ‘어미’, ‘체언’과 ‘조사’를 구분해 적는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어휘형태소는 기본형태를 밝혀 적고, 문법형태소는 변이형태를 그대로 적는다’는 말과 같다.(이희승ㆍ안병희 1989: 58-105)
그러나 『오륜행실도』에서는 체언에서 둘 받침이 묵음이 되거나, 용언에서 불규칙적인 활용으로 변화가 일어나면, 그대로 적었다.(*표는 위와 같음.)
(28)ㄱ. 안(1:21) *앉, 업디라(1:23) *없디라
ㄴ. 우다가(1:5) *울다가, 니어(1:25) *닛어, 비되(1:9) *빌되, 슬피(1:21) *슬프이, 누른(1:25) *누렇은, 누이며(1:45) **눕이며
(28ㄱ)은 둘받침으로 끝나는 어근인 기본형태에서 하나의 음소가 음절 규칙에 따라서 없어지는 경우이고, (28ㄴ)은 불규칙 용언으로 어근인 기본형태에서 음소가 없어지는 것이다. (28ㄱ)은 다음과 같이 기본형태를 밝혀 적은 것과는 다른 현상이다.
(29) 늙고(1:23) *늑고, 닑디(1:22) *닉디, 디(1:52) *밥디
3.2.9. 더해짐
더해짐은 없었던 음소가 더해지는 것인데, 대개 홀소리충돌[hiatus]을 막기 위해서 반홀소리 /j/가 더해지거나, 이른바 ‘르 불규칙 용언’인 경우에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다음의 예가 그런 것이다.
(30)ㄱ. 되여(1:35) *되어, 보내여(:135) *보내어, 웨여(1:35) *웨어, 되엿디라(1:39) *되엇디라, 여(1:55) *어
ㄴ. 블러(1:12) *브르어, 리(1:66) *르이, 게얼니(1:7) *게으르이
(30ㄱ)은 홀소리와 홀소리가 만날 때 반홀소리 /j/가 더해진 예이고, (30ㄴ)은 ‘르 불규칙 용언’의 끝음절 ‘르’가 홀소리로 시작되는 요소와 만날 때 ‘ㅡ’가 없어지고, ‘ㄹㄹ’이 된 것이다.
3.2.10. 줄어짐
줄어짐은 두 개 이상의 음소나 음절이 합해져, 줄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다음에 그 예들을 보인다.
(31)ㄱ. 검뉘(1:35) *검누이, 셰라(1:39) *셰이라, 셩히(1:39) *셩이, 너겨(1:41) *너기어, 져(1:42) *지어, 이셔(1:43) *이시어, 긋쳐(1:44) *그치어, 셤견(1:45) *셤기언, 얼켯(1:56) *얼키엇, 베혀(1:58) *베히어
ㄴ. 면티(1:53) *면디, 고티(1:54) *고디, 해티(1:9) *해디
(31ㄱ)은 두 음절이 합해진 경우고, (31ㄴ)은 두 음소가 합해진 경우다.
3.3. 형태ㆍ통사론적 특징
여기서는 어휘ㆍ형태소ㆍ통사가 서로 맞물려 있으므로, 이를 명사류ㆍ부사류ㆍ관형사류ㆍ조사류ㆍ동사류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3.3.1. 명사류
명사류는 명사ㆍ대명사ㆍ수사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이들은 비슷한 점이 많으므로, 함께 다루기로 한다.
3.3.1.1. 본래명사류와 파생명사류
본래명사류는 본래부터 명사류였던 것이고, 파생명사류는 다른 품사에서 파생접사에 의하여, 파생된 것이다. 다음의 예를 보자.
(32)ㄱ. 설포(1:11), 사1:11), 아비(1:11), 너(1:12), 내(1:12), 우리(1:65), 므(1:19), 둘(1:25), 세(1:2), 그(1:19), 뉘(1:21), 스믈여(1:7), 여긔(1:21)
ㄴ. 늣김(1:61); {늣기-}+{-ㅁ}, 무덤(1:9); {묻-}+{-엄}, 홈(1:21); {호-}+{-ㅁ}, 슬픔(1:5); {슬프-}+{-ㅁ}, (1:66); {-}+{-ㅁ}, 어(1:29); {얼-}+{-}, 우롬(1:5); {울-}+{-옴}, 죽엄(1:42); {죽-}+{엄}
(32ㄱ)은 본래부터 명사ㆍ대명사ㆍ수사인 예들이나, (32ㄴ)은 동사류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여기에 쓰인 파생접미사는 ‘{-ㅁ/-옴/-/-엄}이다.
본래명사류에는 다음과 같은 옛말들이 나타나고 있다.
(33) ㄱ. 나모(1:56)/(1:21),
ㄴ. 나라ㅎ(1:44), ㅎ(1:52), 밧ㅎ(1:44), 우ㅎ(1:13), 길ㅎ(1:18)
(33ㄱ)은 중세어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어근이고, (33ㄴ)은 이른바 ‘ㅎ 말음 체언’으로 현대국어와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보여 준다.
3.3.1.2. 예삿말과 높임말
명사류에는 예삿말과 높임말이 있다. 물론 이들은 높임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높임말이 주어로 쓰일 때는 ‘주체 높임법’이 사용되고, 목적어나 부사어로 쓰일 때에는 ‘객체높임법’이, 듣는이가 되면 ‘상대높임법’이 사용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특별히 높임말 명사류가 없고, 다만, 조사 또는 동사류의 높임법에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34) ㄱ. 어미 업면 세 아이 치우리로다(1:2)
[-높임] [-높임] [-높임] [-높임]
ㄴ. 다이 노모 겨시되 (1:6)
[+높임] [+높임]
(34ㄱ)은 주어 자리에 있는 낱말이 높임말이 아니고, 서술어에도 높임법이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34ㄴ)은 ‘노모’가 높임말이 아님에도 서술어에 높임법이 쓰였으므로 높임말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주어가 생략되어도, 서술어를 보면 높임말을 확인할 수 있다.
(35) (천자) 원화 듕에 됴셔샤 곡식 천 셕을 주시고(1:10)
[+높임] [+높임] [+높임]
(35)에서는 주어는 생략되어 있으나, 서술어에 높임법이 쓰였으므로, 이 문장의 주어는 황제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서술어의 쓰임만으로 높임말을 식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음과 같이 조사의 쓰임을 보고도 알 수 있다.
(36) 부모 됴셕으로 뵈는 녜라(1:11)
[+높임] [+높임] [+높임]
(36)에서 ‘부모’에게 조사 ‘긔’가 쓰이고, 서술어에 ‘뵈’가 쓰여, ‘부모’는 높임말이 되었다.
3.3.2. 부사류
부사류는 부사만 있는데, 이를 본래부사와 파생부사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37)ㄱ. 거의(1:14), 과연(1:7), 다시(1:12), 더브러(19), 더옥(1:25), 드듸여(1:2), 므릇(1:5), 양(1:9), 바로(1:31), 비록(1:4), (1:11), 리(1:66), 엇디(1:4), 이제(1:19), 죠금도(1:47), 친히(1:25), 홀로(1:15), 맛당이(1:18), 내(1:7), 각각(1:12), 고로(1:35), 몸소(1:15), 므릇(1:5), 믄득(1:9), 서로(1:48), 스로(1:7), 마(1:51), 이믜(1:6), 자조(1:11)
ㄴ. 가히(1:4); {가(可)}+{-}+{-이}, 감히(1:7); {감(敢)+{-}+{-이}, 게얼리(1:47); {게어르-}+{-이}, 귀히1:15); {귀(貴)}+{-}+{-이}, 오(1:2); {-}+{-오}, 닐오(1:23); {닐-}+{-오}, 먼니(1:37); {멀-}+{-리}, 비로소(1:35); {비롯-}+{-오}, 슈고로이(1:21); {슈고(受苦)}+{-롭-}+{-이}, 싁싁이(1:39); {싁싁}+{-}+{-이}, 심히(1:5); {심(甚)}+{-}+{-이}, 어엿비(1:66); {어엿브-}+{-이}, 급히(1:54); {급(急)+{-}+{-이}
(37ㄴ)에서 부사 파생접미사는 {-이}가 대부분이나, {-오}나 {-오}, {-리}와 같은 것들도 쓰였다.
3.3.3. 관형사류
관형사류에는 관형사만 있는데, 여기에도 본래관형사와 파생관형사가 있다.
(38)ㄱ. 모든(1:33), 므(1:19), 여러(1:21), 온(1:21)
ㄴ. 그(1:2), 다(1:29), 두(1:19), 세(147) 구(147), 148, (1:25), 네(137), 십오(1:38), 이(156), 삼(162), (1:4), 쳔(1:10)
(38ㄱ)은 본래부터 관형사였으나, (38ㄴ)은 다른 품사에서 파생된 것이다. 예컨대 ‘그, 이’ 같은 것은 대명사에서 파생되었다. 이 때의 파생접미사는 {-Ø-(영)}이다. 그러나 수사에서 파생된 관형사는 기본형태를 바꾸지 않은 것은 파생접미사가 {-Ø-(영)}이나, ‘, 두, 세, 네’은 각각 다르다.
주 10)
최현배(1937:791-796) 이래로 이는 ‘셈어떤씨[數冠形詞]’로 다루어왔다. 본고에서는 이를 수사에서 파생된 것으로 본다.
(39) ; 나+ㄴ(관형사 파생접미사), 두; 둘+ㄴ(관형사 파생접미사), 세; 셋+ㄴ(관형사 파생접미사), 네; ㄴ(관형사 파생접미사)
3.3.4. 조사류
조사는 격조사와 접속조사, 보조사로 나눈다.
격조사(格助詞)는 체언을 같은 문장 안의 다른 낱말과 일정한 문법적 관계를 맺는 구실을 한다. 그래서 격(格) 개념의 차이에 따라 격조사의 하위분류방법이 달라진다. 변형생성문법에서는 격을 심층구조상의 내면격(또는 심층격)과 표면구조상의 표면격으로 구분한다. 격조사를 표면상에 나타난 형태에만 국한하여 분류하는 것이 표면격에 대한 분류인데, 본고에서는 이 방법을 택한다.
격조사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가 있다.
(40)ㄱ. 주격 조사 : 앞의 체언을 주어가 되게 함.
ㄴ. 관형격 조사 : 앞의 체언을 관형어가 되게 함.
ㄷ. 목적격 조사 : 앞의 체언을 타동사의 목적어가 되게 함.
ㄹ. 부사격 조사:앞의 체언을 부사어가 되게 함. 다른 격조사에 비해 그 숫자가 많으며, 처소, 도구, 자격, 원인, 동반, 비교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님.
ㅁ. 호격 조사:독립어로서 호칭이 되게 함.
접속조사(接續助詞)는 두 성분을 이어 주는 구실을 한다.
보조사(補助詞)는 여러 성분에 두루 붙어 특별한 뜻을 더해 주는 구실을 하며, 격조사가 올 자리에 쓰이거나, 격조사 혹은 보조사 뒤에 다시 보조사가 쓰이기도 하며, 체언뿐만 아니라 부사나 연결어미 뒤에도 쓰인다.
3.3.4.1. 격조사
이 책에서 격조사의 쓰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41)ㄱ. 주격조사 : 계모ㅣ(1:1), 이(1:35); {ㅣ/이}
ㄴ. 관형격조사 : 문하의(1:23), 병의(1:35), 민손의(1:2); {의}
ㄷ. 목적격조사 : 병을(1:56), 술위(1:4), 말을(1:2); {/을/를}
ㄹ. 부사격조사 : 처소-겻(1:9), 믈에(1:29); {ㆎ/에}
떠남-집의셔(1:35), 아래셔(1:56); {셔/의셔}
닿음-디(1:35)
수여-부모긔(1:11), 법의게(1:50), 님군긔(1:40); {긔/의긔}
향방-종려(132), 쳔려(1:56); {다려}
연장-몸으로(1:15), 벼로(1:52), 입으로(1:58); {로/으로/으로}
ㅂ. 호격조사 : 부모여(1:21)
3.3.4.2. 접속조사
접속조사는 다음과 같이 쓰인다.
(42) 문안과(1:52), 부모와(1:65), 사과(1:48)
3.3.4.3. 보조사
보조사는 다음과 같이 쓰인다.
(43)ㄱ. 시작-일로브터(1:15); {로브터}
ㄴ. 단지-믈만(1:45); {만}
ㄷ. 각자- (1:37); {마다}
ㄹ. 자격-법대로(137); {대로}
ㅁ. 동일-티(1:42); {티}
ㅂ. 각자-아마다(1:51); {마다}
ㅅ. 역시-죠곰도(1:47); {도}
ㅇ. 종착-죵신디(1:46); {디}
ㅈ. 미침-죵신토록(1:21); {토록}
ㅊ. 주제-집은(1:12), 조아(1:19); {은/}
3.3.5. 동사류
동사류는 서술어가 되는 기능을 하는데, 동사ㆍ지정사ㆍ형용사가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활용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데, 여기서는 본래의 낱말과 파생 낱말을 살펴보고, 어근과 어미, 접사를 중심으로 논의해 보기로 한다.
3.3.5.1. 본래의 낱말와 합성ㆍ파생 낱말
동사류도 원래부터 동사ㆍ형용사였던 것이 있는 반면, 다른 품사와 합성이 되거나 파생된 것도 많다.
주 11)
다른 품사와 결합된 경우 합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두 낱말을 분리했을 때, 앞에 오는 낱말이나 뒤에 오는 낱말이 독립되어 쓰일 수 있으면, 합성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예를 들면, ‘감동하-’는 ‘감동을(도, 만, 까지, 은) 하-’로 분리할 수 있으므로 합성이라고 본다. 이 때의 ‘하-’는 이른바 대동사(代動詞) 혹은 ‘허동사(虛動詞)의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서정수 1994:539-587) 이 경우 ’-‘는 독립된 낱말이므로 파생접사로 보기는 어렵다.
다음은 본래동사와 합성이나 파생된 동사의 예들이다.(편의상 몇 개만 예를 든다.)
(44)ㄱ. 가-(1:58), 가지-(1:29), 갑-(1:18), 견-(1:48), 그치-(1:5), 나-(1:44)
ㄴ. ① 감동-(1:2); 감동(感動)+-, 거상-(1:27); 거상(居喪)+-, 거쳐-(1:50); 거처(居處)+-, 겁박-(1:9); 갑박(劫迫)+-, 구-(1:33); 구(求)+-
② 깃드리-(1:47); 깃+들+이-, 길들-(1:44); 길+들-, 벼-(1:25); 벼+-, 랑-(1:47); 랑+-, 절-(1:37); 절+-
(44ㄱ)은 본래동사이고, (44ㄴ)은 합성동사인데, (44ㄴ①)은 한자에 ‘-’가 붙어서 합성 혹은 파생이 되었고, (44ㄴ②)는 우리말에 파생접사가 붙어서 합성이 되었다.
다음은 본래형용사와 합성 혹은 파생형용사의 예이다.
(45) ㄱ. 그-(1:25), 누르-(1:25), 검-(1:54), 븕-(1:56), 슬프-(1:27), 프르-(1:56)
ㄴ. ①진-(1:35); 진(盡)+-, 쳥-(1:39); 쳥(淸白)+-, 지극(1: 42); 지극(至極)+-, 가-(1:50); 가(艱難)+-, 슈고롭-(1:21); 슈고(受苦)+롭-, 샹셔롭-(1:33); 샹셔(祥瑞)+롭-
②더-(1:56); 더+-, -(1:41); +-, 못-(1:45); 못+-, 이윽-(1:35);이+-, 밋브-(1:7);밋+브-
(45ㄱ)은 본래형용사들이며, (45ㄴ①)은 한자에서 파생된 것이고, (45ㄴ②)는 우리말에서 파생된 예들이다.
3.3.5.2. 어근과 어미
동사류는 활용을 하는 것이 원칙이며, 이는 교착어인 우리말의 한 특징이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활용을 하는 동사류는 어간[stem]과 어미[ending]로 구분해왔다. 우리말에서 활용을 처음으로 주장한 최현배(1937:173)에서는, “풀이씨의 끝이, 그 쓰히는 법을 따라서, 여러 가지로 바꾸히는 조각(部分)을 씨끝(語尾, termination)이라 하며, 그 바꾸히지 아니하는 조각을 씨줄기, 더러는 줄이어서 줄기(語幹, stem, Stamm)라 일컫느니라.”라고 하였다. 또한 최현배(1937:174)에서는 “풀이씨를 이루기에 최소한도의 중심개념을 대표하는 줄기를 씨몸 더러는 씨뿌리 또는 뿌리(語根)라 라며, 그 다음에 돕는 조각을 도움뿌리(補助語幹-助根)라 하느니라.”라고 하였다. 이는 학교문법에서도 잘 적용이 되다가 1985년 이른바 통합문법에서 그 내용이 바뀌었다. ‘깨뜨리이시었습니다’라는 낱말을 예를 들어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46) ㄱ. 뜨리 이 시 었 습 니
줄기 도움줄기 씨끝
ㄴ. 뜨리 이 시 었 습 니
어간 접사 선어말어미 어말어미
형태론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46ㄱ)에서 ‘뜨리’와 ‘이’는 파생접미사이므로 활용에서 ‘도움줄기’로 보아도 무방하나, 굴곡접미사인 ‘시’, ‘었’, ‘습’, ‘니’는 각각 접미사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는 접미사이긴 하나, 전통적인 관점에서 ‘씨끝’ 곧 어미로 불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다음과 같이 명칭을 붙인다.
(47) 뜨리
어근 강조접미사 태접미사 존대접미사 시제접미사 겸양접미사 시상접미사 종결어미
[root] [emphatic [voice [honorific [tense [humble [aspect [terminal
suffix] suffix] suffix] suffix] suffix] suffix] suffix]
이러한 관점에서 동사류는 다음과 같이 어근과 어미로 구분한다.
어근+(접미사)자격법어미명사형 어미, 관형사형 어미, 부사형 어미
연결법어미연결어미, 보조적 연결어미
종결법어미종결어미
3.3.5.3.1. 자격법 어미
자격법 어미는 명사형 어미, 관형사형 어미, 부사형 어미로 나눈다.
3.3.5.3.1.1. 명사형 어미
『오륜행실도』에서 명사형 어미의 쓰임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49)ㄱ. 거상기(1:35); 거상+++, 먹기(123); 먹++, 살기(112);살++
ㄴ. 뉘우미(1:39); 뉘우치++이, 봉양호믈(1:58); 봉양+++을, 신호믈(1:35);대신+++을, 셤기믈(1:3); 셤기++을, 랑미148); 랑+++이
(49ㄱ)에서는 명사형 어미 ‘-기’가, (49ㄴ)에서는 ‘-ㅁ/-옴’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3.3.5.3.1.2. 관형사형 어미
관형사형 어미의 쓰임은 다음과 같다.
(50)ㄱ. 거상(1:8); 거상++, 돕(1:7); 돕+, 니러(1:44); 니러+
ㄴ. 누른(1:25); 누르+, 늙은(1:12); 늙+, 다른(1:54); 다르+, 셩(1:29); 셩++, 어린(1:39); 어리+, 죽은(1:4); 죽+
ㄷ. 공양(1:9); 공양++, (1:37); +, 나갈(1:48); 나가+, 죽을(1:40); 죽+
ㄹ. 다리던(1:12); 다리+더+, 만나던(1:19); 만나+더+
ㅁ. 아니연(1:42); 아니++여+
(50ㄱ)에서는 진행을 나타내는 관형사형 어미 ‘-’이 쓰였고, (50ㄴ)에서는 ‘-ㄴ/-은’이 쓰였는데, 형용사일 때는 시간성과 관련이 없는 수식이고, 동사일 때는 동작이 완료되었음을 나타낸다. (50ㄷ)은 동작이나 상태의 추정을 나타내는 ‘/-ㄹ/-을’이 쓰였다. (50ㄹ)에서는 ‘회상 시상 접미사’ ‘-더-’에 관형사형 어미 ‘-ㄴ’이 쓰여, 과거의 일이 완료되었음을 나타낸다. (50ㅁ)은 내포문의 서술어에 완료 시제 접미사 ‘엿’이 쓰이고, 관형사형 어미와 합쳐진 형태다.
3.3.5.3.1.3. 부사형 어미
부사형 어미는 다음과 같이 쓰인다.
(51)ㄱ. 급히(1:54); 급++이, 능히(1:7); 능++이, 셩히(1:39); 셩++이, 슬피(1:21); 슬프+이, 게얼리(1:47); 게으르+이, 괴이히(1:39); 괴++이
ㄴ. 갑게(1:19); 갑+게, 밋브게(1:7); 밋브+게
ㄷ. 죵신토록(1:21); 죵신++도록
(51ㄱ)에서는 부사형 어미는 ‘-이’, (51ㄴ)에서는 ‘-게’, (51ㄷ)에서는 ‘-도록’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3.5.3.2. 연결법 어미
연결법 어미에는 연결어미와 보조적 연결어미가 있다.
3.3.5.3.2.1. 연결어미
연결법 어미는 그 쓰임이 다양하므로,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52)ㄱ. {-으니} : 상황, 이유ㆍ원인
예 : 가니(1:19); 가+니, 가더니(1:58) : 가+더+니, 감동니(1:9); 감동++니, 갓더니(1:51); 가+앗+더+니, 치더니(1:21); 가치+더+니, 구니(1:33); 구++니, 늙으니(1:9); 늙+으니, 노핫더니(1:40); 놓+앗+더+니, 등이니(1:37); 등+이+니, 밧자와시니(1:54); 받+자오+앗+이니, 되엿더니(1:21); 되+엿+더+니, 만나니(1:19); 만나+니, 병드럿더니(1:35); 병+들+엇+더+니
ㄴ. {-고} : 벌림
예 : 가고(1:5); 가+고, 가지고(1:5); 가지+고, 감동고(1:2); 감동++고, 거리고(1:52); 거리+고, 니러나고(1:25); 닐+어+나+고, 사이오(1:58); 사람+이+오
ㄷ. {-야/아셔} : 상황, 이유ㆍ원인
예 : 가난야(1:4); 가난++야, 가셔(1:18); 가+아셔, 감동여(1:33); 감동++여, 놀나(1:19); 놀나+아, 가초아(1:51); 가초+아, 거쳐와(1:42); 거치+어+오+아, 길러(1:48); 기르+어, 니러(1:19); 니+러,
ㄹ. {-나} : 반전
예 : 가난나(1:50); 가난++나
ㅁ. {-(으)며} : 벌림
예 : 가지며(1:12); 가지+며, 검으며(1:43); 검+으며, 누이며(1:45); 눕+이+며, 니러나며(1:54); 닐+어+나+며, 두리며(1:29); 두리+며, 먹으며(1:4); 먹+으며
ㅂ. {-(으)려} : 의도
예 : 가려(1:9); 가+려, 잡으려(1:25); 잡+으려, 가려(1:7); 가++려
ㅅ. {-(아)다가} : 멈춤
예 : 디나다가(1:52); 디나+다가, 라렬엿다가(1:48); 라렬++엿+다가, 호다가(1:27); 배호+다가, 살앗다가(1:58); 살+앗+다가, 뷔다가(1:30); 뷔+다가
ㅇ. {-(아)다가} : 보탬
예 : 가져다가(1:29); 가지+어다가, 져다가(1:46); 지+어다가
ㅈ. {-(으)매} : 인정
예 : 급재매(1:51); 급재++매, 갓치이매(1:40); 갓치+이+매
ㅊ. {-(으)되} : 조건
예 : 것거디되(1:44); +어+디+되, 되되(1:58); 되+되, 먹으되(1:29); 먹+으되, 브르시되(1:21); 브르+시+되
ㅋ. {-(으)면} : 가정
예 : 겨이면(1:15); 겨+이+면, 먹으면(1:37); 먹+으면, 다면(1:29); 다다르+면
ㅌ. {-오} : 근거
예 : 오(1:2); +오, 샤(1:4); +시+아대, 닐오(1:4); 닐+오
ㅍ. {-거} : 기정사실
예 : 나거(1:23); 나+거, 누엇거(1:60); 눕+엇+거, 버히거(1:37); 버히+거, 내티거(1:12); 내티+거
ㅎ. {-매} : 이유ㆍ원인
예 : 나으매(1:6); 낫+으매, 되매(1:35); 되+매, 병들매(1:45); 병+들+매
ㄲ. {-고져} : 희망
예 : 내티고져(1:2); 내티+고져, 효양고져(1:50); 효양++고져, 먹고져(1:23); 먹+고져
ㄸ. {-야도} : 양보
예 : 못야도(1:7); 못++야도
ㅃ. {-으므로} : 이유ㆍ원인
예 : 늙으므로(1:9); 늙+으므로
ㅆ. {-(으)라} : 목적
예 : 보라(1:51); 보+라
3.3.5.3.2.2. 보조적 연결어미
보조적 연결어미는 본용언과 보조용언을 이어주는 구실을 한다. 이에는 {-디}, {-아}, {-게}, {-고}가 있다.
(53)ㄱ. {-디}
예 : 가디(1:11); 가+디, 것디(1:52); 걷+디, 공양디(1:15); 공양++디, 그치디(1:5); 그치+디
ㄴ. {-아}
예 : 나아갈(1:39); 나+아+가+ㄹ, 도라가(1:5); 돌+아+가+아, 라와(1:27); +아+오+아, 드러가(1:23); 들+어+가+아
ㄷ. {-게}
예 : 넘게(1:35); 넘+게, 아니케(1:9); 아니+게
ㄹ. {-고}
예 : 거리고(:152); 거리+고
3.3.5.3.3. 종결법 어미
우리말의 종결법 어미는, 상대높임법으로 말할이와 들을이의 상대적 높낮이를 나타내며, 서술법ㆍ의문법ㆍ청유법ㆍ명령법ㆍ감탄법을 표현한다. 이는 구어[spoken language]에서 분명하며, 문어[written language]에도 반영이 된다. 그런데 옛 문헌의 경우는 구어의 자료가 많지 않으면, 당시의 종결법 어미를 분석하기가 매우 어렵다.『오륜행실도』의 경우도 거의 문헌 형식으로 되어 있어, 구어의 쓰임을 잘 알 수 없지만, 직접인용 등의 예들에서 분석하는 수밖에 없다.
본고에서는 종결법 어미를 [+높임]과 [-높임]으로 나누고, ‘서술법ㆍ의문법ㆍ청유법ㆍ명령법ㆍ명령법’으로 분류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3.3.5.3.3.1. 서술법 어미
서술법은 말할이가 들을이에게 자기의 말을 해버리는 데 그치거나, 약속을 하거나, 또는 느낌을 나타내는 표현법이다.(허웅 1975:487) 이에는 다음과 같은 어미가 쓰인다.
(54)ㄱ. {-다} : [+높임]
예 : 치우리이다(1:2), 하직이다(1:5), 그리리이다(1:6), 나이다(1:19), 잇이다(1:21)
ㄴ. {-다/-라} : [-높임]
예 : 되니라(1:2), 뎨라(1:4), 못리로다(1:4), 리로다(1:4), 사이라(1:4), 죽은디라(1:5), 사이러라(1:5), 못디라(1:6), 허랃디라(1:6), 더라(1:7), 이셔라(1:9), 시다(1:10), 못리라(1:12), 이시다(1:12), 셰오다(1:13), 일더라(1:15), 되니라(1:15), 되리라(1:19), 되버서날디라(1:32), 살리라(1:33), 아니니라(1:33), 복호 (133), 이틀이라(1:35), 어디라(1:19), 아니리라(1:19), 직녜라(1:19), 시니라(1:19), 올나가더라(1:19), 되엿디라(1:39)
3.3.5.3.3.2. 의문법 어미
의문법은 말할이가 들을이에게 대답을 요구하거나, 자기 마음속에 의문을 품어보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법이다.(허웅 1975:495) 이에는 다음과 같은 어미가 쓰인다.
(55)ㄱ. {-오} : [+높임]
예 : 버리오(1:40), 모로리오(1:39), 삼으리오(1:19)
ㄴ. {-냐/-뇨} : [-높임]
예 : 봉양소냐(1:6), 잇뇨(1:19)
ㄷ. {-다} : [-높임]
예 : 다(1:21), 아니다(1:27), 죽을다(1:39)
ㄹ. {-고} : [-높임]
예 : 당고(1:20), 두엇고(1:48), 놀날가(1:54)
3.3.5.3.3.3. 명령법 어미
명령법은 말할이가 들을이에게 어떤 행동을 하기를 또는 해주기를 요구 혹은 명령하는 표현법이다.(허웅 1975:516) 여기서 청유법 어미는 찾을 수 없었다.
(56)ㄱ. {-쇼셔} : [+높임]
예 : 구호쇼셔(1:53), 가쇼셔(1:53)
ㄴ. {-라} : [-높임]
예 : 시험하라(1:39), 츠라(1:24), 딕희라(1:25)
3.3.5.3.3.4. 감탄법 어미
감탄법은 말할이가 어떤 일에 감탄하는 것을 표현하는 종결법이다.
(57)ㄱ. {-다} : [-높임]
예 : 샷다(1:21
ㄴ. {-도다/-로다} : [-높임]
예 : 무궁도다(1:61)감탄, 명월쳥풍이로다(1:61)
3.3.5.3. 접미사
동사류에서 나타나는 접미사는 어근과 어미를 제외한 부분으로서, 강세접미사ㆍ태접미사ㆍ주체높임접미사ㆍ시제접미사ㆍ객체높임접미사ㆍ상대높임접미사ㆍ시상접미사가 있다. 이 중에서 강세접미사ㆍ태접미사는 파생접미사이고, 나머지는 굴곡접미사다. 파생접미사는 활용에서는 다시 어간을 만들므로, 최현배(1937)에서의 이른바 도움줄기[補助語幹]의 개념에 맞는 것이다.
3.3.5.3.1. 강세접미사
강세접미사는 낱말 뜻을 강하게 해주는 구실을 한다. 이에는 {-치-}가 쓰인다.
(58) {-치-}
예 : 쳣더니(1:27); (ㄷ)+치+엇+다+니, 쳐(1:25); +치+어
3.3.5.3.2. 태접미사
태접미사에는 수동태 접미사와 사동태 접미사가 있다.
3.3.5.3.2.1. 수동태 접미사[passive voice suffix]
수동태는 주어가 어떤 동작의 대상이 되어, 그 작용을 받을 때의 관계를 나타내는 동사의 한 형태인데, 수동태접미사는 능동태의 동사를 수동태의 동사로 만드는 구실을 한다. 이에는 {-이-}가 쓰인다.
(59) {-이-}
예 : 갓치이매(1:40);갓치+이+매, 열리디라(1:54), 열+리++디+라, 뵈여(1:54);보+이+어, 막히여(1:42);막+히+어, 믈리이니(1:30);믈+리+이+니, 잡히여(1:39);잡+히+여
3.3.5.3.2.2. 사동태 접미사[causative voice suffix]
사동태는 남에게 어떤 행동을 시키게 하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의 한 형태다. 여기에는 파생접미사 {-이-}가 쓰인다.
(60) {-이-}
예 : 이시다(1:12); +이+시+다, 몰니이니(1:47); 몰+니+이+니(1:47), 누이며(1:45); 눕+이+며, 닙히고(1:2); 닙+히+고, 저히며(1:39); 젛+이+며, 죽이니(1:17); 죽+이+니
3.3.5.3.3. 주체높임접미사
존대접미사는 주체 높임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 이에는 {-시-}가 있다.
(61) {-시-}
예 : 감동샤(1:19); 감동++시+아, 므신대(1:5); 믇+으시+ㄴ대, 시다(1:10); +시+다, 졍문시다(1:44); 졍문++시+다
3.3.5.3.4. 시제접미사
시제접미사는 이 책에서 현재 {-Ø-}, 완료 {-앗-}이 쓰인다.
3.3.5.3.4.1. 현재시제접미사
현재시제는 동작이나 상태가 현재임을 나타낸다 현재시제접미사에는 {-Ø-}가 쓰인다.
(62) {-Ø-}
예 : 리로다(1:4); +Ø+로+다, 사이라(1:5); 사+이+Ø+라, 시다(1:10); +Ø+시+다, 셰오다(1:13); 셰오+Ø+다
3.3.5.3.4.2. 완료시제접미사
완료시제는 동작이나 상태가 완료되었음을 나타낸다. 완료시제접미사에는 {-앗-}이 쓰인다.
(63) {-앗-}
예 : 엿더니(1:18); +엿+더+니, 되엿더니(1:21); 되+엿+더+니, 샷다(1:21); +시+앗+다, 두엇거(1:27); 두+엇+거, 밧와시니(1:54); 밧+오+아시+니
3.3.5.3.5. 객체높임접미사
객체높임은 목적어나 부사어에 해당되는 객체를 높이는 것이다. 객체높임접미사에는 {--}이 쓰인다.
(64) {--}
예 : 뵈고(1:45); 뵈++고, 밧와시니(1:54); 밧+오+아시+니
3.3.5.3.6. 시상접미사
시상접미사에는 {-니-}, {-리-}, {-더-} 등이 쓰인다.
3.3.5.3.6.1. 지속 혹은 진행시상접미사
지속 혹은 진행을 나타내는 접미사에는 {-니-}가 쓰인다. 서술어가 동사이면, 진행시상[progressive aspect]이 되고, 형용사나 지정사면, 지속시상[durative aspect]이 된다.
(65) {-니-}
예 : 되니라(1:2); 되+니+라, 오니라(1:12); 오+니+라, 잇뇨(1:19); 잇++뇨, 잇이다(1:21); 잇++이+다, 니니라(1:25); 니+니+라
3.3.5.3.6.2. 회상시상접미사
지난 일을 회상하는 구실을 하는 회상시상[retrospective aspect] 접미사에는 {-더-}가 쓰인다.
(66) {-더-}
예 : 더라(1:27); +더+라, 니더라(1:28); 니+더+라, 놀나더라(1:34); 놀나+더+라, 사이러라(1:5); 사+이+러+라, 향합이러라(1:66); 향합+이+러+라
3.3.5.3.6.3. 추정시상접미사
어떤 동작이나 상태에 대하여 미루어 짐작하는 추정[prospective aspect] 시상접미사에는 {-리-}가 쓰인다.
(67) {-리-}
예 : 치우리이다(1:2); 치우+리+이+다, 리로다(1:4); +리+로다, 그리리이다(1:7); 그리++리+이+다, 되리라(1:18); 되+리+라
3.3.5.3.7. 상대높임접미사
상대높임접미사는 중세국어에서 {--}로 쓰이던 것인데, 이 책에서는 {-이-}로 나타난다. 들을이를 높이는 구실을 하며, 종결어미 {-다} 혹은 {-가}와 같이 쓰인다.
(68) {-이-}
예 : 치우리이다(1:2); 치우+리+이+다, 그리리이다(1:7); 그리++리+이+다

4. 맺는 말

이상으로 『오륜행실도』 ‘효자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 책은 18세기 후반에 쓰여진 것으로 서지적ㆍ국어학적으로 의미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서지학적으로는 이 책은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한 것이기는 하나, 내용에 있어서는 특히 『삼강행실도』의 대상이 많이 삭제되거나 바뀌었고, 『이륜행실도』는 그대로 옮겨왔다. 내용 설명에서도 『오륜행실도』에서는 먼저 나온 책들보다는 의역이 많고, 자세한 면이 있다.
판화에서도 이전의 행실도류 판화와는 완전히 다른 형식을 나타냈는데, 한 화면에 한 가지 장면만을 묘사했다. 기존 판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구도와 산수표현법 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국어학적으로는 18세기 말의 국어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국어사적인 변화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다만 문어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므로, 종결어미와 같은 실제 대화에서 쓰이는 자료가 풍부하지는 않다. 또한 이번에 다룬 것은 ‘효자도’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다른 권에서 나온 자료들로 보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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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행실도』 고찰 -충신을 중심으로-

성낙수(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1. 머리말

본고는 앞서 논의한 ‘효자’편에 이어서, ‘충신’편의 특징을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같은 책이므로, 역사적・서지학적인 측면은 대동소이하기에 생략하고, 국어학적인 특징을 찾아, 앞서 논의한 것에서 부족한 내용을 깁고 고치려는 것이 목적이다.
『오륜행실도』는 원래 세종대에 만들어진 『삼강행실도』(1434)를 산정(刪定)하여 언해한 성종대의 『삼강행실도』(1490)와 중종대에 만들어진 『이륜행실도』(1518)를 재번역하여, 정조의 명을 받아 정조 21년(1797)에 간행한 교화서이다.
『오륜행실도』라는 이름은 다음과 같은 정조의 말에서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1) 나는 이것을 두렵게 여겨서, 내각의 신하들에게 명하기를, “훈의(訓義)
주 138)
한자·한문 읽는 법과 뜻.
에 따라 고증(考證)
주 139)
깊이 헤아려 논증함.
하라.” 하였으며, 삼강
주 140)
한나라의 동중서와 반고가 인간 관계의 기본으로서 강조한 세 가지 덕목으로, 임금은 신하의 근본이고[君爲臣綱(군위신강)], 어버이는 자식의 근본이며[父爲子綱(부위자강)], 남편은 부인의 근본[夫爲婦綱(부위부강)]이라는 것임. 이는 유교 전통의 인간 관계 덕목인 오륜 등을 배경으로 한 것인데, 특히 주종적 상하관계의 원리로서 기강 확립을 꾀하려는 성격이 강하며, 그 내용은 효, 충, 열로 요약됨.
과 이륜
주 141)
윗사람에 대한 예절[장유]과 벗 사이의 믿음[붕우]에 관한 예절.
의 행실 등의 글도 『소학』과 같이 출판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서, 하나의 책으로 정리해서, 『오륜행실』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삼강행실도』의 간행은 다음과 같은 서문에서 그 뜻을 살펴볼 수 있다.
(2) 선덕(宣德)
주 142)
명조(明朝) 제5대 황제 선종(宣宗) 주첨기(朱瞻基)의 연호로 서기 1426년~1435년의 10년간 사용되었음.
신해년(辛亥年)
주 143)
세종 13년. 선덕 6년. 서기 1432년.
여름에 우리 주상 전하가 근신(近臣)에게 명하기를, “삼대(三代)
주 144)
중국(中國) 상대(上代)의 하(夏), 은(殷), 주(周)의 세 왕조(王朝)를 말함.
의 정치는 모두 인륜을 밝혔는데, 후세에는 교화가 차츰 해이해져서, 백성이 서로 화목하지 못하니, 부자・군신・부부의 큰 인륜이 모두 본연의 성품과 위배되어, 항상 박(薄)한 데에 흘렀다. 그러나 간혹 탁월한 행실과 높은 절개가 습속에 휩쓸리지 아니하여, 보고 듣는 사람을 깨우쳐 일으키는 자도 많았다. 내가 그 특이한 것을 뽑아서, 그림으로 그리고, 찬(贊)을 지어서, 안팎에 반포하고자 하니, 거의 어리석은 남자나 무식한 여자들도 모두 보고 느껴 흥기할 것이니, 또한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룩하는 한 가지 방도이다.”라고 하시고, 여기서 집현전
주 145)
세종 2년(1420)에 궁중에 설치한 학문연구기관. 집현전 제도는 중국에서 연원한 것으로 한나라 이래 있었으나, 그 제도가 정비된 것은 당나라 현종 때로서 학사(學士)를 두고 시강(侍講) · 장서(藏書) · 사서(寫書) · 수서(修書) · 지제고(知制誥) 등을 담당하게 하였음. 우리나라에도 오래 전에 이 제도가 도입되어 삼국시대에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집현전이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 인종 때임.
부제학
주 146)
조선시대 홍문관과 그 전신이었던 집현전의 정3품 당상관직.
신 설순(偰循)
주 147)
조선 전기의 때의 학자 ·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보덕(輔德). 고려 때 귀화한 위구르(Uighur) 출신 손(遜)의 손자로 장수(長壽)의 아들로서, 1408년(태종 8)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급제, 1420년(세종 2) 교리, 이듬해 좌사경(左司經), 1425년 시강관을 거쳐 인동현감이 되었음. 1427년 문과중시에 합격, 이듬해 왕명으로 『효행록(孝行錄)』을 증수하였고, 1431년 집현전 부제학으로서 『삼강행실도』를 편수하기 시작, 1434년 완성하였으며, 그 해 이조 우참의가 되어 윤회(尹淮) 등과 함께 『통감훈의(通鑑訓義)』를 편찬하였고, 동지중추원사에 이르렀고, 여러 분야의 학문에 박학하였으며 특히 역사에 뛰어났고, 문장으로도 이름이 높았음.
에게 명령하여, 편찬하는 일을 맡게 하셨다. 그리하여 중국으로부터 우리 동방에 이르기까지 고금의 서적에 있는 것을 찾아보지 않은 것이 없이 하여, 효자・충신・열녀로 뚜렷이 기술할 만한 사람을 각각 1백 10인을 뽑아서 전면에는 그림을 그리고, 후면에는 그 사실을 기록했으며, 아울러 시(詩)까지 써 놓았다. 효자에 있어서는 삼가 태종황제(太宗皇帝)
주 148)
명나라 태종. 명나라 제3대 황제(재위 1402∼1424). 지방의 번왕(蕃王)으로 연왕(燕王)이라 불렸으며 건문제가 공격해오자 난을 일으켜 황제가 되었음.
께서 하사하신 『효순사실(孝順事實)』의 시를 기록하고, 겸하여 신의 고조(高祖) 신 보(溥)가 지은 『효행록(孝行錄)』
주 149)
고려 충목왕 때의 효자 권보(權溥)와 그의 아들 준(準)에 관한 기록을 모아 엮은 책. 고려 말에 초판이 나왔으며, 세종 10년(1428)에 설순(偰循) 등이 개정하여 중간하였음. 초간본에는 이제현(李齊賢)의 서(序)가 있고, 후에 권근(權近)이 주해와 발문을 달아 화공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뒤 그것을 이제현에게 주면서 찬(賛)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여 아버지를 위안하였다 함. 이에 권보도 38효행을 골라 이제현에게서 찬을 지어 받았는데, 전 24찬은 12구(句), 후 38찬은 8구로 되어 있음.
가운데 있는 명현(名賢) 이제현(李齊賢)
주 150)
고려 충렬왕 14년(1287)∼공민왕 16년(1367). 고려 후기의 문신·학자·문인.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지공(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역옹(櫟翁). 고려 건국 초의 삼한공신(三韓功臣) 금서(金書)의 후예로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진(瑱)이다. 아버지 진이 과거를 통해 크게 출세함으로써, 비로소 가문의 이름이 높아졌음.
의 찬(贊)을 가져왔고, 그 나머지는 보신(輔臣)
주 151)
높은 벼슬아치들.
으로 하여금 나누어 짓게 하였으며, 충신과 열녀의 시도 문신들로 하여금 나누어 짓게 하여, 편찬이 끝나자, 『삼강행실도』란 이름을 내리고, 주자소(鑄字所)
주 152)
태종 3년(1403)에 승정원의 직속기관으로 설치되어 문종 1년(1451) 7월부터 12월까지 잠깐 폐지된 적이 있으며, 세조 6년(1460) 5월에 교서관에 이속시켜, 전교서(典校署)로 개칭되었음.
로 하여금 발간해서 영구히 전하게 하였다.
정조가 이를 다시 『오륜행실도』로 편찬하게 된 뜻은 다음과 같은 서문에 담겨 있다.
(3) 정조 21년 정사 정월 초하루에, 늙은이는 쉬게 하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위로해야 한다는 뜻으로 팔방의 백성들에게 고명(誥命)
주 153)
중국 황제가 제후국의 국왕을 인준(認准)하는 문서. 고려 말 또는 조선 시대 국왕은 형식적으로는 중국 황제의 고명을 받게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즉위한 다음 추인하는 데 불과하였음.
을 반포하고, 그 후에 또 향음주, 향약조례, 사관혼의(士冠婚儀)
주 154)
동자(童子)가 직분을 받아 사(士)의 지위에 있으면, 나이 20세에 관례를 치르는 일과 혼례를 치르는 일.
를 한 권의 책으로 합쳐서 가르치게 한 바가 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우리나라의 의식(儀式)이 높이 갖추어진 것은, 우리 영릉(英陵)
주 155)
조선 4대 임금 세종(世宗)과 그 비(妃)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를 모신 능. 현재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에 있음. 여기서는 세종을 가리킴.
시대부터 착한 도(道)를 서로 계승하여, 정치와 교화가 아름답고 밝게 되자, 『삼강(三綱)』과 『이륜(二倫)』이라는 책이 선・후로 발간되어, 학관(學官)에 반포되어 있으므로, 백성을 감화시키고, 풍속을 좋게 이루게 하는 근본이 되었으니, 이제 향음례(鄕飮禮)를 강론하고, 행하게 하려면, 마땅히 이 두 책을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셨고, 그 책을 『오륜행실(五倫行實)』이라고 이름을 지은 다음에 신(臣) 만수(晩秀)
주 156)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중(成仲), 호는 극옹(屐翁)·극원(屐園). 정신(正臣)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철보(喆輔)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복원(福源)이며, 어머니는 안수곤(安壽坤)의 딸임. 정조 7년(1783) 사마시에 합격하고 음보(蔭補)로 부사과를 지냈으며, 정조 13년(1789)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음. 이어 직각이 되고 도당록(都堂錄; 홍문관의 수찬(修撰)․교리(校理) 등을 선발하기 위해 작성한 의정부의 제2차 추천기록)에 등록되었음. 정조 19년(1795) 대사성으로 규장각 제학을 겸했으며, 이듬해 정리자(整理字) 만드는 일을 감독하였고, 이듬해 대사간에 이어 정조 23년(1799) 대사성으로 우유선(右諭善)을 겸했고, 정조 24년(1800) 제조․예조판서․검교직제학․이조판서 등을 차례로 지냈으며, 이어 공조판서를 거쳐, 순조가 즉위한 뒤 수원부유수가 되어 화녕전(華寧殿)을 완성한 공으로 품계가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랐음.
가 이 사업에 간여한 일이 있음을 들으시고, 이 책의 서문을 쓰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그래서 이 책을 편찬한 이는 다음과 같이 그 내용을 말하였다.
(4) 이 책의 내용을 말한다면, 위로는 순결한 행실과 아름다운 절개를 싣고, 옆으로 높은 공렬(功烈)
주 157)
드높고 큰 공적.
과 거룩한 모범이 될 만한 일들을 채취하여, 글로 기록하고, 그림으로 형용하며, 시로 읊고, 찬(贊)
주 158)
인간의 훌륭함, 사물의 아름다움 등을 찬양하는 한문체의 글.원래는 신명(神明)에게 바치는 글이었으나 후세에 변하여 잡찬(雜贊) ·애찬(哀贊) ·사찬(史贊) 등으로 나누어졌음. 잡찬은 인물 ·서화(書畵) ·문장 등에 대한 찬으로 대표적인 예는 족자나 액자로 된 회화 속에 쓰여진 시(詩) ·가(歌) ·문장 등이 있고, 애찬이란 남의 죽음을 애도하고 고인의 덕을 찬양하는 글로서 한(漢)나라의 채옹(蔡邕)이 쓴 “의랑호공부인애찬(議郞胡公夫人哀贊)”은 유명함. 사찬이란 『사기(史記)』・『한서(漢書)』 등을 비롯한 역대 사서의 책 끝에 그 책에 수록된 인물에 대한 포폄(褒貶 : 칭찬함과 나무람)을 적은 것임. 우리나라도 예부터 많은 학자 ·지명인사들에 의한 여러 가지 찬이 전해짐.
으로 기려서, 필부(匹夫)와 필부(匹婦)들로 하여금 책을 펴서, 한 번만 눈으로 보아도 그 감동된 마음과 애절한 심정이 자연스럽게 생기도록 하였다. 신하로서는 충성하고, 자식으로서는 효도하고, 아내로서는 정조를 지키며,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고, 친구를 친구로 대접한다는, 각자가 타고난 성품과 당연히 해야 할 직분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사도(司徒)
주 159)
중국의 관직명. 순임금 때에는 주(主)로 교육(敎育)만을 맡았으나, 주(周)나라 때에는 호구(戶口)・전토(田土)・재화(財貨)・교육(敎育)을 맡아보았음. 전한(前漢) 때에 대사도(大司徒)로 이름을 고치어, 대사마(大司馬)・대사공(大司空)과 아울러 삼공(三公)이라 했음.
와 전악(典樂)
주 160)
조선시대 장악원에서 음악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정6품 잡직. 궁중에서 음악을 맡아보던 잡직(雜職)으로, 임시로 봉급을 주기 위해 두었던 체아직(遞兒職) 녹관(祿官)이다. 이 중에 가장 우두머리였으므로 아래로 종6품 부전악·정7품 전율·종7품 부전율·정8품 전음·종8품 부전음·정9품 전성·종9품 부전성 모두를 거느렸음. 음악교육과 연습에 관한 일을 맡았으며, 정원은 1명이었고, 영조 때에 1명을 더 늘려 2명이 되었음.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음악인인 악사(樂師)에게 주었으며, 그 아래에는 종6품 잡직인 부전악 2명을 두었고, 1명은 악사, 1명은 악생(樂生)이나 악공(樂工)을 임명했음.
의 소속이 깨우치거나, 가르쳐 주는 공력을 기다릴 것 없이, 어진 사람은 머리를 숙이고, 여기에 따르게 되며, 어리석은 사람도 걸음을 빨리 하여,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 성조(聖祖)
주 161)
거룩한 조상. 곧 성인이나 성왕의 조상을 이름.
께서 처음으로 편집하라고 명하신 것이요, 전하께서도 계승하여 천명하신 것이다. 이제 신들이 관려(管蠡)
주 162)
관규여측(管窺蠡測)의 준말. 대롱으로 엿보고 송곳이 가리키는 곳을 살핀다는 뜻으로, 작은 소견이나 자기 견해를 겸손하게 말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
같은 소견으로 어찌 그 중간에 한 말씀으로 찬사를 드릴 수 있겠는가. 다만 『상서(尙書)』
주 163)
중국 전통 산문의 근원. 한대(漢代) 이전까지는 ‘서(書)’라고 불렸는데, 이후 유가사상의 지위가 상승됨에 따라 소중한 경전이라는 뜻을 포함시켜 한대(漢代)에는 『상서(尙書)』라 하였으며, 송대(宋代)에 와서 『서경(書經)』이라 부르게 되었음. 현재는 『상서』와 『서경』 두 명칭이 혼용되고 있으며, 우(虞), 하(夏), 상(商), 주(周) 시대의 역사적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음.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상서는 58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周) 당시의 원본이 아니라 위진남북조시대에 나온 위작(僞作)임. 상서는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인해 소실되어 전승과정이 복잡하고 진위(眞僞) 여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판본으로는 금문상서(今文尙書)와 고문상서(古文尙書)가 있음.
에 이르기를, “천서(天敍)
주 164)
하늘에서 부여한 차서(次序). 즉 순서 있게 구분하여 벌여 나가는 관계.
도 법칙이 있는데, 우리 인간은 오전(五典)
주 165)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떳떳한 도리(道理). 곧 부자(父子) 사이의 친애(親愛). 군신(君臣) 사이의 의리(義理), 부부(夫婦) 사이의 분별(分別), 장유(長幼) 사이의 차서(次序), 붕우(朋友) 사이의 신의(信義). 아버지는 의리(義理)로, 어머니는 자애(慈愛)로, 형은 우애(友愛)로, 아우는 공경(恭敬)으로, 자식은 효도(孝道)로 각각(各各) 대하여야 할 마땅한 길.
을 바로 잡아야 하니, 이 오전을 도타이 하라. 천질(天秩)
주 166)
하늘이 만물에 질서를 지어 줌. 또는 그 질서.
도 예(禮)가 있으니, 우리 인간도 오례(五禮)
주 167)
나라에서 행하는 5가지 의례(儀禮).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 등의 제사에 관한 길례(吉禮), 본국(本國) 및 이웃나라의 국상(國喪)이나 국장(國葬)에 관한 흉례(凶禮), 출정(出征) 및 반사(班師)에 관한 군례(軍禮), 국빈(國賓)을 맞이하고 보내는 빈례(賓禮), 즉위 ·책봉 ·국혼(國婚) ·사연(賜宴) ·노부(鹵簿) 등에 관한 가례(嘉禮) 등을 말함.
를 써야 할 것인 바, 이 오례를 떳떳이 하라. 다같이 공경한 마음으로 협력하여, 융화를 이루어 착하게 하라.”라고 했다. 또 주역(周易)
주 168)
유교 경전으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 동시에 가장 난해한 글로 일컬어짐. 공자가 극히 진중하게 여겨 받들고 주희(朱熹)가 ‘역경(易經)’이라 이름하여 숭상한 이래로 『주역』은 오경의 으뜸으로 손꼽히게 되었음. 『주역』은 상경(上經)·하경(下經) 및 십익(十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십익은 단전(彖傳) 상하, 상전(象傳) 상하, 계사전(繫辭傳) 상하, 문언전(文言傳)·설괘전(說卦傳)·서괘전(序卦傳)·잡괘전(雜卦傳) 등 10편을 말함.
의 계사(繫辭)
주 169)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를 통틀어 이르는 말. 점술가들이 많이 이용하는 『주역』은 8괘(八卦)와, 그것을 결합한 64괘, 그리고 각 괘의 길흉을 서술한 괘사(卦辭), 각 괘를 이루는 여섯 개의 효를 설명한 효사(爻辭)가 중심이 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괘사와 효사를 합친 것을 계사(繫辭)라고 함.
에서 말하기를, “그 기회와 변통을 보아, 법과 예를 행하라. 미루어 행하는 것은 도(道)에 있으며, 말을 아니 해도 믿게 되는 것은 덕과 행동에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은 요순의 백성이요, 이 세상도 당우의 세상이다. 당우의 교화를 이 세상에 행함과 동시에 요순의 정치가 이 백성에게 미치게 된 것도 전하께서 모든 정치를 하실 때마다 요순과 당우에 부합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삼강행실도』 ‘충신도’에 수록된 이는 110명이었지만, 『언해 삼강행실도』에는 35명이 실려 있고, 『오륜행실도』에도 35명이 실려 있다. 이 중 중국사람이 29명, 우리나라 사람이 6명이다. 주인공은 여성은 한 명도 없고, 다 남자이며, 거의 벼슬살이를 한 사람들이다.

2. 국어학적인 특징

국어학적인 측면으로는 표기법, 음운, 어휘, 형태・통사의 특징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초기에 나왔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언해본),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를 비롯한 역대 문헌과 비교해 봐야 할 뿐만 아니라, 현대국어의 여러 양상과도 비교해 봐야 한다.
2.1. 표기법의 특징
표기법은 ‘훈민정음’이 창제 당시부터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므로,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이 원칙이었다. 즉 당시에는 현대 언어학에서 말하는 어근[root]이나 접사[affix], 기본형태[basic morph] 등에 관한 이론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
주 170)
현대국어에서 맞춤법이 제정된 것은 1933년에 조선어학회에서 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이며, 지금의 〈한글 맞춤법〉은 1989년 3월 1일부터 시행되도록 문교부에서 고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예에서 기본형태를 밝혀 적어, 언어학자들을 놀라게 한다. 다음에 그 예를 보인다.
(5)ㄱ. 곶爲李花, 의갗爲狐皮, 爲土, 낛爲釣, 爲酉時, 못爲池
ㄴ. 나치, 옮거늘, 도다, 앉거늘, 낛드리워
(5ㄱ)은 『훈민정음해례』에 나타나 있는 예를 든 것으로 발음대로 쓰지 않고, 기본형태를 밝혀 적은 것이다. 발음대로라면, 각각 ‘곧, 여갇, , 낙, , 몯’이었을 것이다. (5ㄴ)은 뒤에 닿소리로 시작되는 요소가 오므로, 하나의 받침만 쓰거나, 중화된 음으로 적어야 하는데도, 기본형태를 밝혀 적은 예들이다.(고영근 1997:22) 또한 홀소리로 시작되는 어미, 또는 접사, 조사가 이어질 때에도 어근이나 체언의 형태소를 밝혀 적는 경우도 많았다.(고영근 1997:23)
(6)ㄱ. 눈에, 손로, 일, 몸이, 죵
ㄴ. 안아, 안시니다, 담아, 감아
(6ㄱ)은 체언과 조사, (6ㄴ)은 어근과 접사, 또는 어미와 합쳐질 때 기본형태를 밝혀 적은 예들이다. 『오륜행실도』에서도 이와 같은 표기법은 이어지고 있다. 다음의 예를 보자.
(7) 유의  뢰니 공 뎨라 어버이 셤기믈[셤김-을] 지효로  집이 가난야 믈음식을 먹으며 어버이 위야 니 밧긔[-의] 을 져오더니 어버이 죽은 후의 남으로 초나라 놀 조츤[좇-은] 술위 일이오 오만종의 곡식을 흐며 자리 겹으로 안즈며[앉-으며] 솟츨[-을] 버려 먹을 이에 탄식여 오 비록 믈을 먹으며 어버이 위야 을 지랴 나 가히 엇디 못 리로다 대 공 드시고 샤 로 가히 닐오 살아셔 셤기매 힘을 다고 죽은 후 셤기매 모믈[모-을] 다다 리로다(『오륜행실도』 ‘자로부미’).
위의 (7)에서 밑줄 친 부분은 체언이나 어근이 뒤에 오는 홀소리에 연철하여 표기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중세국어와는 달리 많은 부분에서 받침으로 끝나는 어근이나 체언 다음에 홀소리로 시작되는 접사 또는 어미, 조사가 와도 구분하여 썼다.
(8) 강혁은 한나라 님츼 사이니[사-이니] 어려서 아븨 일코 란리 만나 어미 업고 피란여 양 믈을[믈-을] 고 드른 거 주어 공양 로 도적을 만나 혹 겁박여 잡아[잡-아]가려 면 믄득 울며 비되 노뫼 이셔라 고 말이[말-이] 공슌고 졀야 사을[사-을] 감동니 도적이 마 해티 못고 혹 피란 곳을[곳-을] 르치니 인여 난리듕에 모 다 보젼디라 가난고 궁박여 몸과 발을[발-을] 벗고 고공이 되어 어미 공양되 어믜 몸에[몸-에] 편 거 아니 죡 거시 업디라 건무【한 광무 대 년호라】 말에 어미로 더브러 고향에 도라와 양 셰시에 관가의셔  셩 졈고 혁이 어미 늙으므로[늙-으므로] 요동티 아니니 향리 사이[사-이] 일 강거효【거효 큰 라】라 더니 어미 죽으매 양 무덤겻 녀막고 거상을 되 상복을 마 벗디 못 니 군 승연【군슈 아 벼이라】을 보내여 상복을 벗겻더니 원화【한 쟝뎨 대 년호라】 듕에 됴셔 샤 곡식 쳔셕을 주시고 양 팔월의 댱니【원이라】로 존문고 고양과 술을[술-을] 주라 시다(『오륜행실도』 ‘강혁거효’).
이 예들은 이 시기에는 이미 이른바 형태주의 표기법 혹은 ‘끊어적기’(고영근 1997:23)가 상당히 일반화했음을 보여준다.
주 171)
이는 이른바 형태주의적 표기로 ‘어간’과 ‘어미’, ‘체언’과 ‘조사’를 구분해 적기로 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앞서 현대 언어학적 인식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이희승・안병희 1989:158-195)
2.2. 문자・음운론적인 특징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한글 자모가 28자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초기에는 이런 글자들이 다 잘 쓰였으나, 어떤 글자들은 변화가 일어났고, 어떤 글자들은 아예 없어졌는데,
주 172)
‘ㆆ, ㅿ, ㆁ, ・, ㅸ, ㅹ’와 같은 글자들이 없어졌다.(박병채 271-274)
18세기 말에 쓰여진 『오륜행실도』에서도 역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사례들을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2.1. ‘ㅿ, ㅸ, ㆁ’이 사용 안 됨.
15세기에 사용되던 반치음이나 순경음, 그리고 이른바 ‘옛이응’이 이 책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국어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반치음 ‘ㅿ’은 중세국어에서부터 사용되었지만, 이는 ‘ㅅ’과 상보적 분포[complementary distribution]를 이루었다. 즉 ‘ㅅ’이 유성음화되는 위치에서 거의 정확하게 ‘ㅿ’이 사용되었다.(허웅 1986:468-470) 그러므로 이는 음소로 보기보다는 변이음[allo-phone]으로 보아야 하지만, 표기는 17세기까지도 되었으므로, 『오륜행실도』에서 쓰이지 않은 것은 변화로 취급되어야 마땅하다.
다음은 이전의 문헌에서 ‘ㅿ’이 쓰였던 예들이 『오륜행실도』에서 다르게 표기된 것이다.
(9) 겨(구간 1:75)〉겨(오륜 1:2, 1:23, 1:44), 마(훈몽 중:7)〉마을(오륜 1:39), 아(월인 1:5)〉아(오륜 1:41, 1:42), 처(용가 78)〉처음(오륜 1:62)
그러므로 『오륜행실도』에서는 ‘ㅿ’으로 표기되었던 것은 ‘ㅇ’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ㅸ’도 ‘ㅂ’이 울림소리가 된 것인데, 후에 반홀소리 /w/로 바뀌거나 없어지기 전의 과도기음으로 본다.(허웅 1986:314-321) 『오륜행실도』에서는 ‘ㅸ’이 쓰이던 자리에 반홀소리 ‘오・우(/w/)’로 표기가 되었다. 특히 용언에서는 현대국어에서도 이른바 ‘ㅂ 불규칙 용언’
주 173)
어간의 끝소리인 ‘ㅂ’이 닿소리 요소 앞에서는 기본형태가 유지가 되지만, 홀소리로 시작되는 요소 앞에서 ‘오/우’(/w/)로 바뀌게 된다.
으로 표기되는 것과 같다.
(10) 셜워고(오륜 1:52) ¶디치로 셜다가(월인 9:26),
치워(오륜 1:25) ¶치과 더과(월인 7:58),
두려오니(오륜 1:39) ¶두려 光이라(월인 8:26)
‘ㆁ’은 『훈민정음』에서 ‘아음(牙音)’의 ‘불청불탁(不淸不濁)’에 해당되는 표기로, 종성으로서만이 아니라 초성으로서도 음가가 있었다. 15세기에는 그런 음가를 가진 낱말들이 다음과 같이 많이 쓰였다.
(11) 이(훈민해례 용자해), 이귀(석보 19:17), 이(석보 13:18), : 리(훈몽 상:21), 다 시다(삼강 효:15)
『오륜행실도』에서는 이런 ‘ㆁ’의 표기는 하지 않고, 받침이나 초성으로도 모두 ‘ㅇ’으로 표기하였다.
(12) 이에(오륜 1:4, 1:5), 니어(1:25), 더여디이다(1:56)
2.2.2. 겹닿소리의 간소화
15세기부터 겹닿소리는 합용병서(合用並書)의 형태로 많이 쓰였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된소리 표기가 아닌,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여기에는 크게 ‘ㅅ계’와 ‘ㅂ계’가 있었다. 이들이 된소리로 바뀌게 된 것은 허웅(1986:471-482)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13)ㄱ. ‘ㅅ계’는 대체로 서기 16세기 초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진다.
ㄴ. ‘ㅂ계’는 17세기 끝에서부터 동요하기 시작하여 1730년 경에는 그 변천은 완성되었다.
ㄷ. ‘ㅄ계’는 16세기부터 동요하기 시작하여, 17세기에는 된소리로 합류한 것도 있고, ‘ㅂ계’로 합류한 것도 있다.(이것은 ‘ㅂ계’와 운명을 같이한다.)
그런데 『오륜행실도』에서는 위의 세 계통의 겹닿소리가 다 쓰이고 있는데, 이 때는 거의 된소리로 변천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아래에 제시하는 예들은 현대국어에서 예외없이 된소리이기 때문이다.
(14)ㄱ. ‘ㅅ계’(‘오륜’ 생략, 숫자는 쪽수. 이하 같음)
ㅺ : 어(42ㄴ, 50ㄴ), 을며(73ㄱ), 처(8ㄱ), 흐니(12ㄱ), 츠려(75ㄴ), 치리라(18ㄴ), 거(12ㄱ)
ㅼ : (68ㄱ), 라(65ㄱ, 70ㄴ), (32ㄴ), (5ㄴ), 여(23ㄱ), 디뇨(47ㄴ), (50ㄱ), 라간(48ㄱ), 이라(58ㄱ)
ㅽ : 디려(66ㄱ), (66ㄱ), 으며(43ㄱ), 리고(57ㄱ), 니(50ㄱ)
ㅾ : 저(40ㄴ), 여(63ㄱ), 여디고(33ㄱ), 치니(33ㄴ)
ㄴ. ‘ㅂ계’
ㅳ : 이(75ㄱ), 으니(23ㄱ)
ㅄ : (66ㄱ), 하(67ㄴ), 화(4ㄱ), 던(32ㄴ), (5ㄴ), 아(68ㄱ), 기(2ㄱ), (32ㄴ)
ㅶ : 듯(27ㄱ), 고(43ㄱ)
2.2.3. 겹홀소리의 표기와 음가
‘훈민정음’ 창제 이래 두겹홀소리로 표기되었던 ‘ㅑ, ㅕ, ㅒ, ㅖ, ㅙ, ㅝ, ㅞ, ㅠ’가 이 책에서는 그대로 표기가 되었다. ‘ㅐ, ㅔ, ㆎ’는 각각 /aj, əj, ʌj/와 같은 ‘내림겹홀소리’였을 것인데, 서기 1780년 경까지는 그런 발음의 표기였다가, 서기 1800년 대에 와서야 단모음이 되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허웅 1986:482-487), 『오륜행실도』에서의 이런 표기는 아직 ‘내림겹홀소리’의 표기라고 해야 한다. ‘ㅚ, ㅟ, ㅢ’도 각각 /oj, uj, ɨj/를 표기하는 것이었는데, 이들이 ‘오름겹홀소리’가 되었다가, 홑홀소리로 바뀐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의 표기는 ‘내림겹홀소리’의 표기다.(허웅 1986:486-487) 마찬가지로 세겹홀소리로 표기된 ‘ㅒ, ㅖ, ㅙ, ㅞ’는 각각 /jaj, jəj, waj, wəj/의 표기였으나, 19세기에 각각 /jɛ, je, wɛ, we’로 변했고, ‘ㆉ, ㆌ’는 대개 말끝에서 주격, 또는 지정사가 연결될 때에 나타나는데, 주격조사 ‘가’가 생기고, 겹홀소리들의 변화가 일어난 19세기에 없어졌는데,(허웅 1986: 487-488) 이 책에서는 그대로 쓰이고 있다.
『오륜행실도』에서 쓰이고 있는 겹홀소리들의 양상은 다음과 같다.
(15)ㄱ. /j/ 계 : ‘ㅐ, ㅑ, ㅒ, ㅔ, ㅕ, ㅖ, ㅛ, ㅠ, ㅢ, ㆎ’
ㄴ. /w/ 계 : ‘ㅘ, ㅙ, ㅚ, ㅝ, ㅞ, ㅟ’
ㄷ. 겹홀소리+ㅣ : ‘ㆌ, ㆉ’
(15ㄴ)에서는 ‘(22ㄴ)’처럼 ‘쇼+ㅣ(주격조사)’인 것도 있으나, ‘믄(58ㄴ)’에서는 한자 발음을 그렇게 적은 것이다.
2.2.4. 거센소리 되기와 나눠 적기
‘훈민정음’ 창제 때부터 거센소리(ㅎ 포함)는 차청(次淸)으로 표기되었는데, 이 소리는 원래부터 거센소리로 낱말에 들어있던 것과 ‘ㅎ’이 앞음절의 끝이나 뒤음절의 첫소리로 올 때, 거센소리가 될 수 있는 예삿소리 ‘ㄱ, ㄷ, ㅂ, ㅈ’은 각각 ‘ㅋ, ㅌ, ㅍ, ㅊ’로 바뀐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16)ㄱ. 원래의 거센소리 : 차탄더니(50ㄴ), 칼로(43ㄱ), 털을(12ㄱ), 파고(7ㄴ)
ㄴ. ‘ㅎ+예삿소리, 예삿소리+ㅎ’ : 격동케(74ㄴ), 면티(48ㄱ)
(16ㄴ)과는 달리 기본형태를 밝히기 위한 표기에는 ‘ㅎ’과 예삿소리를 구분해 적었다.
(17) 못게(70ㄱ), 밧흘(73ㄱ), 잡히여(42ㄱ)
이 책을 쓸 때에는 거센소리에 대한 음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예들이 있다. 즉 거센소리를 예삿소리와 거센소리의 합음으로 보고, 이를 나누어 적었다.
(18) (23ㄱ), 딕희여(35ㄱ), 츠려(75ㄴ)
(18)의 예들은 체언의 기본형태에 ‘ㅊ’을 받침으로 해도, 그것이 홀소리로 시작되는 요소가 올 때 ‘ㅊ’이 연철되었다고 봐도 되는데, 구태여 ‘ㅅ 받침’-발음으로는 /ㄷ/을 쓴 것은, 뒤에 오는 ‘ㅊ’소리가 ‘/ㄷ/’ 다음에 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다음의 예처럼 거센소리를 예삿소리와 ‘/ㅎ/’의 합음이라고 보고, 나누어 썼다.
(19) 깁히(57ㄱ)
거센소리의 생성에는 이른바 ‘ㅎ 말음 체언’이 큰 몫을 했다고 여겨지는데, 이는 우리말에서 태초부터 있었던 것으로 중세국어 이후 우리말 표기에 많이 등장하며, 이 책에서도 많은 예가 나온다.
(20) 길셔(18ㄱ), 둘흘(50ㄴ), 들(7ㄴ), 밧흘(73ㄱ)
(20)에 나타난 예들처럼 ‘ㅎ 말음’이 많이 쓰일 경우 뒤에 예삿소리로 시작되는 요소가 오면, 거센소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다른 옛 문헌에서는 이런 경우가 아주 많다.
(21) 하콰 콰(능엄 2:20), 너븐 드르콰(능엄9:22), 몸과 콰 손과 발와(석보 13:19)
그러므로 ‘ㅎ 말음 체언’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은 거센소리의 생성이 쉬웠다는 방증이 된다.
2.2.5. 잇몸소리가 입천장소리 되지 않음
입천장소리 되기는 입천장소리가 아닌 소리가 뒤에 오는 홀소리 /i/나 반홀소리 /j/를 닮아, 입천장소리가 되는 현상이다. 이는 /i/나 /j/가 앞홀소리이면서, 높은홀소리여서 발음하기가 쉽기 때문에 입천장소리가 아닌 소리가 발음하기 쉬운 곳으로 옮겨오는 것이다. 여기에는 잇몸소리 ‘ㄷ, ㄸ, ㅌ’이 각각 센입천장소리 ‘ㅈ, ㅉ, ㅊ’으로 바뀌거나, 여린입천장소리 ‘ㄱ, ㄲ, ㅋ’이 각각 센입천장소리 ‘ㅈ, ㅉ, ㅊ’으로 바뀌거나, 목구멍소리 ‘ㅎ’이 센입천장소리 ‘ㅅ’이 되는 현상들이 있는데, 통시적인 면에서는 잇몸소리가 센입천장소리로 바뀌는 현상만 다룬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자어는 원래 중국어를 표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말과는 많이 차이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발음들이 우리말로 바뀌면서, 현대국어에서는 입천장소리가 아니었던 것이 입천장소리로 바뀌었다. 그러나 『오륜행실도』에서는 아직 그 현상이 일반화되지 않았다.
(22) 대댱(63ㄱ), 댱슈(7ㄴ), 뎡몽쥬(79ㄴ), 됴뎡(15ㄱ)
순수한 우리말에서도 현대국어에서는 입천장소리가 된 것이 이 책에서는 잇몸소리로 표기한 것이 많다.
(23) 갑디(33ㄱ), 됴희와(32ㄴ), 딕희여(35ㄱ), 티거(9ㄴ), 텨(3ㄴ)
(22)의 예들은 〈한글 맞춤법〉에서 인정하는 ‘입천장소리 되기’에 해당되지 않는 것들이다.(이희승・안병희 1991:41-45)
2.2.6. ‘ㄴ’과 ‘ㄹ’이 머릿소리 규칙에 적용 안 됨
‘머릿소리 규칙’은 현대국어에서 말의 첫머리에 오는 닿소리가 본래의 음가를 잃고 다른 음으로 발음되는 것을 말하는데,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다.
(24)ㄱ. 흐름소리[流音] /ㄹ/이 말머리에 올 수 없다. 어두에서 홀소리 앞에서 /ㄹ/은 /ㄴ/으로 바뀐다. (예) 량심(良心)→양심, 력설(力說)→역설, 류행(流行)→유행, 리과(理科)→이과, 락원(樂園)→낙원, 로인(老人)→노인, 루각(樓閣)→누각, 래일(來日)→내일, 뇌성(雷聲)→뇌성
ㄴ. 잇몸 콧소리[齒頸鼻音] /ㄴ/이 말머리에서 /i/나 /j/ 앞에서 영(零)이 된다. (예) 녀자(女子)→여자, 뇨소(尿素)→요소, 뉴대(紐帶)→유대, 니토(泥土)→이토.
ㄷ. 말머리에 겹자음이 올 수 없다. 그러나 옛말에서는 많이 쓰였다.
ㄹ. /ㆁ/이 말머리에서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오륜행실도』에서는 (24ㄱ, ㄴ, ㄷ)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은 예들이 많다. (24ㄷ)의 경우는 이미 앞에서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25)ㄱ. 냥식과(29ㄴ), 녈녀(7ㄴ), 뇽방이(2ㄱ), 뉵슈뷔(57ㄴ), 니디(20ㄴ)
ㄴ. 렬렬여(83ㄴ), 률이(12ㄱ), 릉과(13ㄱ), 리(7ㄴ)
2.2.6. 앞홀소리 되기 없음
우리말에서 뒤홀소리 /ㅏ/, /ㅓ/, /ㅗ/, /ㅜ/, /ㅡ/는 뒤 음절 모음 /ㅣ/가 이어나면 /ㅣ/의 전설성에 동화되어 앞홀소리 /ㅐ/, /ㅔ/, /ㅣ/, /ㅚ/, /ㅟ/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일부 낱말을 제외하고는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륜행실도』에서는 이런 앞홀소리 되기에 관한 예들이 별로 없다는 것은 그 당시에 이미 한성 혹은 경기도 지역어가 쓰였을 뿐만 아니라, 기본형태를 적는 것에 충실했다는 이야기가 된다.(*는 일어날 수 있는 변화지만 그렇지 않음의 표시)
(26) 긔록니라(63ㄴ) *기록니라, 긔졀엿다가(45ㄴ) *기졀하엿다가, 거즛(38ㄱ) *거짓, 저(40ㄴ) *저, 믜온(77ㄴ) *미온
2.2.7. 입술소리 다음의 둥근홀소리 되기 없음
중세국어부터 쓰이던 입술소리 다음의 안둥근홀소리 ‘ㅡ’가 현대국어에서는 대부분 둥근홀소리 ‘ㅜ’로 바뀌었다. 이는 입술소리가 양입술을 오무려서 내는 소리이므로, 그 다음에 내는 소리는, 안둥근홀소리보다는 둥근홀소리로 내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륜행실도』에서는 아직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표는 위와 같음.)
(27) 머믈고(65ㄴ) *머물고, 믈러나라(27ㄴ) *물러나라, 믈의(66ㄱ) *물의, 브른대(57ㄱ) *부른대, 븍방(11ㄴ) *북방, 븟그러오미(58ㄴ) *부끄러오미, 리고(57ㄱ) *리고
2.2.8. 없어짐
이는 기본형태에서 어떤 음소가 떨어져 나가거나, 없어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현대국어에서는 〈한글 맞춤법〉에서 어휘형태소[lexicological morpheme]일 경우에는 기본형태를 밝혀 적고, 문법형태소[grammatical morph eme]일 때에는 변이형태[allo-morph]로 적어도 되는 것으로 정해 놓았다. 그러나 『오륜행실도』에서는 체언에서 둘 받침이 묵음이 되거나, 용언에서 불규칙적인 활용으로 변화가 일어나면, 그대로 적었다.(*표는 위와 같음.)
(27)ㄱ. 업도다(58ㄴ) *없도다
ㄴ. 어(42ㄴ) *어, 디(23ㄱ) *디, 블러(12ㄱ) *브르어, 누어(78ㄱ) *눕어
(27ㄱ)은 둘받침으로 끝나는 어근인 기본형태에서 하나의 음소가 음절 규칙에 따라서 없어지는 경우이고, (27ㄴ)은 불규칙 용언으로 어근인 기본형태에서 음소가 없어지는 것이다. (27ㄱ)은 다음과 같이 기본형태를 밝혀 적은 것과는 다른 현상이다.
(28) 늙고(15ㄱ) *늑고, 디(43ㄱ) *디
2.2.9. 더해짐
더해짐은 없었던 음소가 더해지는 것인데, 대개 홀소리 충돌[hiatus]을 막기 위해서 반홀소리 /j/가 더해지거나, ‘르 불규칙 용언’인 경우에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다음의 예가 그런 것이다.
(29)ㄱ. 되여(33ㄱ) *되어, 보여(38ㄱ) *보어, 여(45ㄴ) *어
ㄴ. 닐러(12ㄱ) *니르어, 리(30ㄱ) *르이, 불러(43ㄱ) *부르어
(29ㄱ)은 홀소리와 홀소리가 만날 때 반홀소리 /j/가 더해진 예이고, (29ㄴ)은 ‘르 불규칙 용언’의 끝음절 ‘르’가 홀소리로 시작되는 요소와 만날 때 ‘ㅡ’가 없어지고, ‘ㄹㄹ’이 된 것이다.
2.2.10. 줄어짐
줄어짐은 두 개 이상의 음소나 음절이 합해져, 줄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다음에 그 예들을 보인다.
(30)ㄱ. 군(9ㄴ) *군이, 급히(9ㄴ) *급이, 너겨(63ㄱ) *너기어, 기려(65ㄴ) *기다리어
ㄴ. 면티(48ㄱ) *면디, 셰코(52ㄴ) *셰고
(30ㄱ)은 두 음절이 합해진 경우고, (30ㄴ)은 두 음소가 합해진 경우다.
2.3. 형태・통사론적 특징
여기서는 어휘・형태소・통사가 서로 맞물려 있으므로, 이를 명사류・부사류・관형사류・조사류・동사류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이하에서, 필요한 경우에만 형태소 분석을 하기로 함.)
2.3.1. 명사류
명사류는 명사・대명사・수사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이들은 비슷한 점이 많으므로, 함께 다루기로 한다.
2.3.1.1. 본래명사류와 전성명사류
본래명사류는 본래부터 명사류였던 것이고, 전성명사류는 다른 품사에서 파생접사에 의하여, 파생된 것이다. 다음의 예를 보자.
(31)ㄱ. 간관(77ㄴ), 강남(69ㄴ), 강산(65ㄱ), 개(30ㄱ), 거진(75ㄱ)
ㄴ. 무덤(52ㄴ), 홈(52ㄴ), 삶(7ㄴ), 죽엄(25ㄱ)
(31ㄱ)은 본래부터 명사・대명사・수사인 예들이나, (31ㄴ)은 동사류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여기에 쓰인 파생접미사는 ‘{-ㅁ/-옴/-/-엄}이다.
본래명사류에는 다음과 같은 옛말들이 나타나고 있다.
(32)ㄱ. 굼ㄱ(12ㄴ)
ㄴ. 길셔(18ㄱ), 둘흘(50ㄴ), 들(7ㄴ), 밧흘(73ㄱ)
(32ㄱ)은 중세어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어근이고, (32ㄴ)은 이른바 ‘ㅎ 말음 체언’으로 현대국어와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보여 준다.
2.3.1.2. 예삿말과 높임말
명사류에는 예삿말과 높임말이 있다. 물론 이들은 높임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높임말이 주어로 쓰일 때는 ‘주체 높임법’이 사용되고, 목적어나 부사어로 쓰일 때에는 ‘객체높임법’이, 들을이가 되면 ‘상대높임법’이 사용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특별히 높임말 명사류가 없고, 다만 조사 또는 동사류의 높임법에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33)ㄱ. 튱혼을 위로여디이다 대 샹이 좃 (84ㄱ)
[+높임] [+높임] [+높임][-높임]
ㄴ. 님군뫼셧더니 (22ㄴ)
[+높임] [+높임]
(33ㄱ)에서 인용한 말은 말할이가 신하이고, 들을이가 임금이므로 상대 높임이 되었고, 상위문은 주어가 임금이므로, 주체 높임이 되었다. (32ㄴ)은 ‘님군’은 높임말이 아님에도 서술어에 높임법이 쓰였으므로 높임말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주어가 생략되어도, 서술어를 보면 높임말을 확인할 수 있다.
(34) (주어) 디 말라 다 (23ㄱ)
[+높임] [+높임]
(34)에서는 주어는 생략되어 있으나, 서술어에 높임법이 쓰였으므로, 이 문장의 주어는 황제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서술어의 쓰임만 높임말을 식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음과 같이 조사의 쓰임을 보고도 알 수 있다.
(35) 쥬운이 텬긔 와 (15ㄱ)
[+높임][+높임][+높임]
(35)에서 ‘텬’에게 조사 ‘긔’가 쓰이고, 서술어에 ‘뵙-’이 쓰여, ‘텬’는 높임말이 되었다.
2.3.2. 부사류
부사류는 부사만 있는데, 이를 본래부사와 파생부사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36)ㄱ. 각각(70ㄴ), 구여(12ㄴ), 다시(12ㄱ), 더욱(43ㄱ), 도로(38ㄱ), 몬져(40ㄴ)
ㄴ. 가히(5ㄴ), 구챠히(75ㄴ), 깁히(57ㄱ), 만이(40ㄱ) 오(2ㄱ)
(36ㄴ)에서 부사 파생접미사는 {-이}가 대부분이나, {-오}나 {-리}와 같은 것들도 쓰였다.
2.3.3. 관형사류
관형사류에는 관형사만 있는데, 여기에도 본래관형사와 파생관형사가 있다.
(37)ㄱ. 모든(22ㄴ), 거즛(38ㄱ), 여러(45ㄴ), 무(43ㄴ)
ㄴ. 두(6ㄱ), 스무(61ㄱ), 큰(6ㄱ), 이(32ㄴ), 그(33ㄱ), (33ㄴ)
(37ㄱ)은 본래부터 관형사였으나, (37ㄴ)은 다른 품사에서 파생된 것이다. 예컨대 ‘그, 이’ 같은 것은 대명사에서 파생되었다. 이 때의 파생접미사는 {-∅-(영)}이다. 그러나 수사에서 파생된 관형사는 기본형태를 바꾸지 않은 것은 파생접미사가 {-∅-(영)}이나, ‘, 두, 세, 네’은 각각 다르다.
(38) ;나+ㄴ(관형사 파생접미사), 두;둘+ㄴ(관형사 파생접미사), 세;셋+ㄴ(관형사 파생접미사), 네;ㄴ(관형사 파생접미사)
2.3.4. 조사류
조사는 격조사와 접속조사, 보조사로 나눈다.
격조사(格助詞)는 체언을 같은 문장 안의 다른 낱말과 일정한 문법적 관계를 맺는 구실을 한다. 그래서 격(格) 개념의 차이에 따라 격조사의 하위분류 방법이 달라진다. 변형생성문법에서는 격을 심층구조상의 내면격(또는 심층격)과 표면구조상의 표면격으로 구분한다. 격조사를 표면상에 나타난 형태에만 국한하여 분류하는 것이 표면격에 대한 분류인데, 본고에서는 이 방법을 택한다.
격조사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가 있다.
(39)ㄱ. 주격 조사 : 앞의 체언을 주어가 되게 함.
ㄴ. 관형격 조사 : 앞의 체언을 관형어가 되게 함.
ㄷ. 목적격 조사 : 앞의 체언을 타동사의 목적어가 되게 함.
ㄹ. 부사격 조사:앞의 체언을 부사어가 되게 함. 다른 격조사에 비해 그 숫자가 많으며, 처소, 도구, 자격, 원인, 동반, 비교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님.
ㅁ. 호격 조사 : 독립어로서 호칭이 되게 함.
접속조사(接續助詞)는 두 성분을 이어 주는 구실을 한다.
보조사(補助詞)는 여러 성분에 두루 붙어 특별한 뜻을 더해 주는 구실을 하며, 격조사가 올 자리에 쓰이거나, 격조사 혹은 보조사 뒤에 다시 보조사가 쓰이기도 하며, 체언뿐만 아니라 부사나 연결어미 뒤에도 쓰인다.
이 책에서 격조사의 쓰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40)ㄱ. 주격조사 : 거진이(75ㄱ), 검극이(47ㄴ), 나라히(6ㄱ);{ㅣ/이}
ㄴ. 관형격조사 : 건강의(49ㄴ), 고향의(17ㄴ), 곳의(3ㄴ), 공의(58ㄴ);{의}
ㄷ. 목적격조사 : 가기(82ㄱ), 거마(18ㄱ), 고굉을(40ㄱ);{을//를}
ㄹ. 부사격 : 닿음-;결을에(65ㄴ), 들에(12ㄴ), 들(7ㄴ);{ㆎ/에}
떠남-군듕의셔(63ㄱ), 길셔(18ㄱ), 듕노에셔(29ㄴ);{셔/의셔}
수여-금인의게(42ㄱ), 네게(30ㄱ), 녹산의게(29ㄴ), 놈의게(77ㄴ);{긔/의긔}
향방-날려(30ㄱ), 니겸려(29ㄴ);{다려}
가온대로(57ㄴ), 남경으로(52ㄱ), 셔문으로(10ㄱ);{으로}
연장-공으로(40ㄱ), 관로(54ㄴ), 군로(7ㄴ), 널로(3ㄴ);{로/으로/으로}
ㅂ. 호격조사 : 놈아(30ㄱ), 닐위미여(43ㄴ), 도적놈아(38ㄱ)
접속조사는 다음과 같이 쓰인다.
(41). 고경과(29ㄴ), 남졔운과(33ㄴ), 냥식과(29ㄴ)
보조사는 다음과 같이 쓰인다.
(42)ㄱ. 시작-일로브터(1:15);{로브터}
ㄴ. 단지-녹만(15ㄱ), ;{만}
ㄷ. 각자- 홈마다(52ㄴ);{마다}
ㄹ. 자격-대로(82ㄱ);{대로}
ㅁ. 동일-티(3ㄴ);[티]
ㅂ. 각자-날마다(32ㄴ);{마다}
ㅅ. 역시-대부인도(12ㄴ), ;{도}
ㅇ. 종착-죵들디(70ㄴ);({디}
ㅈ. 주제-공승은(17ㄴ), 너(25ㄱ);{은/}
2.3.5. 동사류
동사류는 서술어가 되는 기능을 하는데, 동사・지정사・형용사가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활용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데, 여기서는 본래의 낱말과 파생 낱말을 살펴보고, 어근과 어미, 접사를 중심으로 논의해 보기로 한다.
2.3.5.1. 본래의 낱말과 합성・파생 낱말
동사류도 원래부터 동사・형용사였던 것이 있는 반면, 다른 품사와 합성이 되거나, 파생된 것도 많다.
주 174)
다른 품사와 결합된 경우 합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두 낱말을 분리했을 때, 앞에 오는 낱말이 뒤에 오는 낱말이 독립되어 쓰일 수 있으면, 합성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예를 들면, ‘감동하-’는 ‘감동을(도, 만, 까지, 은) 하-’로 분리할 수 있으므로 합성이라고 본다. 이때의 ‘하-’는 이른바 대동사(代動詞) 혹은 허동사(虛動詞)의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서정수 1994:539 -587) 이 경우 ‘-’는 독립된 낱말이므로 파생접사로 보기는 어렵다.
다음은 본래동사와 합성이나 파생된 동사의 예들이다.(편의상 몇 개만 예를 든다.)
(43)ㄱ. 가-(15ㄴ), 가지-(12ㄴ),
ㄴ.① 간-(2ㄱ);간(諫)+-, 강개-(27ㄱ);강개(慷慨)+-, 강잉여(24ㄴ);강잉(强仍)+-
② 랑-(2ㄱ), -(21ㄱ), 아니-(35ㄱ)
(43ㄱ)은 본래동사이고, (43ㄴ)은 합성동사인데, (43ㄴ①)은 한자에 ‘-’가 붙어서 합성 혹은 파생이 되었고, (43ㄴ②)는 우리말에 ‘-’가 붙어서 합성이 되었다.
다음은 본래형용사와 합성 혹은 합성 혹은 파생형용사의 예이다.
(44)ㄱ. 괴롭-(12ㄴ), -(12ㄴ), 늙-(15ㄱ), 다-(57ㄱ), 슬프-(13ㄱ)
ㄴ. ① 렬렬-(83ㄴ);렬렬(烈烈)+하-, 약-(15ㄱ);약(弱)+-, 오활하-(54ㄴ);오활(迂闊)+--
② 더-(43ㄱ);더+-, 득-(38ㄴ);득+-
(44ㄱ)은 본래형용사들이며, (44ㄴ①)은 한자에 ‘-’가 붙은 것이고, (44ㄴ②)는 우리말에서 합성 혹은 파생된 예들이다.
2.3.5.2. 어근과 어미
동사류는 활용을 하는 것이 원칙이며, 이는 교착어인 우리말의 한 특징이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활용을 하는 동사류는 어간[stem]과 어미[ending]로 구분해왔다. 우리말에서 활용을 처음으로 주장한 최현배(1937:173)에서는 “풀이씨의 끝이, 그 쓰히는 법을 따라서, 여러 가지로 바꾸히는 조각(部分)을 씨끝(語尾, termination)이라 하며, 그 바꾸히지 아니하는 조각을 씨줄기, 더러는 줄이어서 줄기(語幹, stem, Stamm)라 일컫느니라.”라고 하였다. 또한 최현배(1937:174)에서는 “풀이씨를 이루기에 最小限度의 中心槪念을 代表하는 줄기를 씨몸 더러는 씨뿌리 또는 뿌리(語根)라 하며, 그 다음에 돕는 조각을 도움뿌리(補助語幹-助根)라 하느니라.”라고 하였다. 이는 학교문법에서도 잘 적용이 되다가 1985년 이른바 통합문법에서 그 내용이 바뀌었다. ‘깨뜨리이시었습니다’라는 낱말을 예를 들어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45)ㄱ. 뜨리 이 시 었 습 니
줄기 도움줄기 씨끝
ㄴ. 뜨리 이 시 었 습니
어간 접사 선어말어미 어말어미
형태론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45ㄱ)에서 ‘뜨리’와 ‘이’는 파생접미사이므로 활용에서 ‘도움줄기’로 보아도 무방하나, 굴곡접미사인 ‘시’, ‘었’, ‘습’, ‘니’는 각각 접미사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는 접미사이긴 하나, 전통적인 관점에서 ‘씨끝’ 곧 어미로 불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다음과 같이 명칭을 붙인다.
(46) 뜨리
어근 강조 태 주체높임 시제 겸양 시상 상대높임 종결어미
접미사 접미사 접미사 접미사 접미사 접미사 접미사 접미사
[root] [emphatic [voice [honorifi [tense [humble [aspect [honorific [terminal
suffix] suffix] suffix1] suffix] suffix] suffix] suffix2] suffix]
이러한 관점에서 동사류는 다음과 같이 어근과 어미로 구분한다.
자격법 어미; 명사형 어미, 관형사형 어미, 부사형 어미
(47) 어근+(접미사)+ 연결법 어미; 연결어미
종결법 어미; 종결어미
2.3.5.2.1. 자격법 어미
자격법 어미는 명사형 어미, 관형사형 어미, 부사형 어미로 나눈다.
『오륜행실도』에서 명사형 어미의 쓰임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48)ㄱ. 가기(82ㄱ);가-+-기, 기(2ㄱ);-+-기+, 살기(45ㄱ);살-+-기+
ㄴ. 갑흐미(3ㄴ);갑ㅎ-+-음+이, 귀미(18ㄴ);귀--+-ㅁ+이, 셤기미(58ㄱ);셤기-+-ㅁ+이
(48ㄱ)에서는 명사형 어미 ‘-기’가, (48ㄴ)에서는 ‘-ㅁ/-옴’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관형사형 어미의 쓰임은 다음과 같다.
(49)ㄱ. 간(7ㄴ);간+-+-는,
ㄴ. 가진(38ㄱ); 가지-+-ㄴ, 겨신(61ㄱ);겨시-+-ㄴ, (30ㄱ);-+-
ㄷ. 갑흘(35ㄴ);갑ㅎ-+-을, 겨실(81ㄴ);겨시-+-ㄹ, 누릴(36ㄱ);누리-+-ㄹ
ㄹ. 머므러(45ㄴ);머믈르-+-엇-+-더-+-ㄴ, 먹던(12ㄴ);먹-+-더-+-ㄴ
(49ㄱ)에서는 진행을 나타내는 관형사형 어미 ‘-’이 쓰였고, (49ㄴ)에서는 ‘-ㄴ/-은’이 쓰였는데, 형용사일 때는 시간성과 관련이 없는 수식이고, 동사일 때는 동작이 완료되었음을 나타낸다. (49ㄷ)은 동작이나 상태의 추정을 나타내는 ‘-ㄹ/-을’이 쓰였다. (49ㄴ)에서는 ‘회상 시상 접미사’ ‘-더-’에 관형사형 어미 ‘-ㄴ’이 쓰여, 과거의 일이 완료되었음을 나타낸다.
부사형 어미는 다음과 같이 쓰인다.
(50)ㄱ. 구챠히(75ㄴ);구차+하-+-이, 만히(75ㄴ);많-+-이
ㄴ. 굴게(50ㄱ);굴+하-+-게, 알게(3ㄴ);+알-+-게
(50ㄱ)에서는 부사형 어미는 ‘-이’가, (50ㄴ)에서는 ‘-게’가 쓰임을 알 수 있다.
2.3.5.2.2. 연결법 어미
연결법 어미에는 연결어미와 보조적 연결어미가 있다.
2.3.5.2.2.1. 연결어미
연결법 어미는 그 쓰임이 다양하므로,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51)ㄱ. {-으니} : 상황, 이유・원인
예 : 가니(15ㄴ), 갓더니(5ㄴ)
ㄴ. {-고} : 벌림
예 : 가지고(12ㄴ), 갑고(3ㄴ), 거리고(10ㄱ), 일고(18ㄱ)
ㄷ. {-아셔} : 상황, 이유・원인
예 : 간야(2ㄱ), 강개여(27ㄱ), 거두어(57ㄱ), 고여(6ㄱ)
ㄹ. {-나} : 반전
예 : 이시나(18ㄴ);, 죽으나(27ㄱ)
ㅁ. {-으며} : 벌림
예 : 가며(72ㄴ), 경신며(2ㄱ), 치며(29ㄴ), 잡으며(33ㄱ)
ㅂ. {-으려} : 의도
예 : 가려(60ㄴ), 구원려(26ㄴ), 닙히려(42ㄴ), 망려(40ㄱ), 엄습랴(38ㄱ)
ㅅ. {-다가} : 멈춤
예 : 가다가(18ㄱ), 가도앗다가(53ㄱ), 긔록엿다가(45ㄴ), 나오다가(27ㄱ)
ㅇ. {-도록} : 미침
예 : 죽도록(36ㄱ), 흐르도록(15ㄴ), 니록(30ㄱ)
ㅈ. {-거든} : 가정
예 : 구거든(82ㄱ), 되엿거든(65ㄴ)
ㅊ. {-으되} : 조건
예 : 굴므되(8ㄱ),
ㅋ. {-으면} : 가정
예 : 이러면(32ㄴ), 잡으면(36ㄱ)
ㅌ. {-오} : 근거
예 : 오(2ㄱ), 샤(15ㄴ), 닐오(3ㄴ)
ㅍ. {-거} : 기정사실
예 : 드리거(50ㄴ), 보거(10ㄱ), 거(12ㄱ), 아니거(2ㄱ), 어(50ㄴ)
ㅎ. {-매} : 상황
예 : 마치매(38ㄴ), 졉시매(35ㄴ), 매(54ㄴ), 반매(29ㄱ), 실신매(47ㄴ)
ㄲ. {-고져} : 희망
예 : 되고져(57ㄴ), 맛고져(18ㄱ), 밧고져(13ㄱ), 죽이고져(77ㄴ)
ㄸ. {-아도} : 양보
예 : 죽어도(13ㄱ)
ㅃ. {-거니와} : 사실
예 : 구미어니와(35ㄴ), 업거니와(35ㄴ), 죽거니와(3ㄴ)
ㅆ. {-지언정} : 양보
예 : 될디언뎡(50ㄱ), 죽을디언졍(47ㄴ)
ㅉ. {-ㄴ대} : 상태
예 : 말린대(12ㄱ);말-+-리-+-ㄴ대, 브신대(81ㄴ);브-+-시-+-ㄴ대, 원컨대(13ㄱ);원+-+-건대
2.3.5.2.2.2. 보조적 연결어미
보조적 연결어미는 본용언과 보조용언을 이어주는 구실을 한다. 이에는 {-디}, {-아}, {-게}, {-고}가 있다.
(52)ㄱ. {-디}
예 : 가디(2ㄱ), 그치디(30ㄱ), 르치디(3ㄴ)
ㄴ. {-아}
예 : 구여(38ㄴ), 의논여(21ㄱ), 잡아(23ㄱ)
ㄷ. {-게}
예 : 괴롭게(12ㄴ), 굴게(50ㄱ), 알게(3ㄴ)
ㄹ. {-고}
예 : 가지고(12ㄴ), 거리고(10ㄱ), 브릅고(27ㄴ)
2.3.5.2.3. 종결법 어미
우리말의 종결법 어미는, 상대높임법으로 말할이와 들을이의 상대적 높・낮이를 나타내며, 서술법・의문법・청유법・명령법・감탄법을 표현한다. 이는 구어[spoken language]에서 분명하며, 문어[written language]에도 반영이 된다. 그런데 옛 문헌의 경우는 구어의 자료가 많지 않으면, 당시의 종결법 어미를 분석하기가 매우 어렵다. 『오륜행실도』의 경우도 거의 문헌 형식으로 되어 있어, 구어의 쓰임을 잘 알 수 없지만, 직접인용 등의 예들에서 분석하는 수밖에 없다.
본고에서는 종결법 어미를 [+높임]과 [-높임]으로 나누고, ‘서술법・의문법・청유법・명령법・명령법’으로 분류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2.3.5.2.3.1. 서술법 어미
서술법은 말할이가 들을이에게 자기의 말을 해버리는 데 그치거나, 약속을 하거나, 또는 느낌을 나타내는 표현법이다.(허웅 1986:487) 이에는 다음과 같은 어미가 쓰인다.
(53)ㄱ. {-다} : [+높임]
예 : 딩계리이다(15ㄴ), 봉양리이다(70ㄱ), 아니리이다(23ㄱ), 쟝우로소이다(15ㄴ), 죽이리이다(33ㄱ)
ㄴ. {-다/-라} : [-높임]
예 : 가니라(5ㄴ), 갑흐리라(57ㄴ), 갑흘디라(27ㄴ), 굴엿노라(33ㄴ) 라나더라(52ㄴ), 슬프다(13ㄱ), 실신다(47ㄴ), 튜증시다(82ㄱ)
2.3.5.2.3.2. 의문법 어미
의문법은 말할이가 들을이에게 대답을 요구하거나, 자기 마음속에 의문을 품어보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법이다.(허웅 1986:495) 이에는 다음과 같은 어미가 쓰인다.
(54)ㄱ. {-가} : [+높임]
예 : 뎡리잇가(5ㄴ), 망가(2ㄱ), 뵈오리잇가(5ㄴ), 말고(16ㄱ)
ㄴ. {-오} : [-높임]
예 : 가리오(55ㄱ), 그치리오(47ㄴ), 다래리오(50ㄱ), 무드리오(65ㄴ)
ㄷ. {-냐/-뇨} : [-높임]
예 : 사랏냐(78ㄱ), 나뇨(47ㄴ), 디뇨(47ㄴ), 엇더뇨(35ㄴ), 잇냐(22ㄴ)
ㄹ. {-다} : [-높임]
예 : 말인다(15ㄴ), 멸다(6ㄱ), 보내엿다(72ㄴ), 아니엿다(60ㄴ)
ㅁ. {-아} : [-높임]
예 : 아니랴(20ㄴ); 아니+-+-리-+-아
2.3.5.2.3.3. 명령법 어미
명령법은 말할이가 들을이에게 어떤 행동을 하기를 또는 해주기를 요구 혹은 명령하는 표현법이다.(허웅 1986:516) 여기서 청유법 어미는 찾을 수 없었다.
(55)ㄱ. {-쇼셔} : [+높임]
예 : 라나쇼셔(9ㄴ), 마르쇼셔(15ㄱ), 쇼셔(82ㄱ)
ㄴ. {-라} : [-높임]
예 : 도모라(6ㄱ), 라나라(32ㄴ), 막으라(50ㄴ), 먹으라(40ㄴ)
2.3.5.2.3.4. 감탄법 어미
감탄법은 말할이가 어떤 일에 감탄하는 것을 표현하는 종결법이다.
(56) {-도다/-로다} : [-높임]
예 : 니미로다(6ㄱ), 다핫도다(13ㄱ), 못리로다(45ㄱ), 아니시다(43ㄱ), 업리로다(40ㄴ)
2.3.5.3. 접미사
동사류에서 나타나는 접미사는 어근과 어미를 제외한 부분으로서, 강세접미사・태접미사・주체높임접미사・시제접미사・객체높임접미사・상대높임접미사・시상접미사가 있다. 이 중에서 강세접미사・태접미사는 파생접미사이고, 나머지는 굴곡접미사다. 파생접미사는 활용에서는 다시 어간을 만들므로 최현배(1937)에서의 이른바 도움줄기[補助語幹]의 개념이 맞는 것이다.
2.3.5.3.1. 강세접미사
강세접미사는 낱말의 뜻을 강하게 해주는 구실을 한다. 이에는 {-치-}가 쓰인다.
(57) {-치-}
예 : 치거(43ㄱ);+치+거, 밀치고(18ㄱ);밀치고(18ㄱ);밀-+-치-+-고
3.3.5.3.2. 태접미사
태접미사에는 수동태 접미사와 사동태 접미사가 있다.
2.3.5.3.2.1. 수동태접미사[passive voice suffix]
수동태는 주어가 어떤 동작의 대상이 되어, 그 작용을 받을 때의 관계를 나타내는 동사의 한 형태인데, 수동태접미사는 능동태의 동사를 수동태의 동사로 만드는 구실을 한다. 이에는 {-이-}가 쓰인다.
(58) {-이-}
예 : 잡히여(42ㄱ);잡-+-히-+-여, 깃드림(35ㄴ);깃+들-+-이-+ㅁ, 플니샤(15ㄴ);플-+-니-+-시-+-아
2.3.5.3.2.2. 사동태접미사[causative voice suffix]
사동태는 남에게 어떤 행동을 시키게 하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의 한 형태다. 여기에는 파생접미사 {-이-}가 쓰인다.
(59) {-이-}
예 : 이여(84ㄱ);-+-이-+-여, 먹이고(12ㄴ), 버히니(40ㄴ)버히-+-이-+-니, 벗기고(42ㄱ);벗-+-기-+-고, 죽이리라(72ㄴ);죽-+-이-+-리-+-라
2.3.5.3.3. 주체높임접미사
높임접미사는 주체 높임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 이에는 {-시-}가 있다.
(59) {-시-}
예 : 너기샤(14ㄴ);너기-+-시-+아, 무르시(15ㄴ);묻-+-으시-+고, 내시고(82ㄱ);내-+-시-+고
2.3.5.3.4. 시제접미사
시제접미사는 이 책에서 현재 {-Ø-}, 완료 {-앗-}이 쓰인다.
2.3.5.3.4.1. 현재시제접미사
현재시제는 동작이나 상태가 현재임을 나타낸다 현재시제접미사에는 {-Ø-}가 쓰인다.
(60) {-Ø-}
예 : 됴셰라(17ㄴ);도셔+이-+-Ø-+-라, 말이오(58ㄴ);말+이-+-Ø-+-오
2.3.5.3.4.2. 완료시제접미사
완료시제는 동작이나 상태가 완료되었음을 나타낸다. 완료시제접미사에는 {-앗-}이 쓰인다.
(61) {-앗-}
예 : 가도앗다가(53ㄱ);가도-+-앗-+-다가, 결단여시니(13ㄱ);결단+-+-여시-+-니, 굴엿노라(33ㄴ);굴+-+-엿-+-노라
2.3.5.3.5. 객체높임접미사
객체높임은 목적어나 부사어에 해당되는 객체를 높이는 것이다. 객체높임접미사에는 {--}이 쓰인다.
(62) {--}
예 : 받와(47ㄱ);받-+--+-아, 엿오(5ㄱ);엿+-오-+-대,
2.3.5.3.6. 시상접미사
시상접미사에는 {-니-}, {-리-}, {-더-} 등이 쓰인다.
2.3.5.3.6.1. 지속 혹은 진행시상접미사
지속 혹은 진행을 나타내는 접미사에는 {-니-}가 쓰인다. 서술어가 동사이면, 진행시상[progressive aspect]이 되고, 형용사나 지정사면, 지속시상[durative aspect]이 된다.
(63) {-니-}
예 : 기리니라(18ㄱ), 니라(27ㄴ), 멸다(6ㄱ), 반다(29ㄴ)
2.3.5.3.6.2. 회상시상접미사
지난 일을 회상하는 구실을 하는 회상시상[retrospective aspect]접미사에는 {-더-}가 쓰인다.
(64) {-더-}
예 : 겨시더니(80ㄱ), 니럿더니(17ㄴ), 머므더니(61ㄱ), 인이러라(30ㄴ)
2.3.5.3.6.3. 추정시상접미사
어떤 동작이나 상태에 대하여 미루어 짐작하는 추정[prospective aspect]시상접미사에는 {-리-}가 쓰인다.
(65) {-리-}
예; 년좌리라(12ㄱ), 못리로다(45ㄱ), 무엇리오(22ㄴ)
2.3.5.3.7. 상대높임접미사
상대높임접미사는 중세국어에서 {--}로 쓰이던 것인데, 이 책에서는 {-이-}로 나타난다. 들을이를 높이는 구실을 하며, 종결어미 {-다} 혹은 {-가}와 같이 쓰인다.
(66) {-이-}
예 : 뎡리잇가(5ㄴ), 딩계리이다(15ㄴ), 봉양리이다(70ㄱ), 뵈오리잇가(5ㄴ), 죽이리이다(33ㄱ)

3. 맺는 말

이상으로 『오륜행실도』 ‘충신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 책은 18세기 후반에 쓰여진 것으로 서지적・국어학적으로 의미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음은 앞에서 역주한 ‘효자도’에서 논의하였다. 본고는 그것을 이어 깁고 고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충신도’에 나타난 국어학적 특징은 ‘효자도’와 대동소이하다. 다만 내용이 다르므로 쓰여진 낱말이나 문장에서 더 많은 자료를 분석할 수 있었다. 다른 더 좋은 자료는 나머지 내용들에서 보충되리라고 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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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행실도 제3권 열녀『오륜행실도』 권3 「열녀」에 대하여

1. 『삼강행실도』와 『오륜행실도』

1) 『삼강행실도』(한문본)
세종 16년(1434)에 처음 간행한 한문본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는 3권 3책 목판본으로서, 처음 편찬 간행할 때에는 『삼강행실효자도(三綱行實孝子圖)』, 『삼강행실충신도(三綱行實忠臣圖)』, 『삼강행실열녀도(三綱行實烈女圖)』의 3부로 구성하고, 각 책마다 반포 교지, 전(箋), 서(序), 발(跋)을 다 실었다. 이것은 각도에서 재량껏 세 책을 모두 간행하지 않고 한 책만 낼 수도 있도록 책마다 독립된 체재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본문은 중국과 한국의 역대 인물에서 선정된 효자, 충신, 열녀 각 110명씩 330명의 그림과, 공적을 정리한 글을 싣고, 여기에 이를 찬양한 내용의 시(詩)와 찬(讚)을 수록하였다. 책의 편집체제는 1명을 1판장에 배치하여, 접었을 때 앞면에 해당하는 부분에 표제와 함께 그림이, 뒷면에 해당하는 부분에 전기와 시・찬(詩讚)이 보이도록 하였다. 문장과 시찬은 모두 읽기 쉽게 동그란 권점(圈點)을 찍어 해석하기 편리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그림과 권점의 표시는 이 책이 백성 교화용으로 제작된 윤리서라는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종이 이 책을 편찬토록 한 계기는, 세종 10년(1428)에 진주에 사는 김화라는 사람이 아비를 죽인 사건이 일어나서이다. 세종은 그 책임을 통감하고 효제의 마음을 돋우고 풍속을 두텁게 하는 방안을 찾던 중, 변계량이 ‘효행록(孝行錄)’과 같은 책을 펴내자고 아뢰자 곧바로 직제학 설순을 책임자로 하여 책을 지어 펴내라고 명령하였으니, 이 사실은 『세종실록』 제42권, 세종 10년(1428) 10월 3일 기사에 자세히 적혀 있다. 우선적으로 중국의 『이십사효』
주 175)
이십사효(二十四孝) : 원(元)나라 곽거경(郭居敬)이 엮은 책이다. 이 책의 24효(孝)란, 우순(虞舜)·한문제(漢文帝)·증삼(曾參)·민손(閔損)·중유(仲由)·동영(董永)·염자(剡子)·강혁(江革)·육적(陸績)·당부인(唐夫人)·오맹(吳猛)·왕상(王祥)·곽거(郭巨)·양향(楊香)·주수창(朱壽昌)·유검루(庾黔婁)·노내자(老萊子)·채순(蔡順)·황향(黃香)·강시(姜詩)·왕포(王褒)·정난(丁蘭)·맹종(孟宗)·황정견(黃庭堅) 등 24명을 이른다.
에 수록된 24인을 바탕으로 20인을 증보하여 새로 효행록을 편찬하라는 것이었다.
경연에 나아가, 임금이 일찍이 진주(晉州) 사람 김화(金禾)가 그 아비를 살해하였다는 사실을 듣고, 깜짝 놀라 낯빛을 흐리고는 곧 자책하고, 드디어 여러 신하를 소집하여 효제(孝悌)를 돈독히 하고, 풍속을 후하게 이끌도록 할 방책을 논의하게 하니, 판부사 변계량(卞季良)이 아뢰기를, “청하옵건대 ‘효행록(孝行錄)’ 등의 서적을 널리 반포하여 항간의 서민들로 하여금 이를 항상 읽고 외게 하여 점차로 효제와 예의(禮義)의 마당으로 들어오도록 하소서.” 하였다. 이에 이르러 임금이 직제학 설순(偰循)에게 이르기를, “이제 세상 풍속이 박악(薄惡)하여 심지어는 자식이 자식 노릇을 하지 않는 자도 있으니, ‘효행록’을 간행하여 이로써 어리석은 백성들을 깨우쳐 주려고 생각한다. 이것은 비록 폐단을 구제하는 급무가 아니지만, 그러나 실로 교화하는 데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니, 전에 편찬된 중국의 『이십사효(二十四孝)』에다가 또 중국인 20여 명의 이름난 효자를 더 넣고, 고려와 삼국 시대의 효자로서 특출한 자들도 함께 모아 한 책을 편찬해 이루도록 하되, 집현전에서 이를 주관하라.” 하니, 설순이 대답하기를, “효도는 곧 백행의 근원입니다. 이제 이 책을 편찬하여 사람마다 이를 알게 한다면 매우 좋은 일입니다. 그러하오나 『고려사』로 말씀하오면 춘추관에 수장되어 있어 관 밖의 사람은 참고하여 살펴볼 수 없사오니, 청컨대 춘추관으로 하여금 이를 초록(抄錄)해 보내도록 하소서.” 하니, 즉시 춘추관에 명하여 이를 베끼도록 하였다.
주 176)
○辛巳/ 御經筵 上嘗聞晋州人金禾弑父之事 矍然失色 乃至自責 遂召群臣 議所以敦孝悌 厚風俗之方 判府事卞季良曰 請廣布孝行錄等書 使閭巷小民尋常讀誦 使之駸駸然入於孝悌禮義之場 至是 上謂直提學偰循曰 今俗薄惡 至有子不子者 思欲刊行孝行錄 以曉愚民 此雖非救弊之急務 然實是敎化所先 宜因舊撰二十四孝 又增二十餘孝 前朝及三國時 孝行特異者 亦皆褏集 撰成一書 集賢殿其主之 循對曰 孝乃百行之原 今撰此書 使人人皆知之 甚善 若高麗史 莊之春秋館 外人不得考閱 請令春秋館抄錄以送 卽命春秋館抄之
그런데 위 기사에서 ‘효행록’을 고려 때 간행된 『효행록(孝行錄)』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 후에 『효행록』의 증보본에 대한 편찬과 간행 사실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이때의 ‘효행록’은 ‘효행을 기록한 책’으로 해석함이 옳다. 3년 후 세종 13년(1431) 여름에 세종이 다시 집현전 직제학 설순(偰循) 등에게 『삼강행실도』를 편찬하도록 하명하였다고 하였고, 이듬해 편찬이 끝났다고 하였으니
주 177)
이 사실은 서문에 밝히고 있으며, 이 서문이 세종실록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앞선 3년 동안이 자료를 수집하고 읽고 선별한 기간이었고, 1년 동안이 글을 정리하고 그림을 그려서 편찬한 기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본디 『효행록』은 고려 충목왕 때 권보(權溥)와 그의 아들 권준(權準)이 효행에 관한 기록을 모아 엮은 책이다. 처음에는 이제현(李齊賢)이 서문을 쓰고, 권근(權近)이 주해(註解)와 발문(跋文)을 달아서 고려 때 간행하였는데, 권보가 늙자 아들 권준이 아버지를 위로하려고 화공(畫工)을 시켜 이십사효도(二十四孝圖)를 그리게 한 뒤, 그것을 이제현에게 주면서 찬(贊)을 지어 달라 부탁하여, 권보도 별도로 38효행을 골라 이제현으로부터 찬(贊)을 지어받았으니, 이십사효도의 24찬은 12구(句)로, 38효행의 38찬은 8구로 짓게 되었다. 권보의 『효행록』은 중국의 『이십사효』를 인용하여 간행한 책인데, 이제 세종이 변계량의 제안에 의해 ‘효행록’을 제작할 것을 명하면서, 중국의 『이십사효』와 『고려사』를 참조하라고 하였다는 사실은, 권보의 책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효행을 모아 엮어 책을 만들라’는 명령임을 알 수 있다. 즉 『효행록』의 증보가 아니라, 중국과 우리나라 역사서 등 최대한 많은 자료를 통해 ‘효행을 정리하여 기록한 책’을 새롭게 편찬하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이십사효』는 이미 고려 때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매우 인기가 높았던 책으로, 고려 말 이제현(李齊賢)의 시문집 『익재난고(益齋亂藁)』에서도 『이십사효』의 내용을 보고 지은 ‘맹종동순(孟宗冬筍)’이라는 시가 있을 정도이다. 이런 여러 책을 정리하여 권보의 책과 같은 새로운 ‘효행록’을 편찬하게 된 것이고, 그 책 이름에 『삼강행실도』라는 이름을 붙이게 한 것이다. 물론 이때 권보의 『효행록』을 참고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권채(權採)가 쓴 ‘삼강행실도 서문’에는 구체적인 사실이 적혀 있다.
세종 13년(선덕(宣德)
주 178)
명나라 제5대 황제 선종(宣宗)의 연호. 1426년~1435년.
신해년(辛亥年)
주 179)
세종 13년(1431). 명나라 선덕 6년.
여름에 우리 주상 전하께서 근신(近臣)에게 명하기를, “삼대(三代)의 정치는 모두 인륜을 밝혔는데, 후세에는 교화가 차츰 해이해져서, 백성이 서로 화목하지 못하니, 군신ㆍ부자ㆍ부부의 큰 인륜이 모두 본연의 성품과 위배되어, 항상 박(薄)한 데로 흘러버렸다. 그러나 간혹 탁월한 행실과 높은 절개가 습속에 휩쓸리지 아니하여, 보고 듣는 사람을 깨우쳐 일으키는 자도 많았다. 내가 그 중 특출한 것을 뽑아서, 그림으로 그리고, 찬(贊)을 지어서, 안팎에 반포하고자 하니, 무릇 어리석은 남자나 무식한 여자들도 모두 보고 느껴 흥기할 것이니, 또한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룩하는 한 가지 방도이다.”라고 하시고, 이에 집현전 부제학 신 설순(偰循)에게 명령하여, 편찬하는 일을 맡게 하셨다.
주 180)
宣德辛亥夏 我主上殿下 命近臣若曰 三代之治 皆所以明人倫也 後世敎化陵夷 百姓不親 君臣父子夫婦之大倫 率皆昧於所性 而常失於薄 間有卓行高節 不爲習俗所移 而聳人觀聽者 亦多 予欲使取其特異者 作爲圖贊 頒諸中外 庶幾愚夫愚婦 皆得易以觀感而興起 則亦化民成俗之一道也 乃命集賢殿副提學臣偰循 掌編摩之事(『삼강행실도』 서(序) 중에서)
이 서문과 세종실록의 기록을 정리하면, 세종 10년(1428)에 김화가 아비를 살해한 사실을 듣고 세종이 중국의 『이십사효』 등의 책과 『고려사』 등 우리나라 역사 기록을 총망라하여 새로운 ‘효행록’을 편찬하라 명하였고, 세종 13년(1431)에 왕명에 따라 설순 등이 『효순사실(孝順事實)』과 『효행록(孝行錄)』 등을 참고하여 『삼강행실도』를 편찬하기 시작하였다. 세종 14년(1432) 6월에 집현전에서 편찬을 완료함과 동시에, 권채(權採, 1399∼1438)의 서문과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의 전문(箋文)이 찬진되고, 세종 15년(1433) 2월에 예문관 대제학 정초(鄭招, ?∼1434)가 왕명을 받들어 『삼강행실도』의 발문(跋文)을 찬진하자, 이에 세종 16년(1434) 4월에 주자소에 이송하여 판각하고 인출(印出)하여 반포하고, 아이들과 부녀자들도 알 수 있도록 중앙은 한성부와 오부에서, 지방은 감사와 수령의 친속들이 교육하도록 하라는 교서를 내렸다. 교서문은 윤회(尹淮, 1380∼1436)에게 찬진토록 하였다. 그 후 같은 해 11월에는 실제로 인출된 『삼강행실도』를 종친과 신하들에게 반사하고, 각도(各道)에도 나누어 주었으며, 세종 21년(1439) 3월에는 함길도 관찰사의 건의에 따라 부거현(富居縣)에까지 내려 보내도록 하였다. 또한 세종 25년(1443)에는 함길도의 경원·경흥·회령·온성·종성·부거 등 각 고을에도 『삼강행실도』를 보냈다. 또한 세종 25년(1443) 12월에 훈민정음을 창제하니, 세종 26년(1444) 2월에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崔萬理, ?∼1445)와 정창손(鄭昌孫, 1402∼1487) 등이 언문 제작의 부당함을 아뢰자, 세종은 “내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도』를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이다.”
주 181)
세종실록 권103, 세종 26년 2월 20일조.
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니, 『삼강행실도』의 언해는 세종 때에 이미 착수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언해를 완성하였다는 기록이 세종 때는 나타나지 않으며, 『성종실록』 성종 12년(1481) 3월에 가서야 비로소 나타나므로, 당시 최만리 등의 반대 상소로 인해 언해하려는 세종의 뜻은 이루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권채가 쓴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이어져 있다.
이에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고금의 서적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참고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 속에서 효자, 충신, 열녀로서 특출한 자 각 1백10명씩을 뽑아 그림을 앞에 그리고 행적을 뒤에 적되 찬시(讚詩)를 한 수씩 붙였는데, 이때 시는 효자도의 경우, 명나라 태종이 보내준 『효순사실(孝順事實)』에 실린 시와, 나의 고조할아버지 권보(權溥)께서 고려 때 편찬한 『효행록』 가운데 이제현(李齊賢)이 쓴 찬(贊)을 옮겨 실었으며, 거기에 없는 것과, 충신도・열녀도의 찬과 시들은 모두 편찬관들이 나누어 지었다.
주 182)
於是 自中國以至我東方 古今書傳所載 靡不蒐閱 得孝子忠臣烈女之卓然可述者 各百有十人 圖形於前 紀實於後 而幷系以詩 孝子則謹錄太宗文皇帝所賜孝順事實之詩 兼取臣高祖臣溥所撰孝行錄中名儒李齊賢之贊其餘則令輔臣 分撰忠臣烈女之詩 亦令文臣 分製編訖(『삼강행실도』 서(序) 중에서)
그런데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세종 10년의 기록에서 변계량이 제안한 ‘효행록’ 제작이 고려 때 제작된 『효행록』의 증보본 제작을 말한 것이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새로 편찬한 ‘효행록’을 『삼강행실도』라고 이름붙이면서, 각각 이야기의 그림과 행장 뒤에 붙인 시(詩)와 찬(贊)에, 권보 부자가 지은 『효행록』의 찬(이제현이 지음)을 가져다 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고려의 『효행록』을 편찬한 권보가 『삼강행실도』 서문을 쓴 권채의 고조할아버지였기에 더욱 성실히 이루어졌겠으나, 『효순사실』을 참고한 서적이므로 요긴하게 쓰여진 것이다.
『삼강행실도』는 효자도가 가장 먼저 나오고, 충신도, 열녀도의 순서로 나오는데, 효자를 충신 앞에 편집한 것도 세종의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자식이 아비를 죽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백성을 가르치고 사회 질서를 바로 잡고자 했던 것이다. 권채는 서문에서,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고금의 서적에 기록된 것들을 참고하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한 바와 같이, 실로 방대한 중국의 정사(正史)들을 참고하였으며, 특히 중국 역사서의 ‘열전(列傳)’과 비교해 보면 그 원문을 인용하였음을 알 수 있을 만큼 비슷한 문장이 많다. 더욱이 효자편은 중국의 『효순사실』과 고려의 『효행록』에서 인용하여 편찬하였고, 체재도 두 책을 따라 행적 기록 끝부분에 시(詩)와 찬(贊)을 넣되, 앞의 두 책에 기록된 시찬이 있으면 그대로 인용하였다고 했다. 충신편과 열녀편에 대해서는 앞선 간행 책이 없어 정사(正史)와 기타 안팎의 많은 책에서 수집하여 기록하였고, 시와 찬도 모두 새로 쓴 것이라 적고 있다. 시와 찬을 인용했다는 『효순사실』의 전체 목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 183)
『효순사실(孝順事實)』(명 성조(태종)인 영락 18년(세종 2, 1420) 간행. 인터넷 대만 국가도서관에서 원전을 열람함.
제1권제2권제3권제4권제5권제6권제7권제8권제9권제10권
1.虞舜大孝2.文王問安3.武王達孝4.漢王嘗藥5.伯奇履霜6.考叔遺羹7.曹參養志8.閔損單衣9.子路負米10.伯兪泣杖11.老萊斑衣12.子春傷足13.剡子鹿乳14.蔡順桑椹15.劉平感盜16.王琳守冢17.江革巨孝18.蕭固孝謹19.彭修扞賊20.廉范負骨21.姜詩出鯉22.黃香扇枕1.周磐祿養2.薛包灑婦3.董永貸錢4.丁蘭刻木5.申屠哀感6.蔡邕廢寢7.杜孝寄魚8.子華守母9.陸績遺橘10.李密終養11.王祥剖冰12.王衰廢詩13.夏方遭癘14.孟宗泣竹15.庾衷躬稼16.盛彦泣螬17.劉般夢粟18.王延躍魚19.許孜埋獸20.范宣幼孝21.卞眕赴難1.何琦息火2.法宗求骸3.丘傑感靈4.潘綜救父5.王彭泉湧6.原平傭作7.賈恩捄棺8.吳逵葜親9.頤之悲戀10.匡昕活母11.齊人號絶12.子平營葬13.道愍求母14.虛之感神15.張稷憂疾16.叡明冰淚17.黙婁誠禱18.叔謙訪藥19.元卿心痛20.子鏘斷尊21.崇傃行服1.운공귀조2.순구고졸3.길분대부4.자여퇴수5.사미감송6.효서획침7.사윤감몽8.숙방치오9.견념식부10.회명수성11.불해봉시12.위정우관13.숙수면익14.소려지애15.완탁식풍16.효극걸식17.서분독경18.명철력경19.장손상서20.문공배묘21.실달보구1.양인추복2.장승음수3.왕숭지포4.덕림창유5.육앙애훼6.육정공어7.진족효애8.언광획약9.석가효덕10.도비부모11.축인마무12.덕무훼척13.士儁감수14.보림호견15.덕효단쇄16.화추효감17.효숙도상18.효의사절19.숙재언식20.노조순모21.지관불망1.소현청골2.계전수필3.허단격수4.경신현친5.경분심계6.인걸망운7.현위봉교8.일지발백9.구령상응10.법신우색11.지도곡묘12.가순치서13.백회감우14.두양감친15.임찬명반16.사정몽모17.요노전양18.맹희득금19.연경수율20.곽종기수1.고척근천2.후의용신3.대우명목4.허유체읍5.이약안친6.행도획궐7.조반여묘8.구양수정9.이기야기10.서적매행11.수창심모12.지절감화13.공민와관14.하후몽약15.희교치상16.사마순례17.소공구모18.고등효충19.이식효의20.양정어여1.악비충효2.윤문효용3.여령생지4.주태우호5.선응순효6.두의도선7.오이면와8.곽의거유9.수도유모10.수손이사11.진안대명12.몽룡효경13.樊연대사14.왕윤포부15.희헌순고16.소손수상17.이무종명18.일덕귀양19.황무몽부20.사총저목21.양목감천22.왕천익수1.종의고분2.서옥옹부3.왕용로처4.총존구어5.응상격안6.곽전효우7.덕정감사8.강겸화린9.왕남고천10.소조위부11.극기면병12.주악동사13.손앙구친14.탕상곡빙15.오우탈도16.명삼척호17.왕중배정18.이영윤저19.종노매점20.장십배모21.왕흥와빙22.중례거황1.숙선침강2.여승애손3.이씨분상4.담씨빈효5.이씨거상6.장씨곡부7.왕씨천장8.양향액호9.장씨척천10.담녀태척11.요씨효절12.왕씨치가13.양자감성14.조부필자15.문씨양고16.견씨심경17.유씨효고
『효순사실』은 세종 때 명나라 태종(영락제)이 보내온 책으로, 명나라 태종이 쓴 ‘어제효순사실 서’에는 영락 18년(세종 2, 1420)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위의 표에서처럼, 이 책은 모두 10권 207편이 실려 있는데, 그 중 70여편이 『삼강행실효자도』에 나온다. 다만 『삼강행실도』의 ‘문제상약(文帝嘗藥)’이 『효순사실』에는 본디 ‘한왕상약(漢王嘗藥)’이었고, ‘악정상족(樂正傷足)’이 ‘자춘상족(子春傷足)’이었으니 조금 수정되긴 하였으나, 그밖에는 대다수가 제목까지도 같다.
그런데 처음 세종이 신하들에게 명을 내릴 때부터, 『삼강행실도』의 반포 교지와 전(箋), 서문, 발문까지 어떤 기록에도 ‘열녀(烈女)’에 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이십사효(二十四孝)』나 『시경(詩經)』, 『예기(禮記)』, 『효순사실』, 고려 권보의 『효행록』까지를 거론하면서도 ‘효자, 충신’만 거론할 뿐 ‘열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삼강행실열녀도』의 내용을 보면 많은 인물이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列女傳)』과 송대(宋代)의 『고열녀전』, 명나라 초기 영락제 때 간행된 『고금열녀전(古今列女傳)』 등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고금열녀전』을 우선적으로 참조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열녀전’이란 말을 거론한 적은 없다. 이것은 ‘열녀전’보다는 그 열녀(列女)들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서, 즉 중국의 여러 사서(史書)의 열전(列傳)을 근본으로 하였다는 주장을 은연중에 강조하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열녀도 110편의 출처를 모두 살펴보면 『고열녀전』과는 16편만이 겹칠 뿐이며, 명나라 때 『고금열녀전』에서 선택적으로 뽑아 기록한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오륜행실도』(『삼강행실도』 언해본)와 『고열녀전』은 6편만이 겹칠 뿐이다.
『삼강행실도』가 『삼강행실록』이 아님은, 이야기를 그린 그림을 새겨 맨앞에 놓고, 그 뒤에 글을 새겨 놓아 글 모르는 사람도 그림을 보고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즉 글보다 그림을 강조한 제목이다. 또한 인물이 중국사람이면 중국의 의식주를 따라 그렸고, 왜인(倭人)이면 왜의 복장과 두발 등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였는지를 알게 하는 일이다. 특히 이야기에 따른 여러 장면을 한 그림 속에 몇 개로 쪼개어 그 흐름대로 그려 넣은 것은, 시간을 달리하는 여러 장면을 한 그림 속에 표현하되 시간차를 내타낸 것이다. 예를 들면 대문 바깥, 대문안 마당, 집안 등으로 화면을 가로 잘라서 사람들을 배치하고 그것으로 다른 장면을 표현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와 같은 방법은 중국의 유사한 판본에서는 볼 수 없는 방법으로서, 중국의 책에서는 한 쪽의 윗부분에 그림을, 아랫부분에 글을 싣는 형식이었다. 후대 명청 시대에 가서야 그림이 강조되었는데, 유명한 지부족재장판(知不足齋藏版) 『열녀전(列女傳)』(1779)은 첫 쪽을 비어두고, 둘째 쪽과 셋째 쪽에 걸쳐 그림을 그려 넣음으로써 그림을 펼쳐 보는 효과를 얻도록 하였고, 그림 뒤쪽부터 글을 실었다.
세종 16년(1434)에 반포된 초간본의 인쇄는 극히 제한된 부수만 찍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 간본은 용지 관계도 있지만 수요가 제한되어 있어서 특별 관판(官版) 이외는 지역 수요자를 위한 한정판이었고, 관판의 경우도 대개는 각 관서와 관원들에게 반포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특히 널리 읽혀야 할 책이거나 오래 보존되어야 할 책은 각 도의 관찰사로 하여금 관간본(官刊本)을 복각하거나 재간행케 하는 것이 관례였으니, 그래서 정부 활자본의 경우도 활자본의 주요 기능은 지방에서의 복각을 위해 적은 부수만 신속히 최소 비용으로 찍어내는 것이었다.
주 184)
삼강행실도(한문본) 해제, 김원용, 1982.
그러나 언해본이 나온 뒤로는 읽기 힘든 한문본이 급격히 사라져 현전하는 한문본은 한두 편 뿐이다. 다만 세종 때 펴낸 한문본의 원판이 내용을 대폭 줄인 언해본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니, 이것은 세종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려는 후대 임금들의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이 세종 때의 『삼강행실도』 한문본은 조선 시대 전반에 걸쳐 백성의 윤리서로서 본보기가 되었고, 백성의 생활 규범과 사회 질서의 초석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후대의 여러 행실도의 기틀이 되었다.
2) 『삼강행실도』(언해본)
성종 20년(1489) 6월, 경기관찰사 박숭질이 성종에게 아뢰기를, “세종조에는 『삼강행실도』를 중외에 반포해서 민심을 선도하였는데, 이제 책이 귀해져서 관청에서조차 비치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일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하여 일반이 읽기 힘드니, 이것을 선록(選錄)하여 축소하되 목판 인쇄는 매우 어려우니 활자(活字)로 인쇄함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성종이 즉석에서 이를 받아들여 내용을 추려 1책으로 산정본(刪定本)을 간행케 명하였다. 성종 21년(1490)에 한문본에서 효·충·열 각 35명씩 모두 105명만을 뽑아 산정하고 언해하여 언해본 『삼강행실도』를 간행하였는데, 이 간본은 성암고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이를 다시 인출한 중종 5년(1506) 간행본이 영국 런던대학교에 소장되어 전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역주본(2010)을 간행한 바 있다. 이 한문본과 언해본은 그 판본이 같은 목판본으로, 언해본은 다만 한문본 목판의 이마 부분에 언해문을 덧새겨서 찍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언해본 『삼강행실도』는 한문본의 효자, 충신, 열녀 330명에서 각각 35명씩 뽑아 모두 105명, 즉 원래 한문본 3권 3책인 것을 1책으로 대폭 축소하여 펴낸 것이다.
주 185)
『삼강행실도』(언해본) 해제(김정수, 2010) 참조.
이 중종 때의 간본 『삼강행실도』(언해본)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세종 때 한문본이 완성된 뒤에 이미 언해 작업을 착수하여 성종 때에 완료된 것임을 보여주는 요소들이 나타나 있다. 즉, 『용비어천가』 등 초기 문헌의 표기와 비슷한 언어 형태가 보이고, 한글의 자형은 『월인석보』와 같다. 그리고 방점과 ‘ㅸ, ㅿ, ㅆ, ㆅ’ 자가 쓰이기도 하였다.
주 186)
『한글문헌 해제』(박종국, 2003) 153쪽 참조.
3) 『속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
세종이 명하여 처음 간행된 『삼강행실도』는 그뒤 여러 형태의 다른 책들로 계승되어 간행되었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삼강행실도』(한문본) - 세종 16년(1434) : 효자, 충신, 열녀 각 110인씩 330인의 행적과 그림.
『삼강행실열녀도』(언해본) - 성종 12년(1481) : 한문본의 산정본, 효충열 각 35인씩 105인의 행적과 그림.
『삼강행실도』(언해본) - 성종 21년(1490) : 한문본의 산정본, 효충열 각 35인씩 105인의 행적과 그림.(우리나라 사람은 효자4,충신6,열녀6 등 16명임)
『삼강행실도』(언해본) - 중종 5년(1506) : 원간본(성종 21년)의 재인출. 교서, 서문, 발문 등이 빠짐.
『속삼강행실도』 - 중종 9년(1514) : 한문본에 빠진 사람을 추가한 69인의 행적과 그림.
『이륜행실도』 - 중종 13년(1518) : 형제, 종족, 붕우, 사생 등을 모아 엮은 48인의 행적과 그림.
중간본 『삼강행실도』(언해본) : 중종 6년(1511), 중종 9년(1520), 명종 9년(1554), 선조 14년(1581), 선조 39년(1606), 영조 5년(1729), 고종 19년(1882) 등.
주 187)
중간본 『삼강행실도』(언해본)에 대한 것은 『한글문헌학』(백두현, 2015) 247쪽에서 인용함.
중간본 『속삼강행실도』 - 선조 14년(1581), 영조 3년(1727) 등
중간본 『이륜행실도』 - 선조 13년(1579), 영조 3년(1727), 영조 6년(1730) 강원감영판본 등
『동국신속삼강행실도』 - 광해군 9년(1617) : 1,515인+부록(삼강행실도 16인+속삼강행실도 56인 발췌) 등 1,587인.
『오륜행실도』 - 정조 21년(1797) : 삼강행실도(언해본)와 이륜행실도의 합본이지만 그 언해문은 새로 번역한, 150인의 행적과 그림.
여기서 『속삼강행실도(續三綱行實圖)』와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자.
『속삼강행실도』는 중종의 명에 따라 신용개(申用漑) 등이 중종 9년(1514)에 간행한 1책의 목판본으로서, 『삼강행실도』(한문본)에 빠진 사람을 찾아 추가로 간행하였다고 하지만, 체재는 언해본과 같이 본문 윗면에 언해문을 새겼다. 원문에는 시(詩)와 찬(讚)을 붙이고, 1장에 한 사람씩 효자 36인, 충신 5인, 열녀 28인, 모두 69인의 사적을 수록・언해하였는데, 조선과 명나라 개국 이후에 발생한 사실을 중심으로 하여 조선 사람은 효자 33인, 충신 2인, 열녀 20인으로 모두 55인이고, 명나라 사람은 효자 3인, 충신 3인, 열녀 8인으로 모두 14인이니, 『삼강행실도』보다는 우리나라 사람이 좀더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륜행실도』는 중종 13년(1518) 김안국(金安國)이 편찬한 책이다. 강혼(姜渾)이 쓴 서문에 의하면, 당시 승정원의 승지로 있던 김안국이 건의하니 중종이 이를 받아들여 왕명으로 편찬하려 했으나 김안국이 경상도관찰사로 멀어지게 되어 경상도 금산군(金山郡, 지금의 경북 김천)에 은거하고 있던 전 사역원정 조신(曹伸)에게 편찬케 하였으니, 이때 김안국은 집필과 편집 등을 맡았고 조신이 이를 받아 금산에서 인쇄, 간행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김안국의 행장(行狀)에 기록된 것을 보면, 중종 11년(1516)에 상계(上啓)한 내용에서 그가 건의한 내용은 『삼강행실도』의 인간(印刊)이 백성들을 교화하는 데 큰 성과가 있었음을 언급하고 나서, 그렇지만 『삼강행실도』에는 장유유서(長幼有序)와 붕우유신(朋友有信)의 두 가지 규범은 삼강과 함께 오륜이 되므로 제외할 수 없는 인륜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김안국은 이미 이때부터 장유와 붕우의 윤리 내용을 『삼강행실도』에 보충하여 『오륜행실도』를 편찬 반포할 것을 건의하였다.
주 188)
≪慕齋集≫ 권15. 〈先生行狀〉 今上十一年 丙子 公啓曰 祖宗朝 撰三綱行實 形諸圖畵 播之歌詠 頒諸中外 使民勸習 甚盛意也 然長幼朋友 與三綱兼爲五倫 以長幼推之敦睦宗族 以朋友推之鄕黨僚吏 亦人道所重不可闕也 以臣迂濶之見 當以此二者 補爲五倫行實 擇古人善行 爲圖畵詩章 頒諸中外 敦勵而獎勵之 上深然之.
주 189)
이륜행실도 해제, 김문웅(2010) 참조(재인용).
이러한 사실은 『오륜행실도』가 간행되기 이전부터 유교적 윤리 교육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삼강’만으로는 부족함이 대두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륜행실도』가 주인공 48명
주 190)
한(漢)나라 12명, 당(唐)나라 10명, 송(宋)나라 10명, 원(元)나라 5명, 진(晉)나라 4명, 주(周), 촉(蜀), 남송(南宋), 위(魏), 후위(後魏), 북제(北齊), 수(隋)나라 각각 1명씩이고, 우리나라 사람은 없다.
모두 중국인이란 점에서, 『속삼강행실도』에서 보여주었던 우리나라 사람 위주로 편찬한 주체적 인식이 퇴보된 느낌을 준다.
4) 동국신속삼강행실도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는 광해군 6년(1614)에 유근(柳根) 등이 왕명에 따라서 엮은 것으로 『삼강행실도』의 속편의 성격을 띠었다. 효자, 충신, 열녀 등 삼강의 윤리에 뛰어난 인물들을 수록한 책으로, 모두 18권 18책이다. 『삼강행실도』와 확연하게 다른 점은 언해문을 본문 안에 원문과 나란히 이어 붙였고, 우리나라 인물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우리 역사상 초유의 전란을 치르고 난 이후 효․충․열의 행적이 있는 사람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와 포상이 진행되었으며, 이에 대한 정리를 바탕으로 행실도를 편찬하게 되었다. 사실상 백성에 대한 군왕의 배려라는 점도 있으나 이는 광해군 자신의 계축사건에 대한 입막음의 효과를 위함이라는 주장도 있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는 효자 8권, 충신 1권, 열녀 8권, 속부 1권의 총 18권 18책으로 되어 있는데, 속부에서는 『삼강행실도』·『속삼강행실도』에 실려 있는 우리나라 사람 73인을 취사하여 부록으로 싣고 있다. 초간임에도 불구하고 총 50건 밖에 간행하지 못했는데, 이는 8도에 각기 5~6권 밖에 나누어주지 못하는 제한적인 것이었다. 그보다도 폐위 당한 군왕의 치적인 이 책이 이후 제대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겠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여러 면에서 앞선 행실도의 흐름을 이어가면서도 시대와 여건에 따라 변모하는 과정을 함께 보여준다. 우선 책의 이름에서 신속(新續)이란 용어가 그렇다. 우선 『삼강행실도』와 『속삼강행실도』에서 ‘동국 사람’만 뽑아 함께 실음으로써, 『삼강행실도』와 『속삼강행실도』를 잇는 속편(續編)의 행실도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그 짜임에서도 앞선 행실도의 효자․충신․열녀의 갈래를 그대로 따랐다. 그런 반면 앞선 행실도에 실린 중국의 사례는 모두 빼고, 새로 실리는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중심으로 함으로써, ‘동국(東國)’이라는 특징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민족자존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속삼강행실도』에서부터 나타났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속삼강행실도』가 명나라 사람 14명에 비교해 조선 사람이 월등히 많은 55명이나 실었다는 것이다.
편집체제에서도 지속과 변화를 중시하고 있다. 행실도의 편집체제는 최초의 행실도인 『삼강행실도』에서 그 준거를 삼음으로써, 한 장의 판목에 한사람씩 기사를 실었고, 인쇄하여 제책하였을 때 앞면에는 한 면 전체에 그림이 들어가도록 하였으며, 뒷면에는 인물의 행적기사와 함께 인물의 행적을 집약시킨 시나 찬을 기록하는 ‘전도 후설(前圖後說)’의 체재를 취하고 있다. 전도 후설의 짜임은, 중국에서 일반적인 ‘상도 하문(上圖下文)’의 체재, 즉 그림과 글을 한 쪽의 위아래에 함께 실은 것과는 다른 체재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편찬은 특히 임진왜란을 통하여 체득한 귀중한 자아 의식과 도의 정신의 바탕 위에서 비롯된 것으로, 임진왜란 이후 효자·충신·열녀의 행실을 수록하여 널리 펴서, 민심을 격려하고 정국을 안정시키려는 데 그 의미가 있었다. 책의 제목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그 소재나 속내가 동국, 즉 조선에 국한되면서도 그 분량이 많다는 특징뿐 아니라, 실린 사람의 신분이나 남녀의 차별 없이 천민이라 하더라도 행실이 뛰어난 자는 모두 평등하게 실음으로써 민본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음도 주목할 일이다.
주 191)
동국신속삼강행실도 해적이, 정호완(2015) 참조.
특히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원전 없는 창작물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문헌을 인용한 지금까지의 행실도류는 그 원전이 중국 사서 어딘가에 있고, 그 원전을 조금 줄이긴 했으나 될 수 있는 대로 문장 그대로를 인용하였으나, 『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모든 사람이 조선 사람뿐이기 때문에 그런 원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따진다면 앞의 행실도들은 인용서 또는 모아 엮은 책이지만 이 책은 창작한 책이라는 특징을 가지는 것이다. 물론 『속삼강행실도』의 조선인 55인에 대한 기록은 중국인 14인보다 많은 수량이며 그들 이야기는 창작이긴 하나 책 전체가 창작물은 아니다.
5) 『오륜행실도』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는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의 합본 형태로 간행된 것이다. 정조의 명에 따라 이병모(李秉模), 윤시동(尹蓍東) 등이 두 책을 합하여 정조 21년(1797)에 정리자(整理字)
주 192)
정조 19년 『정리의궤』를 찍기 위해 만든 활자. 생생자(生生字)를 본으로 만들었는데, 중국의 『사고전서』의 강희자전체다.(손보기, 『금속활자와 인쇄술』 261쪽 참조)
로 새로 찍어 간행하였다. 권5의 끝에는 발문(跋文)이 붙어 있는데 『오륜행실도』를 주자소(鑄字所)에서 정리자(整理字)로 인쇄하여 반포케 한 사실이 밝혀져 있다. 그러나 동활자인 정리자로 된 부분은 각 본문의 한문 원문일 뿐이고 그 언해문은 목활자로 되어 있다. 이 목활자의 글자체는 개화기에 들어 서양식 신식 인쇄의 활자 제작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삼강행실도』가 편찬된 이래 이륜을 더해 오륜에 대한 행실도를 내고자 한 시도는 이미 앞서 말한 대로 중종 11년(1516)에 김안국이 임금에게 제안했던 적이 있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280여년이 지난 뒤에야 『오륜행실도』가 간행된 것이다. 사실상 김안국의 제안이 비로소 이루어진 셈이다.
정조 21년 정월 초하루 정조가 내린 윤음(綸音)
주 193)
정조실록 46권, 정조 21년(1797) 1월 1일에 내린 윤음에 따르면, ‘… 그리고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같은 책도 정치를 돕고 세상을 권면하는 도구로서 『소학』과 함께 버릴 수 없는 책이므로, 하나로 정리하여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라고 명명하였다. … 세종(世宗)의 융성하던 시절에 양로연(養老宴)을 처음으로 실시하고, 『삼강행실도』를 반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라고 하였으니, 이미 이전부터 편찬이 시작되었고 이때 집필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
에 따라 편찬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같은 해 7월 실록에, ‘주자소(鑄字所)에서 오륜행실(五倫行實)을 인쇄하여 올렸다.’
주 194)
정조실록 47권, 정조 21년(1797) 7월 20일 ‘鑄字所印進五倫行實’.
라는 기록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7월 20일까지는 인쇄가 완료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때 기록을 보면, 세종 때 『삼강행실도』가 100여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주 195)
위의 7월 20일 기록에 이어서, ‘世宗朝 命集賢諸臣 蒐閱古今傳記 得孝子忠臣烈女之卓然者 百有餘人 圖形於前 紀實於後 刊頒中外 俾補風敎 今所傳三綱行實是也’라고 하였다. 처음 한문본 『삼강행실도』 서문의 ‘各百有十人’을 혼동한 듯하다.
이때까지 남아있던 책은 성종 때의 언해본 『삼강행실도』이며, 세종 때의 한문본 『삼강행실도』는 이미 전해지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었음을 알 수 있다. 한문본은 효충열 각각 110인씩 330명이기 때문이다. 또 『오륜행실도』의 제1, 제2, 제3권의 체재도 언해본 『삼강행실도』와 같다는 것은 더욱 이를 증명해 주는 일이다.
이 책이 두 책을 합본한 형태이긴 하지만 『삼강행실도』의 내용 중 효자 2인(곽거매자(郭巨埋子), 원각경부(元覺警父))의 이야기가 빠져 있고, 열녀도 ‘이씨감연(李氏感燕)’이 ‘왕씨감연(王氏感燕)’으로 성이 바뀌는 등, 차례가 조금씩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륜행실도』에서는 수록 순서를 ‘형제, 종족, 붕우, 사생’으로 나누어 실은 반면 『오륜행실도』에서는 오륜에 맞추어 ‘형제’와 ‘붕우’를 제4권에, ‘종족’과 ‘사생’을 제5권에 두어 차례를 달리하였다. 또한, 성종 21년(1490)에 간행된 초간본으로 추정되는 『삼강행실도』(언해본)는 현재 성암고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이를 다시 인출한 중종 5년(1506) 간행본이 영국 런던대학교에 소장되어 전하는데, 런던대학교 소장본에는 서문과 발문이 없이 목록과 본문만 있다. 그런데 『오륜행실도』에 정조의 ‘어제 윤음’을 비롯하여 ‘오륜행실도 서문’과 함께, ‘삼강행실도 서문’과 ‘이륜행실도 서문’, ‘오륜행실도 발문’까지를 모두 싣고 있어 그 자취를 한꺼번에 다 알 수 있게 하였다. 『오륜행실도』의 한문 원문은 『삼강행실도』와 똑같지만, 이를 번역한 언해문은 새로 언해한 것이며, 그림과 글씨도 모두 새로 새긴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한문을 재해석하고 그림도 새로운 해석에 맞추어 다시 그린 것이다.
이상의 여러 행실도류 책을 비교하여 분석한다면 원문의 변화, 언해문 해석의 차이, 글자와 문장의 변화, 인쇄 방법의 변화, 그리고 더 나아가 그림 속에 새겨진 사람의 옷차림이나 의식주(衣食住) 양식의 변화까지 조선 시대의 모든 분야의 변천을 알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자료들이 아닐 수 없다.
6) 행실도 그림의 의미와 체재
지금까지 살펴본 우리나라의 행실도류는 우선 그림을 먼저 새겨 놓은 뒤 이어서 한문 원문을 새기었고, 이를 번역한 언해문을 그림의 머리 부분에 새기거나 한문 원문과 나란히 본문에 이어 새겼다. 당시 한문을 모르는 대다수 백성들에게 유교적 윤리 교화를 위해서는 그림보다 더 나은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실도류는 새로운 간행 방법이었고, 더 백성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제작 의도가 담겨 있는 간행물이라 할 수 있다. 한 그림 속을 서너 등분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새겨 넣었고, 그림 옆쪽에 한문 원문을 새겨서 바로 그림과 함께 그 내용을 파악하게 하였다. 나아가 그 원문을 언해하여 누구나 다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글을 잘 모르는 백성들까지 교화시키고자 심혈을 기울인 임금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행장의 인물이 중국사람이나 왜인이면 그림 속 그들의 생김새나 의복, 가옥 등도 그대로 따라서 그렸고, 자연이나 수목들도 현실감 있게 그렸기 때문에 사회상의 역사적 흐름을 연구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삼강행실도』의 그림은 「몽유도원도」로 유명한 안견(安堅) 등이 그렸을 것이고,
주 196)
「삼강행실도에 대하여」(김원용, 1982, 『삼강행실도』 5쪽)에는, ‘안견, 최경, 안귀생, 배련 등’을 추정하고 있다.
『속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의 작가는 기록이 없으나 『이륜행실도』는 편찬 실무자 전 사역원정 조신(曹伸)이거나 그의 지친이었을 것이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내용이 방대하여 김수운(金水雲), 김신호(金信豪), 이징(李澄), 이신흠(李信欽)이 나누어 그렸으며, 『오륜행실도』는 풍속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렸다고 한다.
주 197)
정병모(2000), 『한국의 풍속화』 149~181쪽 참조.
그런데 사실은, 그림을 삽입하여 사람의 행실을 엮는 방식은 이미 중국에서 시작된 형식이며, 더욱이 조선 태종 때(1404) 명나라 영락제의 명으로 제작된 『고금열녀전』(1403)이 간행된 지 1년만에 600여권이나 조선에 직수입된 사실은, 『삼강행실도』 간행에 내용과 체재 면에서 큰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해 준다. 중국은 후한의 유향이 지은 『열녀전』 7권에다가, 남송(南宋) 때 채기(蔡驥)가 한나라 이후 여성들을 모아 권8을 추가하여 새로 엮은 『신편고열녀전(新編古列女傳)』(1214)
주 198)
채기가 쓴 『신편고열녀전』 목록서(目錄序) 끝에 ‘가정 칠년(嘉定七年)’이라고 적혀 있다. 가정 7년은 서기 1214년이다.
을 내면서 고개지(顧愷之)의 그림을 삽입하였는데, 그 형태는 ‘상도하문’이었다. 또 청나라 초기의 『열녀전』(1778)은 앞쪽을 공백으로 그냥 두면서까지 그림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배치하고 있다.

〈남송 때 『신편고열녀전』(1214)의 편집 체재〉

〈세종 『삼강행실도』(1434)의 편집 체재〉

〈세종 때 『삼강행실도』(1434)〉

〈성종 때 『삼강행실도』(1475)〉

〈중종 때 『이륜행실도』(1518)〉

〈청나라 초기 『열녀전』(1779)의 편집 체재〉
(*책을 펼쳐서 그림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앞쪽을 비어두고 시작하였다.)

〈조선 정조 때 『오륜행실도』(1797)의 편집 체재〉

2. 열녀전의 다양성

1) 「열녀전」의 유래
중국은 오래전부터 여성의 교화를 위한 책이 다양하게 간행되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여성과 관련된 책은, 유향의 『열녀전』, 반소의 『여계』, 『송사열녀전』, 『원사열녀전』, 『고금열녀전』, 채옹의 『여훈』과 『여효경』, 『내훈』, 『안씨가훈』, 『시경』, 『서전』, 『예기』, 『주역』, 『여사서』 등 중국 서적을 전범적인 교화서로 채택하였다. 그 가운데 한글 창제 후 우리말로 번역한 조선에서의 여성 수신 교훈서로는, 『삼강행실도』를 비롯한 여러 행실도류와 함께, 성종 6년(1475)에 소혜왕후가 『열녀전』, 『소학』, 『여교』, 『명황계감』에서 요긴한 대목만을 뽑아 편찬한 『내훈』과, 중종 27년(1532)에 최세진이 조태고의 『여훈』을 언해한 『여훈언해』에 이어, 영조 12년(1736)에 중국의 4대 여훈서를 언해한 『여사서언해』 및 융희 원년(1907) 이를 개간한 개간본 『여사서언해』, 영조 대 『어제내훈』 등이 있었다.
주 199)
『역주 여사서언해』, ‘여사서언해 해제’, 이상규(2014) 참조.
그 가운데서도 중국 한나라 때의 유향(劉向, 서기전77~6)
주 200)
유향은 전한(前漢)을 대표하는 학자로서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 서기전247~195)의 후예다. 본명은 경생(更生)이고, 자는 자정(子政)이다. 그는 황실 종친으로서 30여 년간 관직생활을 했는데, 황궁의 장서고(藏書庫)였던 석거각(石渠閣)에서 수많은 서적을 정리, 분류, 해제하는 일을 했던 것이 그의 중요한 업적이다. 또 오경(五經)의 강론과 찬술에 온 힘을 쏟아 경학, 사학, 문학, 목록학 등 각 방면에 걸쳐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지식이 여성의 행적이나 유형을 다양하게 수집 정리할 수 있게 한 것이다.(『열녀전』(이숙인 역주, 2013, 글항아리) 해제 참조)
이 지은 『열녀전(列女傳)』은 동양의 여성 수신 교훈서로서는 효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이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는지 구체적인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다만 고려 말 정추(鄭樞)의 문집에 『열녀전』이라는 책 제목이 확인되는바, 적어도 고려 말에는 이 책이 유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열녀전』이 본격적으로 유입되어 유통된 시기는 조선 초부터이다. 『태종실록』 태종 4년(1404) 기사를 보면, 3월에 명나라 황제가 하사한 『고금열녀전(古今列女傳)』 110부를 가져왔고(3월 27일 기사), 11월에 추가로 500부를 받아 왔다는 기록이 있다(11월 1일 기사). 『고금열녀전』은 명나라 영락제(永樂帝)의 명에 의해 영락 원년(1403)에 해진(解縉) 등이 편찬한 책으로, 유향의 『열녀전』과, 한대(漢代) 이후에 나온 역대 사서(史書)의 열전(列傳)에 실린 여성들의 이야기에서 선별하여, 3권으로 펴낸 것이다. 황제의 명으로 간행된 『고금열녀전』이 간행된 바로 다음 해에 무려 600부 이상이나 조선에 유입되어 유통되었던 것이다. 이 『고금열녀전』의 유입이 세종의 『삼강행실도』 간행에 영향을 주었음은, 그 두 책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조선 중종 때(1543~1544) 간행된 『고열녀전(언해)』은 바로 유향이 처음 지었던 『열녀전』과 명나라 영락제가 명하여 다시 엮은 『고금열녀전』을 종합적으로 수용하고, 여기에 우리말 번역을 붙인 새로운 형태의 판본임을 알 수 있다.
주 201)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 열녀전』, ‘해제’, 국립한글박물관(2015) 참조..
예컨데 여성 수신 교훈서의 또다른 맥을 형성하고 있는, 한문본 『여사서(女四書)』는 중국 청나라 시대에 왕진승(王晉升; 1662~1722)이 간행한 책인데, 이 책은, 후한의 조태고(曹大家) 반소(班昭)가 지은 『여계(女誡)』, 당나라 송약소(宋若昭)가 지은 『여논어(女論語)』, 명나라 영락제의 황후(인효문황후)가 지은 『내훈(內訓)』과 명나라 왕절부 유씨(王節婦劉氏)가 지은 『여범첩록(女範捷錄)』을 묶어 엮은 것으로서, 왕절부 유씨의 아들인 청나라 왕진승이 어머니의 글(여범첩록)에 다른 세 편의 글을 더하여 편집한 것이다. 이 책은 곧바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영조의 명으로 이덕수(李德壽)가 언해하여 『여사서언해』를 영조 13년(1737)에 개주갑인자 활자로 간행하게 된다. 그러나 『여사서』가 『삼강행실도』(1434)보다 3백년이나 뒤에 간행된 책이므로 『여사서』 이전에 이미 들어와 있던 『여계』나 『여논어』, 『내훈』을 개별적으로 참고하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들 책의 관계는 원문이 완전 일치하는 부분도 있으나 대체로 효행, 충의, 열녀의 중국 사실이 일치하는 부분이 매우 많다. 이처럼 중국의 고대 때부터 여성의 행실에 대해 소개하는 책들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이것들이 우리나라에 곧바로 수입되어 특히 조선시대 유교 숭상 정책에 편승하여 행실류뿐만 아니라 고전소설류 등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2) 열녀전의 내용과 변화
국립한글박물관이 출판한 ‘소장자료총서2’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 열녀전』(2015) ‘해제’에 따르면, 이 자료는 조선 중종 38년(1543) ~ 39년(1544) 사이에 간행된 『고열녀전(古列女傳)』(언해본)이 그 대상본인데, 이 책은 목판본으로, 모두 8권이었지만 현재 발견된 것은 권4 「정순전(貞順傳)」 한 권뿐이라고 한다. 이 한 권에는 그림, 한문, 언해문의 순서로 구성된 15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문장 실력이 뛰어난 문인 신정(申珽)과 유항(柳沆)이 번역하고 당대 명필이었던 유이손(柳耳孫)이 글을 썼으며, 조선 전기 인물화로 명성을 떨친 화가 이상좌(李上佐)가 그린 미려한 판화 13점도 포함되어 있다.
주 202)
어숙권 『패관잡기(稗官雜記)』[4]의 기록(‘고열녀전 언해본 해제’(2015)에서 참조함).
이 언해본의 원전인 『고열녀전(古列女傳)』은 중국 한나라 때 사람 유향(劉向)이 편찬한 『열녀전』으로, 그가 살던 때에 두루 전하던 중국 역사상 모범이 될 만한 여성들과 나라를 어지럽히거나 망하게 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일곱 부류로 나누어 담고 있다. 사실 유향이 편찬한 책은 『열녀전』인데, 이후 북송(北宋) 때 사람 소송(蘇頌; 1020~1101)과 왕회(王回; 1023~1065)가 ‘송(頌)’을 추가로 붙여 『고열녀전(古列女傳)』이라고 이름을 지어 펴냈고, 이를 다시 남송(南宋) 때 사람 채기(蔡驥)가 한나라 이후 여성들을 모아 권8을 추가하여 새로 엮은 『신편고열녀전(新編古列女傳)』(1214)
주 203)
채기가 『신편고열녀전』 목록서(目錄序)를 쓰면서 그 끝에 ‘가정 칠년 갑술 십이월 초오일(嘉定七年甲戌十二月初五日)’이라고 적었다. 가정 7년은 서기 1214년이다.
을 간행하였으니, 이때 고개지(顧愷之; 348~409)가 그린 그림과 함께 글을 새겨 펴내게 된 것이라 한다. 위의 언해본 『고열녀전』에도 이상좌가 그림을 그렸으면서도 원본 그대로 ‘진(晉)나라 대사마참군 고개지의 그림’이라고 적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고개지는 동진(東晉) 때 참군이라는 관직을 얻었던 사람으로, 한나라 사람 유향보다 400여 년이나 지난 시대의 사람이다. 또한 소송과 왕희, 채기라는 사람들이 『고열녀전』이란 책을 엮으면서 그림을 새롭게 삽입하였다고 하지만, 고개지가 살았던 시대와는 650여년이나 떨어진 때에 비로소 그림을 삽입하였다는 말은 어딘가 어색하다. 고개지는 4세기 사람으로서 10세기에 엮어 펴낸 『고열녀전』과 『신편고열녀전』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고개지가 그린 그림이 삽입된 『열녀전』이 이미 고개지 생전에 간행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일설에는 진(晉)나라 사람 고개지가 유향의 『열녀전』 중 일부만 그렸는데, 그 그림이 전해지다가 송대(宋代)나 원대(元代)를 거치면서 다른 사람이 추가로 그림을 그려서 『고열녀전』을 간행하였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신편고열녀전』에 그림이 들어간 것 가운데 유명한 판본으로는 건안(建安) 여씨(余氏)가 근유당(勤有堂)에서 펴낸 책이 있다. 이 책의 원본은 전하지 않으나 도광(道光) 5년(1825) 완원(阮元)의 아들 완복(阮福)이 이를 영각(影刻)한 『고호두화 열녀전(顧虎頭畵列女傳)』을 통해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문선루총서(文選樓叢書)”에 실려 있다.
주 204)
이러한 사실은, 인터넷 주소 http://ctext.org/zh을 통하여 운영되는 ‘제자백가 중국철학서 전자화계획 도서관’(중국)에 올려진 원전을 열람한 것이다.
속표지에는 ‘『고호두화 열녀전』 남송 여씨본(南宋余氏本) 양주완씨영무 중간(揚州阮氏影橅重刊)’이라고 표기하였으나, 서문에는 ‘고열녀전서(古列女傳序)’이고, 목록에는 ‘신편고열녀전 목록(新編古列女傳目錄)’이라고 적었으며, 본문이 시작되는 제1권은 ‘신간고열녀전(新刊古列女傳) 권지일(卷之一)’이라고 하는 등, 제목이 세 가지나 함께 사용되고 있다. 호두(虎頭)는 고개지(顧愷之)의 자(字)인데, 완씨는 이 책에 실린 것이 고개지의 그림이라 보았던 것이다.
유향이 처음 편찬한 『열녀전』은 말 그대로 ‘여러 여성 이야기[列女傳]’였다. 유향은 한나라 이전의 여러 유명한 여성 106명의 삶을 일곱 가지로 분류하여 책을 편찬하였다. 송(宋) 때의 『고열녀전』은 여기에 한나라 이후 20명을 더하여 126명을 실었다. ‘여러 여성 이야기’에는 모범이 될 만한 부인들뿐만 아니라 나라를 어지럽히거나 망하게 한 여성들도 두루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의도는 그 이야기들을 읽고 교훈을 얻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삼강행실도』에 실린 여성은 ‘정절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던 여성[烈女]’을 중심으로 모았으니, 유향이 뽑은 사람들을 모두 인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유향이 『열녀전』 권7에 수록한 얼폐전(蘖嬖傳) 15명은, 이미 『고금열녀전』에서 뿐만 아니라 『삼강행실도』(한문본)에서도 완전히 제외시킨 것을 알 수 있다. 얼폐전은 ‘나라와 가문을 망친 여성’들을 모아놓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세종 때 『삼강행실도』에는 110편이 있지만, 중국사람이 95명이고 우리나라 사람이 15명이다. 유교적 관점에서는 ‘얼폐전’의 여성들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세종은 중국의 서적을 수입하여 우리의 여성 교육을 위한 유교서적을 편찬하면서, ‘열녀(列女)’ 가운데 ‘열녀(烈女)’만 가려 『삼강행실도』를 지음으로써 더욱 유교적 사회 질서를 공고히 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체재는 이미 태종 때 들어온 중국의 『고금열녀전』에서도 나타났던 시도였다. 한편 세종은 『명황계감(明皇誡鑑)』과 같은 책을 내어 또다른 부류의 여성에 대해 경계하기도 하였는데, 『명황계감』은 당 현종(玄宗)이 양귀비의 미색에 탐닉하다가 정사를 등한시하고 국가를 패망의 지경에 이르게 했던 행태를 경계하기 위해 편찬한 책으로서, 그 내용에 의거하여 후일 세종 자신이 직접 168장 분량의 노랫말을 지어 붙이기도 하였다. 세조는 이 책을 다시 증수하고 언해하여 『명황계감언해』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중국의 『열녀전(列女傳)』이 우리나라에 전해졌지만 ‘열녀(烈女)’만을 뽑아내어 『삼강행실열녀도』를 엮으면서 그 제목이 『열녀전(烈女傳)』으로 변하여 정착되었고, 그 내용이 다양한 책에 인용되면서 고착화되었던 것이다.
예컨데, 국립한글박물관이 역주한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 열녀전』이라는 책의 저본인 『고열녀전(古列女傳)』도 본문엔 ‘고열녀전 권4 정순전(古列女傳卷四貞順傳)’으로 시작하면서도, 원본 겉장에는 『열녀전(烈女傳)』이라 적고 있다. 즉 ‘열녀전(列女傳)’과 ‘열녀전(烈女傳)’이라는 이름이 한 책 안에서 혼동하며 충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중국의 책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처음부터 조선사람에겐 오직 ‘열녀(烈女)’만이 관심의 대상이었다는 정체된 인식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거나, 또는 조선 사회에 직수입된 『고금열녀전』(1403)보다 『삼강행실도』(1434) 「열녀도」의 위력이 더 강력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조선왕조실록』 전체 내용을 찾아보아도 ‘열녀(列女)’라는 말을 쓴 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이런 추정을 더욱 가능케 한다.
3) 유향의 『열녀전』과 해진의 『고금열녀전』
중국 한(漢)나라는 후궁과 외척이 권세를 휘두르던 시기였다. 한 고조(漢高祖)의 황후 여후(呂后), 성제(成帝)의 외척 조비연(趙飛燕), 합덕(合德) 자매와 이평(李平) 등이 유명하다. 유향(劉向)은 이런 후궁과 외척 세력이 황실을 어지럽히는 것을 경계하려는 생각으로 『열녀전』을 지었다고 한다. 유씨 왕실의 측근이었던 그는 당대까지 전해지고 있던 여러 문헌에서 여성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여 자신의 관점에서 그들의 삶을 재구성했던 것이다. 그러한 시기는 유학을 필요로 하였고, 유학을 지배 이념으로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높아져,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원리에 입각해 여성을 정의할 필요가 생겼던 것이다. 『열녀전』은 바로 이 가부장적 원리가 중국 사회에 뿌리내리고 확산되는 과정에서 배태된 텍스트다.
주 205)
‘유향의 고열녀전과 삼강행실도 열녀편’(강명관, 2015) 216쪽 참조.
권1은 ‘훌륭한 어머니’, 권2는 ‘현명한 아내’, 권3은 ‘지혜로운 여성’, 권4는 ‘예와 신의를 지킨 여성’, 권5는 ‘도리를 실천한 여성’, 권6은 ‘지식과 논리를 갖춘 여성’, 권7은 ‘나라와 가문을 망친 여성’이다. 이 유향의 책은 중국 『후한서(後漢書)』에 역사 사실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여기에 송대에 ‘권8 속열녀전’이 추가되어 『고열녀전』이 나오게 된다. 내용을 보면,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 『국어(國語)』, 『춘추좌전(春秋左傳)』, 『춘추공량전』, 『사기(史記)』 등의 앞선 자료에서 두루 인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명나라 성조(成祖; 영락제)가 효의왕후(孝懿王后) 마씨의 유지를 받들어 해진(解縉) 등에게 유향의 『열녀전』을 본보기로 삼아 새로 편찬케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고금열녀전(古今列女傳)』(1403)이다.
『태종실록』 4년(1404) 3월 27일 기사에 따르면, 이날 사은사 이빈(李彬)과 민무휼(閔無恤) 등이 이성계가 이인임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을 명에 전하고 개정을 약속받은 뒤 돌아오면서, 영락(永樂) 2년의 『대통력(大統曆)』 100부와 『열녀전』 110부를 받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명나라 『고금열녀전』은 『고열녀전』과, 한대 이후부터 명대 초기까지의 여러 역사서에서 수집한 내용을 합하여, 상권은 역대의 후비(后妃), 중권은 제후와 대부의 처, 하권은 사(士)와 서인(庶人)의 사적을 각각 수록한 책이다. 3월에 이어 같은 해 11월에도 역시 진하사 이지(李至), 조희민(趙希閔)이 황제가 하사한 『고금열녀전』 500부를 더 받아왔다. 중국에서 주는 책은 조선에서 필요할 경우, 대개 번각(飜刻)하기 마련인데 왜 이렇게 많은 부수를 들여왔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이 『고금열녀전』에는 『고열녀전』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전재하고 있으며, 권7 얼폐전을 생략한 편집 체재를 세종 때의 『삼강행실도』가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볼 때, 『고금열녀전』이 우리나라에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행실도류 제작에도 그 본보기가 되었음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고려 때까지 유향의 『열녀전』이 전래되어 읽혔다는 기록은 찾기 힘들지만, 명나라 영락제가 새로 짓게 한 『고금열녀전』(1403)은 간행되자마자 610부나 되는 방대한 양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역사상 유래 없는 엄청난 물량 공세를 폈음에도 불구하고, 30년 뒤 조선 세종 때 『삼강행실도』(1434)가 반포됨으로써 그 후 ‘열녀전(列女傳)’이라는 말은 좀체 찾기 힘들고, 중종 때 『고열녀전』이 언해하여 간행되지만 표지에는 『열녀전(烈女傳)』으로 적기까지 이른다. 무엇보다 610권이란 엄청난 물량이 한꺼번에 유입되면서 조선에는 인쇄 출판물에 대한 관심과, 여성 또는 백성의 유교적 교육을 위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에 따른 주자(鑄字) 제조와 인쇄 배포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 세종 시대의 문화 융성에 기폭제가 되었다고 본다.
4) 여러 중국 『열녀전』의 내용 비교
그럼 여기에서, 『오륜행실도』 「열녀」편 즉, 『삼강행실열녀도』의 내용과 체재에 영향을 준 저본(底本)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기 위하여, 유향의 『열녀전』과 송대(宋代)의 『고열녀전』, 명나라 『고금열녀전』과 청나라 때의 『열녀전』을 비교해 보기로 한다. 유향의 『열녀전』 전체 목차는 다음과 같다.
주 206)
『신역(新譯) 열녀전(列女傳)』(2003) 삼민서국(대만).
권1 모의전(母儀傳)
1.유우이비(有虞二妃) 2.기모강원(棄母姜嫄) 3.설모간적(契母簡狄) 4.계모도산(啓母塗山) 5.탕비유신(湯妃有㜪)
6.주실삼모(周室三母) 7.위고정강(衛姑定姜) 8.제녀부모(齊女傅母) 9.노계경강(魯季敬姜) 10.초자발모(楚子發母)
11.추맹가모(鄒孟軻母) 12.노지모사(魯之母師) 13.위망자모(魏芒慈母) 14.제전직모(齊田稷母)
권2 현명전(賢明傳)
1.주선강후(周宣姜后) 2.제환위희(齊桓衛姬) 3.진문제강(晉文齊姜) 4.진목공희(秦穆公姬) 5.초장번희(楚莊樊姬)
6.주남지처(周南之妻) 7.송포여종(宋鮑女宗) 8.진조쇠처(晉趙衰妻) 9.도답자처(陶荅子妻) 10.유하혜처(柳下惠妻)
11.노검루처(魯黔婁妻) 12.제상어처(齊相御妻) 13.초접여처(楚接輿妻) 14.초로래처(楚老萊妻) 15.초어릉처(楚於陵妻)
권3 인지전(仁智傳)
1.밀강공모(密康公母) 2.초무등만(楚武鄧曼) 3.허목부인(許穆夫人) 4.조희씨처(曹僖氏妻) 5.손숙오모(孫叔敖母)
6.진백종처(晉伯宗妻) 7.위영부인(衛靈夫人) 8.제영중자(齊靈仲子) 9.노장손모(魯臧孫母) 10.진양숙희(晉羊叔姬)
11.진범씨모(晉范氏母) 12.노공승사(魯公乘姒) 13.노칠실녀(魯漆室女) 14.위곡옥부(魏曲沃婦) 15.조장괄모(趙將括母)
권4 정순전(貞順傳)
1.소남신녀(召南申女) 2.송공백희(宋恭伯姬) 3.위선부인(衛宣夫人) 4.채인지처(蔡人之妻) 5.여장부인(黎莊夫人)
6.제효맹희(齊孝孟姬) 7.식군부인(息君夫人) 8.제기량처(齊杞梁妻) 9.초평백영(楚平伯嬴) 10.초소정강(楚昭貞姜)
11.초백정희(楚白貞姬) 12.위종이순(衛宗二順) 13.노과도영(魯寡陶嬰) 14.양과고행(梁寡高行) 15.진과효부(陳寡孝婦)
권5 절의전(節義傳)
1.노효의보(魯孝義保) 2.초성정무(楚成鄭瞀) 3.진어회영(晉圉懷嬴) 4.초소월희(楚昭越姬) 5.합장지처(蓋將之妻)
6.노의고자(魯義姑姊) 7.대조부인(代趙夫人) 8.제의계모(齊義繼母) 9.노추결부(魯秋潔婦) 10.주주충첩(周主忠妾)
11.위절유모(魏節乳母) 12.양절고자(梁節姑姊) 13.주애이의(珠崖二義) 14.합양우제(郃陽友娣) 15.경사절녀(京師節女)
권6 변통전(辯通傳)
1.제관첩정(齊管妾婧) 2.초강을모(楚江乙母) 3.진궁공녀(晉弓工女) 4.제상괴녀(齊傷槐女) 5.초야변녀(楚野辯女)
6.아곡처녀(阿谷處女) 7.조진녀연(趙津女娟) 8.조불힐모(趙佛肸母) 9.제위우희(齊威虞姬) 10.제종리춘(齊鍾離春)
11.제숙류녀(齊宿瘤女) 12.제고축녀(齊孤逐女) 13.초처장질(楚處莊姪) 14.제녀서오(齊女徐吾) 15.제태창녀(齊太倉女)
권7 얼폐전(蘖嬖傳)
1.하걸말희(夏桀末姬) 2.은주달기(殷紂妲己) 3.주유포사(周幽褒姒) 4.위선공강(衛宣公姜) 5.노환문강(魯桓文姜)
6.노장애강(魯莊哀姜) 7.진헌여희(晉獻驪姬) 8.노선무강(魯宣繆姜) 9.진녀하희(陳女夏姬) 10.제영성희(齊靈聲姬)
11.제동곽희(齊東郭姬) 12.위이난녀(衛二亂女) 13.조령오녀(趙靈吳女) 14.초고이후(楚考李后) 15.조도창후(趙悼倡后)
권8 속열녀전(續列女傳)
1.주교부인(周郊婦人) 2.진국변녀(陳國辯女) 3.섭정지자(聶政之姊) 4.왕손씨모(王孫氏母) 5.진영지모(陳嬰之母)
6.왕릉지모(王陵之母) 7.장탕지모(張湯之母) 8.준불의모(雋不疑母) 9.한양부인(漢楊夫人) 10.곽부인현(霍夫人顯)
11.엄연년모(嚴延年母) 12.한풍소의(漢馮昭儀) 13.왕장처녀(王章妻女) 14.반녀첩여(班女婕妤) 15.한조비연(漢趙飛燕)
16.효평왕후(孝平王后) 17.갱시부인(更始夫人) 18.양홍지처(梁鴻之妻) 19.명덕마후(明德馬后) 20.양부인예(梁夫人嫕)
원래 유향의 『열녀전』은 위의 목록에서 권7까지만이다. 권8 「속열녀전」은 남송 때 사람 채기가 한나라 이후 전한과 후한의 여성 20명을 모아 추가하여 엮은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위 목록은 『고열녀전』의 목록이다.
다음은 명나라 영락제 때 해진(解縉)이 새로 만든 『고금열녀전(古今列女傳)』의 목록이다.
주 207)
『고금열녀전』 원본은 버지니아대학(University of Virginia) 도서관 소장본을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인용함. 아울러 『흠정사고전서(欽定四庫全書)』 사부(史部) 제7을 함께 참조함.
고금열녀전(古今列女傳) 권1
우(虞)
1. 유우이비(有虞二妃)
하(夏)
2. 계모도산(啟母塗山)
상(商)
3. 설모간적(契母簡狄)
4. 탕비유신(湯妃有㜪)
주(周)
5. 기모강원(棄母姜嫄)
6. 태왕비 태강(太王妃太姜)
7. 왕계비 태임(王季妃太任)
8. 문왕비 태사(文王妃太姒)
9. 선강후(宣姜后)
전한(前漢)
10. 풍소의(馮昭儀)
11. 반첩여(班婕妤)
12. 효평왕후(孝平王后)
후한(後漢)
13. 광렬음후(光烈隂后)
14. 명덕마후(明徳馬后)
15. 화희등후(和熹鄧后)
16. 문명왕후(文明王后)
당(唐)
17. 태목순성황후 두씨(太穆順聖皇后竇氏)
18. 문덕순성황후 장손씨(文徳順聖皇后長孫氏)
19. 서현비(徐賢妃)
20. 위현비(韋賢妃)
21. 장헌왕후(荘憲王后)
22. 의안곽후(懿安郭后)
송(宋)
23. 장목곽후(章穆郭后)
24. 자성광헌조후(慈聖光獻曹后)
25. 풍현비(馮賢妃)
26. 선인성렬고후(宣仁聖烈髙后)
27. 흠성헌숙향후(欽聖憲肅向后)
28. 헌성자열오후(憲聖慈烈呉后)
29. 성숙사후(成肅謝后)
원(元)
30. 소예순성홍길리후(昭睿順聖鴻吉哩后)
국조(明)
31. 태조 효자소헌지인문덕승천순성고황후(太祖孝慈昭憲至仁文徳承天順聖髙皇后)
고금열녀전 권2
주 열국(周列國)
1. 위고정강(衛姑定姜)
2. 위선부인(衛宣夫人)
3. 위종이순(衛宗二順)
4. 제전직모(齊田稷母)
5. 제상어처(齊相御妻)
6. 제영중자(齊靈仲子)
7. 제효맹희(齊孝孟姬)
8. 제기양처(齊杞梁妻)
9. 제위우희(齊威虞姬)
10. 제종리춘(齊鍾離春)
11. 제숙류녀(齊宿瘤女)
12. 제고축녀(齊孤逐女)
13. 왕손씨모(王孫氏母)
14. 노계경강(魯季敬姜)
15. 유하혜처(栁下惠妻)
16. 장문중모(臧文仲母)
17. 노공승사(魯公乘姒)
18. 송공백희(宋共伯姬)
19. 진조쇠처(晉趙衰妻)
20. 진백종처(晉伯宗妻)
21. 진양숙희(晉羊叔姬)
22. 진범씨모(晉范氏母)
23. 진어회영(晉圉懷嬴)
24. 초자발모(楚子發母)
25. 초장번희(楚荘樊姬)
26. 손숙오모(孫叔敖母)
27. 초평백영(楚平伯嬴)
28. 초소정강(楚昭貞姜)
29. 초소월희(楚昭越姬)
30. 식군부인(息君夫人)
31. 여장부인(黎莊夫人)
32. 조장괄모(趙将括母)
33. 조진녀연(趙津女姢)
34. 위곡옥부(魏曲沃負)
35. 대조부인(代趙夫人)
36. 도답자처(陶答子妻)
37. 개구자처(蓋丘子妻)
전한(前漢)
38. 진영모(陳嬰母)
39. 왕릉모(王陵母)
40. 제태창녀(齊太倉女)
41. 준불의모(雋不疑母)
42. 양부인(楊夫人)
43. 엄연년모(嚴延年母)
후한(後漢)
44. 양부인(梁夫人)
45. 정문구처(程文矩妻)
46. 황보규처(皇甫規妻)
진(晉)
47. 도간모(陶侃母)
48. 양위처(梁緯妻)
49. 우담모(虞潭母)
수(隋)
50. 정선과모(鄭善果母)
51. 배륜처(裴倫妻)
당(唐)
52. 이덕무처(李徳武妻)
53. 초영구비(楚靈龜妃)
54. 고예처(髙叡妻)
55. 양열부(楊烈婦)
56. 동창령모(董昌齡母)
오대(五代)
57. 왕응처(王凝妻)
송(宋)
58. 진성화처(陳省華妻)
59. 사방득처(謝枋得妻)
원(元)
60. 감문흥처(闞文興妻)
61. 풍숙안(馮淑安)
국조(명)
62. 한태초처(韓太初妻)
63. 비우첩(費愚妾)
고금열녀전 권3
주 열국(周列國)
1. 제의계모(齊義繼母)
2. 제상괴녀(齊傷槐女)
3. 노모사(魯母師)
4. 노검루처(魯黔婁妻)
5. 노의고자(魯義姑姊)
6. 송포여종(宋鮑女宗)
7. 진궁공처(晉弓工妻)
8. 채인처(蔡人妻)
9. 추맹가모(鄒孟軻母)
10. 초백정희(楚白貞姬)
11. 소남신녀(召南申女)
12. 위망자모(魏芒慈母)
전한(前漢)
13. 진과효부(陳寡孝婦)
14. 합양우제(郃陽友娣)
15. 경사절녀(京師節女)
16. 양과고행(梁寡髙行)
후한(後漢)
17. 양홍처(梁鴻妻)
18. 조세숙처(曹世叔妻)
19. 왕패처(王霸妻)
20. 악양자처(樂羊子妻)
21. 포선처(鮑宣妻)
22. 오허승처(呉許升妻)
23. 방연모(龎涓母)
24. 유장경처(劉長卿妻)
25. 음유처(隂瑜妻)
원위(元魏)
26. 위부처(魏溥妻)
27. 방애친처(房愛親妻)
28. 아씨정녀(兒氏貞女)
수(隋)
29. 효녀왕순(孝女王舜)
30. 담씨효부(覃氏孝婦)
31. 조원해처(趙元楷妻)
당(唐)
32. 번회인모(樊㑹仁母)
33. 번언침처(樊彦琛妻)
34. 두씨이녀(竇氏二女)
송(宋)
35. 주아(朱娥)
36. 장씨녀(張氏女)
37. 조씨녀(趙氏女)
38. 서씨녀(徐氏女)
39. 왕정부(王貞婦)
40. 담씨부(譚氏婦)
41. 한씨녀(韓氏女)
42. 진당전(陳堂前)
43. 유당가모(劉當可母)
44. 첨씨녀(詹氏女)
45. 왕씨부(王氏婦)
원(元)
46. 조효부(趙孝婦)
47. 유신처(俞新妻)
48. 이지정(李智貞)
49. 이경문처(李景文妻)
50. 조빈처(趙彬妻)
51. 이오처(李五妻)
52. 유사연처(俞士淵妻)
53. 혜사현처(惠士玄妻)
국조(명)
54. 이대처(李大妻)
55. 영씨녀(寗氏女)
56. 장민도처(張敏道妻)
57. 임사중처(任仕中妻)
58. 이충처(李忠妻)
59. 보선경처(步善慶妻)
60. 서윤양처(徐允讓妻)
61. 이무처(李茂妻)
62. 허옹이첩(許顒二妾)
63. 고씨오절부(髙氏五節婦)
64. 부처악씨(傅妻岳氏)
65. 서덕안처(徐徳安妻)
위와 같이 『고금열녀전』은 159명(내용상으로는 162명)이나 되어 『고열녀전』보다도 더 많은 사람을 추가하였다.

〈『고금열녀전』 서문(원본 사진)
주 208)
이 『고금열녀전』 원본 사진은 버지니아대학(University of Virginia) 도서관 소장본을 인터넷에서 내려받기 한 것이다. 명나라 태종의 어제서문 끝부분에, ‘영락 원년(1403) 9월 초하루 아침에 서문을 쓰다.’라고 쓰여 있다.
다음은 중국의 구십주(仇十洲)가 그린 그림에 왕도곤(汪道昆, 1525~1593)이 편집한 지부족재장판(知不足齋藏版) 『열녀전(列女傳)』의 목록이다.
주 209)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소장본. 인터넷에서 내려받음.
구십주의 이름은 영(英)이고, 자는 실보(實父, 實甫)이며, 십주는 그의 호인데, 1552년에 죽었으나 태어난 때는 알려지지 않은 명나라 중기 때 화가로서 명사대가(明四大家) 중 한 사람이다. 이 책의 서문에 따르면, 만력 연간(1573~1620)에 왕도곤이 16권으로 편집한 『열녀전』으로서, 청나라 고종(건륭) 44년(1779)에 청나라 사람 포정박이 편집하여 펴낸 총서에 실려 있다. 내용을 보면 유향의 『열녀전』이 주제에 따라 분류하였다면, 『고금열녀전』은 왕족, 양반, 평민 등 신분별로 권수를 나누어 시대별로 나열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왕도곤의 『열녀전』은 더 많은 사람을 뽑아 그 양에 따라 권수를 나누었지만, 『열녀전』처럼 각각의 제목을 붙여 주제별로 권수를 나누면서도, 『고금열녀전』처럼 각권마다 신분과 시대순으로 편집하였음을 볼 수 있다. 더욱이 중국 열녀전 중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판화 작품으로 유명하다.
제1권
1.유우이비(有虞二妃) 2.계모도산(啓母塗山) 3.기모강원(棄母姜嫄) 4.태왕비태강(太王妃太姜) 5.왕계비태임(王季妃太任) 6.문왕비태사(文王妃太姒) 7.주선강후(周宣姜后) 8.위고정강(衛姑定姜) 9.위선부인(衛宣夫人) 10.위영부인(衛靈夫人) 11.위종이순(衛宗二順) 12.제효맹희(齊孝孟姬) 13.제영중자(齊靈仲子) 14.제위우희(齊威虞姬) 15.제종리춘(齊鍾離春) 16.제숙류녀(齊宿瘤女) 17.제녀부모(齊女傅母) 18.제상어처(齊相御妻) 19.제전직모(齊田稷母) 20.제기량처(齊杞梁妻) 21.제고축녀(齊孤逐女) 22.왕손씨모(王孫氏母)
제2권
1.제관첩정(齊管妾婧) 2.제의계모(齊義繼母) 3.제상괴녀(齊傷槐女) 4.제녀서오(齊女徐吾) 5.제섭정자(齊聶政姊) 6.노계경강(魯季敬姜) 7.노장손모(魯臧孫母) 8.노지모사(魯之母師) 9.노검루처(魯黔婁妻) 10.노추결부(魯秋潔婦) 11.노과도영(魯寡陶嬰) 12.노칠실녀(魯漆室女) 13.송포여종(宋鮑女宗) 14.진문제강(晉文齊姜) 15.진어회영(晉圉懷嬴) 16.진조쇠처(晉趙衰妻) 17.진백종처(晉伯宗妻) 18.진양숙희(晉羊叔姬)
제3권
1.진범씨모(晉范氏母) 2.진궁공처(晉弓工妻) 3.밀강공모(密康公母) 4.허목부인(許穆夫人) 5.여장부인(黎莊夫人) 6.식부인(息夫人) 7.조희씨처(曹僖氏妻) 8.주남지처(周南之妻) 9.소남신녀(召南申女) 10.주교부인(周郊婦人) 11.주주충첩(周主忠妾) 12.채인지처(蔡人之妻) 13.진국변녀(陳國辯女) 14.아곡처녀(阿谷處女) 15.추맹가모(鄒孟軻母) 16.진목공희(秦穆公姬) 17.백리해처(百里奚妻) 18.초무등만(楚武鄧曼) 19.초성정무(楚成鄭瞀) 20.초평백영(楚平伯嬴) 21.초소월희(楚昭越姬) 22.초처장질(楚處莊姪) 23.초백정희(楚白貞姬) 24.손숙오모(孫叔敖母)
제4권
1.초자발모(楚子發母) 2.초강을모(楚江乙母) 3.한사인처(韓舍人妻) 4.초어릉처(楚於陵妻) 5.초완포녀(楚浣布女) 6.구천부인(句踐夫人) 7.조진녀연(趙津女娟) 8.조불힐모(趙佛肹母) 9.조장괄모(趙將括母) 10.대조부인(代趙夫人) 11.위절유모(魏節乳母) 12.개구자처(蓋邱子妻) 13.과부청(寡婦淸) 14.우미인(虞美人) 15.풍소의(馮昭儀) 16.효평왕후(孝平王后) 17.광열음후(光烈陰后) 18.명덕마후(明德馬后) 19.화희등후(和熹鄧后)
제5권
1.진영모(陳嬰母) 2.왕릉모(王陵母) 3.준불의모(雋不疑母) 4.양부인(楊夫人) 5.엄연년모(嚴延年母) 6.진나부(秦羅敷) 7.양부인예(梁夫人嫕) 8.왕사도처(王司徒妻) 9.주애이의(珠崖二義) 10.조포모(趙苞母) 11.강시처(姜詩妻) 12.서서모(徐庶母) 13.경사절녀(京師節女) 14.동해효부(東海孝婦) 15.합양우제(郃陽友娣) 16.양절고자(梁節姑姊) 17.양과고행(梁寡高行) 18.육속모(陸續母) 19.서숙(徐淑) 20.농모조아(龎母趙娥)
제6권
1.포선처(鮑宣妻) 2.오허승처(吳許升妻) 3.유장경처(劉長卿妻) 4.제태창녀(齊太倉女) 5.이문희(李文姬) 6.순양양향(順陽楊香) 7.숙선웅(叔先雄) 8.효녀조아(孝女曹娥) 9.왕경모(王經母) 10.연단후(燕段后) 11.양양후(涼楊后) 12.장부인(張夫人) 13.유곤모(劉琨母) 14.도간모(陶侃母) 15.주서모(朱序母) 16.양위처(梁緯妻) 17.우담모(虞潭母) 18.하후영녀(夏侯令女)
제7권
1.황보밀모(皇甫謐母) 2.위경유처(衛敬瑜妻) 3.양록주(梁綠珠) 4.의양팽아(宜陽彭娥) 5.순관(荀灌) 6.왕씨녀(王氏女) 7.명공왕후(明恭王后) 8.곡률씨비(斛律氏妃) 9.대의공주(大義公主) 10.세부인(洗夫人) 11.위유씨처(魏劉氏妻) 12.종사웅모(鍾仕雄母) 13.정선과모(鄭善果母) 14.위부처(魏溥妻) 15.방애친처(房愛親妻) 16.조원해처(趙元楷妻) 17.요씨치이(姚氏癡姨) 18.담씨부(覃氏婦) 19.이정효녀(李貞孝女) 20.예정녀(倪貞女) 21.왕효녀(王孝女)
제8권
1.강채빈(江采蘋) 2.위현비(韋賢妃) 3.초영구비(楚靈龜妃) 4.배숙영(裴淑英) 5.고예처(高叡妻) 6.진막처(陳邈妻) 7.당부인(唐夫人) 8.최원위모(崔元暐母) 9.유중영모(柳仲郢母) 10.양열부(楊烈婦) 11.후씨재미(侯氏才美) 12.담분처(湛賁妻) 13.복고회은모(僕固懷恩母) 14.이일월모(李日月母)
제9권
1.번회인모(樊會仁母) 2.정의종처(鄭義宗妻) 3.경양이씨(涇陽李氏) 4.적양공자(狄梁公姊) 5.번언침처(樊彦琛妻) 6.견정절부(堅正節婦) 7.정감처(鄭邯妻) 8.정소란(鄭紹蘭) 9.강담오구(江潭吳嫗) 10.주연수처(朱延壽妻) 11.왕씨효녀(王氏孝女) 12.가효녀(賈孝女) 13.두씨이녀(竇氏二女) 14.장씨이녀(章氏二女) 15.갈씨이녀(葛氏二女) 16.목란녀(木蘭女) 17.관반반(關盼盼) 18.마희악처(馬希萼妻) 19.주행봉처(周行逢妻) 20.맹창모(孟昶母) 21.화예부인(花蕊夫人) 22.임공황숭하(臨邛黃崇嘏) 23.왕응처(王凝妻)
제10권
1.소헌두후(昭憲杜后) 2.장목곽후(章穆郭后) 3.자성조후(慈聖曹后) 4.풍현비(馮賢妃) 5.헌숙향후(憲肅向后) 6.소자맹후(昭慈孟后) 7.주후(朱后) 8.자열오후(慈烈吳后) 9.성숙사후(成肅謝后) 10.왕소의(王昭儀) 11.현목공주(賢穆公主) 12.김정부인(金鄭夫人) 13.김갈왕비(金葛王妃) 14.진모풍씨(陳母馮氏) 15.유안세모(劉安世母) 16.이호의처(李好義妻) 17.나부인(羅夫人) 18.진인처(陳寅妻) 19.순의부인(順義夫人) 20.진문용모(陳文龍母)
제11권
1.오하모(吳賀母) 2.충방모(种放母) 3.포효숙식(包孝肅媳) 4.이정모(二程母) 5.윤화정모(尹和靖母) 6.유우처(劉愚妻) 7.구희문처(歐希文妻) 8.망성막전(莽城莫荃) 9.소상촌부(小常村婦) 10.도단우처(凃端友妻) 11.진당전(陳堂前) 12.강하장씨(江夏張氏) 13.유당가모(劉當可母) 14.임천양씨(臨川梁氏) 15.회리오씨(會里吳氏) 16.한희맹(韓希孟) 17.여릉소씨(廬陵蕭氏) 18.임해민처(臨海民妻) 19.응성효녀(應城孝女)
제12권
1.조씨녀(趙氏女) 2.무호첨녀(蕪湖詹女) 3.서씨녀(徐氏女) 4.동팔나(童八娜) 5.여량자(呂良子) 6.임노녀(林老女) 7.흡엽씨녀(歙葉氏女) 8.나애경(羅愛卿) 9.구첩천도(寇妾蒨桃) 10.조회첩(趙淮妾) 11.천태엄예(天台嚴蘂) 12.가주학아(嘉州郝娥) 13.굉길랄후(宏吉剌后) 14.요리씨(姚里氏) 15.감문흥처(闞文興妻) 16.풍숙안(馮淑安) 17.조맹부모(趙孟頫母) 18.이무덕처(李茂德妻) 19.장덕신(蔣德新)
제13권
1.유신지처(兪新之妻) 2.제남장씨(濟南張氏) 3.섭정보처(葉正甫妻) 4.정씨윤단(鄭氏允端) 5.용천만씨(龍泉萬氏) 6.대석병후처(戴石屛後妻) 7.조빈처(趙彬妻) 8.곽씨이부(霍氏二婦) 9.유사연처(兪士淵妻) 10.혜사원처(惠士元妻) 11.영정절녀(寗貞節女) 12.자의자씨(慈義紫氏) 13.정씨축리(程氏妯娌) 14.주씨부(周氏婦) 15.왕방처(王防妻) 16.용유하씨(龍游何氏) 17.황문오절(黃門五節) 18.유취가(劉翠哥) 19.호묘단(胡妙端) 20.대동유의(大同劉宜) 21.유씨녀(柳氏女) 22.진숙진(陳淑眞)
제14권
1.효자마후(孝慈馬后) 2.성효장후(誠孝張后) 3.영왕곽비(郢王郭妃) 4.영왕루비(寧王婁妃) 5.화운처(花雲妻) 6.왕량처(王良妻) 7.저복처(儲福妻) 8.도희영처(屠羲英妻) 9.충민숙인(忠愍淑人) 10.왕유처(王裕妻) 11.이묘연(李妙緣) 12.이묘혜(李妙惠) 13.인절부(藺節婦)
제15권
1.한태초처(韓太初妻) 2.산음반씨(山陰潘氏) 3.호형화처(胡亨華妻) 4.고씨오절(高氏五節) 5.난성견씨(欒城甄氏) 6.장우처(張友妻) 7.구녕강씨(甌寧江氏) 8.방씨세용(方氏細容) 9.요소사자(姚少師姊) 10.해대신녀(解大紳女) 11.해정량처(解禎亮妻) 12.절효범씨(節孝范氏) 13.왕소아(王素娥) 14.정자처(程鎡妻) 15.추새정(鄒賽貞) 16.한문병처(韓文炳妻) 17.태주반씨(台州潘氏) 18.섭절부(葉節婦) 19.정문구처(程文矩妻) 20.유씨쌍절(兪氏雙節) 21.초시손씨(草市孫氏) 22.동미처(董湄妻) 23.정환처(鄭瓛妻) 24.장송필처(張宋畢妻) 25.사탕처(謝湯妻) 26.동성기녀(東城棄女)
제16권
1.나무명모(羅懋明母) 2.사계포씨(沙溪鮑氏) 3.진주저(陳宙姐) 4.왕응원처(汪應元妻) 5.보선경처(步善慶妻) 6.왕정녀(王貞女) 7.비우처(費愚妻) 8.허옹이첩(許顒二妾) 9.방정녀(方貞女) 10.방열녀(方烈女) 11.태열녀(態烈女)
명나라 개국 초기인 영락제가 중국의 고전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훈육할 목적으로 펴낸 『고금열녀전』이 태종 4년(1404) 우리나라에 610부나 유입됨으로써 조선 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전범서(典範書)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방만하게 느껴지기까지 한 이 책의 내용을 조선 사회에 맞게 걸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중국의 ‘열녀전(列女傳)’이 조선에 들어와 ‘열녀전(烈女傳)’으로 바뀐 것은 책을 낸 목적과 의미가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내용을 보면 고치거나 각색하지 않고 원문 문장 그대로를 실었고, 다만 부분적으로 내용을 줄이기는 하였으나 편집상 책의 분량을 맞추기 위함이지, 1500여년 동안 이어온 동양 여인들의 옛 이야기를 왜곡하고자 했던 의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까 서양의 예수가 나타났던 동시대에 동양에서 간행되었던 유향의 『열녀전(列女傳)』이, 2천년 동안 끊임없이 변형되거나 와전되지 않고 그대로 읽혔다는 것은 사회 규범적이고 이념적인 면에서 동양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서 그 교육적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4세기 고개지라는 사람이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 크게 효과를 얻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다양한 여성의 삶의 모습을 편벽되지 않게 적고 있음도 큰 장점 중 하나로 본다. 오히려 조선 초기 실록에서는 ‘열녀전(列女傳)’이라고 말하면서 『고금열녀전』을 상고하지만, 조선 중기 중종 때에 가서는 유향의 『열녀전』에 나오는 ‘칠실(漆室)의 여자’를 인용하고 있다.
주 210)
칠실(漆室)의 여자도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둥에 의지해서 탄식했다(중종실록 31권, 중종 12년 12월 15일 기사) - 『열녀전』권3 인지전(仁智傳) ‘노칠실녀(魯漆室女)’에 “노(魯)나라 칠실(漆室)이란 고을에 사는 아직 시집가지 못한 처녀가 하루는 걱정하기를 ‘우리 나라는 임금이 늙었고 태자는 어리니 만일 국란이 있으면 임금이나 백성이 모두 욕을 당할 것인데 여자들은 어디로 피할까?’ 했다.” 하였다.
그리고 중종 38년(1543)에 『고열녀전』의 언해본이 간행되었으니 이 언해본은 ‘권4 정순전’이라는 원문으로 보아 유향의 『고열녀전』을 저본으로 삼은 것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고금열녀전』은 세 권 뿐이고 권별 제목을 붙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후대에 가면서 더 정밀한 그림과 더 다양한 여성이 추가됨으로써 생명력을 더욱 높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조선에 들어와서 ‘열녀(烈女)’를 강조하여 여성의 행동을 좀더 경직되게 위축시킨 면은 있으나 인위적으로 내용을 왜곡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고, 광해군의 『동국신속삼강행실도』와 같이 모든 백성을 아우르는 국가 통합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기까지 하였다는 것은 새로운 시도로서, 행실도류의 발전이고 큰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중국 『열녀전』들이 『삼강행실도』에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알아 보자.

3. 『오륜행실도』 권3 「열녀(烈女)」편의 출처 분석

1)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권3과 『삼강행실열녀도(三綱行實烈女圖)』의 관계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륜행실도』는 체재상 『삼강행실도』 언해본과 『이륜행실도』를 단순하게 합책(合冊)한 형태이다. 그러나 그 판각은 새로 짰다. 즉 『삼강행실도』 언해본이 그 한문본 판본의 본문 밖 머릿부분에 언해문을 새긴 것과는 달리, 『오륜행실도』는 본문에 한문과 언해문을 나란히 이어서 새겼고, 물론 그림도 새로 그려서 새로 새긴 한문과 언해문과 함께 새판을 짠 것이다. 언해문이 본문에 나란히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이미 『번역소학』(1518)에서부터 볼 수 있으며,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3)도 그러하므로 새로울 것이 없지만 목판본이 한자 금속활자와 한글 목활자로 제작되어 매우 정밀하게 인쇄된 것은 인쇄술의 발달사에 기록될 만하다. 그러나 그 원문 내용은 세종의 『삼강행실도』에서 3분의 1(35인)만 발췌하여 간행한 성종의 『삼강행실도』 언해본의 원문 그대로를 새판에 새김으로써 내용상 변화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원문을 번역한 언해문은 성종 때 언해한 것과는 달리 새로 번역을 해서 새겼다. 낱말마다 풀어 해석한 방식이 다르고 표기법도 많이 차이를 보인다.
그러므로 『오륜행실도』 권3 「열녀」편의 내용과 출처를 분석하려면, 처음 간행한 세종 때의 『삼강행실도』 한문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여기서는 한문본 『삼강행실열녀도』 전체를 기준으로 삼아, 언해본과 『오륜행실도』 「열녀」편을 비교하고, 아울러 이를 다시 중국의 『열녀전』들과 비교하여, 각각의 출처를 낱낱이 찾아 비교해 보기로 한다.

〈『오륜행실도』 이야기 한 편의 편집 체재〉
① 언해문의 글자와 그림의 새김
『삼강행실열녀도』는 처음 세종 때 간행한 한문본의 목판 인본(木版印本)이 성종 때 그대로 언해본에 쓰였다. 다만 세종 때의 목판 윗부분에 언문 해석을 새겨서 인쇄한 것이다. 그러나 『오륜행실도』는 새로운 활자를 주조하여 인쇄함으로써 본문 안에 한문과 언해문을 나란히 새겼다. 『오륜행실도』의 한자 글자는 고활자 정리자(整理字)로 찍었는데, 한글 글자는 이른바 ‘정리자 한글 목활자’를 새로 만들어 찍었던 것이다.
정리자는 정조 19년(1795)에 『정리의궤(整理儀軌)』를 찍기 위하여 생생자(生生字; 중국 청나라 때 취진판(聚珍板) 자전에 쓰였던 글자체)를 본으로 삼아 큰 자 16만 자, 작은 자 14만 자를 부어 만들었다. 이 활자로는 그림을 나무에 새겨 활자와 같이 그림판으로 넣어 찍었기에 인쇄 기술이 더욱 발달한 것을 나타내고 있다. 글자 크기는 1.1×1.4cm 정도이고, 20자 10줄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22자 12줄의 큰 판을 만들기도 하였다. 기름칸에는 위에만 검은 접지표를 넣고 있다. 그런데 이 활자로 『오륜행실도』를 찍을 때 새로 언문 글자를 만들어야 했으니 바로 이른바 ‘정리자 한글자’로 언해문의 언문을 찍었던 것이다. 이 한글자는 정리자를 부어낼 때 나무에 새긴 것으로 보인다. 1797년의 『오륜행실도』는 정리자 한문자로 분문을 찍고, 본문의 뒤에 이어서 실은 언해문을 이 목활자 한글자로 찍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책은 한글 번역이 들어 있는 외에도 『화성의궤』에서 보는 것처럼 그림을 목판에 새겨 찍은 점이 한 특색이다. 글자의 크기는 큰 자 1.1×1.4cm, 작은 자 0.7×0.7cm로 정리자 한문 글자와 각각 같은 크기이고, 반장에 20자 10줄, 위 검은 접지표에 아래 가로선으로 되어 있다. 글자체는 조금 굵어 보이나 균형이 잡혀 있는 점에서 궁체의 완성형이라는 느낌을 준다.
주 211)
『금속활자와 인쇄술』(손보기, 1977) 261쪽 참조.
실제로 ‘무신자 병용 한글 활자’ 이후에 만든 한글 활자로는 ‘교서관인서체자 병용 한글활자’와, 초주정리자와 함께 쓴 ‘오륜행실 한글자’, 박종경이 만든 ‘전사자(全史字)’, 구한말 교과서 인쇄에 사용한 ‘학부(學部) 활자’ 등이 있으나, 이들 활자는 모두 나무로 만든 활자이며, 글씨체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자와 다르다.
주 212)
『한글금속활자』(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역사자료총서Ⅳ, 2006) 239쪽 참조.
이처럼, 『오륜행실도』의 그림은 나무판에 직접 새긴 것이고, 그림을 새긴 활판 틀에 금속활자로 만든 한자와 목활자로 만든 한글 글자를 끼워 고정시켜서 찍어낸 책이다. 그림판과 금속활자, 목활자가 함께 쓰인 방식은, 인쇄 기술이 고도의 숙련을 필요로 하는 한 단계 발전된 인쇄술이 아닐 수 없다.
중종 12년(1517)에 『소학』과 『열녀전』의 언해 사업이 추진되어
주 213)
중종실록 28권, 중종 12년(1517) 6월 27일 기록. 성상께서는 심학(心學)에 침잠하고 인륜을 후하게 하기를 힘쓰시어, 이미 『속삼강행실(續三綱行實)』을 명찬(命撰)하시고 또 《소학(小學)》을 인행(印行)토록 하여 중외(中外)에 널리 반포코자 하시니, 그 뜻이 매우 훌륭하십니다. 그러나 『삼강행실』에 실려 있는 것은, 거의가 변고와 위급한 때를 당했을 때의 특수한 몇 사람의 격월(激越)한 행실이지, 일상 생활 가운데에서 행하는 도리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그것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소학』은 곧 일상 생활에 절실한 것인데도 일반 서민과 글 모르는 부녀들은 독습(讀習)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바라옵건대 여러 책 가운데에서 일용(日用)에 가장 절실한 것, 이를테면 『소학』이라든가, 『열녀전(列女傳)』·『여계(女誡)』·『여칙(女則)』과 같은 것을 한글로 번역하여 인반(印頒)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위로는 궁액(宮掖)으로부터 조정 경사(朝廷卿士)의 집에 미치고 아래로는 여염의 소민(小民)들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사람 없이 다 강습하게 해서, 일국의 집들이 모두 바르게 되게 하소서.
중종 13년(1518)년 1년만에 『번역소학』과 『이륜행실도』도 간행되었으나, 『열녀전』의 언해 사업은 26년이 지난 중종 38년(1543)에서야 사업에 착수하게 되어
주 214)
중종실록 중종 38년(1543) 11월 6일 기록. 대제학 성세창이 아뢰기를, “동로 왕씨의 『농서』를 이제 보니, 농상의 요체를 그 안에 갖추 실었는데, 우리 나라의 일과는 다른 듯하나 또한 본받을 것이 없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제 듣건대, 『열녀전(烈女傳)』을 개간(開刊)하느라 공역(工役)이 적지 않다 하니, 그 일이 끝난 뒤에 개간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大提學成世昌啓曰 東魯王氏 農書今見之 農桑之要 備載其中 雖與我國之事似異 然亦無可法之事 但今開刊烈女傳 工役不小 事畢後開刊何如 傳曰 知道].
이듬해(1544)에 『고열녀전』(언해본)이 간행된 듯하다. 지금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한 책이 이것인데, 목판본 1책이다. 이 『고열녀전언해』
주 215)
이 제목은 글쓴이가 다른 언해본 책들처럼 고쳐 이름지어 본 것이다.
는 『삼강행실도』 언해본과 『오륜행실도』의 중간 시기의 간행물로서, 『이륜행실도』(1518)가 새롭게 간행한 책이면서도 언해문을 본문 안에 새기지 않고 『삼강행실도』 언해본처럼 본문 밖 상단에 새긴 체재를 따른 것과는 달리, 같은 해에 간행된 『번역소학』(1518)과 같이 본문 안에 한문 원문과 그 언해문을 나란히 새겨 넣었다는 점에서, 행실도류의 판짜기 형식을 깨고 『동국신속삼강행실도』와 『오륜행실도』의 형식으로 나아간 전단계 모습인 것이다.
② 『삼강행실도』(언해본)과 『오륜행실도』의 언해 방식 비교
성종 때 간행된 언해본 『삼강행실도』는 그림 위에 새겨 놓아서 같은 쪽에서 그림을 보면서 언문을 읽을 수 있었으니 매우 편리하였지만, 언해문이 한자와 혼용하여 표기되었다. 반면, 『오륜행실도』는 목활자를 만들어 굵은 글씨로 크게 찍어내어 글자가 매우 선명하고, 한글만 써서 언해하였다. 다만 그림 뒤쪽에, 한문 원문 뒤에 언해문을 실어 그림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또한 『삼강행실도』가 한문 원문에도 작은 동그라미로 번역상 띄어쓰기를 표시하였고, 언해문에도 4성 방점을 일일이 표시하며, 한자말은 한자와 독음 한글 표기를 나란히 병기하였다. 반면, 『오륜행실도』는 한문이나 언해문 모두 띄어쓰기 표시와 방점 표시를 전혀 하지 않았고, 언해문의 한자말도 한글로만 기록하여 활판 인쇄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영조 때부터 임금이 내린 윤음을 언해하여 한문본과 언해본 두 종류가 함께 전해지는 일이 많은데, 이때 언해문은 모두 한자말이라도 한글 전용으로 표기하고 있다. 영조・정조 때는 윤음
주 216)
영조 33년(1757) 간행 『어제계주윤음언해(御製戒酒綸音諺解)』(규장각 소장본) 참조.
뿐만 아니라 『오륜행실도』처럼 단행본까지 언해문을 한글만 사용하여 찍어내기에 이르렀다.
2) 『삼강행실열녀도』와 『열녀전(列女傳)』과의 관계
세종 16년(1434)에 간행된 한문본 『삼강행실도』는 『삼강행실효자도(三綱行實孝子圖)』 110도, 『삼강행실충신도(三綱行實忠臣圖)』 110도, 『삼강행실열녀도(三綱行實烈女圖)』 110도로 3권 3책, 330편의 그림과 행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책의 처음 인쇄 부수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조선 시대 간본(刊本)은 용지 관계도 있지만 수요가 제한되어 있어서 특별 관판(官版) 이외는 지역 수요자를 위한 한정판이었고, 관판의 경우도 대개는 각 관서(官署)와 관원들에게 반포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특히 널리 읽혀야 할 책이거나 오래 보존되어야 할 책은 각 도의 관찰사로 하여금 관간본(官刊本)을 복각(覆刻)하거나 재간(再刊)케 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그래서 정부 활자본의 경우도 활자본의 주요 기능은 지방에서의 복각판 원본을 소부수 적당량을 신속하게 최소 비용으로 찍어내는 것이었다.
주 217)
‘삼강행실도에 대하여’, 김원용(1982), 『삼강행실도』(세종대왕기념사업회) 해제 참조.
그러므로 각 도에서 이 원간본을 내려받아 한꺼번에 만들지 않고 필요에 따라 따로따로 각권씩 만들었기 때문에 오늘날 효자도, 충신도, 열녀도 세 책이 오롯이 한 벌로 발견되는 경우가 드물다. 또 처음 판각부터 각 책마다 반포 교지, 전문과 서문, 발문을 다 수록하여 각권별로 인쇄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그래서 현전하는 책 가운데는 부분적으로 제목만 새기고 그림과 행장이 빠진 내용이 있는데, 그 빠진 부분들이 판본마다 다르다. 또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처럼 차례에 없던 사람이 마지막에 추가로(‘은보감오(殷保感烏)’)
주 218)
은보감오(殷保感烏) : 은보가 까마귀를 감동시키다. 조선 지례현 사람 윤은보(尹殷保)와 서즐(徐騭)의 이야기다. 효자도의 목록에는 110도만 적혀 있으나 본문에는 마지막에 ‘은보감오’라는 행장이 더 있어서 111도가 되지만, 중간에 나오는 ‘효신여묘(孝新廬墓)’는 제목만 새겼을 뿐 그림과 글이 새겨지지 않았으니 결국 110도인 셈이다.
기록된 판본도 있다.
한편, 『2011년도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 제3차 회의 안건』(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이라는 공개 문헌을 보면, 경북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조창현 씨가 소장하고 있는 『삼강행실효자도』는 ‘허자매수(許孜埋獸)’, ‘효신여묘(孝新廬墓)’, ‘은시단지(恩時斷指)’, ‘성무구어(成茂求魚)’ 등 4편이나 결락(缺落)되어 있다고 하였다. 또 규장각 소장본 「충신도」에서도 ‘한기원훈(韓琦元勳)’, ‘곽영타매(郭永唾罵)’, ‘몽주운명(夢周隕命)’, ‘길재거절(吉再拒節)’, ‘원계함전(原桂陷陳)’ 등 다섯 명이 제목만 적혀 있고 그림과 내용은 공백이며, 김원용(金元龍) 님 소장본 「열녀도」(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국역본의 저본임)에서도 ‘주주사애(住住死崖)’, ‘한씨절립(韓氏節粒)’, ‘여귀액엽(黎貴縊枼)’ 등 세 편이 내용 없이 제목만 적혀 있는 상태이다.
이제 김원용 님 소장본인 『삼강행실열녀도』(한문본)의 목록을 기준으로 하여, 『삼강행실도』 언해본과 『오륜행실도』의 「열녀도」를 비교해 보고, 중국의 『고열녀전』, 『고금열녀전』, 왕도곤의 『열녀전』 등 세 가지와도 비교함으로써 그 출처를 밝혀 보기로 한다.
『삼강행실열녀도』(한문본)의 출처 분석표
『삼강행실도』(한문본) 「열녀도」(1434)『삼강행실도』(언해본)「열녀도」(1490)『오륜행실도』 「열녀도」(1797)남송 채기 『고열녀전』(1214)명 영락제 『고금열녀전』 (1403)명 왕도곤 『열녀전』(1600전후)나라와 출처
1. 황영사상(皇英死湘)유우이비(有虞二妃)〇(1-1)〇(1-1)우(虞).고열녀전
2. 태임태교(太任胎敎)주실삼모(周室三母)〇(1-6,7,8)〇(1-4,5,6)주(周).고열녀전
3. 강후탈잠(姜后脫簪)주선강후(周宣姜后)〇(1-9)〇(1-7)주(周).고열녀전
4. 소의당웅(昭儀當熊)한풍소의(漢馮昭儀)〇(1-10)〇(4-15)한(漢).고열녀전
5. 첩여사연(婕妤辭輦)반녀첩여(班女婕妤)〇(1-11)한(漢).고열녀전
6. 왕후투화(王后投火)효평왕후(孝平王后)〇(1-12)〇(4-16)한(漢).고열녀전
7. 마후의련(馬后衣練)명덕마후(明德馬后)〇(1-14)〇(4-18)한(漢).고열녀전
8. 문덕체하(文德逮下)〇(1-18)당(唐).舊唐書.『용가』 70장
9. 조후친잠(曹后親蠶)〇(1-24)〇(10-3)송(宋).宋史.慈聖曹后
10.효자봉선(孝慈奉先)〇(1-31)〇(14-1)명(明).고금열녀전.태조고황후
11.공강수의(共姜守義)           위(衛).시경.용풍편‘栢舟’
12.맹희서유(孟姬舒帷)     제효맹희(齊孝孟姬)〇(2-7)〇(1-12)제(齊).시경.소아편‘都人士’
13.백희체화(伯姬逮火)1.백희체화(伯姬逮火)1.백희체화송공백희(宋恭伯姬)〇(2-18)   송(宋).고열녀전春秋.
14.백영대인(伯嬴待刃)     초평백영(楚平伯嬴)〇(2-27)〇(3-20)초(楚).고열녀전春秋.
15.정강유대(貞姜留臺)     초소정강(楚昭貞姜)〇(2-28)   초(楚).고열녀전春秋.
16.여종지례(女宗知禮)2.여종지례(女宗知禮)2.여종지례송포여종(宋鮑女宗)〇(3-6)〇(2-13)송(宋).고열녀전春秋.
17.식처곡부(殖妻哭夫)3.식처곡부(殖妻哭夫)3.식처곡부제기양처(齊杞梁妻)〇(2-7)〇(1-20)제(齊).고열녀전春秋.
18.송녀불개(宋女不改)4.송녀불개(宋女不改)4.송녀불개채인지처(蔡人之妻)〇(3-8)〇(3-12)채(蔡).고열녀전春秋.
19.절녀대사(節女代死)5.절녀대사(節女代死)6.절녀대사경사절녀(京師節女)〇(3-15)〇(5-13)한(漢).고열녀전春秋.
20.고행할비(高行割鼻)6.고행할비(高行割鼻)5.고행할비양과고행(梁寡高行)〇(3-16)〇(5-17)양(梁).고열녀전春秋.
21.목강무자(穆姜撫子)7.목강무자(穆姜撫子)7.목강무자   〇(2-45)〇(15-19)한(漢).後漢書.程文矩妻
22.예종매탁(禮宗罵卓)9.예종매탁(禮宗罵卓)9.예종매탁   ○(2-46)   한(漢).後漢書.皇甫規妻
23.정의문사(貞義刎死)8.정의문사(貞義刎死)8.정의문사   〇(3-20)   한(漢).後漢書.樂羊子妻
24.원강해곡(媛姜解梏)10.원강해곡(媛姜解梏)10.원강해곡       한(漢).後漢書.盛道妻
25.영녀절이(令女截耳)11.영녀절이(令女截耳)11.영녀절이     〇(6-18)위(魏).三國志.夏侯令女
26.여영보구(呂榮報仇)         〇(6-2)오(吳).後漢書.吳許升妻
27.왕비거호(王妃距胡)           진(晉).晉書·列傳・烈女
28.신씨취사(辛氏就死)           진(晉).晉書·列傳・烈女
29.종씨매희(宗氏罵晞)           진(晉).晉書·列傳・烈女
30.두씨수시(杜氏守尸)           진(晉).晉書·列傳・烈女
31.염설효사(閻薛效死)           진(晉).晉書·列傳・烈女
32.모씨만궁(毛氏彎弓)           진(晉).晉書·列傳・烈女
33.양씨의열(楊氏義烈)           진(晉).晉書·列傳・烈女
34.장씨타루(張氏墮樓)           진(晉).晉書·列傳・烈女
35.이씨감연(李氏感燕)12.이씨감연(李氏感燕)12.왕씨감연(王氏感燕)       송(宋).태평광기 권제270
36.유씨분사(劉氏憤死)         〇(7-11)원위(元魏).魏書.魏劉氏妻
37.유씨동혈(柳氏同穴)           수(隋).隋書.襄城王恪妃
38.원씨훼면(元氏毁面)           수(隋).隋書.華陽王楷妃
39.유씨투정(柳氏投井)       〇(2-51)   수(隋).隋書.裵倫妻
40.최씨견사(崔氏見射)13.최씨견사(崔氏見射)13.최씨견사   〇(3-31)〇(7-16)수(隋).隋書.趙元楷妻
41.숙영단발(淑英斷髮)14.숙영단발(淑英斷髮)14.숙영단발   〇(2-52)〇(12-18)당(唐).新唐書.李德武妻
42.상자둔거(象子遁居)       〇(3-32)〇(9-1)당(唐).新唐書.樊會仁母
43.상관완절(上官完節)       〇(2-53)〇(8-3)당(唐).新唐書.楚王靈龜妃
44.위씨참지(魏氏斬指)15.위씨참지(魏氏斬指)15.위씨참지   〇(3-33)〇(9-5)당(唐).舊唐書
45.옥영침해(玉英沈海)           당(唐).舊唐書.符鳳妻
46.진씨명목(秦氏瞑目)       〇(2-54)   당(唐).新唐書.高叡妻秦氏
47.이두투애(二竇投崖)       〇(3-34)〇(9-13)당(唐).小學.善行
48.동씨봉발(董氏封髮)           당(唐).新唐書.賈直言妻董
49.경문수정(景文守正)           당(唐).新唐書.殷保晦妻傳
50.열부중도(烈婦中刀)           당(唐).新唐書.竇烈婦傳
51.주처견매(周妻見賣)           당(唐).新唐書.周迪妻某氏
52.이씨부해(李氏負骸)16.이씨부해(李氏負骸)16.이씨부해   〇(2-57)〇(9-23)오대(五代).五代史.家範(사마광)
53.조씨액여(趙氏縊輿)17.조씨액여(趙氏縊輿)17.조씨액여   〇(3-37)〇(12-1)송(宋).宋史.趙氏女
54.서씨매사(徐氏罵死)18.서씨매사(徐氏罵死)18.서씨매사   〇(3-38)〇(12-3)송(宋).宋史.徐氏女
55.희맹부수(希孟赴水)       〇(3-41)〇(11-16)송(宋).宋史.韓希孟
56.이씨액옥(李氏縊獄)19.이씨액옥(李氏縊獄)19.이씨액옥   〇(2-59)   송(宋).宋史.謝枋得妻李氏
57.조씨우해(趙氏遇害)       〇(3-40)〇(7-18)송(宋).宋史.潭氏婦趙
58.옹씨동사(雍氏同死)20.옹씨동사(雍氏同死)20.옹씨동사       송(宋).宋史.趙卯發傳
59.정부청풍(貞婦淸風)21.정부청풍(貞婦淸風)21.정부청풍   〇(3-39)〇(11-18)송(宋).宋史.王貞婦
60.양씨피살(梁氏被殺)22.양씨피살(梁氏被殺)22.양씨피살   〇(3-45)〇(11-14)송(宋).宋史.王氏婦梁
61.뇌란약마(挼蘭躍馬)           요(遼).遼史.列傳
62.주주사애(住住死崖)
주 219)
강주주(康住住)라는 여인은 부주(鄜州) 사람이다. 남편이 일찍 죽어 상복을 마치자, 그 아버지가 친정으로 데려가서 엄기(嚴沂)라는 남자의 아내되기를 허락하였다. 강씨는 죽기를 맹서하며 아비의 말을 듣지 않고 다시 남편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으나 돌아가지 못하니, 언덕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임금이 유사(有司)에게 조서(詔書)를 내려 그녀의 묘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금사(金史), 열전)
          나라, 그림, 내용 없음. 金史. 列傳
63.장결돈좌(莊潔頓挫)           금(金).金史.李英妻張氏
64.난씨해적(欒氏解賊)           금(金).金史.相琪妻
65.독길액사(獨吉縊死)           금(金).金史.獨吉氏
66.묘진부정(妙眞赴井)           금(金).金史.馮妙眞
67.명수구관(明秀具棺)23.명수구관(明秀具棺)23.명수구관       금(金).金史.蒲察氏
68.정렬분사(貞烈焚死)       〇(2-60)〇(12-15)원(元).元史.闞文興妻王氏
69.유모자서(兪母自誓)       〇(3-47)〇(13-1)원(元).元史.兪新之妻聞氏
70.숙안조면(淑安爪面)       〇(2-61)〇(12-16)원(元).元史.馮氏淑安
71.의부와빙(義婦臥氷)24.의부와빙(義婦臥氷)24.의부와빙   〇(3-51)〇(13-2)원(元).元史.濟南張氏
72.동아자액(冬兒自縊)           원(元).元史.李冬兒
73.금가정사(錦哥井死)       〇(3-50)〇(13-7)원(元).元史.趙彬妻朱氏
74.귀가액구(貴哥縊廐)           원(元).元史.貴哥蒙古氏
75.유씨악수(劉氏握手)           원(元).元史.臺叔齡妻劉氏
76.장씨자인(張氏自刃)           원(元).元史.湯煇妻張氏
77.동씨피면(童氏皮面)25.동씨피면(童氏皮面)25.동씨피면   〇(3-52)〇(13-9)원(元).元史.俞士淵妻童氏
78.장녀투수(張女投水)           원(元).元史.張氏女
79.왕씨경사(王氏經死)26.왕씨경사(王氏經死)26.왕씨경사   〇(3-53)〇(13-10)원(元).元史.惠士玄妻王氏
80.채란청심(彩鸞淸心)       〇(3-49)   원(元).元史.李景文妻徐氏
81.모씨고장(毛氏刳腸)         〇(13-14)원(元).元史.周婦毛氏
82.숙정투하(淑靖投河)           원(元).元史.吳守正妻禹氏
83.주씨구욕(朱氏懼辱)27.주씨구욕(朱氏懼辱)27.주씨구욕       원(元).元史.黃仲起妻朱氏
84.왕씨사묘(王氏死墓)           원(元).元史.焦士廉妻王氏
85.허씨부지(許氏仆地)           원(元).元史.趙洙妻許氏
86.취가취팽(翠哥就烹)28.취가취팽(翠哥就烹)28.취가취팽     〇(13-18)원(元).元史.李仲義妻劉氏
87.묘안쉬도(妙安淬刀)           원(元).元史.鄭琪妻羅氏
88.절부투강(節婦投江)           원(元).元史.柯節婦陳氏
89.화유쌍절(華劉雙節)           원(元).元史.張訥妻劉氏 張思孝妻華氏
90.유씨단설(劉氏斷舌)           원(元).元史.安志道妻劉氏
91.고부병명(姑婦幷命)           원(元).元史.宋謙妻趙氏
92.영녀정절(寗女貞節)29.영녀정절(寗女貞節)29.영녀정절   〇(3-55)〇(13-11)명(明).고금열녀전
93.왕씨호통(王氏號慟)       〇(3-58)   명(明).고금열녀전
94.반씨운명(潘氏隕命)       〇(3-60)   명(明).고금열녀전
95.부처구사(傅妻俱死)       〇(3-64)   명(明).고금열녀전
96.미처담초(彌妻啖草)30.미처담초(彌妻啖草)30.미처해도(彌妻偕逃)       백제.삼국사기.열전 都彌
97.현처사수(玄妻死水)           고려사.玄文奕妻
98.정처해침(鄭妻偕沈)           고려사.鄭文鑑
99.안처구사(安妻俱死)           고려사.安天儉妻
100.최씨분매(崔氏奮罵)31.최씨분매(崔氏奮罵)31.최씨분매       고려사.鄭滿妻崔氏
101.삼녀투연(三女投淵)           고려사.江華三女
102.열부입강(烈婦入江)32.열부입강(烈婦入江)32.열부입강       고려사.李東郊妻裴氏
103.김씨사적(金氏死賊)           고려사.金彦卿妻金氏
104.경처수절(慶妻守節)           고려사.景德宜妻安氏
105.송씨서사(宋氏誓死)           고려.咸陽郡誌
106.임씨단족(林氏斷足)33.임씨단족(林氏斷足)33.임씨단족       조선.태조4년.崔克孚妻林氏
107.김씨박호(金氏撲虎)34.김씨박호(金氏撲虎)34.김씨박호       조선.태종1년.兪天桂妻金氏
108.한씨절립(韓氏節粒)           조선.그림・내용 없음
109.여귀액엽(黎貴縊枼)           조선.그림・내용 없음
110.김씨동폄(金氏同窆)35.김씨동폄(金氏同窆)35.김씨동폄       조선.태종13년.李橿妻金氏
태종 때 중국 명나라 황제가 보내 준 『고금열녀전(古今列女傳)』(1403)이 610부나 되고, 그때로부터 30여년밖에 시간이 지나지 않은 세종 때에 『삼강행실도』가 편찬되었으므로, 흔히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중국의 『열녀전』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정작 그 출처를 살펴본 결과, 매우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삼강행실도』가 이야기마다 제목을 붙인 형식은 『고금열녀전』의 형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열녀전』(7권)과 『고열녀전』(8권)의 형식을 빌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는 달리 『고금열녀전』은 왕조 이름을 앞에 적은 뒤, 제목 없이 시대와 연대순으로 이야기를 나열하였다. 특히 ‘기모강원(棄母姜嫄)’은 후직(后稷)의 탄생과 일대기로서, 중국의 『고열녀전』, 『고금열녀전』, 『왕씨 열녀전』에 모두 나오지만 『삼강행실도』에는 빠졌는데, 그 이유는 내용이 ‘열녀(烈女)’와 관련된 이야기라 할 수 없고 기묘한 신화에 속하므로 제외한 듯하다.
명나라 영락제 때 새로 엮은 『고금열녀전』은, 세 권으로 되어 있는데, 제1권은 순임금의 비(妃)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부터 명나라 태조의 비인 효자황후(孝慈皇后)까지 모두 31명(내용상 32명)의 천자 혹은 황제의 비이고, 제2권은 63명이 나오는데, 주대(周代)에서부터 전한, 후한, 수, 당, 오대(五代), 명나라까지 제후의 비(妃) 또는 양반을 다룬 듯하며, 제3권은 주 열국에서부터 후한, 원위(元魏), 수, 당, 송, 명나라까지의 평민을 중심으로 65명(내용상 67명)을 다루어 전체 159명(내용상으로는 162명)의 행장을 소개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삼강행실도』(한문본) 110도(圖)를, 그 가운데 가려뽑은 『삼강행실도』 언해본과 『오륜행실도』를 비교하여 같고 다름을 확인해 보았으며, 모든 이야기의 출처를 찾아본 결과, 유향의 『열녀전(列女傳)』과 겹치는 것은 16가지였을 뿐이며, 그마저 영락제 때의 『고금열녀전』과 모두 겹치는 것을 볼 때, 세종 시대 『삼강행실도』를 간행할 때는 유향의 『열녀전』(사실상 『고열녀전』)과 영락제의 『고금열녀전』을 함께 참고하면서 취사선택을 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때 중국의 『열녀전』 인물들을 분류하여 『삼강행실도』에 실으면서 ‘열녀도’가 아닌 ‘효자도, 충신도’에 분류된 이야기도 많다. 예컨데, 『고열녀전』의 권4 정순전(貞順傳) 15번째 이야기 ‘진과효부(陳寡孝婦)’
주 220)
『고금열녀전』에는 권3의 13번째 ‘진과효부(陳寡孝婦)’와 같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삼강행실효자도』 14번째에 실었다.
또한 같은 내용이 『고열녀전』과 『고금열녀전』에 반드시 겹치는 것은 아니었다. 두 책의 권차와 묶음이 서로 다르고, 제목을 정하는 방식도 다른 것을 보면 1400여년이라는 시간적 거리를 두고 간행된 두 책의 간행 목적과 정치적 변화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세종은 당시 들어와 있던 중국 열녀전(列女傳)들을 보고 그 형식과 내용을 참조하긴 하였지만,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간행사업으로서 『삼강행실도』를 펴낼 때는 중국의 모든 사서(史書)들을 총망라하여 찾아보도록 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면서 아울러 『고금열녀전』에 나오는 이야기면 우선적으로 수록하였던 것이다. 또 『한서』, 『진서』, 『위서』, 『수서』, 『구당서』, 『신당서』, 『송사』, 『금사』, 『원사』 등 중국의 역사서를 두루 망라하여 참고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출처의 분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삼강행실도(한문본) 열녀도삼강행실도(언해본) 열녀도오륜행실도 열녀도고열녀전고금열녀전청대 열녀전
전체 110편35편35편124편159편309편
한문본과 겹치는 부분35편35편16편50편42편
다시 정리하면, 『시경(詩經)』 2편, 『소학(小學)』 1편, 『용비어천가』 1편, 『춘추(春秋)』 1편, 『후한서』 5편, 『삼국지(三國志)』 1편, 『진서(晉書)』 8편, 『태평광기(太平廣記)』 1편, 『위서(魏書)』 1편, 『수서(隋書)』 4편, 『구당서(舊唐書)』 3편, 『신당서(新唐書)』 8편, 『오대사(五代史)』 1편, 『송사(宋史)』 9편, 『요사(遼史)』 1편, 『금사(金史)』 6편, 『원사(元史)』 24편, 『삼국사기』 1편, 『고려사』 8편, 조선 5편 등에서 참고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중국 상고시대부터 전한의 무제(武帝)까지 2천여 년 동안의 통사와 열전을 기록한 책으로서 유향이 기록한 『열녀전』의 바탕을 이루고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4. 『삼강행실열녀도』 및 『오륜행실도』 권3 「열녀」의 종합적 이해

앞의 1장에서 보인 바처럼, 『세종실록』 42권, 세종 10년(1428) 10월 3일 기사에는, 처음 『삼강행실도』가 만들어지게 된 동기와 의도, 집필자, 참고 문헌, 대상의 범위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또 권채(權採)가 쓴 ‘삼강행실 서문’에는,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고금의 서적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참고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自中國以至我東方 古今書傳所載 靡不蒐閱]”라고 한 바와 같이, 처음부터 편찬에 필요한 자료를 한두 가지 문헌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삼강행실도』의 체재가 유향의 『열녀전』 혹은 남송 때의 『고열녀전』의 체재를 따랐음은 사실이나, 그뿐만 아니라 명나라 초 영락제의 『고금열녀전』 내용을 더 많이 인용한 것을 볼 때, 여러 열녀전을 두루 참고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삼강행실열녀도』의 내용과 그 출처를 자세히 살펴본 결과, 열녀전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헌, 특히 중국의 역사서를 모두 섭렵하여 참고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예컨데 『삼강행실도』(한문본)의 여덟번째 이야기 ‘문덕체하(文德逮下)’는 『고금열녀전』에도 등장하지만, 본디 『구당서(舊唐書)』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 주인공은 당 태종비 문덕황후로서, 조선 세종 27년(1445)에 편찬되어 세종 29년(1447)에 간행된 『용비어천가』 권제8, 70장에서도 인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늘이 (당 태종과 같은) 영기한 재주를 내시어 백성을 편안하게 살도록 하시매, 여섯 준마가 시기를 맞추어 나니.
하늘이 (이 태조와 같은) 용기와 지혜 가진 분을 주시어 나라의 편안을 위하시니, 여덟 준마가 때를 맞추어 나니.
주 221)
天挻英奇(천연영기)샤 安民(안민) 爲(위)실 六駿(육준)이 應期(응기)야 나니. 天錫勇智(천석용지)샤 靖國(정국)을 爲(위)실 八駿(팔준)이 應時(응시)야 나니.
이 『용비어천가』 70장 노래의 주석에는,
당나라 태종은 여섯 마리의 준마가 있으니 그 이름이, 특륵표, 삽로자, 청추, 권모과, 십벌적, 백제오이다. 태종이 문덕황후를 소릉에 장사지내며, 스스로 글을 지어 비문을 새기고 아울러 여섯 마리 말 모양을 새기고 글을 함께 새겨 능 뒤에 세우니, 뒷사람이 이를 베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
주 222)
唐太宗六駿 曰特勒驃 曰颯露紫 曰靑騅 曰拳毛騧 曰什伐赤 曰白蹄烏 太宗 葬文德皇后於昭陵 御製刻石文 幷六馬像贊 皆立於陵後 後人 遂摹焉作圖 傳之至今
하였고, 다시 밑줄 친 곳에 주석 달기를,
문덕황우는 장손씨요, 수(隋)나라 우효위장군 성(晟)의 딸이니, 시호는 문덕(文德)이다. 소릉(昭陵)은 경조 예천현 서북쪽 구종산(九嵕山)에 있다. 태종이 글을 지어 비석에 새겼는데, 황후는 검소하여 유언에 박장(薄葬; 소박하게 장례를 치름)토록 할 것과, 금과 옥을 순장하지 말도록 하고, 자손으로 하여금 마땅히 받들어 법을 삼으라고 이른 사실을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주 223)
文德皇后長孫氏 隋右驍衛將軍晟之女也 諡曰文德 昭陵在京兆醴泉縣西北九嵕山 太宗 爲文刻石 稱皇后節儉 遺言薄葬 不蔵金玉 當使子孫 奉以爲法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문덕황후의 이야기는 조선 초기부터 회자되고 있었고, 그 자세한 역사적 사실을 소상히 기록할 만큼 중국 역사를 깊게 연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강행실도』(한문본) ‘11) 공강수의(共姜守義)’에 나오는 시는 『시경』에서 인용한 ‘잣나무 배[栢舟]’라는 시다.
汎범彼피栢舟쥬ㅣ여 在彼피中河하ㅣ로다
髧담彼피兩髦모ㅣ 實실維유我아儀의니
之지死ㅣ언 矢시靡미他타호리라
母모也야天텬只지시니 不블諒人只지아
汎범彼피栢舟쥬ㅣ여 在彼피河하側측이로다
髧담彼피兩髦모ㅣ 實실維유我아特특이니
之지死ㅣ언 矢시靡미慝특호리라
母모也야天텬只지시니 不블諒人只지아
주 224)
『시경언해(詩經諺解)』(광해군 5년(1613)) 제3권 「국풍(國風)」 용풍(鄘風) 장 첫째 시.
위나라의 세자인 공백(共伯)이 일찍 죽자, 그 아내는 절개를 지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부모는 기어이 시집을 보내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시가를 지어 읊었다는 내용이다.
『삼강행실열녀도』 110편에서 (1)에서 (10)편까지는 해진의 『고금열녀전』에서 인용하였다. (11)부터 (18)까지는 주대 제후의 비와 춘추 시대 인물인데, (11)의 ‘공강수의(共姜守義)’만 『시경(詩經)』 용풍(鄘風) 「백주(柏舟)」의 서(序)에서 인용되고 있을 뿐, (12)에서 (18)까지도 역시 『고금열녀전』에서 인용되고 있다. (19) 이하는 한대(漢代) 이후의 제왕가의 비(妃)가 아닌 여성들이 주인공인데, 한대 초기의 여성을 다룬 (19) ~ (23)도 모두 『고금열녀전』을 옮긴 것이었다. 요컨대 하(夏) 왕조로부터 주(周), 춘추 전국, 한(漢)의 일부까지 모두 23편 중에서 (11)을 제외한 22편이 『고금열녀전』에서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24)에서 (38), (61)에서 (67), (81)에서 (91) 등은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중국 후대의 ‘열녀전’에서도 전혀 찾을 수 없는 이야기로서, 세종 때의 『삼강행실도』 집필자들은 결코 ‘열녀전’만 참고하지 않았음이 잘 나타나 있다. 즉 중국의 역대 사서를 중심으로 매우 치밀한 검토를 통하여 이야기를 뽑아내어 『삼강행실도』를 엮었다는 것이 위의 표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다만, 『삼강행실도』 집필진이나 세종의 의도라고 보았던 권7 「얼폐전」의 제외시킴은, 이미 『고금열녀전』 편찬자의 의도였음이 드러났다. 즉 권7 「얼폐전」은 악녀와 음녀(淫女) 등 부정적 여성상이기 때문에 후대에는 채택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성종 때 언해본이 만들어지면서 110명에서 35명만을 선별할 때 여성의 정절이 뛰어난 인물만으로 축약되었으니 여성의 유교적 생활은 현실적으로 더욱 위축되고 경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5. 맺음말(정리)

1) 『오륜행실도』는 조선 초 세종 때 처음 간행된 『삼강행실도』(한문본)로부터 이어진 행실도류의 가장 완성된 형태의 책이다. 내용과 형식, 인쇄 기술과 판형 뿐만 아니라, 한글 글자체와 한글 표기법에서도 가장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역사적 인물을 선택하고, 이야기와 함께 그림을 새겨 표현하는 방식은 이미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며, 더욱이 우리나라 행실도류의 내용 가운데 상당수가 중국 한나라 때 사람 유향(劉向, 서기전77~서기전6)이 엮은 『열녀전(列女傳)』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책이 간행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이었으나, 이때 이미 사마천(司馬遷)에 의해 한(漢)나라 무제 때(서기전108년~서기전91년)에 이루어진 『사기(史記)』가 읽히고 있었으니, 그 가운데 유향이 주목한 것은 제왕의 연대기(年代記), 세가(世家), 열전(列傳)들 사이에 끼어 있던 여성들의 삶이었다. 물론 그의 의도는 유교적 가부장제가 원하는 여성상을 모아 보임으로써 사회 질서를 재편해 보려는 데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유향의 의도는 『열녀전』을 엮어냄으로써 동양의 전통적 가치관을 형성하며 중국을 비롯한 조선과 일본 등 주변국에 지속적으로 오랜 세월 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중국 역대 국가들의 정사(正史)에는 ‘열전(列傳)’의 형식으로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여자들의 삶만 떼내어 모아 엮은 ‘열녀전(列女傳)’은 시대마다 새로운 인물을 추가하며 계속해서 재간행되어 왔다.
2) 『열녀전』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는 명확치 않으나 고려 말 문헌에 그 이름이 전하다가, 조선에 들어와 명나라 영락(永樂) 원년(1403)에 간행된 『고금열녀전』이 태종 4년(1404)에 두 차례에 걸쳐 610부나 직수입되었다. 이 엄청난 물량 공세를 받은 조선은 그 내용과 편집 구성에 충격을 받은 듯하다. 특히 여성을 비롯하여 모든 백성에게 새로운 나라 조선이 주창하는 새로운 이념과 학문을 가르쳐야겠다는 시대적 소명을 느끼게 하였다. 이러한 조선의 처지는 비슷한 시기에 창업한 명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그 의도 또한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온 ‘열녀전(列女傳)’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재해석됨으로써,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남녀노소 모두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일깨우게 하였으며, 역사 속에서 효자(孝子), 충신(忠臣), 열녀(烈女)의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유교적 윤리 질서를 확립하려는 의도로 『삼강행실도』가 간행되기에 이른다. 그동안 중국의 『예기(禮記)』와 여성과의 관계,
주 225)
이숙인, 『동아시아 고대의 여성사상』(여이연, 2005).
소혜왕후 한씨의 『내훈(內訓)』과 여성과의 관계
주 226)
이경하(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연구원)의 ‘『내훈』의 『소학』 수용 양상과 의미’ (2008.5.3.).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이렇듯 대다수 연구가 남성의 권위에 눌린 여성의 유교적 맹종만을 강조하지만, 세종은 여성에게 출산 휴가 100일을 주는 제도를 만든 사례를 보더라도 오히려 여성에 대한 배려가 주도면밀했던 분으로서, 새로운 시각으로 평가해야 하겠다. 『삼강행실도』의 순서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왕조시대는 위계적으로 ‘충효(忠孝)’를 앞세우지만, 세종은 효자를 충신 앞에 놓았고, 부인의 정절(貞節)만을 요구하는 열녀(烈女)는 맨끝으로 미루고 있다. 더욱이 세종이 맨처음 이 책을 간행하라 명할 때부터 이 책의 서문이나 발문 어디에도 ‘열녀(烈女)’나 ‘열녀전(列女傳)’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없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 수용된 『열녀전(列女傳)』은 『삼강행실도』에서, 용광로에 들어간 쇠처럼 온갖 문헌이 함께 녹아 새롭게 태어났으니, 열녀를 효자와 충신과 나란히 함으로써 삼강(三綱)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열녀(列女)’ 가운데 ‘열녀(烈女)’를 강조함으로써 많은 여성이 제외되고 110인만 선별되었는데, 성종 때는 이를 언해하면서 다시 35인으로 축소되어 결과적으로 여성의 처세가 정절(貞節)만을 강조하면서 경직되고 완고해지게 되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 뜻은 임진왜란을 겪은 뒤 『동국신속삼강행실도』로 이어지면서 이민족에 대한 절개로 강조되었다. 한편 단순히 여성들의 이야기를 나열하는 ‘열녀전(列女傳)’에서, 지아비와 윗사람, 가정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여성들의 ‘열녀전(烈女傳)’으로 조선에 정착한 것도 『삼강행실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때까지는 효자, 충신, 열녀를 각각 110명씩 동등한 수량으로 제시하였다는 것과, 오히려 효자를 강조하면서 열녀는 맨뒤로 열거하였다는 것은 행실도의 작은 배려로 봄직한 일이다.
3) 중종 때 간행된 『고열녀전(언해본)』은 『삼강행실도』 언해본과 『오륜행실도』의 중간 단계의 간행물이다.
『이륜행실도』(1518)가 새롭게 간행된 책이면서도 언해 문장을 본문 안에 새기지 않고 『삼강행실도』 언해본처럼 본문 밖 상단에 새긴 체재를 따른 것과는 달리, 같은 행실도류지만 『동국신속삼강행실도』와 『고열녀전(언해본)』이 우리말 해석 문장을 본문 안에 큰 글자로 한문 원문과 나란히 새겨 넣었다는 점은, 본문 밖 언해문 새김 형식을 깨고 『오륜행실도』 형식으로 나아간 전단계 모습을 띤 변화다. 『오륜행실도』는 목활자를 만들어 굵은 글씨로 크게 찍어내어 글자가 매우 선명하고, 한자를 혼용하지 않고 언해문 전체를 한글로만 써서 표기하였다. 이 또한 한글 표기의 획기적 발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언해문의 한글이 그 어느 언해본보다도 선명하고 굵은 글씨로 본문에 새겨짐으로써 한글의 위상을 최상으로 높인 간행물이라 할 수 있다.
4) 『삼강행실도』 서문에 밝힌 대로, 처음부터 중국의 『열녀전』과 『고금열녀전』만이 참고 문헌으로서 사용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원나라 곽거경(郭居敬)이 편찬한 『이십사효』나 『효순사실』 등, 모든 중국 역사서를 참고하지 않은 문헌이 없었다. 세종의 명에 따라 처음 간행된 『삼강행실도』의 「열녀도(烈女圖)」 110편을 중심으로 그 출처를 살펴본 결과, 사마천의 『사기』는 기본이고, 유향의 『열녀전』과 겹치는 송나라 때의 『고열녀전』 중 16편과 명나라 영락제 때의 『고금열녀전』 중 50편을 비롯하여, 중국 문헌 『시경』 2편, 『소학』 1편, 『춘추』 1편, 『후한서』 5편, 『삼국지』 1편, 『진서(晉書)』 8편, 『태평광기』 1편, 『위서(魏書)』 1편, 『수서』 4편, 『구당서』 3편, 『신당서』 8편, 『오대사』 1편, 『송사』 9편, 『요사』 1편, 『금사』 6편, 『원사』 24편 등 중국의 정사(正史)와 다양한 문헌을 참고함으로써 오류를 범하지 않고 정확한 기록을 수록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고, 우리나라 문헌 『삼국사기』 1편, 『고려사』 8편, 『함양군지(咸陽郡誌)』 1편, 『용비어천가』 1편에 같은 기록이 보이듯이, 나라 안팎의 모든 역사 기록물을 참고 대상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고대보다는 좀더 후대의 역사에서 더 많이 인용함으로써 현실에 더 가까운 이야기 위주로 엮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상과 같이, 『오륜행실도』 「열녀」편의 내용과 형식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하여, 중국의 『열녀전』과 조선 세종 때의 『삼강행실열녀도』를 비교 분석하였고, 나아가 열녀전류와 행실도류를 두루 살펴본 결과, 방대한 출처와 일관된 편찬 의도, 발전된 인쇄 기술을 정확히 규명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열녀전(列女傳)』(서기전 6년 이전, 유향(劉向))
『고열녀전(古列女傳)』(1214, 채기(綵綺))
『고금열녀전(古今列女傳)』(1402, 해진(解縉) 등)
『효순사실(孝順事實)』(1420, 이제현(李齊賢) 등)
(원본은 인터넷으로 열람.
https://familysearch.org/ark:/61903/3:1:3Q9M-CSHP-SQFP?i=803.)
『삼강행실도』(1434, 설순(偰循) 등)
『번역소학(飜譯小學)』(1518, 김전(金詮) 등)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1518, 조신(曺伸) 등)
『시경언해(詩經諺解)』(1613, 교정청)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 이성(李惺) 등)
『어제계주윤음언해(御製戒酒綸音諺解)』(1757,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
지부족재장판(知不足齋藏版) 『열녀전(列女傳)』(1779)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Harvard- Yenching institute) 소장본. - http://www.harvard-yenching.org 참조.
『흠정사고전서(欽定四庫全書)』(1781) 사부(史部) 7 참조.
『금속활자와 인쇄술』(손보기, 1977),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삼강행실도』, 해제 ‘삼강행실도에 대하여’(김원용, 198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한국의 풍속화』(정병모, 2000), 한길아트
『한글문헌 해제』(박종국, 2003), 세종대왕기념사업회
『新譯 列女傳』(黃淸泉 注譯, 2003), 三民書局(대만))
『동아시아 고대의 여성사상』(이숙인, 2005), 여이연
『한글금속활자』(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역사자료총서Ⅳ, 2006), 국립중앙박물관
『대동문화연구』 제70권 ‘소혜왕후 『내훈』의 『소학』 수용 양상과 의미’(이경하, 2010),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한국어발달사증보』(2009, 박종국), 세종학연구원
『2011년도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 제3차 회의 안건』(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2011)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 열녀전』(고은숙, 김민지, 2015), 국립한글박물관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Ⅰ』, ‘동국신속삼강행실도 해적이’(정호완, 201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오륜행실도』 해제*

<각주>* 이 해제는 송철의 등(2006)의 역주 『오륜행실도』에서, 황문환의 『오륜행실도』 해제(2006: 873~888)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이광호(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1. 머리말

정조 21년(1797)에 정조의 명으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두 책을 합책하고 그 내용을 일부 수정하여 간행한 책이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이다. 5권 4책, 소장본에 따라서는 5권 5책의 언해본(諺解本)으로, 원문의 한자는 동활자(銅活字)이고, 언해문의 정음(正音) 곧 한글은 목판본(木版本)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의 제목 ‘오륜행실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역대 문헌에서 ‘오륜(五倫)’의 ‘행실(行實)’을 본받을 만한 인물들을 가려 뽑아 그 ‘행실’의 구체적인 내용을 전기(傳記) 형식으로 실어 놓은 교화서(敎化書)이다. 역사적으로 모범이 될 만한 중국인 133명과 그들과 견줄 만한 우리나라 사람 17명, 도합 150명의 전기를 효자(孝子) 33명, 충신(忠臣) 35명, 열녀(烈女) 35명, 형제(兄弟) 31명, 붕우(朋友) 16명으로 나누어 실어 놓았다. 그 순서 역시 유교에서 윤리적인 순위에 따라 ‘효자-충신-열녀-형제-붕우’로 정한 것으로 해석되는데, 다만 ‘오륜’ 가운데 하나인 ‘장유유서(長幼有序)’에서 ‘장유(長幼)’의 예는 제외되어 있다.
이만수가 쓴 서문에서는 정조가 이 책에 대하여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룩하는 근본이 되었다.[爲化民成俗之本]”와 같이 천명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즉 이 책은 교화(敎化)를 목표로 한 것이었으므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도판 곧 그림을 맨 앞에 싣고, 이 내용을 설명하는 글인 전기(傳記)를 뒤에 싣는 ‘전도후설(前圖後說)’의 체제를 취하였는데, 이는 책 이름에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의 ‘도(圖)’가 그 증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오륜행실도』의 초간본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서울대학교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등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이들 초간본 가운데 국립중앙도서관 본은 1972년에 을유문화사에서, 규장각본은 1989년 홍문각에서 각각 영인, 간행되었는데, 대체로는 규장각 본을 많이 이용한다. 본 해제는 규장각본(도서 번호 ‘가람 古 170-Y510’)과 동일한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을 대상으로 한다.
주 1)
서지 사항 : 33.8×20.9㎝. 사주쌍변(四周雙邊). 반엽 광곽(半葉匡郭): 21.9×13.8㎝, 유계(有界), 한문 10행 20자, 언해문 10행 19자, 주쌍행(注雙行). 판심(版心): 흑어미(黑魚尾), 원표제: 五倫行實, 내제·판심제: 五倫行實圖.

2. 『오륜행실도』의 체제와 간행 경위

2.1. 책의 체제
『오륜행실도』의 전체 체제는 크게 서문 부분과 본문 부분의 둘로 나누어 있다. 서문 부분은 권1의 앞부분에 실려 있는 간행에 관련된 기록들로서, 간행 당시인 정조 21년 정월 초하루에 내린 정조의 윤음(綸音) 3장(6면)을 비롯하여,
주 2)
이 윤음의 제목은 ‘어제양로무농반행소학오륜행실향음주례향약윤음(御製養老務農頒行小學五倫行實鄕飮酒禮鄕約綸音)’으로 판심(版心)은 ‘어제윤음(御製綸音)’이다.
‘오륜행실도서(五倫行實圖序)’ 2장(4면)(판심: 五倫行實圖), ‘삼강행실도 원서(三綱行實圖原序)’ 2장(4면)(판심: 오륜행실도, 세자(細字) ‘三綱原序’), ‘이륜행실도 원서(二倫行實圖原序)’ 2장(4면)(판심: 五倫行實圖, 세자 ‘二倫原序’), 그리고 ‘奉 敎授閱, 奉 校監印’ 2장(4면)(판심: 五倫行實 세자 ‘校印諸臣’)으로 되어 있다.
주 3)
교열에는 규장각 직제학 이병모(李秉模), 규장각 제학 윤기동(尹耆東), 감인(監印)에는 규장각 직제학 이만수(李晩秀), 규장각 검교(檢校) 심상규(沈象奎), 춘추관 교수(敎授) 김근순(金近淳), 부사과(副司果) 신현(申絢), 춘추관 기사관(記事官) 오태증(吳泰曾), 동(同) 김이영(金履永), 부사과(副司果) 조석중(曺錫中), 동(同) 홍석주(洪奭周) 등이 참여하였다.
특히 『오륜행실도』에 ‘삼강행실도 원서’와 ‘이륜행실도 원서’가 동시에 수록되어 있는 것은 분명히 이 『오륜행실도』가 두 책을 저본(底本)으로 합책(合冊), 간행된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오륜’의 순서(장유유서는 제외)에 따라 5권으로 분권(分卷)하여 본문을 나누어 실었다. 각각의 권은 그 책머리에 목록(目錄)을 실었는데, 권1~권3은 『삼강행실도』와, 권4, 5는 『이륜행실도』와 그 목록이 대체로 일치한다.
(1) 『오륜행실도』 권제1 목록 - 효자(35인)
1. 민손단의(閔損單衣) 2. 자로부미(子路負米)
3. 고어도곡(皐魚道哭) 4. 진씨양고(陣氏養姑)
5. 강혁거효(江革巨孝) 6. 설포주소(薛包酒掃)
7. 효아포시(孝娥拘屍) 8. 황향선침(黃香扇枕)
9. 정란각목(丁蘭刻木) 10. 동영대전(董永貸錢)
11. 왕부폐시(王裒廢詩) 12. 맹종읍죽(孟宗泣竹)
13. 왕상부빙(王祥剖冰) 14. 허자매수(許孜埋獸)
15. 왕연약어(王延躍魚) 16. 양향액호(楊香搤虎)
17. 반종구부(潘綜救父) 20. 검누상분(黔婁嘗糞)
21. 숙겸방약(叔謙訪藥) 22. 길분대부(吉翂代父)
23. 불해봉시(不害捧屍) 24. 왕숭지박(王崇止雹)
25. 효숙도상(孝肅圖像) 26. 노조순모(盧操順母)
27. 맹희득금(孟熙得金) 28. 서적독행(徐積篤行)
29. 오이면화(吳二免禍) 30. 왕천익수(王薦益壽)
31. 유씨효고(劉氏孝姑) 32. 누백포호(婁佰捕虎)
33. 자강복총(自强伏塚) 34. 석진단지(石珍斷指)
35. 은보감오(殷保感烏)
(2) 『오륜행실도』 권제2목록 - 충신(35인)
1. 용방간사(龍逄諫死) 2. 난성투사(欒成鬭死)
3. 석작순사(石碏純臣) 4. 왕촉절두(王蠾絶脰)
5. 기신광초(紀信誑楚) 6. 소무장절(蘇武杖節)
7. 주운절함(朱雲折檻) 8. 공승추인(龔勝推印)
9. 이업수명(李業授命) 10. 혜소위제(嵇紹衛帝)
11. 변문충효(卞門忠孝) 12. 환이치사(桓彛致死)
13. 안원매적(顔袁罵賊) 14. 장허사수(張許死守)
15. 장흥거사(張興鋸死) 16. 수실탈홀(秀實奪笏)
17. 연분쾌사(演芬快死) 18. 약수효사(若水効死)
19. 유겹연생(劉韐捐生) 20. 부찰직립(傅察直立)
21. 방예서금(邦乂書襟) 22. 악비열배(岳飛涅背)
23. 윤곡부지(尹穀赴池) 24. 천상불굴(天祥不屈)
25. 방득불식(枋得不食) 26. 화상손혈(和尙噀血)
27. 강산장군(絳山葬君) 28. 하마자분(蝦虫麻自焚)
29. 보안전충(普顔全忠) 30. 제상충렬(堤上忠烈)
31. 비녕돌진(丕寧突陣) 32. 정이상소(鄭李上疏)
33. 몽주순명(夢周殞命) 34. 길재항절(吉再杭節)
35. 원계함진(原桂陷陣)
(3) 『오륜행실도』 권제3 목록 - 열녀(35인)
1. 백희체화(伯姬逮火) 2. 여종지례(女宗知禮)
3. 식처곡부(殖妻哭夫) 4. 송녀불개(宋女不改)
5. 고행할비(高行割鼻) 6. 절녀대사(節女代死)
7. 목강무자(穆姜撫子) 8. 정의문사(貞義刎死)
9. 예종매탁(禮宗罵卓) 10. 원강해고(媛姜解梏)
11. 영녀절이(令女截耳) 12. 왕씨감연(王氏感燕)
13. 최씨견사(崔氏見射) 14. 숙영단발(淑英斷髮)
15. 위씨참지(魏氏斬指) 16. 이씨부해(李氏負骸)
17. 조씨의여(趙氏縊輿) 18. 서씨매사(徐氏罵死)
19. 이씨의옥(李氏縊獄) 20. 옹씨동사(雍氏同死)
21. 정부청풍(貞婦淸風) 22. 양씨피살(梁氏被殺)
23. 명수구관(明秀具棺) 24. 의부와빙(義婦臥冰)
25. 동씨피면(童氏皮面) 26. 왕씨경사(王氏經死)
27. 주씨구욕(朱氏懼辱) 28. 취가취팽(翠哥就烹)
29. 영녀정절(寗女貞節) 30. 미처개도(彌妻偕逃)
31. 최씨분매(崔氏奮罵) 32. 열부입강(烈婦入江)
33. 임씨단족(林氏斷足) 34. 김씨박호(金氏撲虎)
35. 김씨동폄(金氏同窆)
(4) 『오륜행실도』 권제4 목록
ㄱ. 형제(24인)
1. 급수동사(伋壽同死) 2. 복식분축(卜式分畜)
3. 왕림구제(王琳救弟) 4. 허무자예(許武自穢)
5. 정균간형(鄭均諫兄) 6. 조효취팽(趙孝就烹)
7. 무융자과(繆肜自撾) 8. 이충축부(李充逐婦)
9. 강굉동피(姜肱同被) 10. 왕랑쟁탐(王覽爭酖)
11. 유곤수병(庾衮守病) 12. 왕밀역제(王密易弟)
13. 채확자사(蔡廓咨事) 14. 극살쟁사(棘薩爭死)
15. 양씨의양(楊氏義讓) 16. 달지속제(達之贖弟)
17. 광진반적(光進反積) 18. 덕규사옥(德珪死獄)
19. 두연대형(杜衍待兄) 20. 장존포금(張存布錦)
21. 언소석적(彦霄析籍) 22. 도경인경(道卿引頸)
23. 곽전분재(郭全分財) 24. 사달의감(思達義感)
ㄴ. 부(附) 종족(7인)
25. 군량척처(君良斥妻) 26. 공예서인(公藝書忍)
27. 진씨군식(陳氏羣食) 28. 중엄의장(仲淹義莊)
29. 육씨의거(陸氏義居) 30. 문사십세(文嗣十世)
31. 장윤동찬(張閏同爨)
(5) 『오륜행실도』 권제5 목록
ㄱ. 붕우(11인)
1. 누호양려(樓護養呂) 2. 범장사우(范張死友)
3. 장예휼고(張裔恤孤) 4. 도종심시(道琮尋屍)
5. 오곽상보(吳郭相報) 6. 이면환금(李勉還金)
7. 서회불부(徐晦不負) 8. 사도경탁(査道傾橐)
9. 한이경복(韓李更僕) 10. 순인맥주(純仁麥舟)
11. 후가구의(侯可求醫)
ㄴ. 부(附) 사생(師生)(5인)
1. 운창자핵(云敞自劾) 2. 환영분상(桓榮奔喪)
3. 견초염빈(牽招斂殯) 4. 양시입설(楊時立雪)
5. 원정대탑(元定對榻)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5권으로 나누어진 본문 부분은 오륜(五倫)의 순서에 따라 분권되었는데, 다만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장유’ 부분은 ‘형제’ 부분으로 대체되었다.
『오륜행실도』의 각 권은 권수(卷首)에 목록을 실었는데, 다음 [도표 1]에서 알 수 있듯이 권1, 권2, 권3은 『삼강행실도』와, 권4와 권5는 『이륜행실도』와 그 목록 내용이 대체로 일치한다. 다만, 『이륜행실도』에서는 『오륜행실도』와 다르게 수록 전기를 분권(分卷)하지 않고 형제도·종족도·붕우도·사생도(師生圖)에 따라 나누어 실은 반면, 『오륜행실도』에서는 형제와 부(附) 종족도를 권4로, 붕우와 부(附) 사생도와 주자 발(鑄字跋)을 권5로 나누어 실어 놓았다. 목록상의 차이에 대해서는 ‘수정간행(修正刊行)’에서 설명하게 될 것이다. 권5에 실려 있는 주자 발에 따르면 『오륜행실도』는 주자소(鑄字所)에서 정리자(整理字)로 인쇄하여 반포(頒布)한 사실이 밝혀져 있다.
『오륜행실도』와 『삼강행실도』·『이륜행실도』를 대조하여 [도표 1]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주 4)
이 도표는 황문환(2006: 875)에서 인용한 것으로, 그 원 도표에 약간의 내용을 덧붙인 것이다. 본 해제는 『오륜행실도』 전체의 해제인데, 그 가운데 권4와 권5에 해당하는 부분을 두 줄로 표시한다.
[도표 1]
내용/
책명
오륜도수록인 수
오륜행실도권1효자도33
권2충신도35
권3열녀도35
권4형제도24
부(附) 종족도7
권5붕우도11
부(附) 사생도5
주자도
『오륜행실도』 각 권에 실려 있는 전기(傳記)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전도후설(前圖後說)’의 체제를 취하고 있다. 다음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전기의 제목 ‘복식분축(卜式分畜)’과 그림이 먼저 실려 있고 뒤에 ‘한문 원문’이, 그리고 그 뒤에 ‘언해문’이 실려 있다.
『오륜행실도』 권4의 ‘복식분축’ 체제 예

(3ㄱ)

(3ㄴ)

(4ㄱ)
[그림 1] 권4 형제도
도판 (3ㄱ), 곧 그림은 전기(傳記)의 중요한 내용을 한 장면으로 나타낸 것으로 그 오른쪽 상단에 당해 전기의 제목을 사자성어(四字成語), 즉 (3ㄱ)에서처럼 ‘복식분축(卜式分畜)’으로 실어 놓았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전기의 한문 원문은 먼저 사실을 실어 놓고, 그 내용에 대한 ‘시(詩)’나 ‘찬(贊)’을 반드시 덧붙여 놓았는데, 시는 7언 율시, 찬은 4언 고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기의 한문 원문인 1행 20자에 대하여 시나 찬은 한 자를 낮추어 1행 19자(띄는 부분도 한 자로 계산함)로 하였다. 그림이나 한문 원문에는 없으나 언해문에서는 인명이나 지명, 이해하기 어려운 한문 어구(語句) 등에 대하여는 세자(細字) 두 줄, 곧 소자쌍행(小字雙行)으로 협주를 달아 놓았다.
2.2. 간행 경위
『오륜행실도』에 대한 간행 기록은 이 책의 서문인 ‘오륜행실도 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정조의 명을 받아 쓴 이만수(李晩秀)의 서문에는 간행 시기와 목적 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6) 이만수의 『오륜행실도』 서(序)
[1] 上之二十有一年丁巳月正元日 誕誥八方以休老勞農之義尋以鄕飮酒鄕約條例士冠婚儀釐爲一 編又敎若曰我朝儀物之備隆自我 英陵盛際 聖神相承治敎体明而三綱二倫之書後先彙 成列于學官爲化民成俗之本 今欲講行鄕禮宣自二書而表章之乃命其書曰五倫行實以 臣晩秀與聞是役俾爲之序 臣 謹拜稽首言曰…(이하 생략)
[1′] 임금(정조)께서 21년 정사년 정월 초하루에 노인을 쉬게 하고 농부를 위로하려는 뜻으로 온 세상에 가르치심을 널리 펴시고 향음주(鄕飮酒; 송별연)·향약 조례·사관혼의(士冠婚儀; 성년식이나 혼례 의식) 등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드시었다. 또 가르침을 내리시어, “우리나라의 의식(儀式)과 문물(文物)이 갖추어진 것은 세종대왕의 성대한 때부터인데, 이것을 성스럽고 신령한 자손들이 서로 이어받아 정치와 교화(敎化)가 밝아졌다. 그간 『삼강』, 『이륜』 두 책이 선후로 간행되어 학관(學官)에 널리 반포되어 있으므로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룩하는 근본이 되었다. 이제 향례를 가르치고 시행하려면 반드시 이 두 책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하시고, 책명을 『오륜행실(五倫行實)』로 하도록 명령하신 다음, 신 이만수가 이 사업에 간여함을 들으시고 이 서문을 쓰게 하셨다. 신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아룁니다. …
위의 서문에서 정조가 『오륜행실도』를 간행하도록 한 시기가 정조 21년( 1797) 정월임이 밝혀졌고 정조의 윤음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주 5)
윤음에는, ‘上之二十一年正月初一日’이라고 했는데, 오륜행실도 서문에는, ‘上之二十有一年丁巳月正元日’이라고 적고 있으니, ‘정사년 정월 초하루[丁巳正月元日]’라는 말이므로, ‘정(正)’과 ‘월(月)’의 한자 순서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실록에는, ‘丁巳二十一年春正月壬寅朔’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서문에서 간행 목적이 궁극적으로 향례(鄕禮)의 강행(講行)이었음이 나타난다. 이런 목적 이외에도 이 책의 간행이 단순히 두 책, 곧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책한 것이 아니라 이 두 책의 내용을 수정하였고, 특히 언해 부분에서는 ‘증정(證訂)’(증거를 가지고 올바르게 고침)하였으며, 간행의 성격을 윤색하고 고교(考校)(올바로 고침)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향례의 실천을 위해서는 이미 있었던 ‘향음주례(鄕飮酒禮)·향약조례(鄕約條例)·사관의(士冠義)·사혼의(士昏義)’ 등을 합하여 별도의 책 『향례합편(鄕禮合編)』이 편찬되고 있었지만, 이러한 실천서가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유교의 기본 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수적이었다. 『오륜행실도』는 바로 이에 부응하기 위하여 『삼강행실도』 및 『이륜행실도』와 같이 이미 널리 보급되고 알려진 윤리에 관한 책을 저본으로 하여 간행된 것이다.
이만수의 서문에서 ‘우리나라의 의식과 문물이 갖추어진 것이 세종대왕의 성대한 때부터[我朝儀物之備隆自我 英陵盛際]’라 하여, 특히 세종 대를 언급한 것은 좀 더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오륜행실도』와 동시에 간행이 추진된 『향례합편』의 ‘총서(總敍)’에 따르면 세종 대의 간행 사업이 『오륜행실도』의 간행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황문환 2006: 878).
(7) 『향례합편』의 총서(總敍)
[2] 昔我世宗盛際 行義老宴于勤政殿 復命儒臣校刊小學之君編纂三綱行實廣頒中外 予小子憲章而修述者 基在斯乎 於是命諸臣 採輯小學諸家註解而檃栝之 復以三綱行實二倫行實合編校正 命名曰五倫行實(띄어쓰기는 필자 추가)
[2′] 옛날 우리 세종대왕의 성대한 시절에 근정전에서 양로연을 열고 유신(儒臣)들에게 명령하시를, “『소학』을 교정하여 간행하고 『삼강행실』을 편찬하여 중앙과 지방에 널리 반포하라.” 하시었다. 나 소자가 이를 받들고 계승하려는 바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에 여러 신하에게 『소학』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주해(註解)를 수집하여 간행하도록 하고 또 『삼강행실』과 『이륜행실』을 합편·교정하여 이름 짓기를 『오륜행실』이라 하였다.
정조 자신이 ‘소자인 내가 이를 받들고 계승하려 하는 바가 바로 여기에 있다.[予小子憲章而修述]’고 하였듯이, 『오륜행실도』의 간행은 선왕(先王) 세종의 『삼강행실도』 편찬 과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곧 세종이 근정전에서 양로연을 베푼 이후 집현전의 문신들로 하여금 『삼강행실도』를 편찬하고 그것을 주자소에서 인쇄하게 하였듯이, 정조도 자궁(慈宮;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 이후에 문신들로 하여금 『오륜행실도』를 편찬하고 그것을 인쇄하도록 한 것이다(황문환 2006:878, 김문식 2000:157-158).
앞에 인용한 이만수의 서문(序文)에서는 저본(底本)만 언급하고 간행 성격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았다. 위 [2]의 문맥만을 참조하자면 『오륜행실도』는 기존의 두 저본,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단순히 합책하여 간행한 것으로 보이나 다음의 실록